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는 2차 선교여행 때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데리고 그리스 북부지역에 위치한 필리피에서 선교한 다음‘에나시아 국도’(Via Egnatia) 를 따라 테살로니카에 이르렀다 (사도 17, 1).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테살로니카에 3주 동안 머물면서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그리스도교를 전했다고 하지만(사도 17, 2), 바오로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필리피 교회가 여러 차례 필요한 것들을 보냈다는 바오로 자신의 증언을 보면(필리 4, 16)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 그곳에 체류했을 것이다.
바오로가 테살로니카에서 선교할 때 야손이라는 유다인이 바오로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셨다가 동족으로부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사도 17, 5~9).
바오로 일행은 유다인들의 시기와 선동에 의해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테살로니카에서 서남쪽으로 75km 떨어진 베로이아로 피신하여 거기에 그리스에서 세 번째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베로이아에까지 찾아와서 괴롭히자 바오로는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그곳에 남겨두고 홀로 아테네로 내려가서 선교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사도 17, 10~34).
베로이아에 남아있던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아테네로 내려오자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궁금하여 그곳 사정을 알아보고 오도록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로 보내고(1테살 3, 1~2), 자신은 실라스와 함께 남쪽으로 89km 떨어진 코린토로 내려가서 18개월 동안 머무르며 활발히 선교했다.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티모테오가 코린토로 내려와서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에게 갔던 티모테오가 돌아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또 여러분이 우리를 늘 좋게 생각하고,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듯이 여러분도 우리를 그렇게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1테살 3, 6~7 ).
바오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테살로니카 교회에 편지를 써 보냈으니 이것이 곧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다. 이 서간은 바오로 이름으로 전해진 서간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일 뿐 아니라 신약성경을 통틀어서도 가장 먼저 기록된 작품이다.
바오로는 이 편지에서 신자들에게 종말론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생활 지침을 전하였다. 당시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바오로 역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자신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테살 4, 15). 그런데 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못보고 죽은 이들이 종말에 구원받지 못할 것으로 여겨 몹시 낙담하였다.
이런 소식을 티모테오로부터 듣고 바오로는 50년 경 코린토에서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종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냈던 것이다.
유다교 묵시문학
바오로가 쓴 서간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먼저 쓰여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4·5장에 나타난 종말론을 풀이하기에 앞서 유다교의 묵시문학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원전 200년 경부터 기원후 100년 경 사이에 이스라엘에서 크게 성행했던 종교문학이 묵시문학이다. 이 묵시문학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원전 6세기 말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B.C 587년 유다 임금 치드키야가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B.C 604-562 통치)의 침공을 받고 예리코로 달아나다가 붙잡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감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빼앗긴 채 견디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