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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세상의 거짓에 ‘아니’라고 해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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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세상의 거짓에 ‘아니’라고 해야/배광하 신부

연중 제20주일 (루카 12, 49~53) : 불을 지르러 왔다
발행일 : 2007-08-19 [제2562호, 6면]

- 평화를 위한 불같은 신앙 -

불같은 신앙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프랑스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 신부님은 학문적 탐사를 위해 오르도스 사막 한 가운데에 있어서 미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라는 글을 통하여 이렇게 쓰셨습니다.

“주님, 이번에는 앤 숲 속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존재가 발원한 샘, 그것은 불입니다. 태초에 차가움이나 어두움이 아니라 ‘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속에서 빛이 서서히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빛’이 있어서, 끈질기게 그러나 어김없이 저희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영이시여, 불이시여, 다시 한 번 내려오시어 새로 만들어진 이 가냘픈 물질 덩어리에 혼을 불어넣어 주소서. 세상은 오늘 이 새로운 피조물로 새 단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김진태 신부 옮김)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도 오늘날 미사성제를 드리신다면, 온 우주를 통째로 들어올리시며 불같이 기도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묵시 3, 15 참조) 우리의 신앙에 진정 뜨거운 열정의 불을 쏟아 부어주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신앙은 시들어 버리고, 열정은 차가워졌으며, 진실로 주님을 찾는 마음 또한 사라져 버린 오늘, 그래도 염치없이 주님께서 주실 평화를 바라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 49 51)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서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말하면서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한번도 천주교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가짜 신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실한 신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 신앙이 아닌 세상의 거짓된 것에 단호히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정말 미쳤다는 소리,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 때론 가정의 분열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신앙입니다. 뜨거운 열정의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실로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히브리서의 격려를 기억합시다.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니다.”(히브 12, 1)



평화를 얻기 위한 노력

화가이신 ‘임옥상’님은 이 같은 멋진 글을 쓰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 사람 숟가락 놓았어’ 하면, 그가 죽었다는 의미로 안다. 반면 ‘숟가락 하나 더 놓자’고 하면, 식사에 초대한다는 뜻이고, 초대에 부담을 갖지 말라는 의미도 붙어있다.

숟가락 공동체로 우리의 전통 사회는 대동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서양과는 달리 유목 사회가 아니라 농업 사회였던 우리는 유토피아를 대동 사회로 보았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현세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던, 지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낙원-유토피아를 우리는 현세, 즉 이 땅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 초대교회 당시 신앙의 선조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낙원을 이 지상에서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셨습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평화를 살고자 하는 사람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얻고자 하는 평화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평화는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분명한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언제나 말씀에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셨기에 세상의 것을 다 잃었어도 기쁨과 평화로 사실 수 있었습니다. 진정 신앙 때문에 가정에 분열이 일어났어도 불같은 신앙으로 평화를 지켜내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2, 2)

오늘날에도 신앙 안에서 참된 평화를 찾아 불같은 믿음 생활을 하는 교우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의 시련과 고통은 이제 그들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드디어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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