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사다(Masada)
요르단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은 드디어 이스라엘의 일정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국경 통과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하여 서둘러 출발합니다. 다행이도 몇명만 샘플로 짐검사를 받고 빠른 시간 내에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접어들어서도 동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광야 풍경입니다.
맛사다(Masada)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의 역사 유적지입니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34m 천혜의 절벽 요새로 정상 길이 620m, 가장 넓은 곳의 폭이 250m, 평균 120m인 평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헤롯이 왕이 되기 전 자신의 은신처로 삼았다가 왕이된 후에는 궁전을 지어 요새로 삼은 곳이기도 합니다.
맛사다는 주후 70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7명의 열혈 당원들이 끝까지 로마에 저항하며 싸웠던 최후의 격전지
입니다. 로마군은 2년에 걸쳐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게 됩니다.
3년 가까운 항전 끝에 로마군에 의해 함락이될 지경에 이르자 맛사다의 남자들은 비장한 결심을 하고 지도자였던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가 "내일 아침이면 로마군에 잡혀 온갖 수모를 겪고 우리의 처자식들이 농락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갈 텐데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오늘밤 우리가 스스로 영광의 죽음을 선택합시다."는 최후의 연설을 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자기 손으로 처자식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명을 제비뽑아 그 열명이 남어지 남자들을 다 죽입니다. 또 제비뽑아 한명이 아홉명을 죽이고 그 한명은 스스로 자결합니다. 그런데 누구였을까? 차마 자기 손으로 처자식을 죽일 수 없었던지 어린아이 5명과 여자 2명을 물을 저장하는 수조에 숨겼고 그들을 통해 맛사다의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맛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장병들의 선서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Na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는 장소라고 합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 근처에 있는 광야 풍경
멀리보이는 맛사다 요새
맛사다 정상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게 길이 되어 있다
지금도 복원 중인 요새 유적
지금도 복원 중인 요새 유적
빗물을 받아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물 저장 탱크
벽 중간에 까만 선은 발굴 원형과 복원한 것의 경계선 표시
헤롯이 만들어 사용했다는 밑에서 불을 때는 방식의 한증탕
정상에 있는 요새
밑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돌 폭탄
맛사다 유적
맛사다 정상에서 바라본 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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