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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가난한 이웃 위해 무엇을 했는가”/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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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가난한 이웃 위해 무엇을 했는가”/배광하 신부

연중 제4주일 (마태 5, 1~12) : 산상 설교
발행일 : 2008-02-03 [제2585호, 6면]

- 진실로 행복하여라 -

가난한 사람들

우리는 늘 하느님 나라로의 최종 목표를 두고 지상 여정의 삶을 순례하는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 순례의 첫 번째 삶의 지표를 오늘 예수님께서는 장엄히 선포하십니다. 이름하여 ‘산상설교’ 혹은 ‘진복팔단’이라 불리는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의 첫 말씀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입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마음’이 빠져있고 그냥 ‘가난한 사람(루카 6, 20)’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가난은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충실히 지켰던 부자 젊은이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라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았던 젊은이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 24).

세상 재물의 집착과 유혹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되는지를 단적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 구원에 이르는 재미있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선 ①낙타를 죽입니다. ②죽은 낙타를 불로 화장 시킵니다. ③화장 시키고 남은 낙타의 뼈를 밀가루처럼 곱게 빻습니다. ④곱게 빻은 뼈 가루를 작은 깔대기를 통해 바늘구멍 속으로 조금씩 통과 시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가르침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는 우선 먼저 나를 불태워야 합니다. 내게 있는 세상 것들을 죽여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잘게 부서져야 합니다. 세상 재물과 욕심으로 비대해진 몸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는 작은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최대한 작아지고 가난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았던 세계적인 휴머니스트, 박애주의자이셨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님은 예수님의 진복팔단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첫째 말씀과 마지막 여덟째 말씀에 특히 주목하십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어리석음, 계산적이지 않은 손해 보는 삶을 살고, 그리스도인의 정직을 살려면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 18~19).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살려면 세상은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여덟 가지 행복선언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선언에 대한 보상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 10) 라고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마지막 행복선언에 대하여도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행복은 반드시 순교자로 죽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하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용기 역시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고 살았던 진정한 마음의 가난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겸손과 가난과 어리석음으로 고통의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예수님의 기쁨이 존재함을 삶으로 보여주는 이가 참된 행복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추기경 시절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요소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배후에 생길 수 있는 값싼 즐거움 따위의 기쁨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삶과 함께 하며 이러한 삶조차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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