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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다원론

西洋哲學

by 巡禮者 2010. 5. 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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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 제1보좌, 선교학 박사)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도전]<2> 상대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의 파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반적 사목방향은 한마디로 '교회적'이다. 그의 여러 저서와 특별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전후 강론에서 이러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우선 그는 교황 선출 미사 강론에서 추기경들에게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상대주의의 독재에 맞서서 그리스도 신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또한 타종교에 대해서는 그들 안에서 추구하는 인생문제의 해답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줄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상대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함께 교황 베네딕토가 지적한 문제점과 그 해결점을 제시하고, 나아가 이 두 문제에 대한 필자 나름의 제안을 시도할 것이다.



**상대주의


 상대주의 기원은 사실 서구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중세가 붕괴되면서 지리상 발견과 과학발전은 교회 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결국 인간 중심적 사고로 전환이라는 커다란 변화 물결에 휩싸인다.


 르네상스는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 사상과 문화인 인간자유와 철학적 이성에로 복귀하고자 하는 문예부흥 운동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는 당연히 중세의 권위와 위엄보다는 인간의 본래 모습을 발견하고 예술로서 승화하려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은 기하학적이고 해부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가장 완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문화의 복귀와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연과학과 발명기술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르네상스는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일으켰다. 항해술의 발달은 단순히 신대륙을 발견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당시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바다 끝은 절벽이라고 주장했고, 천동설이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뒤집는 역사적 인물, 콜럼부스는 교회에 새로운 선교의 장인 라틴 아메리카를 선사했다.


 르네상스와 지리상 발견은 계몽주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 사상은 더 이상 교회 제도가 하느님을 연결하는 매듭이 아닌, 인간 스스로 하느님과 만남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하느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셔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근거는 '생각하는 나' 스스로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하느님과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과학과 경험 그리고 이성적 비판에 열려져 있게 된다.


 자본주의 출현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인들은 봉건사회의 틈을 메워나가면서 부를 축적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몰락은 동시에 개신교 국가들의 발전과 그들의 식민화 정책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선교지로, 영국은 인도를 선교와 식민지로 삼으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이것은 식민화정책, 계몽주의, 과학발전 그리고 항해술 발달로 서구의 가장 중심적 사회체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윤 추구는 모든 기술 발명과 기초과학 발전, 그리고 인간 행복 추구에 절대적 동기가 됐다.


 상대주의 출현은 위에서 짚어본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 것이다. 특별히 인간 중심적 사고로 전환과 자본주의가 그 뿌리에 존재한다. 절대적 진리와 교회의 절대적 역할은 더 이상 인간에게 호소할 수 없는 낡은 성(城)으로 끝나고, 인간 그 자체가 절대적 진리로 대치됐다. 인간은 무엇을 발견하고 발명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창조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다. 인간 각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가 행복과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 자체로 인식한다. 인간의 창의적 사고는 상대적 진리를 수용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올바르다고 여기게 된다. 상대주의는 여기에 근거한다. 자본주의는 상대주의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구조이다. 다시 말해 모든 다양한 인간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삼으며, 그 이윤은 진리를 생성해내고, 아름다움과 행복을 창출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이러한 서구 상대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한 종교신학의 한 자리매김이다. 종교신학은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타종교에서 말하는 진리, 즉 인간과 우주와 절대적 신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 출발은 우선 교회 중심의 구원관, 즉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정식이 주도적으로 교회 안에 인식된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 사고로 전환은 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유스티노가 말한 것처럼 교회는 "타종교는 하느님 말씀의 씨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많은 종교 신학자, 예를 들어 죤 힉이나 폴 니터 등은 타종교에서 하느님 현현(現顯)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랑, 정의, 희생 등의 하느님 형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과 연관을 맺고 있기에 인간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인간이 구원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 진리는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절대적 진리를 잃어버리고, 모든 종교가 차별 없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종교다원주의라고 칭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러한 역사적 세계 현상 앞에 답을 제시한다. 그는 상대주의의 허점을 지적하고 진리이고 생명, 그리고 사랑을 주신 그리스도 안에 절대 진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결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욕망만이 궁극적 척도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상대주의의 독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척도, 곧 참 사람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바로 진정한 인간성의 척도이십니다."(교황 선출 미사 강론).


 이 강론에서 상대주의는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 각자가 절대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무차별적 다원주의가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진리를 주장할 뿐, 근본적인 인간 삶과 사회적, 인격적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절대 진리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강조한다.


 종교다원주의 역시, 이러한 상대주의를 근거로 하기에 같은 오류를 빠진다. 이에 대해 새 교황은 공의회 정신이 현대세계의 문제점에 답을 줄 수 있다고 그의 첫 미사 강론에서 말한 바 있다. 즉 모든 종교가 무차별적으로 구원의 길을 동등하게 갖고 있다는 잘못된 주장에 대항해서,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인간이 구원된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교회헌장 16)을 상기한다.


 교황의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지적과 그리스도 중심의 해결책은 선임 교황들의 회칙과 의지에 합당하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존재 의미를 갖고 구원되고 완성된다. 인간에 대한 지나친 강조, 인간이 마치 신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현대의 사상적 흐름 안에, 그는 과거 중세로 회귀하자고 호소하지는 않고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오류를 지적한다. 이어 절대적 진리인 그리스도를 제시함으로써 현대인에게 그리스도와의 친교에로 초대하고 있다.


**제안


 여기서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상대주의 뿌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로 전환이다. 그렇다면 그 출발을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떠한지 생각하고 싶다.


 한가지 시도는 칼 라너이다. 인간 중심적 세계를 거부하지 않고, 인간 안에 초월적 면모를 발견한다. 즉 자유와 윤리 틀을 가진 인간은 절대자에게 열려져 있고 자신의 경험을 뛰어 넘어 무한존재에 도달한다. 인간은 모든 철학적 인식에서 초월하여 하나의 종교성을 형성한다. 라너는 인간과 신이 동등하다는 상대주의에 맞서, 인간의 초월적 종교성을 발견하여 인간의 자기 발전과 자기실현은 하느님 안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제안은 상대주의의 또 다른 바탕인 자본주의에서 출발한다. 즉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경제적 재화가 결코 행복의 동기와 인간 각자의 진리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절대적 행복, 즉 진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안에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해결은 하느님 나라 중심주의를 통해 풀어볼 수 있다. 모든 종교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완성한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 즉 평화 정의 인권 사랑 등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바이다. 하느님 나라는 타종교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실현해야할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타종교의 구원에 대한 불완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하여 함께 완성하는 것이다.


 특별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동양종교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참조: 요셉 라칭거, 「이땅의 소금」, 가톨릭 출판사, 2003). 타 종교에 대한 이해 지평을 넓힌 후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 중심주의로 그들을 인도한다면 종교다원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라는 도전을 현명하고 예리한 신학적 예지와 교회 전통을 현명히 해석하고 발전시켜 해결점을 제시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위대한 그리스도교가 인류 구원의 확실한 징표로 이 세대에 보다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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