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코린토에서 그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로마에서 쫓겨 온 유다계 그리스도인 부부인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만나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사도 18, 4).
하지만 그리스도 설교 때문에 유다인들과 충돌이 생겨 바오로는 유다교 회당을 떠나야만 했고, 그후 유다교에 동조하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 티티우스 유스투스의 집에 기거하면서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선교하였다(사도 18, 6~7).
선교의 결과가 좋아서 회당장 크리스포스의 집안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사도 18, 8 ; 1코린 1, 14). 또한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들이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사도 18, 8).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선교하던 중 유다인들에 의해 아카이아의 총독인 갈리오의 법정에 끌려가 종교 이단자로 고발 당하였으나 갈리오 총독은 매우 현명하고 공정해서 종교 문제에 관한 소송을 기각하였다(사도 18, 12~17).
갈리오는 당대 로마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형이었는데, 델피에서 발견되어 1905년에 발표된 금석문에 따르면 갈리오는 51년 여름에서 52년 여름까지 일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보낸 기간은 51년에서 52년이었을 것이다.
이 무렵에 바오로는 코린토 선교를 마무리하고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데리고 동쪽에 있는 켕크레애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페소로 향했다. 코린토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사도 18장, 1코린 16장 그리고 로마 16장에 실려있다. 코린토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유다인들도 더러 있었다.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사도 18, 1~4. 18~29 ; 1코린 16, 19 ; 로마 16, 3~5), 회당장 크리스포스(사도 18, 8 ; 1코린 1, 14), 회당장 소스테네스(사도 18, 17 ; 1코린 1, 1)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코린토에서 제일 먼저 예수를 믿고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은 스테파나스 집안 사람들(1코린 1, 16 ; 16, 15~17),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나서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한 가이오스(1코린 1, 14 ; 로마 16, 23), 에페소에서 선교하던 바오로에게 코린토 교회 소식을 전한 클로에 집안 사람들(1코린 1, 11)이 유다인들인지 이방인들인지는 밝히기가 어렵다.
한편 코린토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인사한 이들(로마 16, 21~23)인 루키오, 야손, 소시파테스, 테르티우스, 에라스토스, 콰르투스 등은 초창기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이었다.
그리고 코린토 동쪽 항구인 켕크레애 신자들 중 이름이 알려진 이는 여자 신자인 포이베인데, 바오로는 그를 일컬어 ‘켕트레애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다(로마 16, 1). 여기 ‘일꾼’으로 번역된 말은 그리스어로 ‘디아코노스’인데 이는 ‘봉사자’ 또는 ‘부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포이베는 여성으로서 첫 번째 ‘부제’가 된 신자일 가능성이 있다. 스테파니스와 함께 54년 경 에페소에 있던 바오로를 찾아간 포르투나투스와 아카이코스(1코린 16, 17)역시 코린토 교회의 초창기 신자였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칠 무렵인 57년 경 코린토의 카이오스(1코린 1, 14 ; 로마 16, 23) 집에 석달 동안 머무르면서 자신의 마지막 서간인 로마서를 집필하였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현재의 신약성경에는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통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보다 더 많은 편지를 써 보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53~58년) 때 아시아 속주의 수도인 에페소에서 27개월 가량 머물면서(사도 19, 8~10 ; 1코린 16, 8~9), 코린토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이것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다.
그런데 바오로는 이 편지를 쓰면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미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한다(1코린 5, 9). 불행히도 이 편지는 현재 전해오지 않는다.
바오로는 이 편지(1코린 5, 9)에서 신자들에게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