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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자신 희생하면 모든 것 얻어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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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자신 희생하면 모든 것 얻어 / 배광하 신부

사순 제5주일(요한 12, 20-33) :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발행일 : 2009-03-29 [제2641호, 10면]

우리의 영혼

1830년 프랑스혁명이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로 휘몰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는 누이동생과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이란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는 작은 도둑질로 19년이라는 옥살이의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후 가석방되어 세상으로 나왔으나 어려운 살림살이는 나아질 것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과자’라는 사회의 따가운 눈총으로 살아갈 길은 더욱 막막해졌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그는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가 사제의 환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한순간의 유혹으로 성당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납니다.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던 장발장은 이내 경찰에게 붙잡혀 다시 성당으로 끌려옵니다. 이를 변호하여 자신이 은접시를 주었다고 경찰에게 밝힌 ‘밀리에르’ 신부는 경찰이 떠난 뒤 장발장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정직하게 살아가게, 자네의 영혼은 이제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네.”

죄에 물든 우리의 영혼을 당신의 피흘림으로 사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하여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히브 5, 7).

우리는 분명 그분의 눈물과 애정 어린 기도와 탄원으로 영생의 삶을 다시 부여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죽은 영혼을 예수님의 희생으로 다시 살림을 받은 구원된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거저 얻게 된 덤의 인생을 값지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복된 채무자입니다.

진정 우리가 갚아야 할 채무는 주님의 희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같은 따름이란 바로 나를 버리는 삶입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송두리째 버리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얄팍한 과학 사고주의에 매달려 자주 증명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또 그분의 삶을 온전히 본받고 살았던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삶의 증명을 통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버리는 삶이 모든 것을 얻는 삶이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썩은 밀알이 되신 예수님

‘데이비드 그레고리’라는 저자의 재치가 넘치는 책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에서 주인공 ‘닉 코민스키’는 우연한 기회에 예수님으로부터 저녁식사를 초대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주인공은 끊임없이 그분이 예수님이신지 밝히려 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같이 설명하십니다.

“사람들이 날 믿고 영생을 얻을 때, 그들은 죄를 용서받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바꿉니다. 마음과 영혼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죠. 존재 깊은 곳에서 그들은 더 이상 하느님을 피해 달아나지 않아요. 하느님과 하나가 되죠. 더 이상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싶지 않고, 하느님께서 선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행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썩은 밀알이 되시어 많은 열매를 맺으려 하신 뜻은 분명 이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신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바치신 기도에서도 이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1).

그리고 아버지와 아드님의 그 깊은 내면의 사랑에 우리를 무척이나 초대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6).

하느님을 피해 달아나려고만 하였던 인간의 슬픈 도피를 멈추게 하는 것, 당신 안에 머무를 때, 인간은 그지없는 행복 속에 살 수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 바로 예수님 희생의 참 뜻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은 당신의 몸을 성체성사로 남기시어 영원히 우리와 하나가 되려 하신 것입니다.

밀알 하나가 썩고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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