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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어둔 밤을 보내야 부활이 찾아옵니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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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어둔 밤을 보내야 부활이 찾아옵니다/배광하 신부

부활 제3주일 (루카 24, 13~35)
발행일 : 2008-04-06 [제2593호, 6면]

-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



엠마오로 가는 길

스승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던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옛 직업을 찾아 떠나며 동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요한 21, 3).

베드로의 이 말에는 인생살이에서 무언가 잔뜩 기대를 걸었던 것이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었을 때, 희망과 꿈이 좌절되었을 때 던지는 허망함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패배를 맛본 이의 스산함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그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인생의 희망이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으로 끝났고, 자신은 배신의 절망감으로 이제는 무엇을 기대할 수조차 없는 막다른 길에서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가족의 생계나 걱정해야겠다는 슬픈 어둠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두 제자들,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희망을 걸었던 예루살렘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뒤 절망 가운데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내리막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내리막으로 끝나는 내리막길이며, 다른 하나는 내리막에서 다시 올라가는 내리막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희망과 꿈이 좌절되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인생에서 쓰디쓴 낙방의 내리막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이 엠마오로의 길이며, 다시 고기잡이를 떠나는 길입니다.

그 내리막을 끝까지 걸으면 그것으로 인생도, 신앙도, 믿음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걷고 있던 내리막길에서 잘못 되었음을 빨리 인정하고 되돌아올 때 내리막은 내리막이 아니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부활의 오르막길이 되는 것입니다. 좌절과 실패의 사순을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가 부활의 기쁨의 길로 그만큼 빨리 인도해 주는 법입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위인들이나, 신앙인들 역시 자신들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내리막의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가슴 아픈 엠마오로의 내리막길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 있게 찬란한 부활의 오르막길을 향하여 눈을 뜨고 다시 힘차게 걸어 올라갔던 분들이셨습니다. 그것을 확신하였던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기쁨을 체험한 뒤, 이렇게 외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1베드 1, 21).



다시 예루살렘으로

영성신학의 한 획을 그으셨던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은 신앙의 어두운 밤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저 밤이 날 인도했다네, / 한낮의 빛보다 더 확실하게, / 날 기다리는 분이 있는 곳으로 / 내가 잘 알고 있던 분께로, /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으로, 오! 이끌어준 밤이여! / 새벽보다 더 다정한 밤이여! / 오! 합쳐준 밤이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자신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끊어 버려야 하는 정화의 과정, 어둡고 좁은 어둔 밤을 거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길이 고통의 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통과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 13~14).

우리는 모두 신앙의 삶에서 여러 가지로 번민하며 갈등합니다. 신앙의 여러 선택에서 강한 믿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삶을 선택하기를 주저하며 자주 엠마오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성인 성녀들조차도 그 같은 어둔 밤을 걸었던 것에 작은 위로가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제자도 신앙과 믿음의 체념 속에서 어둔 엠마오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진정 부활이 희망이자 복음의 기쁜 말씀인 것은, 의욕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며 침통한 인생길을 우리가 걸을 때, 주님께서는 나 몰라라 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 오시어 함께 동행 하시며 용기와 힘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옛날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그러하셨듯이 오늘 우리들의 고달픈 인생 여정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동행을 굳게 믿으며 함께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께 내어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불안이, 어둔 밤이 계속될 때 그분의 동행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나와 우리 가족, 공동체의 청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믿음과 희망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기쁨이며,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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