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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장이 순교자 집안에서 ''홍의 주교'' 나다

주교회의 소식

by 巡禮者 2014. 1. 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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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기장이 순교자 집안에서 ''홍의 주교'' 나다

 

 

 

변화무쌍
 
 염수정 추기경의 최근 1년여 동안의 행보는 말 그대로 변화무쌍이다. 염 추기경은 '신앙의 해' 개막을 불과 3개월여 앞둔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에 착좌, 신앙의 해 기간 교구민 신앙 체질 강화에 앞장섰다. 동시에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시성을 위해 힘차게 달려왔다. 그러던 그가 신앙의 해가 끝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유경촌ㆍ정순택 두 보좌주교를 맞이하더니 불과 13일 만에 추기경에 임명됐다.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지낸 지난 1년여 동안 교구 사상 처음으로 사제 전체 모임을 개최하며 '소통과 화합'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를 꾀했다. 또한 신앙의 해 다섯 가지 표어를 제시하며, 신앙의 내실을 기하는 데도 박차를 가했다. 아울러 서울시와 중구 등 지자체와 함께 서소문 역사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서울대교구에 3개 코스의 성지순례길을 제정하는 등 신앙 선조의 숨결을 현시대에 드러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옹기 같은 사제의 발자취

 염 추기경은 '옹기'같은 사제다. 옹기는 가장 귀한 음식부터 가장 천한 오물까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그런 옹기 같은 삶을 닮았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삶이라고도 볼 수 있다.


 
▲ 1970년 12월 13일 서울 후암동성당에서 첫 미사 봉헌하는 날 염수정 추기경(가운데).
 


 
▲ 1995년 12월 7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사제 수품 25주년 때 염수정(김 추기경 오른쪽)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이 축하인사를 전하는 모습.
 


 
▲ 1983년 12월 30일 부친 염한진(갈리스도) 삼우제 날 찍은 가족사진.
왼쪽 두 번째가 염수정 추기경.
맨 왼쪽은 동생 염수완 신부, 맨 오른쪽은 염수의 신부.
 


 
▲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후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염 추기경(왼쪽 두 번째).
 

 염 추기경은 1943년 12월 경기도 안성에서 염한진(갈리스도, 1908~1983)ㆍ백금월(수산나, 1908~1995) 부부 사이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선조가 염 추기경의 5대조 할아버지 염덕순(요셉, 1768~1827)공이다. 그 염공의 아들인 염석태(베드로, 1794~1850)공 때부터 가족들이 충북 제천에서 옹기를 구워 사기장골에 팔며 수계생활을 했다고 전해지니 옹기를 보고 염 추기경을 떠올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순교는 은총'이라 했던가. 염 추기경 선조도 박해의 서슬 퍼런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1850년 5월 중순, 사기장골에 천주교 신자가 집단으로 거주한다는 밀고로 염석태공 부부가 포졸들에게 체포돼 순교하고,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는다. 염 추기경의 할아버지(염재원 요한) 때부터 경기도 안성에서 살기 시작한 염씨 일가는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한다. 그래서 염 추기경 고향이 경기도 안성이다.
 
 염 추기경의 가족은 할머니(박 막달레나)의 영향으로 매일 아침ㆍ저녁(조과, 만과)기도를 바쳤다. 매월 첫 목요일에는 성직ㆍ수도자(첫 첨례 5)를 위해 기도하고, 첫 금요일에는 예수성심을 위해(첫 첨례 6), 매월 첫 토요일에는 성모 마리아를 위해(첫 첨례 7) 기도하는 것이 '첫 첨례 5ㆍ6ㆍ7'인데, 가족들은 이를 결코 빼먹지 않았다. 염 추기경 어머니 백 여사의 신심은 그를 필두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을 차례로 사제로 내기에 이른다. 바로 염 추기경 동생 염수완(서울 문정동본당 주임)ㆍ염수의(서울 잠원동본당 주임) 신부다.
 
 백 여사는 염 추기경을 잉태했을 때부터 막내 염수의 신부가 사제품을 받던 그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왔다. 백 여사는 막내 염수의 신부가 사제품을 받던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였을 때서야 "세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40년 가까이 기도해왔다"고 말했다. 큰형 염수운(루카, 81)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당시 모두 감격에 젖었다. '어머니의 기도'는 선종하는 날까지 계속됐다.
 
