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830) 그분의 연인이신가요?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3. 7. 7. 14:24

본문

(830) 그분의 연인이신가요? / 장재봉 신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마태오 10,17-22)
발행일 : 2013-07-07

 

 

 

늘 여름 더위는 사제들에게 특별한 보속의 기간이라 생각합니다. 겹겹이 전례복을 갖추고 스포트라이트 열기까지 받아내야 하니, 차라리 겟세마네의 예수님 닮아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도 좁은 고백소에서의 ‘극기’의 시간에 비하면, 천국이지요. 그래서인지 더위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를 챙기시는 분들이 참 고맙고 귀합니다.

장마로 어깨가 한 짐이나 내려앉는 날은 으레 고백소가 적막합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읽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럴 땐 차라리 눈감고 기도를 올립니다.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다 문득 “신자분들의 고백이 어찌 그리 똑같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1. 가장 중요한 것만 주님께 보고하는 것인지… 2.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하다”(로마 5,20)는 생각으로 더 많은 죄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열이면 여덟은 “주일미사 빠졌다”는 고백이니 그렇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주일 미사에 참례하지 못한 일이 죄가 아니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참말로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한 죄뿐이기를 원합니다. 꼭 그러하리라 사제는 오늘도 믿어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프로포즈에 화답한 주님의 연인입니다. 연인이 되어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입니다. 연인의 사랑은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연애하는 사이라면 종일을 그분과 지내는 일이 최고로 행복할 것이 분명합니다. 시시콜콜 주님의 전부가 알고 싶고, 안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무조건 좋습니다. 매일 보고보고 또 봐도 헤어지는 시간이 아쉽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몽땅 들려주지 못해서 안달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이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소소한 것들도 놓치고 싶지 않으십니다. 사소한 일들을 일일이 알고 싶으십니다. 모든 것이 되어주려 내내 함께 지내겠다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는 사랑의 완성이라 믿습니다. 도무지 헤어질 수 없는 열정에 한 순간도 떨어져 지낼 수가 없어서 주님의 각시가 된 천국 혼배라 생각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믿음인의 마음 자세란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것이라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믿음 덕분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하고 환란까지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진실로 어쩌다 한 번, 급한 사정이 있어서 미사 시간을 놓치는 경우만 제외하면 주님께 전혀 흠없는 삶을 살았다면 이야말로 백색 순교입니다. 주님의 각시가 되신 겁니다. 사제로써 진심, 자랑스럽습니다.

유다의 왕 요아스는 오늘 독서 장면만 떼어보면 형편없는 믿음인처럼 비치지만 그는 사실 “내내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2역대 24,2)는 평을 들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변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요아스 왕에게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기도록 권했을 때, 그리 쉬이 혹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요아스 왕의 믿음이 고작 힘 있는 고모부 여호야다 사제의 눈에 들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요아스 왕을 향해 기회를 주십니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는 즈카르야의 마지막 외침 속에 “부디 다시 돌아와 달라”는 애절한 당부를 담아 건네십니다. 만에 하나, 우리의 고해성사가 대죄를 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할 때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기 바랍니다. 사랑의 약속을 건덩건덩 흘리고 있는 우리 곁에서 너무나 외로우실 그분의 걸음을 느끼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기리며 주님을 못 견디게 사랑한 어린 각시를 만납니다. 주님의 프로포즈에 온 영혼이 녹아 연정에 몰입했던 사제의 사랑 고백을 듣습니다. 틀림없이 신부님의 눈에는 ‘예수님 콩깍지’가 씌였던 것이라 짐작합니다. 주님 사랑에 묶여서 그 무엇도 ‘보이는 게 없어’ 혹독한 고문을 견뎠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달콤한 회유를 내칠 수 있었으리라 감히 어림합니다. 믿음은 그분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걸, 당신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걸, 시시콜콜 주님 이야기를 듣고 더 시시콜콜한 내 얘기를 들려주는 달콤한 연인 놀음이란 걸 기억합니다. 말투도 당신 마음에 들도록 행동도 당신 눈을 사로잡도록 단지, 그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만 애쓰는 일임을 깊이 새깁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고투와 십자가 위의 고통까지도 마다지 않고 함께했던 주님의 연인, 순교자들이 몸 떨리게 부러운 오늘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