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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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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배광하 신부
연중 제23주일 (루카 14, 25~33) : 버림과 따름
발행일 : 2007-09-09 [제2565호, 6면]

- 버려야 따를 수 있는 진리 -

인숙이 이야기

예전 교구 사제단 피정 때에 지도를 해주신 신부님의 체험담이 떠오릅니다.

전라도 광주에 천주의 성요한 의료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 복지원에 인숙이라는 아가씨가 있는데, 나이는 스물이 넘은 아가씨지만 정신 연령은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 아이 수준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 수사님들께서 장애인 방에 간식을 넣어 주고 인숙이 방을 나오는데, 갑자기 인숙이가 죽겠다며 소리를 치더랍니다. 황급히 인숙이 방으로 수사님들께서 달려가 보았더니, 방금 나누어준 인숙이 간식을 다른 장애인들이 먹으려 하자 인숙이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간식을 한 입에 털어 넣다가 그만 목에 걸려 숨을 못 쉬고 캑캑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사님들께서 급히 간식을 토하게 하고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너무도 이상한 것이 숨을 못 쉬는 상황에서도 인숙이는 한 손은 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허리춤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잠시 숨을 쉬게 하고는 팔을 강제로 벌려 옷을 젖혀 허리춤을 보았더니 며칠 전 복지원 식당에서 닭 요리를 하고 버린 닭 내장을 인숙이가 나중에 먹으려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몰래 건져 허리에 매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신 연령이 낮은 인숙이 눈에는 닭 창자가 울긋불긋 한 것이 먹음직스러웠나 봅니다.

이야기를 마치신 피정 지도 신부님께서는 인숙이야 정신 연령이 낮은 장애를 가졌으니 이해 되지만 정상인이며 어른인 우리들이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허리에 매달고 있는 썩은 닭 창자가 무엇인지 만져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썩은 닭 창자를 잘라 버리면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악취를 풍기지 않고 너 나 할 것 없이 개운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것이 되질 않아 악취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라 버리지 않는 썩은 닭 창자는 ‘교만’ ‘이기심’ ‘자존심’ ‘썩은 냄새나는 고집’ 등이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33)

여기서 예수님 말씀은 자신들이 가진 재산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이 진정 버리기 어려운 고집과 아집, 이기심과 자존심, 교만도 함께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것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안고

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뼈 속을 비워야 합니다. 그 위에 다시 비상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시 천상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의 비상은 자신을 수없이 버리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 것으로 가득 찬 뚱뚱한 상태로는 날아서 하늘나라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사도 성 바오로의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필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믿게 되었는데, 얼마 동안 옥중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시중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원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그를 용서해 주고 잘 받아줄 것을 부탁하며 편지를 씁니다.

당시 사회에서 노예는 그저 물건에 해당될 만큼 재산의 일부인 별것 아닌 존재로 비참한 대접을 받았는데, 바오로 사도는 그를 아들로, 심장과 같은 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레몬에게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필레 9, 16)

이것은 바오로 사도가 그만큼 자신에게 있는 자존심과 명예까지도 버리며 스스로를 낮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스승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짊어지다’는 ‘십자가를 소중한 보물로 알고 품에 안고 따라야 한다’로 번역이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십자가가 마지막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천국 문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보물로 바뀌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만나게 되는 십자가는 이겨내고 받아들이며 안고 나아갈 때 분명 공로가 되는 것이며, 그 십자가로 인하여 영원히 갈라지는 심판대에서 천국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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