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 교황대사관은,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65세)를 천주교 군종교구장 주교(Bishop of Military Ordinariate)로 임명하셨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2010년 7월 16일 오후 7시(로마 시각 낮 12시)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에 게재됐었습니다.
□ 유수일 주교는 지난 2월 의정부교구장으로 전보된 이기헌 주교에 이어 제3대 군종교구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유 주교는 194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1980년에 사제품을 받았고, 수원교구 세류동성당 보좌신부, 마산교구 칠암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했으며, 1990년 미국 뉴욕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본부 총평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작은형제회 서울 청원소 부수호자와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 보조자를 맡고 있습니다.
□ 유 주교의 임명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 수는 32명(추기경 1명, 대주교 4명, 주교 27명)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하나인 작은형제회 유수일(65) 신부가 천주교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고 16일 주한 교황대사관이 밝혔다. 유수일 주교는 지난 2월 의정부교구장으로 임명된 이기헌 주교에 이어 제3대 군종교구장을 맡게 됐다. 194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주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해 1980년 사제품을 받았다.
유 주교는 또 1990년 미국 뉴욕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본부 총평의원을 역임했다.
유수일 주교 약력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劉修一 Francis Xavier YU Soo-il) 주교
1945년 3월 23일 논산 출생
1964년 대전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1973년 작은형제회 입회
1979년 서울 대신학교 졸업
1980년 2월 25일 사제 수품
1980년 수원교구 세류동 본당 보좌신부
1980년 - 1982년 마산교구 칠암동 본당 주임신부
1982년 - 1985년 작은형제회 한국 준관구장, 명도원(외국인을 위한 어학원) 원장
1985년 - 1988년 수도자 신학원 원장
1990년 미국 뉴욕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영성신학 석사
1991년 - 1997년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
1993년 - 1995년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1997년 - 2003년 작은형제회 본부 총평의원
1999년 - 2001년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2003년 - 2006년 전주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보조자
2006년 - 2010년 정동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수호자
2010년 현재 서울 청원소 부수호자
2010년 7월 16일 한국 군종교구장 임명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원 명단(2010년 7월 16일 현재)
▶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서울, 평양)
▶ 대주교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광주)
▶ 주 교
강우일 베드로 주교(제주)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전주)
김지석 야고보 주교(원주)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청주)
이기헌 베드로 주교(의정부)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인천)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마산)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안동)
김운회 루카 주교(춘천, 함흥)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
유흥식 라자로 주교(대전)
황철수 바오로 주교(부산)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서울)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서울)
조환길 타대오 주교(대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대전)
정신철 세례자 요한 주교(인천)
손삼석 요셉 주교(부산)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덕원)
▶ 은퇴 주교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
나길모 굴리엘모 주교
두봉 레나도 주교
경갑룡 요셉 주교
박정일 미카엘 주교
김창렬 바오로 주교
장 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
최덕기 바오로 주교
이한택 요셉 주교
※ 용어 설명
- 교구: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행정 구역. 교구장 주교(主敎, bishop)가 통치하며, 하위 단위인 지구 또는 대리구, 본당(지역의 개별 성당들)들을 관할한다. 한국 천주교회에는 16개 교구가 있다.
- 주교: 천주교 교구 사목을 책임지는 고위성직자. 신부들 중에서 교황이 임명하며, 대주교, 주교, 부교구장 주교, 보좌주교 등으로 구별된다.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다.
- 군종교구: 군종사목(군인 신자에 대한 사목)을 담당하는 특수한 교회 관할 구역. 군종교구장은 군종사목 총괄 담당자다.
- 작은형제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가 창설한 남자수도회. 이탈리아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프란치스코 수도공동체의 정신을 따라 사는 평신도들의 단체를 이르는 말이다.
★ 유수일(사베리오) 신부님의 글
성 프란치스코와 겸손프란치스코와 겸손 2001-07-04
작은 형제회의 유수일(사베리오) 신부님께서 1993년 미국 LA에서 개최된 ’북남미 연수에서 강의한 강의록입니다.
