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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인길 마티아

순교자

by 巡禮者 2010. 12. 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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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인길 마티아
신부로 가장한 최인길(제12도)


▲ 신부로 가장한 최인길(제12도) 포졸들이 주문모 신부를 잡으려고 최인길의 집에 들이닥치자 최인길이 주 신부를 가장해 붙잡히고 있다. 주 신부는 이미 신자들의 도움으로 피신한 후였다.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최인길(마티아)은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이벽(요한 세례자)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801년에 순교한 최인철(이냐시오)은 그의 동생이다.

 

최인길은 입교 초기부터 동료들과 함께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으며, 1790년 윤유일(바오로)이 북경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에는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 선교사가 은신할 거처를 마련하는 일을 맡았다. 최인길은 한양 계동(현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집을 마련하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1794년 12월 24일(음력 12월 3일) 마침내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이듬해 초 최인길이 마련한 집으로 왔다. 그는 주 신부의 안전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밀고자에 의해 신부의 입국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고 말았다. 다행히 교우들의 재빠른 처신으로 주 신부는 최인길의 집에서 빠져 나와 여회장 강완숙(골룸바)의 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최인길은 주 신부에게 피신할 시간을 벌어주고자 신부로 위장하고 집에서 포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인길의 신분이 드러났고, 놀란 포졸들은 다시 신부의 행방을 쫓으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최인길은 주 신부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곧 주 신부의 입국 경위가 밝혀지고, 신부의 입국을 도운 윤유일과 지황(사바)도 체포되고 말았다. 최인길과 윤유일, 지황은 혹독한 형벌을 받았지만 굳은 신앙에서 나오는 인내와 결의, 그리고 지혜로운 답변은 오히려 박해하는 자들을 당황케 했다.

 

포도청은 마침내 아무리 고문을 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들을 때려 죽이기로 했다. 최인길은 윤유일, 지황과 함께 사정없이 매를 맞고 숨을 거두었다. 1795년 6월 28일(음력 5월 12일)이었고, 당시 최인길의 나이 30살이었다.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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