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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너의 신비신학 관점에서 비추어본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신비 체험

프란치스칸

by 巡禮者 2010. 10. 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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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너의 신비신학 관점에서 비추어본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신비 체험

 

-고계영 신부(OFM)-




 1. 논문의 주제 및 연구 목표


프란치스코에게 주어진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는 명칭은 이 아시시 빈자가 얼마나 깊이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했는지를 잘 웅변해준다. 그렇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신비체험에 대해 체계적인 글을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신비 체험의 정체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의 대부분의 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신비 체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들로서, 자연히 이 체험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초기 전기들도 그의 신비적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알아내고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증언들을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헌들의 도움을 받아 프란치스코의 글에 담겨져 있는 신학적 내용들을 분석하면, 프란치스코의 신비 체험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 위에서 이 논문의 주제를 “칼 라너의 신비신학 관점에서 비추어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으로 선택하였다. 이 논문 주제와 관련하여 먼저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라너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너의 신학적 전망 안에서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을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신비 체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초하고 있는 라너의 인간학적, 형이상학적, 교의신학적 지평으로부터 몇 가지 해석학적 기준을 취하여 이를 통해 프란치스코의 “실천적 신비체험”의 본질을 풀어볼 수 있다는 신학적 가능성에 있다. 프란치스코는 이미 13세기에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신비체험의 보편적인 길을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열어 놓았고, 라너는 20세기에 신비 체험의 존재론적 구조와 보편적 가능성을 깊게 연구함으로써 신비신학의 체계화에 대단히 크게 기여하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두 신비가의 지평을 바라보면, 신비체험의 보편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차원을 열어 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공통점을 전제로 라너의 신비신학에 비추어 프란치스코의 신비 체험의 본질을 규명해보았다.


이러한 연구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먼저 예비 작업으로 신비체험의 개념을 정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지난 세기에 신비체험에 대한 긴 논쟁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비체험에 관한 정확한 개념을 찾아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라너의 신비 신학으로부터 몇몇 준거를 취하여 보편적 관점에서 신비체험의 개념을 다시 규정하였다. 이것이 이 논문 전반부의 주목표이다.


그 다음, 본 논문에서 규정한 신비체험의 개념에 따라 프란치스코의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신비체험의 본질을 밝혀보았다. 아직도 프란치스카니즘 전문가들 중에는, 프란치스코의 생애 중에서 비밀스럽고 예외적이며 유별난 현상들, 예를 들면, 꿈이나 환시, 황홀경, 하느님과의 신비스러운 대화, 오상 등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의 신비 체험을 조명하는 학자들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은 배제하고,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단순한 삶을 통해 이루어진 프란치스코의 실천적이고 일상적인 신비체험의 본질과 특징들을 집중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이것이 이 논문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2. 연구 방법


이 논문의 주요 주제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주로 공시적인 방법을 이용하였으나, 주제에 따라 단순히 이를 풀이하여 기술하는 서술적 방법이나 본문 비교 분석 또는 해석적 방법을 따르기도 하였다.


먼저, 신비체험(mistica)에 대한 어원적 개념과 20세기에 전개되었던 신비체험에 관한 논쟁을 간략히 통시적으로 살펴본 후, 라너의 신비신학의 핵심을 이와 관련된 그의 주요 저술들을 검토하면서 서술적 방법으로 종합하였다. 그리고 신비체험의 개념을 보다 더 분명히 규정하기 위하여, 신비체험에 관한 여러 정의들을 비교하면서, 성서적 기초와 라너 신학 위에, 서술적 방법을 통하여 신비체험의 본질적 요소들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 논문의 중심 부분에서는 프란치스코의 글들과 초기 전기 자료들 일부를 분석하면서, 신비체험의 본질적 요소들에 따라, 신비체험의 보편적 관점으로부터 이 본문들을 해석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명사, 동사, 형용사, 구(句) 등 일부 용어들을 분석하였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라너의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3. 논문의 구조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 이외에 다섯 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첫 두 장은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을 규명하기 위한 예비 연구로, 라너의 신비 신학과 신비체험의 의미를 주로 다루었다.


제1장에서는 먼저 신비체험의 어원적 의미를 고찰한 후, 20세기에 전개된 신비신학 논쟁을 정리하였는바, 이 논쟁은 특히 17세기 이래 왜곡된 신비체험의 개념을 보다 정확히 규정하고자 했다는 의미에서 전환기적 의미를 지니게 되며, 이어서 이러한 전환에 결정적 기여를 한 칼 라너의 신비 신학을 소개하였다.


