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리던 날
큰 아버지의 생신에 있었던 일입니다
친척들 모두가 정선 시골집으로 모이기로 한 날
아침부터 서둘러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두 분 다 휴대전화가 없으시니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고 아마도 큰아버지네 식구들을 마중
나가신 게 아닌가 싶어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께서
두 분 계신 곳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장터에 나가시는 날인데 몰랐나 보네."
동생과 나는 두 분이 계시다는 장터로 갔습니다
어렵지않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은 우리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따뜻한 국과 밥, 나물 반찬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고 계셨습니다
"근데 정말 돈 안 받으시는 거 맞죠?"
"네, 맞아요.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식사하고 가세요."
공짜라는 말이 못미더운지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에게
돈 걱정은 말고 밥 한 그릇 배불리 먹고 가라며
국과 밥을 퍼주시는 두 분의 정겨운 모습도
사람들이 먹고 간 빈 그릇을 보는 두 분의 환한 표정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 왔어요."
우리를 보신 두 분의 입가에 더욱
환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들통 가득 담아온 밥과 국이 모두 동이 나자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
빈 그릇을 챙겨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 장터를 떠나려는데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눈내리는 보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 보시더니
아득한 옛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
"옛날에 말이다. 네 큰 아버지가 태어나던 날
그날도 이렇게 함박눈이 펑펑 내렸었지......."
장터까지 걸어다녀야 했던 아주 오래전 옛날
두 분이 함께 장에 다녀오시다가 산달을
며칠 앞둔 할머니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려지는 통에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셨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눈은 하염없이 쏟아지고....
그때 눈앞이 캄캄했던 두 분 앞에 마침 장사를 마치고
지나가던 떠돌이 상인이 구세주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는데
마지막 기차를 타야한다며 그분이 서둘러
떠나는 통에 붙잡지도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생명의 은인을 그렇게 보낸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네 할머니도 네 큰 아버지도
어떻게 됐을지 모른단다."
그날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살아오다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몇 년 전부터
큰아버지의 생일이면 두 분은 장터에 나와
사람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셨던 것입니다
이름모를 사람에게 받은 친절을 이렇게라도
되갚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지만 혹시라도
그 떠돌이 상인을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받는 것보다 나눠 주는 것이 더
신이 나더라. 허허허..."
그 덕에 뒤늦게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셨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벌써부터 내년 음식을 계획하시는
두 분의 모습이 새하얀 눈처럼 눈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