 염수운씨는 "가족들은 어머니가 해오신 것처럼 지금도 형제 사제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했는데, 동생이 추기경에 서임됐다"며 "이제는 추기경으로서 한국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계속 기도하겠다"고 기뻐했다.
 
 올곧게 '사제의 길'을 걸으며…
 
 염 추기경은 6ㆍ25전쟁 발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란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형들과 아우들과 냇가에서 뛰놀며 고기를 잡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이사했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평범하지만은 않은 소년으로 자란다. 학업성적처럼 신앙생활도 매우 열심이었다. 염 추기경 가족들은 매일 아침ㆍ저녁 기도는 물론 묵주기도 5단을 바쳤다.
 
 염 추기경이 소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계기는 인생을 바꾼 책 한 권 덕분이다. 그 책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인 「경향잡지」였다. 이 책에서 소신학교(성신고등학교) 입학 안내문을 발견하고서 그는 사제가 될 것을 결심하고, 사제의 길만 바라보게 됐다.
 
 염 추기경은 원칙을 지키는 사제다. 신학생 때 '대침묵' 시간에 동기생 여럿이 학교 식당에서 음식물을 훔쳐 먹은 사건이 있었다. 관련 학생은 나중에 발각돼 퇴학 처분을 받았지만, 대침묵이라는 예수님과의 약속을 지킨 염 추기경은 대신학교에 진학해 사제가 됐다. 원칙을 잘 지키는 성품임에도 온화함과 친화력을 두루 갖췄다. 그래서 말하기보다는 들으려고 귀를 기울인다. 서울대교구 사제 전체 모임을 개최한 것도 교구 쇄신과 변화를 위해서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6년 지기 신학교 동기 김충수(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염 추기경님은 한마디로 겸손과 온화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착한 고집이 있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성격"이라고 회고했다.
 
 염 추기경은 추진력과 뚝심이 있는 성격이어서 임무가 주어지면 앞만 보고 달린다. 1990년대 교구 사무처장 시절에는 거의 매일 업무에 매진하느라 면도도 안 하고 사제복을 갈아입는 것도 잊은 채 일에 매달리는 바람에 가족들이 나서서 걱정했을 정도다. 염 추기경은 또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는 참 목자다.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을 자주 찾아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 부활절 때는 사형수들을 찾아가 그들을 일일이 안아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동기 임덕일(꾸르실료 한국협의회 대표담당) 신부는 "추기경님은 순교자 후손답게 역사적 사건을 잘 기억하는 분이고, 차분하고 뚝심있게 일을 추진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교구장이자 추기경으로서 면모를 모두 갖춘 분"이라고 말했다.
 
 뉴스를 통해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듣고 기쁘고 떨려서 밤잠을 설쳤다는 둘째 형 염수용(요한 세례자, 76, 서울 오금동본당)씨는 "주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주셨다"며 "추기경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가 매우 크기에 주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추기경님 하시는 일이 한국교회를 위한 일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약력

 ▲1943년 12월 5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70년 12월 8일 가톨릭대학교 졸업ㆍ사제 수품

 ▲1971~1973년 불광동ㆍ당산동성당 보좌

 ▲1973~1977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교사, 부교장

 ▲1977~1979년 이태원본당 주임

 ▲1980~1987년 장위동ㆍ영등포동본당 주임

 ▲1987~1992년 가톨릭대 성신교정 사무처장

 ▲1992~1998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1995년 사무처장 겸 청담동본당 주임

 ▲1996~1997년 사무처장 겸 세종로본당 주임

 ▲1998~2001년 제15지구장 겸 목동본당 주임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2002년 1월 25일~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2002년 2월 1일~2002년 10월 29일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ㆍ(재)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

 ▲2002년 2월 1일~2013년 4월 22일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이사장

 ▲2002년 10월 2일~2013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2005년~현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2006년~현재 중서울지역담당

 ▲2012년~현재 서소문 역사문화공원ㆍ순교성지 조성위원회 위원장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교구장 임명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 교구장 착좌

 ▲2014년 1월 12일 추기경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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