"작음의 덕"(Minoritas)은 물질적 가난과 더불어 겸손을 포함한다. 사실 가난해 진다는 것과 작아진다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하르낙(Harnack)이라는 신학자는 "겸손-그것은 완전한 가난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난에 대해 말함에 있어 프란치스코 성인은 거듭 거듭 같은 비중을 두고 겸손을 말한다. 그는 두 가지 모두를 자매로서 인사한다. "오, 거룩한 가난이여, 주께서 그대를 그대의 자매인 겸손과 함께 보존합니다... 거룩한 가난은 탐욕과 욕심과 세상 걱정을 부끄럽게 하고 거룩한 겸손은 교만과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이 세상으로부터 온 모든 것을 부끄럽게 합니다"(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
그는 가난과 겸손의 연합을 우리 수도회의 기초로 보고있다(완덕의 거울86).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열렬히 권고한다. "모든 형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따르도록 힘쓸 것이며"(1221년 회칙 9장), "이 세상에서 순례자나 나그네같이(1베드로 2,11)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을 섬기며..."(1221년 회칙 6장), "우리가 굳게 서약한 가난과 겸손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할 것입니다'(1223년 회칙 12장). 그의 권고들에서 그는 끊임없이 "가난과 겸손으로" 되돌아가며 자신의 형제들보고 실패 없이 이 두 가지에 매달리도록 역설한다(예를 들어 권고5, 2첼라노 134, 권고22 등).
따라서 프란치스코는 감동적인 말로 감동적인 말로 모든 형제들이 겸손을 사랑하도록 이렇게 권고한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1요한 4,16 참조) 나의 모든 형제들, 즉 설교하는 이들, 기도하는 이들, 노동하는 이들, 성직 형제건 평형제들이건 모두에게 간청합니다 ; 매사에 자기 자신을 낮추도록 노력하고 하느님이 여러분 안에서 혹은 여러분을 통해서 어떤 때 행하시고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좋은 말과 일에 대해, 더 나아가 어떤 선에 대해서도 자랑하지 말고, 자만자족하지도 말며, 혹은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루까 10,20). 그리고 우리 것이라곤 악습과 죄악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야고 1,2)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서 영혼이나 육신의 온갖 괴로움이나 고생을 견딜 때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온갖 교만과 헛된 영광을 조심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선(善)의 샘이신 지존하시고 높으신 주 하느님께 대해 그분께 감사 드립시다. 그리고 모든 선의 주인이시며 당신 홀로 선하신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시며 당신 홀로 참되신 하느님은 모든 영예와 존경과 모든 찬미와 찬송과 모든 감사와 영광을 받으시고 또 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모든 것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마땅합니다"(1221년 회칙 17장).
프란치스코 성인은 소임 때문에(혹은 직분 때문에) 허영의 위험에 다른 이들보다 쉽게 떨어질 우려가 있는 형제들, 곧 설교자들, 신학자들 그리고 장상들에게 각별히 주지시키고 있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에 있어 하느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인간으로부터 오는 칭송과 호의에 무관심하라는 권고를 계속 받는다(권고 12). 또 프란치스코는 설교직을 존중한 만큼 세속 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장점이나 특은을 파는 그런 설교자들을 심하게 꾸짖었다. 설교자로서 성공한 것 때문에 으쓱해 진 이들을 꾸짖으면서 겸손으로 돌아 갈 것을 권했다(2첼라노 164). 그는 또한 학식 있는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박학'이라는 명성을 포기하도록 권고했다(2첼라노 194).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에 의하면, 심지어 위대한 학식도 겸손한 지향과 평행을 이루어야 했다(2첼라노 194). 그는 바로 이 겸손이 학문의 직접적 목적이고 학문의 견고한 기초라고 보았다. 우베르티노 카살레(Ubertino Casale) 형제에 의하면 "자신을 알고 그래서 겸손에서 성장하는" 일이다. 지식을 획득함에 있어서 형제들이 겸손과 단순성의 영에 의해 배태되고 그 영에 의해 깊이 젖어지는 것만이 프란치스코에게 안도감을 주었다(1221년 회칙 17장). 이 기초에 의지하여 학문을 육성시키는 사람만이 하느님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 무한하게 번영하게 된다(1첼라노 102).
프란치스코는 장상들에게 한층 더 자주 겸손을 권고했다(1첼라노 104, 권고20). 프란치스코는 이 겸손의 정신에 따라 장상들에게 형제들을 다스리는 규범을 만들었다. "봉사자는 사랑과 친절로 이 형제를 맞이할 것이며,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것처럼 이 형제도 봉사자에게 말하고 대할 수 있을 정도로 봉사자는 그 형제에게 깊은 애정을 보여줄 것입니다. 봉사자들은 모든 형제들의 종이 되어야합니다"(1223년 회칙 10장).
