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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청빈한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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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청빈한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배광하 신부

연중 제27주일 (루카 17, 5~10) : 믿음의 힘
발행일 : 2007-10-07 [제2568호, 6면]

- 믿음과 종의 본분 -

믿음이 사라진 오늘

임진왜란 때 영의정까지 지냈던 ‘해학의 현신 이항복(1556~1618)’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 장인 권율을 속여 폭소를 자아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장인 권율이 사위 이항복과 함께 입궐하게 되었는데 이항복은 장인에게 날씨가 몹시 더우니 버선을 벗고 신을 신고 입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합니다.

사람 좋은 권율은 사위 말만 믿고 그렇게 입궐하였습니다. 입궐 뒤 이항복은 임금 앞에서 날씨가 몹시 더워 나이든 재상들이 의관을 갖추기 어려우니 신을 벗도록 청합니다.

선조 임금은 매우 옳은 말이라 생각해 영의정부터 차례로 신을 벗게 합니다. 권율이 신을 벗지 못하고 쩔쩔매자, 임금은 자신 앞이라 그러는 줄 알고 내관을 시켜 신을 벗깁니다. 그러자 맨발이 드러난 권율은 도포 자락으로 발을 가리며 엎드려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 되었나이다.”

임금은 크게 웃고, 여러 신하들도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시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슬 퍼런 어전 회의에서 이 같은 해학의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장인의 사위 사랑과 믿음, 사위의 장인에 대한 믿음, 임금과 신하간에 사랑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욱 자유로운 오늘날 이 같은 여유와 사랑의 믿음이 사라지고 경직된 분위기와 살벌한 인심, 불신이 만연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조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없어지거나 상거래 식의 믿음으로 변절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점점 기복신앙적인 이기주의식 믿음이 돼가고 인간은 더욱 영악스러운 계산적 모습을 보입니다. 진실한 믿음이 사라지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 6)

예수님께서 그토록 크신 사랑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건만, 우리는 그분께 신뢰와 믿음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욥과 종의 본분

욥은 구약성경에서 고통의 대명사입니다. 특별히 죄인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죄 없는 의인이 왜, 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간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쓰여진 성경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분명 의인이 당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그 근원에 들어가 보면 역설적이게도 욥기의 시작인 사탄의 질문에 있습니다. 지상 여행을 마친 사탄이 천상 어전에 오르자 하느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없다.”(욥 1, 8)

그러자 사탄이 묻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욥 1, 9)

이 같은 사탄의 빈정거림에 욥기의 주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슨 까닭 때문에 신앙을 가졌고,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탄은 분명 하느님께서 욥에게 무엇인가 세상사의 물질적 풍요를 주셨기에, 그 같은 까닭이, 이유가 있었기에 하느님을 경외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 역시 하느님께서 ‘무엇인가 주시겠지’라는 요량이 있기에, 그것에 희망을 걸고 세속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탄은 분명 하느님께서 욥에게 재산과 가정과 자녀들, 그 모든 물질적 풍요를 주셨기에 그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 모든 것을 잃어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고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 21)

이것이 신앙이며, 이것이 믿음입니다. 설령 오늘 내게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청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끝내 나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그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삶, 그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무엇을 청할 요량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묵묵히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행할 바를 끝까지 다하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렇게 깨우쳐 주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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