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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십전대보탕을 알약으로 만든다면…”

한의약 이야기/한약이야기

by 巡禮者 2013. 9. 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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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십전대보탕을 알약으로 만든다면…”

 

십전대보탕으로 탕약 대신 알약 한 두 개를 복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물탕 한 알, 사군자탕 한 알, 황기 한 알, 육계 한 알을 함께 복용한다. 탕약을 번거롭게 매번 달이는 것보다 이렇게 알약을 휴대하면서 간편하게 복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았겠지만 20여년 전 본초학교실에서 연구를 시작하면서 필자가 꿈꾸었던 일 중 하나다.

당시 우리 대학 본초학교실 이상인 주임교수는 제형 개변에 관심이 많아 경희의료원 한약제제실에 필자를 잠시 동안 파견시킨 일이 있다. 경희의료원에서는 한약과립제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제실에서 머무르면서 한약 추출 분말부터 코팅하여 과립화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또 한약 정제를 직접 만들어 보면서 한약 제형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연구하였다. 

필자는 또 1996년에 산동성중의병원 중약제제실에서 국제협력단 파견 교환교수로 두 달 동안 머무른 일이 있다. 산동성중의병원은 약 2000여명의 직원이 있는 큰 병원이다. 하루는 응급환자가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그때 투여했던 수액제제는 일반 수액제제가 아니라 생맥산을 기본 처방으로 하여 만든 ‘생맥주사액’이었다. 중국에 다양한 제형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한약을 현대화하는데 있어 ‘제형개혁’을 빼 놓지 않는다. 당시 중국에서 중약제제실의 교수들과 ‘제형개혁’(중국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에 대하여 함께 토론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였더니 필자의 의견에 매우 공감하면서 우리나라 제형 연구수준에 대하여 높이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 이야기한 문제점의 요지는 고형추출물의 절대량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재로부터 추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용매로 추출하여 액체 상태의 것을 ‘액상추출물’이라고 하고, 용매를 날려 보낸 것을 ‘고형추출물’이라고 한다. 흔히 일본어로 ‘엑기스’라고 하지만 이 용어는 ‘추출물’이라는 용어로 바꾸는 것이 좋다. 

고형추출물 분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액상추출물로부터 용매를 제거해야 하는데 감압농축을 거친 다음 분무건조나 동결건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결건조법이란 수용액이나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재료를 동결시키고 감압함으로써 얼음을 승화시켜 수분을 제거하여 건조물을 얻는 방법으로 -10도 정도의 고체에서 바로 승화시킨다. 동결건조법은 휘발성분까지 보존되므로 이상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분무 건조는 액체를 열풍 속에 분무시켜 1 mm 이하의 미세한 물방울 상태로 기류에 동반시키면서 건조시키는 방법으로 비용은 적지만 휘발 성분들을 잃을 수 있다. 



십전대보탕을 알약(정제)으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한약재를 우선 추출하여 고형추출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물로 추출하면 20~30%의 고형추출물이 얻어진다. 한약재 일회 50g의 십전대보탕으로부터 10~15g의 고형추출물이 얻어진다. 

고형추출물 분말을 그대로 복용하면 복용이 불편할 뿐 아니라 오래되면 습기를 머금어 덩어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보존성이 좋은 과립제로 만들어야 한다. 과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형제, 결합제, 붕해제 또는 다른 적당한 첨가제를 넣어 고르게 섞은 다음 적당한 방법으로 입상으로 만든다. 

이 과립제에 몇 가지의 첨가제를 사용하여 정제를 만든다. 인습을 방지하거나 부피를 늘릴 목적으로 쓰이는 부형제, 정제의 분말 원료에 결합력을 주어 모양이 잘 만들어지도록 하는 결합제, 위장관에서 빨리 녹을 수 있도록 촉진하는 붕해제, 압축조작을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하여 첨가하는 활택제 등이 있다.

최종적으로 정제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첨가제의 양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 이상이 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십전대보탕 50g의 한약재로부터 정제를 만들면 15g의 고형추출물분말과 첨가제 45g이 들어가 결론적으로 50g의 정제를 복용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정제 한알이 500mg이라면 한 번에 100알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필자가 꿈꾸었던 대로 십전대보탕을 한알이나 두알로 복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약의 제형을 바꾸기 위한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간편성으로 동일한 효능을 나타내면서 부피를 줄이고 맛을 좋게 하는 것이 제형 개변의 관건이다. 한번에 알약 100알을 복용해야 한다면 과연 간편한 제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통하는 한약 정제들은 어떻게 만든 것일까? 또 간편한 한약제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다음 번에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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