이것은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겸손의 그 숭고함과 독특성이 연유되는 진정한 원천으로 이끌어 준다. 즉, 복음이다. 프란치스코는 장상들을 봉사자(Minister) 혹은 종(Servant)으로 지칭함에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직접 의존하고 있다(마르꼬 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
구세주의 이 모범과 가르침을 따르면서 프란치스코는 얼마 안 있어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라는 명칭을 지닌 수도회를 창설했다. 이 이름이 가리키는 것을 성 보나벤뚜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형제들은) 겸손을 배우기 위해 겸손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 왔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기 형제들이 이름만이 아니고 행동과 진실 안에서 모든 이의 가장 작은 자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기의 아들들을 "작은 형제들"이라고 부르라고 자기에게 명하셨다는 점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듭 충고한다.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하여 비참하게 되고 부패되었으며 악취를 풍기고 또한 벌레들이기에 우리의 육신을 수치와 멸시를 받을 만한 것으로 여깁시다. 주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도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시편 21,7)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종들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 때문에 피조물이 모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1베드 2,13).
프란치스코는 형제들보고 나가서 나환자들을 돌보라고 명했을 때에는 그 형제들을 자기 주위에 거의 불러모으지 않았다. 왜냐하면 형제들은 모든 이 가운데 가장 불쌍한 이 사람들(나환자들)의 봉사자가 되어야 했고 온전히 겸손해야 했으며 작은 형제라고 불리우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늘 깨닫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형제들은 남의 집에서 봉사하거나 일하기 이해서 어느 곳에서든지 감독관이나 관리인이 되지 말고 또 봉사하는 집에서 주책임을 맡아서도 안되었다(1221년 회칙 7장). 오히려 작은 자가 되고 같은 집에서 거주하는 모든 이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1221년 회칙 7장). 이 명령은 훗날에 문자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형제들의 생활 형태가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들이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지 만약 형제들이 명예직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성인은 분노했다.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우고리노(Hugolino)추기경 앞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강력히 역설했다(2첼라노 148). 명예직을 차지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내는 형제들을 성인은 더 이상 작은 형제로 간주하지 않았다. 성 보나벤뚜라에 의하면 사람은 보다 낮아지고 보다 작아지려는 것을 사랑함으로써 겸손하게 된다. 겸손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겸손하게 된다는 것은 작은 형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말한 것을 종합해 볼 때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의 형제회를 겸손에 있어 탁월한 수도회로 세우기를 바랐고 형제들은 무엇보다 겸손한 자가 되기를, 즉 보다 복종적이고 보다 소박하며 다른 수도자들 보다 낮아지기를 바랐음이 명백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란치스코는 자기 스스로가 가장 작고 낮은 자가 되기를 노력했다. 그것은 그의 시대 정신과는 정반대였다. 그 때는 사회적 불안정, 출세에 대한 강렬한 욕망, 명예와 명성을 미친 듯이 좇는 경향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왕들은 하급 귀족들을 경멸했고 귀족들은 브르죠아(사업 계급)를 경멸했으며 또 이들 브르죠아들은 농부들을, 그리고 농부들은 자기들보다 못한 농노들을 경멸했다.
한편, 하층 계급들은 자기 처지를 벗어나 위로 오르려고 온갖 투쟁을 했다. 농노들도 자유 농부가 되려고 투쟁했다. 농부들은 시민 계층에 들어가기를 열망했고 시민들은 귀족이 되려고 분투노력했다. 출생으로 보아 반쯤 브르죠아이고 반쯤 귀족인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회개 이전에 아시시에서 젊은이들의 왕이 되고자 했고 기사와 귀족 신분에 가능한 빨리 도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제는 놀라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회개 시초부터 사람들의 조롱과 박해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모든 이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기뻐했고 자기 몫을 가난한 이들과 멸시받는 이들에게 던져주었다. 한 전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이에게 복종했다"(Anonymous Perugia).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배운 게 없었고 모든 사람에게 복종했습니다." 그는 부제로서 성직계급에 속했지만 자기 형제들과 함께 가장 낮고 마지막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구령에 관한 일들과 우리 수도회의 생활에 어긋나지 않는 일들에 있어서 모든 성직자들과 모든 수도자들을 주인으로 모십니다"가 그의 표어였다(유언). 이 점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충실했다.
