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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하느님께 꾸어 드립시다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3. 8. 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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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하느님께 꾸어 드립시다 / 장재봉 신부

연중 제16주일(루카 10,38-42)

 

 

 

 

 

 

장마 뒤의 강렬한 햇볕에 정원의 나무들이 생기를 잃었습니다. 때문일까요?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쉬던 아브라함의 노곤함이 아주 생생히 느껴집니다. 온 사위가 숨을 죽이듯 적막한 중동의 한낮, 손도 달싹하기 귀찮을 그 시간에 길을 가는 길손을 "달려 나가" 맞아들였다는 구절이야말로 우리 믿음의 조상이 지닌 후덕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라 싶습니다. 발을 씻기고 나무 아래에서 쉴 자리를 마련하여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 백살 노인 아브라함의 코 끝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을 것도 같습니다.

성경은 오늘 하루 주님의 일정을 들려줍니다. 파견하셨던 "일흔 두 제자"들의 성과 보고를 듣고(10,17) 이어서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10,25)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을 하셨으며 바로 그날에 마르타의 초대를 받아 방문을 하셨으니 무척이나 빡빡한 일정을 보내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마르타의 집에는 자그마치 '일흔 명'이 넘는 손님이 들이닥쳤던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그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서 마르타가 얼마나 동분서주했을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마르타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그 바쁜 와중에 주님 발치에 앉아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킨 동생이라니… 당장 불호령을 들어도 마땅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조심스레 다가가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는 마르타의 당부를 거절하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마르타가 참말로 민망하고 난감했을 듯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사랑의 본질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분주한 마르타의 모습에 빗대어 인간의 선행보다 더 소중한 것을 일깨우십니다. 선한 행위를 실천하는 속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르십니다. 세상에는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가 자기과시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때,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점을 각성시키십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2)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제야 그날 마리아가 만사를 제치고 주님 말씀에 주목한 것을 칭찬하신 이유가 살펴집니다.

마리아는 무엇보다 주님 의향을 소중히 살피려 했던 것을 깨닫습니다. 선행을 더 잘하기 위한 방도로 주님의 말씀을 경청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선행이 당신의 뜻에 근거할 때 하늘에서 '채권증서'가 작성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이"(잠언 19,17)라고 분명히 기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1독서에서는 길 가는 나그네에게마저도 최고의 정성과 최선을 쏟아 대접했던 아브라함의 진심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주님의 고백을 캡니다. 그날 아브라함을 찾았을 때, 막강한 하늘군대의 호위를 받는 천군천사를 대동한 신비한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환대해 준 아브라함의 '사랑'에 감동하셨던 것이라 헤아립니다… 얼마나 기쁘셨으면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라며 두고두고 자랑을 하시는지… 큰 묵상거리를 건집니다.

솔직히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족족 송아지를 잡아 대접한다면 그 살림이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말씀대로 무조건 살아내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 반복하여 강조하실 뿐입니다. 언제나 세상의 경제논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손익공식과 확연히 다른 생명의 셈법을 익히라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멍텅구리 셈법'에 익숙하라 명하십니다.

그날 마리아는 주님의 지혜로써 가득했을 것입니다. 차오른 기쁨과 감사로써 마침내 언니 마르타까지도 덩달아 신이 나게 했으리라 믿어집니다. 쪼로로 달려가 "언니는 좀 쉬어요"라며… "내가 다 할께"라며… 주님 일행의 식사를 바지런히 준비했을 것이라 헤아립니다. 말씀으로 힘을 얻으면 사랑을 전파시키지 않을 수가 없으니, 틀림없습니다. 그 왁자지껄했을, 시끌벅적했을 주님 모신 기쁨이 우리의 것이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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