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알 수 없는 우주의 생성, 하느님의 일
임승욱
우리 신앙인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우주 창조’는 이성적 사고와 인과적 논리에 따른 경험적 사실에 기반을 두는 과학으로 부정되는 양상을 보여왔으나,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옴에 따라 공명의 관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도 “창조와 진화를 논하려면 신앙을 배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학적인, 그리고 철학적 이성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우주의 시작은 창조주의 영역이므로 과학이 개입할 수 없으나, 그 이후는 과학이 규명해도 무방하다.”고 하셨습니다. 우주의 기원, 만물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과학과 신앙이 서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연발생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물은 특별한 생명력에 의해 어버이 없이 생겨난다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생명의 창조에 관한 의견은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성(前成)설이나 자연발생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생명은 생명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생명체가 외계로부터 왔다는 주장이 생겨났습니다.
19세기에 다윈은 “생명체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을 발표하였으나, 그 조상의 생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오파린이 화학적 반응에 따른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고, 1970년대부터 심해 탐사의 발달로 이 이론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는 있지만,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기본 요소의 존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대폭발(Big Bang)
17세기에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된 천체 관측기술에 따라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실증적 근거에 따라 과학은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뉴턴이 지구에 작용하는 힘인 중력이 우주에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것을 밝혀내 지구에 국한되었던 우리의 시선은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태양계가 우주의 전체로만 알았던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가 펼쳐진 것입니다(현재 반경이 470억 광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금도 별들이 새롭게 생성 소멸되고 있으며, 암흑 에너지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져서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주에 있는 수천 억 개의 은하, 각각의 은하에 있는 수천 억 개의 별 그리고 각각의 별 주위를 도는 다수의 행성을 생각한다면 인간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번성(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해주겠다 : 창세 22,17)에 도달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편 관측 장비의 발달에 따라 1920년대부터 제기된 우주의 팽창설은 2006년 우주 배경 복사가 확인됨으로써 현재의 우주는 약 137억 년 전에 상상할 수 없는 초고온의 극소점의 에너지가 대폭발(Big Bang)하여 시간과 공간이 시작되었고 에너지가 물질로 변화하면서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지고, 이들의 융합으로 별들이 생성 소멸되면서 현재의 우주가 이루어졌으며, 태양계는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빅뱅 이론으로 정립되어 대폭발설은 가설에서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원전 4000-8000년 전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제 종류대로 6일 만에’ 창조되었음을 문자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신자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도 최초의 에너지가 어떻게 존재하였고, 무엇이 폭발을 야기하였으며 어떻게 자연법칙들이 생겨났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포함하여 이러한 의문점들을 풀고자 천문학적 비용을 들이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관측으로 존재 확인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시세계에서 사물은 입자적 성질이 매우 강하여 그 움직임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양자역학으로 설명되는 미립자 세계에서는 특히 전자의 움직임은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두드러지는 특성을 갖고 있어 확률에 따른 설명만이 가능합니다. 전자는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있다가 우리가 관측을 행하였을 때 파동적 성질을 잃어버리고 비로소 입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양자이론의 지배를 받는 세계에서는, 관측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 물체의 존재가 성립되는 것으로, 관측되기 전에는 그 상태가 어떠한지 사실상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존 폴킹혼이 말했듯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믿고 있는 우리 신자들은 이러한 신비적인 이중성이 결코 낯설지는 않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요한 15,4), 하느님을 떠난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중 우주(평행 우주)
만물의 근원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양성자나 쿼크보다 훨씬 작은 플랑크 길이(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길이, 10-33cm) 정도로 작은 끈(string)으로 이루어졌다는 ‘끈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에는 1차원의 시간과 9차원의 공간이 있어야 하며, 그보다 발전된 M 이론은 공간이 10차원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3차원의 공간 이외에 나머지 차원이 어딘가에 존재하므로 비록 매우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곳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차원이 추가됨에 따라 끈이 고에너지의 ‘막(membrane 또는 brane)’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러한 막들의 충돌로 말미암아 빅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막들의 충돌로 말미암은 대폭발이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현재의 우주는 유일한 우주가 아니며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다른 우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주의 탄생이 한 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진정한 시작이 언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점을 떠오르게 합니다. 따라서 우주의 시작에 대한 논점이 과학의 영역에서 다시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공간 이동, 시간 여행
우리는 아인슈타인 덕분에 빛의 속도보다 빠른 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대상체로부터 출발한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였을 때입니다. 빛이 눈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므로 우리는 그 물체의 과거 상태만 볼 뿐입니다. 순간적인 공간이동을 하지 않고는 현재 상태를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2,000광년 떨어진 별에서 우리 지구를 본다면 예수님 시대를, 더 정밀하게 본다면 예수님의 행동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선으로 1광년의 거리를 가는 데 수만 년이 걸리므로, 기술로는 다른 별로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최근에 발견된 ‘제2의 지구’도 600광년 떨어져 있어,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지구를 떠날 수가 없으므로 보시기에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던(창세 1,31) 이 지구를 잘 가꿀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으므로(로마 13,1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3,34)을 잘 따르는 것이 지구, 나아가 우주를 하느님이 만드신 좋은 상태로 유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하여 시간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기이한 현상인 할아버지 역설(paradox), 정보 역설 그리고 성(sex) 역설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시간 여행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간 여행이 불가능한 것을 보여준다.”고 하고 있지만, 기술의 발달로 미래 언젠가 가능해진다면 시간 여행에서 초래하는 여러 가지 역설들이 다중 우주의 존재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당시의 상태를 변형시키는 순간 변형된 다른 우주가 전개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이 우주에서만 유일하며 ‘다른 나’가 다른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감지할 수는 없지만 바로 옆에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이론들은 3차원 공간에 적응된 우리의 뇌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어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철학적 사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의 과학적 발견에 비추어볼 때 결코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수록 우리가 모르는 것이 점점 더 증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우리와 다른 곳에 계시는 하느님, 어쩌면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도 우주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로버트 재스트로는 “이제까지 무지의 산을 오르던 과학자가 이제 막 정상을 정복하려고 마지막 바위를 짚는 순간,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곳에 앉아있던 신학자 무리가 그를 맞이한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실을 구별해야 하지만,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승욱 하상바오로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박사. 가톨릭교리신학원 교수로 ‘성서와 과학’을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