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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삶’/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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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삶’/배광하 신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르 11, 1-10)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발행일 : 2009-04-05 [제2642호, 09면]

악이 만연한 세상을 향하여

여러 차례 떨어진 신학교를 어렵사리 합격한 조카가 삼촌 신부님에게 인사차 들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떠나오던 아침, 삼촌 신부님은 제게 꼭 필요한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광하야! 네가 신학교에 들어가거든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거라. 신학교는 천사들만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땐 삼촌 신부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가 보았더니, 정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신학교도 인간이, 그것도 죄지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삼촌의 말씀인즉, 고귀한 사제의 길에서 결코 인간에 대한 갈등과 상처 때문에 그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충언이셨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이 모인 공동체는 천사가 아닌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도 성 요한은 우리 죄 많은 인간을 향하여 분명한 가르침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 10).

때문에 독일의 저 유명한 신학자인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현실의 교회는 죄 많은 교회다. 역사상 교회의 모든 그릇된 결정과 그릇된 발전의 내면에는 항상 개인적인 실수와 개인적인 과오가 있고, 온갖 불완전한 결함과 기형적 현상, 죄악과 비행이 숨어 있다. 그것을 도외시 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떠나 환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환상이 아닌 현실, 그 죄 많은 인간의 세상에 오신 겸손과 가난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안고 있는 불협화음과 죄악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당시 기득권에 안주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악이 만연한 자리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맞닥뜨렸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에 휩싸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온갖 불평불만 속에 찾고자 했던 것은 이집트에서의 쾌락과 방종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옛 죄악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시기 위해서 악의 대표적 소굴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어둠을 깨뜨리고 오소서

스승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세상이 주는 안락함을 버리고 결단코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려던 옛 신앙인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같은 고통과 눈물의 믿음 속에서도 그들의 한결 같은 희망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때 신앙인들의 삶, 예루살렘의 화려한 입성 뒤의 처절한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옛 신앙인들의 모습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에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메고 다녔습니다”(히브 11, 36-38).

이는 오늘 먼 옛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하였던 메시아 수난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 6).

이 세상의 것을 버리려면 반드시 당하게 될 박해의 조롱을 견디면서도 그들의 한결 같은 믿음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값진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닮은 지상의 삶이 구원으로 이끄는 삶임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깨달았기에 그 같은 곤궁과 박해를 달게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죽음 앞에 나의 어둠을 깨뜨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미국의 ‘죽음의 여 의사’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는 이렇게 일깨웁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고 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오늘 가장 값진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예루살렘 입성의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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