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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3일 한국 순교자 6위 순교하신 날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0. 12. 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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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일 

 

                     한국 순교자 6위 순교하신 날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전주 숲정이   1866.12.13
 
    조화서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66.12.13
 
    손선지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66.12.13
 
    이명서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66.12.13
 
    한재권   요셉   전주 숲정이   1866.12.13
 
    정원지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66.12.13

 

 

 

 

                   
 
聖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866.12.13
 
 

‘계식’으로도 불렸던 정문호님은  

 충청도 임천(林川) 출신으로,

고향에서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시었다.

  

대성동 신리에 정착하였는데,

품행이 단정하고 성품이 강직하여

교우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을 시켜 전주 감영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지만,

미처 소식이 돌아오기도 전에 손선지,

한재권님 등과 함께 체포된 뒤 12월 13일에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그는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하며 진심으로 순교를 기뻐하시었다고 한다.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을 유랑하다가 병인 박해 무렵에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聖 조화서 베드로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866.12.13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난 조화서님은

 1839년 기해 박해 때에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한 뒤 한 막달레나와 혼인하여 아들 윤호를 두었으며,

한때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복사 일을 맡으셨다.

 

아내가 죽은 뒤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12월 5일 아들 윤호, 이명서, 정원지 님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는데,

부자가 옥에서 순교를 다짐하며 서로 격려하였다.

 

아들과 함께 예닐곱 차례의 신문을 받은 조화서님은

후손이 끊기는 것을 염려하는 척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52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1864년에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였고,
 
 
 
 
 
 
聖 손선지 베드로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866.12.13
 
 


‘승운’이라고도 불렸던 손선지님은 충청도 임천(林川)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착해 16세 때 정(샤스탕) 신부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순교할 때까지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시었다.

 

병인 박해 때 그는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면서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2월 5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정문호, 한재권 님등과 함께 전주 감영 후면옥에 갇혔다.

 

신문을 받다가 회장 신분이 탄로나,

관장에게 공소를 거쳐 간 서양 신부들의 이름과 교회 서적의 출처를 대라고

강요당하며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손선지님은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함께 체포된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다가,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숲정이에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47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으셨다.

 
 
 
   
聖 이명서 베드로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966.12.13
 
 


‘재덕’으로도 불렸던 이명서는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병인 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 전주 성지동에 정착하시었다.

 

1866년 12월 5일 포졸들이 성지동을 습격하자 이명서님은 조화서님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병든 몸으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셨다.

 관장은 병자인 이명서님을 배교시키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여

가장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강요하였지만,

그는 배교를 거부하고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열심히 기도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숲정이에서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聖 한재권 요셉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866.12.13
 
 


한때 ‘원서’라고도 알려졌던 한재권님은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를 본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진잠 지역 회장이 되시었다.

  

1866년 12월 5일 손선지, 정문호 님등과 함께 체포되자

그의 아버지는 친구를 통해 아들이 석방되도록 교섭하는 한편

감옥을 찾아와 배교하라고 간청하였지만,

한재권님은 끝내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하고

12월 13일 숲정이에서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시었다.

박해를 피해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다음에는 직책 없이 교회 일을 하시었다.
 
 
 
 
聖 정원지 베드로님
 
관련성지 숲정이 순교일 1866.12.13
 
 


‘원조’로도 불리는 정원지님은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역으로 이사하였고,

 1866년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님은 체포되던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님은 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사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히셨다.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함께 체포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에 힘입어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 내셨다.

 

마침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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