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잡이통풀은 피처(물 주전자) 모양의 미끄러운 함정에 곤충 등을 유인해 잡아먹는 동남아 열대림의 대표적인 식충식물이다. 벌레잡이통풀 가운데 처음으로 땅속에 함정을 설치해 개미 등을 사냥하는 종이 발견됐다.
마르틴 단차크 체코 올로모우츠 팔라츠키대 박사와 웨윈 치아스만토 인도네시아 습지생물보전재단 활동가 등은 과학저널 ‘피토키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땅속 사냥 벌레잡이통풀을 신종으로 보고했다. 네펜테스 푸디카(Nepenthes pudica)로 명명된 이 식물은 보르네오 섬의 인도네시아 북칼리만탄주의 해발 1100∼1300m 능선 부에 소수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우연히 낙엽층에 묻힌 이 식물의 함정을 보고 땅속을 수색했다. 그러자 주로 땅속의 빈 곳이나 이끼와 낙엽층 밑에서 햇빛을 받지 못해 엽록소를 잃은 흰 줄기에 적갈색 피처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확인했다.
신종 벌레잡이통풀의 땅 위 모습(왼쪽)과 땅속 함정 모습. 마르틴 단차크 제공.
땅속 함정은 높이 7∼11㎝ 폭 3∼5.5㎝로 지상의 다른 벌레잡이통풀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흙의 압력을 이기기 위해 함정의 벽은 훨씬 두껍고 질겼다.
연구자들은 이 식물이 잡아먹는 동물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하 통발 5개와 드물게 지상에 내는 지상 통발 1개에 든 먹이를 조사했다. 통발에는 모두 40개 분류군의 무척추동물 1785마리의 사체가 들어있었다.
가장 흔한 먹이는 개미였지만 진드기, 낙엽 속에 사는 딱정벌레, 환형동물, 선충 등도 들어있었다. 흥미로운 건 땅속 통발에 모기 애벌레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다른 벌레잡이통풀과 마찬가지로 통발은 모기 번식지 구실을 하는데 특히 땅속의 통발은 안정적이고 가뭄에도 잘 마르지 않는 번식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끼층 밑 공간에 형성된 함정과 엽록소를 읽어 흰색이 된 줄기. 마르틴 단차크 제공.
땅속에 함정을 설치하는 적응이 이뤄진 까닭은 “지상의 심한 경쟁을 피해 신천지를 개척하고 쉽게 가뭄 피해가 나타나는 능선 분포지에서 건조를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지하에서 새로운 먹이를 찾는 이득은 땅속에 길게 줄기를 뻗어 튼튼한 통발을 설치하는 비용보다 확실하게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땅속에 함정을 설치하는 신종 벌레잡이통풀의 수꽃. 발견되자마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마르틴 단차크 제공.
신종 벌레잡이통풀의 유일한 자생지는 면적 4㎢ 이하에 국한돼 있는 데다 국립공원 밖이어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보르네오는 전 세계 160여 종의 벌레잡이통풀 가운데 40여 종이 분포하는 이 식물의 핵심 분포지인데도 상업적 벌채와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 등으로 세계에서 생태계가 가장 빨리 사라지는 곳”이라며 “특이한 생태를 지닌 신종 벌레잡이통풀은 채집 압력도 높을 것이어서 국제자연보전협회(IUCN)의 적색목록에 ‘위급’(CR) 등급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종 벌레잡이통풀 네펜테스 푸디카(Nepenthes pudica). 마르틴 단차크 제공.
인용 논문: PhytoKeys, DIOI: 10.3897/phytokeys.201.82872
출처 :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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