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하느님 사랑한다면 계명 지키자”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4:12

본문

 

“하느님 사랑한다면 계명 지키자”

발행일 : 2006-05-21 [제2501호]

뻐꾸기 사랑

성당 앞산에 벌써부터 뻐꾸기 울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마도 뻐꾸기란 놈이 어디에선가 남의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았겠지요.

뻐꾸기는 특이한 탁란(托卵)의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 속임수의 명수입니다.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다른 새 알과 새끼를 바깥으로 떨어뜨리고 둥지를 독차지합니다.

대부분의 새들은 ‘뻐꾸기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뻐꾸기 알을 골라내는 기술을 갖고 있지만 일단 뻐꾸기 알이 자신의 둥지에서 부화한 뒤에는 자기 새끼인 것으로 철석같이 믿게 됩니다.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부모보다 몇 배나 몸집이 커지는 데도 가짜 부모 새는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운답니다.

그리고 뻐꾸기가 날아갈 때쯤이면 진짜 어미 뻐꾸기가 둥지 주위를 돌며 “뻐꾹, 뻐꾹”하고 울어대며 다 자란 자신의 새끼를 데리고 갈 준비를 합니다.

보리를 벨 무렵 이산 저산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는 어미 뻐꾸기가 남의 새 둥지에서 다 자란 새끼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몇 년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뻐꾸기의 생활에 대해 다룬 내용을 보고나서, 그동안 늦봄의 정취와 추억의 소리로 들리던 뻐꾸기 소리가 ‘얌체들의 합창 소리’로 들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는 일이 힘들기로서니 어떻게 그렇게 얌체 같은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속셈 아닌가? 참 얌체 같은 새로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나는 혹시 뻐꾸기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맺어야할 결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수고하고 땀 흘린 결과로 얻어지는 결실보다 편하고 쉽게 내가 바라는 것들을 차지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내 모습이 얌체 같은 뻐꾸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시는 마지막 저녁식사의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난 후 분명하고 엄숙하게 당신의 속마음을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마저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당신 전부를 바쳐 사랑을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피하고 싶었던 길,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거부하고 싶었던 희생과 고난의 길을 앞서 걸어가시며 오직 사랑만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드러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는 것이지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사랑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만이 그분께서 걸어가신 사랑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의 발을 씻겨 주셨기에 우리도 서로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기에 우리도 자신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앞장서서 십자가의 죽음을 맞아들이셨기에 우리도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인간은 오직 사랑 안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당신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길을 걸어가도록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안에 머문다면 그들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기쁨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 분의 벗이 되는 길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하는 것이며 그분이 가신 길을 우리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시골집에는 오래된 뻐꾸기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매시간 창문을 열고 나와 시간을 알려주는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자신에게 외치곤 합니다. ‘뻐꾸기처럼 살지 마라…’

박용식 신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