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597) 복음을 진정 기쁘게 사십시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45

본문

 

 

(597) 복음을 진정 기쁘게 사십시오/배광하 신부

전교 주일 (마태 22, 15~21)
발행일 : 2008-10-19 [제2619호, 6면]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 -

콜카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사랑의 선교회가 있는 인도의 켈커타를 다녀오신 분들은 켈커타가 아니라 콜카타로 불러야 옳다고 합니다. 제 동창신부는 현재 콜카타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동창신부는 왜 그리도 인도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운전을 할 수 없어 차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인도가 좋다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동창은 새벽에 일어나 환자들과 그곳 수녀님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온갖 궂은 일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살아 생전에 절대 세탁기를 쓰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환자들의 빨래를 손으로 직접 빨아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창신부는 아침을 먹고 그 같은 환자 빨래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 사랑의 선교회에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자비를 쓰며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번 그곳에서 봉사하셨던 분들은 마법에 걸린 듯 계속 그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사랑의 힘은 과연 위대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 일이 좋아서 기쁘게 봉사합니다.

인도 콜카타에서 그 같은 기쁨을 체험하였던 ‘조병준’님은 그곳에서 만났던 천사들을 소개하는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이는 그곳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 ‘안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디’는 처음 콜카타에서 일주일을 지냅니다. 두 번째는 여섯 달, 세 번째는 1년, 네 번째는 4년, 그리고 다섯 번째는 5년을 머무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안디는 평생을 콜카타에서 지낼 결심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5년마다 한 번씩 독일에 돌아가 돈을 벌어 일부를 사랑의 선교회에서 쓰고, 나머지는 아껴 모아서 언젠가는 마더 테레사가 다 돌볼 수 없는 할아버지 환자들을 위한 집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자신의 노년을 보낼 꿈을 꾸고 있다고 합니다.

BMW를 몰던, 잘 나가던 은행원 시절을 접고 그는 인도에서 사랑의 나무를 가꾸어 열매 맺을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투신한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선택하게끔 만들었는지 조병준님이 물어봤나 봅니다. 안디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단순했습니다.

“헤이, 준, 그건 아주 간단해. 이 일을 하면 우선 내가 행복하거든. 그리고 내가 조금 도움을 주는 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행복할 거야. 그러면 저 위에서 세상을 보고 계시는 그분께서도 행복해 하시지 않겠어?”

돈키호테

세계 최고의 작가 100인이 선정한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은 ‘미켈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라고 합니다. 조금은 엉뚱한 이상향의 꿈을 품고 우스운 기사가 되어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책에서 돈키호테는 이 같은 심오한 말을 합니다.

“행복한 시절, 행복했던 수세기를 황금시대라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날 이 철기 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저 성스러운 시대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지요. 그 누구라도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달콤하게 익은 열매를 아낌없이 주는,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에 손만 뻗으면 되었소이다. 맑은 샘물과 흐르는 강물은 사람들에게 맛 좋고 투명한 물을 충분히 제공해주었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넉넉히 살기를 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 이를 우리는 기쁜 소식, 복음이라 부릅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민족만이 배부르고 등 따스한 안락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바람이셨습니다.

그 같은 일이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고 불가능해 보여도, 기쁨의 세상을 위한 이상향을 꿈꾸고 설령 사람들의 몰이해와 비웃음이 쏟아져 온다 하여도 세상의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 때론 돈키호테 같다는 핀잔을 듣더라도 끊임없이 그 길을 걷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우선 자신이 복음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천국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부터 살 때, 세상이 복음화되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진정 기쁘게 살 때,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로마 10, 18)

오늘도 세상 곳곳에는 기쁨의 복음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발만 아니라 손과 얼굴, 마음도 밝고 아름답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