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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1일 당고개에서 6위 순교하신 날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1. 2. 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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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1  당고개에서한국순교자 6위 순교하신 날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당고개   1840.1.31
 
    홍병주   베드로   당고개   1840.1.31
 
    손소벽   막달레나   당고개   1840.1.31
 
    이경이   아가타   당고개   1840.1.31
 
    이인덕   마리아   당고개   1840.1.31
 
    권진이   아가ㅏ타   당고개   1840.1.31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님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주교 범(앵베르) 라우렌시오님이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셨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아내 고순이(高順伊)님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박종원님은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셨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내시고,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셨다.

  

 

* 성인의 부인 고순이 바르바라님은 이틀 전에 서소문 밖 活恙

 42세로 정정혜 엘리사벳님 등 7위 함께 순교하심.

 

 

 

홍병주 베드로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님은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님이 순교하시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성장하셨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님과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셨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님은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순교하셧다.

* 성인의 동생 홍영주 바오로님은, 형이 순교하신 하루 뒤에,

 같은 당고개에서 순교하심.  

 
 

손소벽 막달레나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손소벽님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또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7세 때 최창흡(崔昌洽)님과 혼인하였으며,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성체를 모시고부터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셨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6월, 손소벽님은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사위 조신철(趙信喆)님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의 출처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세 차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하였으며,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刑問)을 당하셨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 성녀의 사위 조신철 가를로님은 4개월 전에 서소문 밖에서,
   딸 최영이 바르바라님은 하루 뒤 역시 댱고개에서,
   남편 최창흡 베드로님은 한 달 전에 서소문밖 형장에서 순교하심.
 
 
 
 

이경이 아가타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동정 순교자인 이경이님은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혼인하였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으며,

주교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님은 그 혼인을 무효화시켰다.
 
그 뒤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어머니를 시골에 사는 외삼촌에게 부탁하고 상경하여
한영이(韓榮伊)-순교자, 권진이(權珍伊)-순교자, 모녀의 집에서 살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밀고자 김순성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에 갇히고
이경이님은 권진이님과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사관청에서 한 포졸이 권진이님을 납치하려 하자
이경이님은 권진이님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셨다.
그러나 곧 체포되었고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7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 성녀의 친구 권진이 아가타님과 같은 날, 한 자리에서 순교하심
 
 
 

이인덕 마리아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동정 순교자인 이인덕님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 해 6월 어머니 조 바르바라님과 언니 이영덕(李榮德)님과 함께 체포되셨다.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22세에 순교하셨다.
 
 * 성녀의 언니 이영덕 막달레나님은 서소문밖 형장에서,
    동생보다 한 달 전, 29세로 순교하심.
 
 

권진이 아가타

관련성지 당고개 순교일 1840.01.31
 

 

 

서울에서 태어난 권진이님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 한영이님과 함께 입교하셨다.
 
13세경 혼인하였으나 남편이 너무 가난하여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丁夏祥)님의 집에서 살았다.
 
1833년 중국인 신부 유방제(劉方濟)님이 입국한 뒤부터
신부의 시중을 들었는데,
유 신부가 조선을 떠나게 되자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해 7월 17일,
같이 살던 한영이님, 이경이님과 함께 체포되셨다.
옥살이 중 한 차례 도망쳤던 죄로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1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셨다.
 
* 성녀의 어머니 한영이 막달레나님은 딸이 순교하시기 한 달 전,
   서소문밖 형장에서 56세로 7위 함께 순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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