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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 삶이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3. 1. 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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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 삶이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 (마태 3,15-16, ,21-22)

발행일 : 2013-01-13

 

 주님의 탄생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은총이기에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의 세례를 받으시며 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대표자가 되셨다는 엄청난 기쁨의 소식을 들려주십니다.

주님은 세상의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발 끈을 푸는 일조차 버거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분별합니다. 나 자신의 힘과 처지를 분명히 인식합니다. 그럼에도 ‘안에’ 오시어 함께 하시는 그분의 능력 덕분으로 어떠한 힘에도 짓눌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믿음을 능가할 힘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된 기쁨의 소식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리지 못합니다. 이 기쁨의 메시지가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는 얘깁니다. 똑같은 내용의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지만 그 말씀의 씨앗을 키워내는 마음 밭이 천양지차인 까닭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서도 받아들이는 생각들이 천태만상인 까닭입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요한의 선포가 ‘기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하고 두둔해 주기까지 했던 헤로데 왕은 요한을 불러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마음으로 갈등했을 뿐,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에 머뭇거렸습니다. 결국 주님의 대적자로 전락하는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마르 6,20 루카 9,9 참조).

사실 이러한 예는 성경에 부지기수로 널렸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망설임 없이 세례를 받았던 삼천 명도 수많은 군중의 일부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설교를 들으며 점점 분이 끓어올랐던 바리사이들의 그악스런 반응, 복음을 들은 마음에 더욱 맹렬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똑같은 기쁜 소식에 똑같이 양심이 찔리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결과는 너무도 상이합니다. 기쁜 소식을 ‘듣고서도’ 더 분개할 수 있으며 더 포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세상에 전해진 복음 말씀은 마음가짐에 따라 명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복음에 관한, 세례에 관한, 믿음과 사랑과 은총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이르시는 성체를 모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죄인의 대표가 되어 세례를 받으신 그분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할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의지를 읽어 그분의 뜻에 따르도록 힘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빛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습니다. 결단코 표류하는 인생을 살아가지 않게 됩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기쁜 소식’을 철저히 실행하기를 미루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대하는 인간의 상반된 반응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자포자기하듯 살아갈 것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항해에서 표류하듯 헤맬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영혼이 팔려 마음이 난파당한 그들에게 ‘지혜의 빛’을 전해 줄 사명 또한 세상 끝날까지 유효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그분의 빛을 밝혀 삶의 참된 의미를 일깨우는 일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분의 명령을 실행치 않은 게으름과 소홀함과 허물은 어떠한 변명으로 차감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이 지닌 의미를 알고 있는 지혜인입니다. 올곧게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인입니다. 복음인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 스스로의 주제를 파악한 ‘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분께 인정받는 ‘된 사람’은 세상의 힘을 거슬러 용약하는 역동적인 복음의 삶을 선택할 때 행복합니다. 언제나 세례자 요한처럼 참 자유를 누리는 당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디서나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됩니다. 계사년,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마태 10,16) 복음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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