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주교 클레멘스가 95년 경에 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장 1절~ 6장 1절을 보면 바오로가 에스파냐에 가서 선교하고 그 후에 로마로 돌아와서 순교했다고 한다.
“로마교회 신자들의 시새움과 싸움 때문에 바오로는 인내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는 일곱 차례나 결박당하고, 쫓기고, 돌을 맞으면서 동방과 서방에서 복음 선포자로 활약한 까닭에 자기의 믿음에 어울리는 고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바오로는 온 세상에 의로움을 가르치며 서방 끝(=에스파냐)까지 가서 세도가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을 떠나 거룩한 곳으로 갔으니 인내의 지극한 표본이라 하겠습니다”(클레멘스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 5~7)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에 의하면 바오로는 로마 황제 네로 박해 때(64~68년) 순교했으며, 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 테르툴리아누스는 네로의 박해 기간에 바오로가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
바오로는 로마 남쪽 교외에 지하수가 세 줄기 솟아나는 곳(트레 폰타네 : 지금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순교하고 로마 남대문 밖 성 바오로 대성당 터에 묻혔다고 한다.
테살로니카 도시·교회·편지
테살로니카는 바오로가 2차 선교여행(50~52년)때 그리스로 건너가 필리피에 이어 두 번째로 선교한 곳이다. 바오로가 선교여행을 다닐 무렵 테살로니카는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로서 20만 인구를 가진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의 임금 필립포스 2세의 사위인 카산드로스가 이 도시를 세우고 자신의 부인 테살로니케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로 명명했다.
기원전 146년 로마가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마케도이아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테살로니카는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도로변에 위치하여 예부터 매우 번창하고 풍요로운 도시였다. 이곳에는 로마 관리와 그 밖의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외국인들 중 상당수는 유다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