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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세상 속에서 자유, 평화 나누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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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세상 속에서 자유, 평화 나누자/배광하 신부
부활 제6주일 (요한 14, 23~29) : 성령을 약속하시다
발행일 : 2007-05-13 [제2549호, 6면]

- 억압과 자유와 평화 -

억압

어느 스님께서 가톨릭 교회의 방대한 법전을 보고 놀라며, 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교회가 자꾸 신자들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라의 법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법 없이도 사는 나라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악스러워져 자꾸만 법망을 피해가며 악을 저지르니 그것을 보완하는 또 다른 법들이 만들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그 같은 모습은 자주 발견 됩니다. 그들이 단순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미꾸라지 같이 피해가며 악을 저지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또 다른 율법이 만들어지고 법 조항은 늘어만 가게 되어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부터 신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율법의 얽매임이었습니다. 특별히 할례의 문제는 새로운 신앙에 들어서려는 이들에게 많은 두려움과 망설임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그 많은 억압적인 율법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우셨던 예수님의 정신을 그토록 빨리 잊어버리고 초대 교회는 또다시 백성을 율법에 옭아매려고 하였습니다.

그 같은 거짓 율법에 당당히 맞섰던 바오로 사도는 드디어 초대 공의회인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이끌어 냅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이 신앙에 입문할 때 가장 큰 공포의 걸림돌이었던 할례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 28)

그런데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된 교회는 바리사이보다 더 지독한 율법주의화 되어 하느님 백성을 억압하게 됩니다. 구약의 강압적인 율법주의보다 더 큰 공포의 율법 교회로 변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득권을 얻은 다음, 신앙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수 많은 백성을 억압하고 죽인 것이 부인할 수 없는 교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이 지상 파견의 목적이 자유와 해방이라고 선포하셨는데, 교회가 그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 18~19)

이제 신약의 자유와 해방을 크신 은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을 억압하는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살아갈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

신앙인들은 외부의 압력에 맞서 용감히 싸워야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참된 자유를 살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세상 모든 물질적인 것, 권력, 명예, 재물, 지식, 가족, 인간적인 사랑의 얽매임에서 과감히 해방되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진정한 자유 참 평화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 27)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맛보았다면, 이제는 내 자신이 옭아매고 있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평화와 자유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아 늘 송구스러움과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이웃과 가족을 용서해 그들이 두 손 활짝 펴고 자유와 평화를 맛볼 수 있게 하는 일,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빚을 탕감해 주어 기쁨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해 주는 일, 어려운 고민에 억눌려 있는 이들을 사랑의 관심으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 주어 자유와 평화를 얻게 해주는 일 등.

내 주변을 사랑으로 둘러보면, 바로 나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게 될 일들이 실로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눈뜨게 됩니다. 그것이 부활을 사는 것이며, 부활을 사는 신앙인의 참된 모습일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그렇게 살라고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 23)

우리가 진정 자유와 평화를 세상 속에서 만들며 살때, 분명 우리는 영원한 평화의 도성,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등불(묵시 21, 23 참조)이 찬연히 빛나는 부활의 집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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