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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8: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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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땅의 나라'와 '하느님 나라', 어디에 속할 것인가
 
박승찬 교수(엘리야, 가톨릭대 철학과)
 
 
▲ 분도출판사에서 간행된 「신국론」 전 3집 중 1~10권. 이 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아우른 천재적 사상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의 걸작으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인간사 전반을 집대성하고 이론화한 일대 사건으로 평가될 정도이며 인류 최초 역사철학서이자 역사신학서로 꼽힌다.
 
 
젊은 날 방탕과 극적 회개로 유명한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스승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
 
그의 개인적 고백과 찬양으로 가득찬 「고백록(Confessiones)」은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적 발전의 정점에는 해박한 지식과 규모의 측면에서 「고백록」을 능가하는 「신국론(De civitate Dei)」이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열심한 신자들에게조차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실로 여러 측면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우선 분량에서 그가 평생 저술한 책 가운데 가장 방대하다. 분도출판사에서 라-한대역 3권으로 출간된 번역본의 경우, 본문만 매우 작은 글씨로 1500쪽에 달한다. 단순히 분량만이 아니라 그 책에 담긴 저자의 해박함과 놀라운 통찰력은 과연 이 책이 왜 서구지성사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방대함과 치밀한 구성에서 이 책을 능가하는 토마스 데 아퀴노의 「신학대전」도 있다. 그렇지만 「신국론」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신학대전」과는 다른 독특한 감동을 받는다. 바로 이 책 안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지녔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이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열정적 문체로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수사학 전문가였던 노주교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백조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성직자가 수도원의 고요한 명상 속에서 성찰한 내용을 적은 영성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조국이 멸망해 가는 위급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저술된 긴장감 넘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410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 왕 알라리쿠스가 영원한 도시라고 불린 로마를 함락시켰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지 얼마 안 되는 로마인들은 로마 함락이 전통적 신을 버리고 이교도인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판은 북아프리카로 피신해 온 로마 상류층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로 활동하던 히포에까지 퍼져 나갔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그에게는 이미 통상적 사목활동을 뛰어넘는 펠라지우스나 도나투스파 등과의 치열한 논쟁들 자체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부당한지 체계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그는 이 대작을 사망하기 4년 전인 426년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완성하기에 이른다.
 
「신국론」은 두 부분, 다섯 단원, 전체 22권으로 나눠진다. 첫째 부분의 첫 단원(1-5권)에서는 이교도들의 다신교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함을 논한다. 둘째 단원(6-10장)에서는 다신교가 정신적 차원에서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데도 실패했고 사후 영생과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둘째 부분에서는 인류 역사를 구원 역사로 관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제시하고 옹호한다. 이 부분은 세 단원으로 나누어져 하느님 도성의 기원(11-14권)과 전개(15-18권), 종국적 목표(19-22권)를 논한다.
 
여기에는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제가 망라돼 있기에 다뤄진 주제를 열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신국론」을 구성하는 거창하고도 체계적인 구조를 고찰해 보는 것이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여러 책에서 이미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라고 외쳤다. 이처럼 윤리의 핵심을 사랑에서 찾았던 그는 자신의 오랜 체험을 기반으로 인간을 두 유형으로 구분했다. 즉 육체에 매여 살아감으로써 여전히 변할 줄 모르는 낡은 사람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재생해 거듭난 새 사람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에는 원죄의 결과로 육정에 사로잡혔던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젊은 시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회개를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된 삶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이런 구분을 토대로 대상에 대한 사랑의 일치, 즉 공통된 대상으로 향하는 각 사람의 사랑은 자연히 거기에 하나의 집단을 이룩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만을 추구하는 사랑을 하는 인간들은 바빌론, 즉 '땅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언제나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희망에 사는 내적인 사람은 하느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므로 예루살렘, 즉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나라가 교회 안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했듯이, 이교적 제국에서 대표적으로 땅의 나라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라는 관념은 도덕적이며 영성적인 것이고, 그 둘은 어떤 현실적인 체제, 즉 교회와 국가 등과 정확하게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일 한 국가 관리 행위가 하느님 사랑에 의해 다스려져 그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한다면, 그는 영성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교도이면서 교회에 속해 있을지라도, 만일 그가 행위하는 원리가 자기에 대한 이기적 사랑이라면, 그는 영성적으로는 땅의 나라에 속해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를 구별하는 데서는 교회와 세속국가를 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사회인가, 그의 뜻을 거역하는 사회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두 나라의 구별은 중세 전성기 때 여러 교황에 의해 세속 군주국가에 대한 가시적 교회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사상이 정치적 논쟁의 토대로 사용됐을 때, 과연 이를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이 두 나라의 차이를 더 본질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 안에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철학이 등장한다. 때때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나치게 인류 원죄를 강조한 부정적 인물로 비판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신국론」에서 역사 안에서 저질러진 인간의 악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이 하느님 은총으로 반드시 극복되리라는 종말론적 희망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인류 역사는 우연적이거나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하느님 섭리가 개입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기에 종말론적 완성을 향하는 목표지향적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그리스 철학의 저 고귀한 지혜의 발전이 그리스도교 계시 안에 포섭된다.
 
솔직히 「신국론」은 일반 신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대작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질문이 해결되기보다는 더욱 깊어지는 경험을 한 지성인라면, 「신국론」을 펼쳐 일부라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 안에는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엄청난 지혜의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지성인들은 성서를 뿌리로 해 하나의 유기체로 성장해가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가장 중요한 줄기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나라를 파괴하려는 무수한 땅의 나라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느 나라에 속할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도 「신국론」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각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그러면 그는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 시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354-430)는
 
 
▲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는데 일생을 바친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모니카 성녀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마니교에 심취했지만, 어머니 기도로 회심했다.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의 영향으로 33살에 입교, 36살에 사제품을 받았고, 41살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430년에 선종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중세 초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기념일은 8월 28일.
 
[평화신문, 제1034호(2009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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