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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삶은 주님께서 주신 풍요로운 잔치/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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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삶은 주님께서 주신 풍요로운 잔치/배광하 신부

연중 제28주일 (마태 22, 1~14)
발행일 : 2008-10-12 [제2618호, 6면]

- 감사와 친교와 기쁨의 잔치 -

풍요로움의 신앙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피네/한 잔 먹세, 또 한 잔 먹세 그려/나는 취해 이만 자려니, 자네는 갔다가/내일 술 생각나면 거문고 품고 찾아오게”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이 지은 <산중대작>이란 시입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은자들이나 개벽을 꿈꾸고 이상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이들은 한결같이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 영욕에 대한 집착이나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자유를 버리는 비굴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지붕이었고 땅이 누울 거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대에서 그릇된 권력이나 모순된 사상에 저항했던 자유인들과 신앙의 참된 믿음 안에 삶의 모습을 바꾼 이들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끝내 실망하고 포기하는 삶이 아닌 승리의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자, 낙향하여 세상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며 끝내 은둔의 삶으로 생을 마치거나, 혹은 정처없이 떠돌며 술로 인생을 망치거나 하지 않고 이미 이 세상에서 승리하였다는 뚜렷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 12~13)

사실 세상을 이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승리와 넘치는 기쁨의 자유가 자신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힘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살았으며 눈으로 본 듯한 확신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집, 그 천상의 잔치를 즐길 줄 알았습니다. 이는 그 같은 삶을 지상에서 먼저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신앙의 연장이었던 것입니다.

‘르낭’이라는 신학자는 자유인 예수님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갈릴래아를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런데 수세기에 걸쳐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 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얽매임 없는 자유와 축제를 사셨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의 자유와 축제의 삶을 보고 경직된 당시대의 사람들이 비아냥거림으로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루카 7, 34)라고 비난했겠습니까? 진정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이 세상에서부터 풍요를 살 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위한 잔치

술에 대한 예찬론자이며 지극히 애주가였던 이백은 평생 은둔하고 싶은 욕망과 출세하고 싶은 욕망의 극단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객사합니다. 그러나 장차 오게 될 하느님 나라의 천상 잔치에 대하여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 6)

그날, 장차 오게 될 하느님 나라에서의 흥겨운 잔치의 주된 내용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잔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개인과 민족의 편협된 이기주의와 국수주의를 떠나 보편된 희망의 구원을, 그 축제의 잔치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인 음식으로는 인간적인 흥겨운 술과 살지고 기름진 음식이지만,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덮개를 없애시어 눈물과 죽음을 치워주신다는 영적인 선물도 아울러 약속하고 계십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이기심에서 허우적거렸던 우리들, 세상이 이끄는 욕망에 사로잡혀 진리의 빛을 가렸던 너울과 덮개가 사라져, 비로소 우리가 꿈꾸어야 할 참된 희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세상 미련과 집착으로 인하여 흘렸던 모든 눈물들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확신에 찬 희망이 있었기에 모든 신앙인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더욱 확신에 찬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13)

이 같은 희망 때문에 우리가 이 지상에서부터 치르는 잔치인 성찬례는 보편 구원에 대한 감사의 잔치이며, 하느님 친히 인간의 죄에 대한 용서의 손길을 뻗치신 거룩한 친교를 모범으로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 형제적 친교의 잔치이며, 구원된 자유인이 누리는 지상에서부터의 기쁨의 잔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명 이 같은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분 초대에 응답하는 희망의 삶을 우리가 오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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