제2장에서는 신비체험의 개념을 보다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20세기에 전개되었던 신비신학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신비체험” (mistica)이라는 용어가 아직도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호한 어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장에서는 신비체험에 관한 27개의 정의를 비교 분석하는 동시에, 신비체험의 세 가지 본질적 요소들, 즉 신비체험의 대상, 방법, 목적을 라너의 초월적 관점에서 검토하면서 신비체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규정해보았다: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함으로써 이 신비와 이루는 사랑의 일치”.


이어지는 다음 세 장에서는 제2장에서 규정한 신비체험의 세 가지 본질적 요소에 따라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의 본질을 검토하였다.


제3장에서는 프란치스코의 글에 나타난 신비체험의 대상에 대해 조명하였다. 프란치스코의 글에는 신비(mysterium)라는 용어가 성체의 의미로 두 번 나타날 뿐, 신비체험의 대상으로는 단 한 번도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프란치스코는 영(spiritus), 선(bonum), 덕(virtus)이라는 용어들을 통해 신비체험의 대상(신비)을 표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피조물과 일상적인 삶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신비를 존재론적으로 직관하고 있고, 이러한 직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들과 삼위일체 신비를 유기적이고 불가분리적 관계 안에서 관상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프란치스코의 글에 나타난 신비체험의 방법, 즉 관상에 대해 조명하였다. 프란치스코의 글에는 “관상하다”(contemplari)는 동사에 상응하는 “바라보다”(videre)라는 동사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프란치스코가 이해하고 있는 관상의 개념을 포착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관상의 개념, 관상의 유형(범주적 대상을 통한 관상과 범주적 대상을 통하지 않는 관상), 관상과 믿음의 관계, 다섯 가지 영적 감각들, 관상의 길 등을 다루었다.


제5장에서는 프란치스코의 글에 나타난 신비체험의 목적, 즉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거룩해짐”(santificazione), “그리스도가 됨”(cristificazione), “하느님이 됨”(deificazione 또는 divinizzazione)의 개념을 통하여 고찰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의 “거룩해짐”은 “sanctificare” (거룩해지다) 동사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고, “그리스도가 됨”은 “sequela Christi”(그리스도를 따름)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이 됨”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sancta operatio Spiritus Domini”(주님의 영의 거룩한 활동)이나 “habitaculum et mansio Dei”(하느님의 거처와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믿는 이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거처가 된다. 이외에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성, 아들성, 혼인성, 형제성, 어머니성 같은 신비체험의 특성들을 통해 삼위일체적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과 하느님 사이의 우주적이고 형제적인 일치를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4. 연구의 결과


이 논문을 통하여, 인간 존재는 하느님의 신비를 지향하도록 존재론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든 인간은 신비체험으로 불리어졌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라너의 신비 신학을 바탕으로 신비체험의 개념을 더 정확하게 규정하였으며, 아울러 관상은 신비체험의 필수적인 방법으로 신비체험의 본질적인 한 요소임을 밝힘으로써 신비체험과 관상과의 관계도 분명하게 정립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전제로, 비록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신비체험에 관하여 체계적인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그의 신비체험과 이에 대한 그의 관점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프란치스코가 피조물들과 일상적인 삶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함으로써 하느님과 깊은 사랑의 일치를 이룬 신비가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이 지니고 있는 탁월성은 무엇보다 그가, 일상적인 삶 안에 숨겨져 있는, 풍요롭고 심오한 다양한 차원들이 통합된 신비체험의 정체를 실천적으로 밝혀 놓았다는데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피조물과 평범한 삶 안에 현존하는 초월적 속성들, 특히 선과 미를 관상하면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신비를 동시에 직관하였으며, 그렇게 그는 초월 체험과 신비 체험을 하였다; ② 이 체험은 하느님의 자기 양여로서의 성령 체험이나 초자연적 은총 체험, 또는 계시와 믿음 체험과 다르지 않다; ③ 초월 체험과 신비 체험을 통해 프란치스코는 동시에 육화, 공현,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과 같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들을 체험하였다; ④ 초월적 속성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성령과 그리스도의 신비 체험을 통해 프란치스코는, 늘 변함없이 형용할 수 없는 신비 속에 머무시는, 성부의 신비를 체험하였다; 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통해 프란치스코는 거룩해졌고, 그리스도가 되었으며 하느님이 되었고, 그렇게 하여 아버지성, 어머니성, 아들성, 혼인성, 형제성을 지니는 삼위일체적 가족성과 우주적 형제성 안에서 삼위일체 신비 및 모든 피조물들과 하나가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신비 체험은 어떤 전문적이거나 학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길고 특별한 훈련 없이 누구나 이런 신비체험을 할 수 있다. 이유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통 삶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상성을 통해 프란치스코는, 성직자든 평신도든, 수도자든 기혼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글을 알든 모르든, 모든 크리스천들이 자신들의 평범한 삶을 통해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신비 체험의 보편적인 길을 닦아놓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800년 전에 이미 프란치스코가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보편적 신비체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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