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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가장 끝자리에서 그분을 만납니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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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가장 끝자리에서 그분을 만납니다/배광하 신부

연중 제22주일 (루카 14, 1. 7~14) : 끝자리에 앉아라
발행일 : 2007-09-02 [제2564호, 6면]

- 하느님 나라에 초대 받을 사람 -

마음의 초대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님은 평생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엠마우스’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쳐 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엠마우스 공동체에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 13)

하신 명령의 삶을 충실히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삶은 소외된 이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더 큰마음의 초대로 사셨습니다. 그 같은 마음을 보이는 신부님의 글이 있습니다.

“나는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엠마우스 동료들의 양로원이나 파리 외곽에 위치한 고층건물 10층에서 지낸다. 거기서는 파리 전체가 기막히게 내려다보인다.

창문 아래로는 수도로 들어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는데, 저녁이면 도로 양쪽 방향으로 수천 개의 불빛을 볼 수 있다. 밤이면 나는 창문 앞에서 수도 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얼마나 많은 흐느낌과 행복과 어린아이들의 미소와 병든 이들의 비탄과 사랑하는 이들의 기쁨과 고독한 자들의 슬픔이 뒤얽혀 있는가!’

그 후로는 그 열린 창문 앞에 홀로 있을 때면 미사를 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인간들의 모든 기쁨과 모든 고통을 그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이다. 또한 그 유리창은 내 성당의 중앙 홀이기도 하다. 내 앞에는 내 모든 형제들이 있으며, 그들을 위해 나는 성체성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직접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을 내 가정에 초대하여 돌보거나 함께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마음만은 그들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 할 수 없는지, 그 같은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의 초대가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초대나, 봉사를 가장한 자기 위안과 만족은 그리 오래가는 사랑의 초대가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끝자리에 내려와 눈물과 탄식의 밥을 먹는 이웃들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초대받은 바리사이 집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십니다. 그리고 부유한 이들이 아닌 버림받은 이들을 초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아베 피에르 신부님도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진정 사랑으로 초대할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을 사랑의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 같은 초대가 있었던 사람들이 훗날 하느님 나라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겸손의 초대

우리는 가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갖추어야 할 윤리나 우정, 사랑이 동물만도 못하기에 나오는 심한 꾸지람, 질책이라 생각합니다.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고래들이 거동이 불편한 동료 고래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부상을 당한 동료 고래를 떠받치고 물위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나, 어미의 주검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끝내 숨을 거둔 어린 침팬지의 모습, 신선한 물과 풀을 찾아 늘 이동하는 코끼리들도 자기 어미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늘 잊지 않고 들러 한참 동안 그 뼈를 굴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 다친 동료 코끼리 곁에 함께 있는 모습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답고 숙연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행동이 반드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처럼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이해타산적인 계산이나 하고 심지어는 잔머리 굴리기 일쑤이며, 교만함이 가득 찬 인간적인 생각이 동물에게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초대하기에 앞서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1)

교우 집으로 초대되어 식사 대접을 받을 때, 어떤 집에서는 마음 편히 먹고 나오는데, 어떤 집에서는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탈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 자기의 과시나 보이기 위한 초대에 응했을 때 당하게 되는 상처는 너무도 클 것이 분명합니다.

순수한 마음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랑과 겸손의 초대를 가난한 이들은 기뻐하며, 그 기쁨이 하늘까지 닿는 것이며, 그렇게 초대한 사람 역시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보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4)

우리는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지상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가져야 할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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