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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한 밤만 자면, 예수님이 오십니다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12. 3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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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한 밤만 자면, 예수님이 오십니다 / 장재봉 신부

 

대림 제4주일(루카 1, 39-45) 평화 빌어주는 ‘그리스도인 언어’
발행일 : 2012-12-25 [제2825호, 19면]

대림을 맞아 저희 본당에서는 매일 새벽 5시에 모여 성체조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늘, 아버지 곁을 떠나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고 약속했습니다. 때아닌 강추위에 온 사위가 얼어붙던 새벽, 손발은 시렸지만, 마음만은 그분 사랑으로 따끈따끈하게 데워졌던 기억들은 오래오래 간직될 것입니다. 찬 이슬 맞으며 밤새 양 떼를 돌보던 목동들처럼 추위와 적막감을 견뎌내신 교우님들,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한 밤만 자면’ 예수님이 오십니다. 소풍날을 기다리던 마음처럼, ‘한 밤만 자면’ 열리는 운동회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이제 정말로 ‘한 밤만 자면’ 오실 아기 예수님을 묵상하는데, 얼마 전 신생아실에서 만난 아기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아주 작은 아기 예수님도 틀림없이 “눈 좀 떠보라”라는 어른들의 채근을 들은 둥 만 둥, 새근새근 잠들었을 것이라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고대하였습니다. 고작 몇 주일, 대림시기를 정하여 그분 오시기를 고대하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간절히,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렇게 열망하는 그리스도가 시골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사실까지 주르르 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하느님께서 시골 베들레헴을 메시아의 탄생지로 선택하셨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왜, 하필이면 베들레헴이어야 했는지….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싶습니다.

두꺼운 성경에서 고작 넉 장이 할애된 ‘룻기’는 짧지만, 매우 특별한 성경입니다. 룻기에 기록된 다윗 조상들의 내력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베들레헴 사람들의 언어가 진실하고 따뜻하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룻기에서는 잘난 척하며 나대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대를 비아냥대거나 우쭐대는 사람도 없습니다. 재력가 보아즈가 자신의 일꾼들에게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길 비네”라고 덕담을 건네는 모습도 정겹기 이를 데 없고 덩달아 “주님께서 어르신께 강복하시기를 빕니다”라고 응답했던 일꾼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결정을 보는 듯합니다.

이런 사실은 기근을 피해서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가 쫄딱 망해서 돌아온 나오미를 대하는 그들의 말에서도 드러나는데요. 어느 누구도 나오미에게 상처가 될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처량하게 이방인 며느리 룻만을 데리고 나타난 나오미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그날, 그들의 따뜻한 대화에 주목하신 하느님께서 선뜻 ‘아들의 고향은 베들레헴’이라고 작정하셨을 것이라 감히 어림해 봅니다. 부디부디 아들 예수에게도 나오미와 룻에게처럼 따뜻하고 친절한 환대가 있기를 고대하신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당시 베들레헴 사람들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그리스도인의 언어’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으니 ‘한 밤만 자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마냥 부풀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늘댑니다. 지금 이 시간쯤, 요셉 성인은 성모님을 모실 방을 구하지 못해서 애간장이 타들어 갈 것을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동동걸음치며 애달아 하는 두 분의 조바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 밤만 자면’ 아기 예수님은 갖은 냉대를 당할 것이고, 겨우겨우 외양간 여물통에서 첫 울음을 터뜨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밤만 자면’ 주님이 오시지만 세상은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꿈쩍하지 않고 악에 악을 더하느라 분주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그분께 기도드립니다. 그분을 찬미하는 땅의 대표자가 되어 악에 사로잡힌 세상을 봉헌해 올립니다. 결국, 당신 사랑으로 회개하고 참회시켜주실 것을 청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참회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한 밤만 자면’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하여 주실 주님이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옛날 베들레헴 사람들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따사로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아집을 부수고 이기적인 마음 밭을 갈아엎어 온통 당신의 것으로 채움 받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에 화답해드리기 위하여 지금 우리는 그분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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