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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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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배광하 신부

위령의 날 (마태 5 , 1~12ㄴ)
발행일 : 2008-11-02 [제2621호, 6면]

- 기어이 주님을 뵙고야 말리라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종교학자들은 종교의 생성 이유를 사후 세계에 대한 무지와 불안 등으로 꼽습니다. 모든 인간의 가장 두려운 현실인 죽음, 사실 인간이 공포와 두려움에 싸이는 것도 죽음 때문입니다. 죽게 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이 죽음이 때로는 저주스러운 것이지만, 죽음 때문에 인간은 겸손할 수 있고, 자신의 나약을 인정하기에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 때문에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 특별히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여러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퀴블러로스’는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죽음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거부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왜 하필이면 죽음의 위협이 자신에게 닥쳤는지 분노를 느끼는 단계이고, 세 번째 단계는 이미 절박하게 다가온 미지의 운명의 세력인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하느님과 담판을 하는 단계이며, 네 번째 단계는 체념과 절망이 섞인 의기소침의 단계이며,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단계이다.”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끝내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 죽음의 단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신앙은 죽음을 이긴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이 고통의 바다, 죽음의 위협이 넘실대는 파도를 헤쳐온 것입니다.

‘조르드 베르나노스’라는 작가는 작품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에서 블랑쉬라고 하는 한 수녀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의 엄청난 고뇌를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안심하고 고뇌할 수는 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고 희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른 것은 죽음에 짓눌린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실 주님의 은총을 믿기에 안심하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편의 시인은 노래합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 4)

주님은 나의 목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약속’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과 그에 대한 의문도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을 극복한 희망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 인간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을 극복하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확신에 찬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26)

나아가 묵시록의 저자는 죽음에 대하여 이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 3~4)

이제 우리는 이 같은 말씀에 희망을 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나날 동안 죽음을 어떻게 잘 준비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 성심수녀회의 ‘스즈키 히데코’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반드시 메시지를 남기고 이승을 떠납니다. 그것은 형태를 달리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소중히 해주십시오. 살아있다는 것은 한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불렸던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도 이같이 말합니다.

“죽음은 우리네 삶에서 황홀한 순간이며 환상적인 만남을 가져다주는 눈부신 순간일 수 있다. 인생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되는 그 두 가지 일은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있는 우리들이 할 일은, 믿음과 사랑, 불멸의 희망, 용서 등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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