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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참 자유 허락하신 목자 그리스도/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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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참 자유 허락하신 목자 그리스도/배광하 신부

부활 제4주일 (요한 10, 1~10)
발행일 : 2008-04-13 [제2594호, 6면]

-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양들을 샅샅이 아시는 분

양들을 잘 돌보는 착한 목자는 우선 양들의 특성을 잘 이해합니다. 어떤 양은 어디가 아픈지, 무슨 풀을 특히 좋아 하는지, 추위에 강하고 약한 양인지, 털은 언제 깎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착한 목자임을 밝히시며 양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름까지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우리들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어 두셨다고 하셨습니다(마태 10, 30 참조). 진정 우리는 주님의 양떼이고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에 신뢰를 가지고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현실의 삶은 여러 유혹으로 우리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가정의 여러 불화와 시련이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여러 그릇된 사상이라든가 이단이 판을 치는 세상 위험에 우리들은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실한 신앙의 토대 위에 착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려는 양떼들에게는 여간 혼란스런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로 얼마나 많은 양떼들이 착한 목자를 떠나 멸망의 길로 이끄는 도둑의 소굴로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둑들의 의도를 밝히시면서 당신의 목자 된 사명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문으로 들어와 생명을 얻으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7 10).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사이비 종교입니다. 그곳 종교의 교주들은 거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양떼들을 착취하는 것입니다(훔치고). 그리고 착한 양떼들의 가정을 파탄으로 만들어 가족 구성원이 화목하게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죽이고). 끝내는 양떼들을 멸망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그리하여 ‘저주’ ‘심판’ ‘징벌’ 등의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자주 엄포와 으름장을 놓으면서 신도들을 옭아매고 인간의 가장 소중한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그들은 분명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자유를 사셨던 분이셨고, 자유를 주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자유가 억압으로 신음할 때, 당신은 분연히 일어나시어 대항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신앙을 일깨워 주신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들어가야 할 문

봉쇄 수도원의 높은 담과 교도소의 높은 담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수도원의 담은 바깥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교도소의 담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문이십니다. 그리고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두시기 위하여 강제적인 힘을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문으로 들어 와야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는다고 하십니다.

문은 열려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문은 안과 밖을 연결시켜 줍니다. 닫아걸고 있는 문은 분명 그 안에 살고 있는 주인의 어두운 면을 보여 줍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온갖 악한 소유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열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밝은 광명의 삶은 문을 닫아걸고 있을 수 없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열려있는 생명의 문이십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 그분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때 그곳이 진정 자유가 넘치는 생명의 낙원인 것입니다.

그 같은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교회 역사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앙인들이 세상이 주는 안락한 삶의 유혹을 끊고 생명의 문을 선택하였습니다. 세상 것들을 끊고 생명의 문을 선택한 이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생명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넘치는 기쁨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터질듯 한 심장의 박동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목자의 뒤를 따르는 삶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늘 부활 제4주일을 ‘착한목자주일, 성소주일’로 지내며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거룩한 음성에 귀 기울여 응답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의 부르심에 응답해 줄 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 혼자 구원사업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 옛날 열두 사도들을 뽑으셨듯이 오늘도 당신의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팔과 다리,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음성이 되어줄 것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문으로 들어와 그 생명의 기쁨을 체험한 제2, 제3의 착한 목자, 자신을 투신할 목자를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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