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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승천은 기다림이며 희망이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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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승천은 기다림이며 희망이다/배광하 신부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 28, 16~20)
발행일 : 2008-05-04 [제2597호, 6면]

-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시도다 -


어린이와 같이

글을 읽으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야겠다고 느껴지는 ‘호인수’ 신부님의 <유아 세례를 주며>라는 시를 묵상해 보시겠습니다.

“나의 이 때 묻은 두 손으로 / 하얀 네 이마에 물을 붓는다. / 너를 품에 안은 너의 젊은 부모와 / 세례를 주고 있는 나는 이미 / 거짓과 탐욕과 미움으로 오염된 몸 / 영원히 꽃이기를 바라는 / 바람마저 부끄러워라.../ 훗날 네가 부모 되어 / 너의 아기 품에 안고 오늘처럼 내게 올 때 / 그때에도 우리들은 아기 앞에서 / 이렇게 부끄러우면 어쩌지.”

유아 세례를 주다 보면, 아기들의 착하고 예쁜 눈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그 고결하고 깨끗한 영혼에게 죄를 씻는 세례를 주는 사제 역시 죄에 얼룩져 살아온 죄인임을 반성할 때 참으로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하늘나라는 그냥 오르는 것이 아님을 또다시 느끼게 됩니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 세상적인 것들로의 얼룩진 검은 마음, 그 같은 비대함으로는 너무 무거워 오를 수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도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해 자기 몸의 뼈 까지도 가볍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 하늘에 오르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에 묻은 더러운 때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한 철저한 비움의 몸부림이 없다면 하늘로의 비상은 꿈꿀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참된 진리입니다.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 14).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심에 대한 기다림이며, 약속에 대한 희망입니다. 때문에 이별에 대한 아픔이 아니라 기대에 찬 희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승천은 하늘만 쳐다보는 넋 나감의 허황된 꿈과 기대가 아니라, 부지런히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 가운데 이루어지는 기쁨이며 희망의 현실인 것입니다.

오늘 바로 여기에서 천국을 만들지 못하면, 내일 천국 아버지의 나라로 승천은 없는 것입니다. 희망에 벅찬 승천은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 깨끗하고 가벼운 영혼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악에 의해 비대해진 나의 몸과 영혼을 자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같은 몸으로는 오를 수 없음을 깊이 반성하며, 몸과 마음을 순수와 착함과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승천의 참 신앙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승천의 교리와 신앙을 생각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 13).

얼마 전 우리나라도 첫 우주인을 탄생시켰다고 흥분하며 온 나라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선을 쏘아 달에 가고 우주 정거장을 만들어 수없이 왕래한다고 하여도 정작 이웃집에 갈 수 없다면 그 같은 우주로의 왕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어떤 아픔과 고민이 있는지 서로가 모른다면, 우주인을 수백 명 탄생 시킨단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땅을 알아야 하늘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땅으로 내려온 자만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법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당신의 규칙서 <겸손>의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땅으로 내려오는 자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죄로 더럽혀진 땅으로 내려오시는 겸손을 보이셨는데, 죄로 얼룩진 인간이 더 낮추어진 겸손의 삶을 살지 못하고 교만으로 가득 차 하늘의 승천을 꿈꾸고 있는 모순을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 승천 때 흰옷 입은 사람 둘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오 1, 11).

실로 교회의 위대한 성인들은 땅을 먼저 사랑하고 땅의 겸손을 배우며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아 땅으로 내려오려고 하였습니다. 그 같은 겸손의 삶이, 땅의 비천한 사람들을 사랑하였던 삶이 승천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늘이고 그대가 하늘로 간다.”

하늘이 바로 나의 마음에, 내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천의 참 신앙이며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와 같은 작은 마음으로 ‘최종진’ 시인의 <신앙>이라는 시를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 지구에서 누군가 / 착한 눈빛을 하고 / 자기를 바라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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