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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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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배광하 신부
사순 제5주일 (요한 8, 1~11) : 동방 박사들의 방문
발행일 : 2007-03-25 [제2542호, 6면]

- 용서를 받는 확신의 삶 -

한탄하지 마십시오

‘D.H 컨시다인’ 신부님의 책 ‘하느님께 신뢰’라는 책을 보면, 이 같은 위로와 희망의 말이 나옵니다.

“엎질러진 물에 대하여 한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잘못과 죄 속에서 살지 마십시오. 그것을 더 이상 상관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기도록 하십시오.

통회의 기도를 드린 다음에는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 자체보다도 오히려 죄로 인한 낙담으로 하느님을 멀리 하는 수가 더 많습니다.

낙담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일어나 하느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께 가까이 가십시오. 고개를 떨군 채 뒤로 물러서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할 일을 하십시오.”

이 말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복음의 주인공은 간음하다 붙잡혀 죽음을 가까스로 면하고 예수님께 용서를 받은 간음한 여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가 죄를 용서받은 다음에도 자신의 죄에 대한 한탄과 낙담, 실의와 후회 속에만 살았다면, 예수님의 그 엄청난 용서는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용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과 해방의 마음을 가슴 깊이 담아 그녀에게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

이 말씀은 죄짓지 말고 일어나 용감히 세상 악과 싸우라는 의미입니다.



죄에 대한 한탄과 자기 실망, 좌절 속에 살았던 복음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예수님을 배신하였던 ‘유다 이스카리웃’일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세 번째는 예수님을 안다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장담하며 배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포함한 다른 모든 제자들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간음한 여인까지도 용서하시는, 사랑과 용서의 스승을, 그 스승님의 마음을 가슴 깊이 사무치게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배신의 옛 죄에 대한 낙담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복음을 위하여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죄에 대한 낙담으로 사랑과 용서의 주님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때문에 옛 죄에 빠져 낙담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 18~19)

힘을 청하십시오

예수님 발치에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향유를 부었던 죄 많은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 47).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날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모두 먼지 펄펄 나는 죄인들입니다. 누구나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 10).

우리는 거듭 짓는 죄를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죄 속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고 떨쳐 일어나 주님의 사랑을 향하여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 하신 예수님 말씀이 끊임없이 귓전에 울리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혹 중에, 죄의 낙담 속에, 교만함에 빠지지 말고 주님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죄 중에 주님을 만나 회개의 삶을 사셨던 중세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늦게야, 너무도 늦게서야 만난, 용서와 아름다움의 주님을 향하여 이렇듯 용기 있는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임을 알아 뵙게 하신 임이옵기에

갈수록 더욱 알아 뵙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신 임이옵기에

임 앞에 제 약함이 있사오니

강함은 지켜 주소서. 약함은 거들어 주소서.

임 앞에 제 앎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모름이 있사오니

임께서 열어 주신 곳에 제가 들어가거든 맞아 주소서.

임께서 닫아 거신 곳에 제가 두드리거든 열어 주소서.

임께서 저를 고쳐 놓으실 때까지,

고쳐서 완성하실 때까지.”

진정 많은 용서를 받은 자녀답게 정말 용기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불러일으키신 주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고쳐 주시리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말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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