'작음'에 대한 성인의 열정적 애착이 지니는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사람들을 깊은 공경심과 존경심을 갖고 대한 점이다. "그는 겸손하였기에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했고 모든 사람의 행동에 자기를 맞추었다"(1첼라노 83). '세 동료'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고위 성직자들과 사제들을 지극한 공경심으로 대했고 연로한 이를 깊은 존경심으로, 귀족과 부유한 사람을 존경심으로, 가난하고 가련한 이들을 사랑과 동정으로 대했으며 모든 이를 온전한 복종심으로 대했다"(세 동료 57). 모든 계층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 놀라운 존경심과 겸손한 복종이 성인의 생애에서 충만히 드러난다(예를 들어 2첼라노 31).
프란치스코가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실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이고 지극히 부당한 자"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잔꽃송이 9장). 그는 자기 자신이 표현 못할 정도로 비천하고 부당하다고 여겼다.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과 위대한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며 하느님께 속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서 자신을 통해 이루신 선(善)을 늘 인식했다. 이를 간과한다든가 이를 부인하는 것은 불성실이나 근시안적이 되며 어쨌든 거짓 겸손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프란치스코는 자기 생애에서 하느님이 쉬지 않고 이루시는 선(善)과 그분의 은총을 충만히 발견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이 어떤 좋은 것을 소유했거나 성취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 덕분이라고 주저 없이 선언했다.
그가 세상의 명성이 유래하는 모든 업적과 은혜들을 세상으로부터 감추고자 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영혼의 유익에 관한한 명성은 분명히 위험이 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덕(德)을 허영으로 남용하기보다는 덕을 아예 지니지 않는 것이 덜 위험하다고. 그는 심지어 모로코의 다섯 순교자 형제들의 전기를 읽는 것조차 금했다. 거기서 자랑거리를 끌어낼까 봐서였다. 마찬가지로 그는 생존 시에 자신이 받은 오상(五傷)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준 권고를 자기 스스로 문자 그래도 준행하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자신의 덕에 대한 명성이 널리 퍼질 때마다 그는 그것을 은총의 덕으로 돌리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비유를 반복하곤 했다. "프란치스코야, 만일 지존하신 분께서 그렇게 많은 은총들을 도둑에게 하사하셨더라면 그는 너보다도 더 많이 감사를 드러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의 거룩함을 경탄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안전한 사람으로 찬사를 보내지 마십시오. 저는 아직도 아들딸을 낳을 수 있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끝이 아직 확실치 않은 사람은 찬사를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2첼라노 133). 그는 마음 속에서 굳게 확신했다. 즉, 자신이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부당한 자이고 그래서 모든 영예는 하느님께만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그토록 특별한 은총을 주셨다고(잔꽃송이 10장).
그러므로 프란치스코는 더 많이 칭송을 받고 공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 자신을 보다 더 경멸받을 자로 드러냈고 자기 자신을 그만큼 더 낮추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행위와 덕행을 소리 높여 칭송할 때, 그의 유일한 노력은 하느님의 눈을 분노케 하지 않고 하느님의 눈이 자신에게서 떠나가지 않도록 지극히 소량의 '자기-만족감'이라는 씨앗도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주는 칭찬은,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에로만 되돌아 갈 때에만 그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2첼라노 139).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영원하신 빛 앞에서 다만 하나의 그림자가 되기를 바랐고 더 나아가서는 이 그림자마저 그 빛 속에 삼켜져 버리기를 바랐다(2첼라노 139). 그는, 하느님의 참된 종을 구세주 혹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표현하고 기리는 그림에 비유했다. 그림은 구세주께 속한 영예를 자기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 그림의 목적은 하느님의 영예를 드높이는 것이다. 이래서 인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축복을 표현하는 그림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그는 모든 영예를 하느님께 돌려드렸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겸손의 비결은 이것이다. 즉, 그는 이 지상에는 자신과 하느님 밖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간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영광에 너무도 압도되어 전 세계는 그 앞에서 무(無)에로 가라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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