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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하느님을 노래할 때: 버림받은 여인 안의 생명수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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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하느님을 노래할 때] 버림받은 여인 안의 생명수
 
황영애
 
 
동서양을 막론하고 버림받은 여자에 관한 내용의 문학작품이나 방송 드라마가 아주 많다. 실제로 그러한 체험이 있든 없든 누구나 여기에 관심이 많고, 이를 접하며 때로는 자기 일처럼 분노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세태가 달라져 가끔 부인이 남편을 버리는 일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남편이 부인을 버리는 일이 더 많다.
 
버림받은 여자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게 되어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자책도 하며 부끄러움에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다. 그녀는 광야로 쫓겨났다고 느끼며 외로워하고 사랑을 목말라한다. 언젠가 돌아올 보은을 생각하며 온갖 것을 참아가며 희생해 왔기에 그 상처는 더욱 깊어, 하느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믿기에 이른다. 과연 하느님께서도 버리시는 걸까?
 
 
구약성경에서
 
안셀름 그륀 신부의 저서 “여왕과 야성녀”에서 버림받은 여자를 하느님이 어떻게 대하셨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남편에게 자기의 몸종 하가르에게서 아기를 얻으라 한다. 하가르는 임신한 것을 알고는 사라를 업신여겼고 사라는 이를 아브라함에게 불평하였다. 남편은 하가르가 그녀의 여종이니 마음대로 하라며 내어주었다.
 
사라의 구박을 피해 도망간 하가르가 광야의 샘터에서 만나게 된 주님의 천사는 여주인에게로 돌아가 복종하라고 말했다. 그때 천사는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네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다.”(창세 16,9-11 참조)고 하였다.
 
하느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그녀는 고초를 당할 줄 알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신 안에는 세상이 훼손하지 못하는 신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의 진가를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억울해 하는 희생양이 되지 않아도 되었다.
 
사라는 그 뒤 이사악을 낳았고 여종의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가르를 다시 아들과 함께 광야로 쫓아낸다. 가지고 간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져 하가르가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렸을 때, 하느님은 천사를 다시 보내셨다. 그제야 하가르는 눈을 뜨고 우물을 보게 되어 아기에게 물을 먹였다(창세 21,19 참조).
 
이로써 하가르는 자신과 아기를 포기할 뻔했으나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은 천사의 도움으로 눈이 열려,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버림받은 여자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기 안에 누구도 없애지 못하는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이 있으며, 이 내면의 물과 접촉할 때 포기하지 않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게 된다. 그 물을 먹고 더 나아가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며 세상에 우뚝 서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한편, 신약성경인 요한 복음서에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 유다인이었지만 우물가에서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다.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말하자면 창녀 신분의 여자였기에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끄러운 처지이므로 다른 여인들이 물을 길러 가는 시원한 시간이 아닌 뜨거운 대낮에 남들 눈을 피해 물을 길러 갈 수밖에 없어서 거기엔 그녀 홀로 있었다.
 
그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생명수에 관한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다. 세상이 주는 물과는 달리,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그 말씀에 그녀도 물을 청하니, 예수님은 그녀가 세상이 경멸하는 외로운 존재임을 알고 있다 하시며, 그녀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 예수님이 비난하신 게 아니라 축복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기쁨과 자유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녀 안으로 생명수가 힘차게 흘러들어 왔고, 자신을 받아주고 기쁨으로 채워주신 분의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달려가 그분이 그리스도임을 알렸다(요한 4,29).
 
그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찮은 사마리아 여인인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주님께서 부탁하셨고,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죄인인 그녀를 선택하여 기쁨으로 채워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첫 번째로 목격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자긍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이란?
 
이렇게 자신의 잘못으로든 남의 잘못으로 든 버림받아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수’와 관련된 ‘물’은 어떤 성질을 가졌는가. 물은 1기압에서 어는점은 0℃이고, 끓는점은 100℃이므로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이다. 물 분자는 수소 2개와 산소 한 개로 이루어져 그 분자식은 H2O이고, 산소 원자를 중심으로 2개의 수소와 굽은 형의 구조를 갖고 있다.
 
기체 상태에서 물 분자는 한 개씩 멀리 떨어져 있으나 물과 얼음 상태에서는 분자들이 훨씬 가까이 함께 있다. 이때 수소 원자는 부분적으로 ⊕전하를 띠고, 산소 원자가 ⊖전하를 띠어서 서로 다른 분자의 산소와 수소 사이에도 인력이 작용하여 수소결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결합력은 비교적 강해서 물 분자 사이의 인력을 끊으려면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에 비해 온도가 쉽게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는다. 만일 수소결합이 없다면 온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물 분자는 하나씩 뿔뿔이 흩어져 기체로 날아가고 지구상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것이고, 또 낮아지면 모두가 얼게 될 것이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물이 빨리 끓거나 얼게 된다면 우리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또한 물이 얼 때는 수소결합을 한 육각 고리 모양의 결정을 형성하며 빈 공간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물은 다른 물질과 달리, 고체인 얼음이 되면 부피는 증가하고 밀도는 감소한다.
 
만일 얼음의 밀도가 물보다 컸다면 얼음은 강 아래로 가라앉고 이것이 계속되면 강은 순식간에 모두 얼음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얼음이 물 표면에서 찬 공기를 막아주기에 물은 더 이상 얼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겨울에도 얼음 밑의 물고기들이 살 수 있어 지구의 생태계가 보존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렇게 자연현상은 모든 생물이 그 생명을 유지하고 또 꽃피우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돌보시는 창조주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떤 모양을 하더라도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물의 특성은, 액체 상태에서는 다른 물질과 섞여서 녹일 수도 있고, 그릇이 어떤 모양을 하더라도 자신의 모양을 바꾸어 그 속에 담길 수 있지만 고체일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물에서와 얼음에서의 수소결합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인데 분자 내의 이 작은 차이는 외부적으로 매우 큰 차이를 일으킨다.
 
액체 상태에서는 고체 상태보다 온도가 높아 물 분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수소결합이 부분적으로 끊어져 있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부분이 있어 물 분자는 유연성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물은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담길 수 있고, 흐를 수 있고, 다른 물질이 물속에 들어오게 되면 융통성 있게 자리를 내어주어 그들과 섞일 수 있다.
 
이에 반해 얼음은 모든 분자들이 수소결합으로 연결되어 꽉 묶여있는 셈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도 그 속에 포함된 물이 있기에 몸속에 용이하게 전달된다. 수증기는 따로 흩어져 있기에 다른 물질을 품을 수 없고, 얼음은 분자들이 경직되어 있어 그 사이를 다른 물질이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생명의 원천
 
이렇게 유연하고, 다른 물질을 품을 수 있는 물의 성질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요인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물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얼음이나 수증기가 아닌 액체 상태의 물을 준다고 하셨다.
이 물에는 물질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 유연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어울리고 또 그들을 품어 세상의 고통을 녹여내어 영혼에 생명을 준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비단 남녀간의 경우가 아니라도, 회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거나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포기하고픈 마음이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본질까지 훼손시킬 수는 없다. 우리 안에 솟아오르는 생명수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그 샘물을 찾아가다보면 먼저 다가와 우리를 이미 돌보고 계시는 그분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자신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찾게 되니까. 이제 우리에겐 사마리아 여자처럼 그런 주님을 전할 일만 남은 셈이다.
 
 
황영애 에스테르 - 이학박사(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화학과), 현 상명대학교 교수이며 저서로 “화학에게 길을 묻다”(2010, 더숲)가 있다.
 
[경향잡지,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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