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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믿음에 부도를 내지 맙시다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12. 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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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믿음에 부도를 내지 맙시다 / 장재봉 신부

 

대림 제1주일(루카 21, 25-28, 34-36) 참회의 은총

 

발행일 : 2012-12-02 [제2822호, 18면]

 

교회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건강한 믿음을 되살려 다부진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촉구합니다. 오직 그분 은총에 기대어 단단한 믿음으로 탄탄한 희망에 따라 튼튼한 사랑의 용사로 거듭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 닮은 자비를 세상에 드러내는 주님의 도구가 되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거룩한 소원인 것입니다.

‘신앙의 해’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서 말씀을 읽으니 바오로 사도의 거룩한 소원이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합니다. 그분의 은총만을 구하는 참 믿음인이 되리라 다짐하도록 이끕니다.

묵시록의 예언 말씀은 두렵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공포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무시무시한 말세의 예언보다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복한 구절을 좋아합니다.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만 골라 묵상하기를 즐깁니다. 한마디로 주님께서 내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주시길 청하는 속셈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날 그때에 모두 ‘사람의 아들 앞에 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에 의탁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인들이 그분께서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오실 그날을 고대하며 행복해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그분의 자녀와 사탄의 자식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입니다. 세상에 죄가 만연한 까닭이고 그리스도인마저도 죄에 넘어지고 쓰러지기 일쑤인 까닭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탄은 세상의 이 꼴 저 꼴 아닌 꼴들을 줄줄이 보여주며 우리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에 분노하고 비방하며 치를 떠는 일이 하느님 정의인 양 꼬드겨댑니다. 율법 구절을 청산유수로 읊으며 교회법을 들이대며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진리인 양 여기도록 유인합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쑤셔 넣어 평화를 거부한 채 오히려 마음에 분을 가득 채워 비판하고 핏대 세우며 손에는 돌멩이를 든 사나운 군중으로 돌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바른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좇아가도록,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빠져드는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도록 유혹합니다. 마침내 믿음에 ‘부도’를 내도록 재촉하고 있습니다(2베드 2장 참조).

회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회개는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여 그분의 순수를 만나는 삶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시선으로 죄를 대할 때에 참회의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코앞의 이익에 시선을 둔다면 죄에 더더욱 얽혀 벗어나기 힘들어 질뿐입니다. 회개는 그분께 내 죄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며 내 죄악을 끝까지 기억하고 붙들고 괴로워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참회로 밝아진 영혼은 죄의 추한 모습에 역겨워 죄의 악취를 못 견뎌 합니다. 거듭 같은 죄에 빠져들지 않게 됩니다.

이리 살피면 세상살이에서 회개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눈앞의 일에 사로잡혀 남의 허물을 들추어 탓할 여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 넘어지든 그것은 그 주인의 소관입니다”(로마 14,4)라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할 일입니다. 재빨리 그분 사랑의 방식을 내 영혼에 탕탕 못 박아 고정하는 일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상대를 비난하고 판단하느라 사랑을 놓치고 용서할 틈을 빼앗겨 평화를 잃는 일, 너무너무 큰 손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회개의 사람을 ‘흠 없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여 변화된 새 사람에게는 결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회개의 축복을 차지하는 평화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간절한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일상의 근심’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다독여 주시고 그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힘’까지 주실 터이니, 감사할 뿐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주신 그분의 뜻을 높이 기리는 대림시기, 마음과 마음들이 그분께 합하여 매일매일 거룩한 삶을 꾸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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