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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말씀은 곧 구원의 참된 희망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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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말씀은 곧 구원의 참된 희망 / 배광하 신부

사순 제4주일 (요한 3, 14~21) :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
발행일 : 2009-03-22 [제2640호, 10면]

바빌론 강 기슭에 앉아

고해실에 앉아 성사를 주거나 면담을 할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왜 그리도 상처 받은 이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경제가 어려운 지금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도 신앙과 믿음을 버리지 않고 성당에 나오는 것이 대견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신앙은 마음이 편하고 가정에 별 문제가 없을 때 보다는 시련과 고통이 있을 때, 그 때에 더욱 간절히 필요한 것입니다.

실로 수많은 이들이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경 중 고통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에 대한 ‘요하네스 브란첸’ 신학자의 묵상은 오늘의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

“인류 역사는 곧 고난의 역사이다. 고통 받는 이들의 대명사인 구약의 욥은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마녀로 판결 받아 화형당한 이, 노예로 매매된 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죽은 이, 지진에 삼켜진 이, 휠체어에 실려 다니는 이,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모든 이가 다 욥이다. 욥은 어디에나 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는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바르샤바에서는 체념 속에 살고 있다. 칠레에서는 고문당하고 있고, 아르키펠 수용소에서는 신음 중에 있다. 또한 욥은 끝장난 부부생활, 파탄으로 허물어진 가정 속에, 공허하게 살고 있는 이웃, 직장이 없는 20대, 정년퇴직의 기로에 선 50대, 양로원에서 고독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70대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 가운데에 있다.”

그 모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울고 있습니다. 그들의 처지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자신들의 사랑하는 조국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시온의 언덕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눈물지었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화답송에서는 그 슬픔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노라”(시편 137, 1).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이들, 현대의 욥이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유배 중에도 결코 잊지 않고 하느님 믿음에서 나왔던 희망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 마지막 희망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끝내 버릴 수 없는 마지막 희망의 끈은 하느님이십니다.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에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시온의 노래를 부르자

지독한 고통 중에도 성경은 끝내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망의 신음 속에서도 시온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가엾은 처지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시편 137, 5-6).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우리네 인생을 당신 사랑의 섭리로 이끄시는 그 하느님께서 마지막 희망이자, 곤경의 수렁에서 우리를 건지실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결코 이 고통의 인생 바다에서 하느님을 잊어서는, 버려서는 안 됩니다. 진정 그분은 사랑의 결정체이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늘 들었으나 자주 잊고 있었던 하느님 사랑에 대하여 이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 2, 4-5).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

복음과 독서는 우리가 고통 중에, 고독 가운데 있을 때 그 고통과 고독이 결코 버려진, 혹은 홀로 잊혀진 나만의 아픔이 아님을 분명한 증거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가장 위대한 결정체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한 속죄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실로 뜨거운 감동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면, 세상 그 어떤 위로와 축복도 결코 참된 희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너무도 큰 욕심에 살았습니다. 끝없는 이기심과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다할 수 있다는 교만에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창조주이시며,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업신여겼으며,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고 교만하게 살았습니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회개가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참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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