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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死者의 書 제 2 부

종교학(宗敎學)

by 巡禮者 2010. 8. 18. 20:05

본문

 

티벳 死者의 書        □ 제 2 부 □

 

중간계  여행 안내서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책


중간계 여행 안내서인 <티벳 사자의 서>는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의 일부이다.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의 원래 제목은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다.

<명상을 통한 자유>는 8세기경

파드마 삼바바가 기록하여 티벳에 감추어 놓았던

비장 문헌이다.


이 문헌은

웃디아 왕국에서 티벳으로 건너온

위대한 성자 파드마 삼바바가 불러 주는 대로

그의 수행의 짝 예셰 초걀이

받아 적은 것이다.

이 문헌은

유명한 비장 문헌 발굴자인 까르마 링빠가

감뽀 다르 산에서 발견하여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 제 5 장 □


  중간계와 관련된 기도


  여기에 실린 5가지 기도와 진언은 <티벳 死者의 書> 전체의 등뼈 역할을 한다. 중간계 여행 과정의 핵심 프로그램인 이 기도문은, 외운 다음 관련되는 국면이 전개될 때 반복하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진언이다.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는 <티벳 死者의 書>가 제시하고 있는 변형을 위한 상상 명상을 돕는다. 수행자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인 스승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그와 결합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 4가지는 <티벳 死者의 書>의 가르침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도문이다.<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는 3가지 보물 즉 붓다와 진리와 수행자 공동체에 호소하는 산문체 기도문이다. 죽음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어서 중간계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구원해 달라는 내용이다.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중간계를 여행하는 동안 부정적인 습관[5毒]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을 때,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따르도록 이끌어 달라는 내용이다.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깨달은 존재들의 보호와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강조점은 절대 자유의 경지보다는 미래에 전개될 삶을 보호하고 이끌어 달라는데 있다.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탄생 중간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때, 좀 더 나은 환생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는 각 중간계에서의 수행이 완성되어, 삶의 사이클 전체가 깨달음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지금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저승 중간계에 들어간 사람을 위해서라면,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와 <붓다와 보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읽어 주는 것이 좋다. 나머지 기도는 중간계 각 단계의 가르침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 읽어 주면 된다.본문에서 크고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중간계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보통 굵기의 큰 글씨체로 된 부분은 <티벳 死者의 書> 자체에 있는 가르침과 해설이며, 작은 글씨로 인쇄된 부분은 역자의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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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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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가지 독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도문은,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 맨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매우 간략하고 문체가 아름다운 이 기도는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을 사용하기 위한 환경을 설정해 주고 있다. 궁극적인 실재를 몸으로 나타내고 있는 스승을 신뢰하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승은 입문 의식을 통해 그대가 선택한 붓다의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그대를 이끌어 들인다. 그대를 인도하는 영적인 스승이 그대 속으로 들어오기를 청하고, 그의 신성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그와 하나로 결합하는 수행을 ‘스승 요가’라고 한다. 상상 속에서 스승과 결합하면, 그대와 스승은 더 이상 둘이 아니다. 그대가 스승이 되고, 그대가 붓다가 된다. 붓다가 되고 스승이 된 그대는 스승과 붓다에게서 받은 은총을 세상으로 되돌려 보낸다. 현실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스승에게 입문하지 않는 사람은 <티벳 死者의 書>의 저자인 파드마 삼바바를 스승으로 여기고 이 수행을 할 수 있다.


  완전한 붓다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세 몸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 붓다에게는 궁극적인 진리의 몸, 기쁨이 넘치는 깨달은 몸, 중생을 위해 나투는 몸이 하나로 존재한다[三位一體]. 스승의 모습 속에 붓다의 이 세 몸이 현존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승이 그대 속에 현존할 때 느끼는 은총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신성한 보좌에 앉아, 모든 붓다와 보살과 수호신과 깨달은 존재들에 둘러 싸여 있는 스승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해야 한다. 그대가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이 어떤 종교의 사제이든지 아니면 성자이든지, 또는 박사님이거나 샤먼이거나 간에 같은 방식으로 시각화 상상을 한다.


  탐욕과 분노와 망상[貪·瞋·癡], 이 3가지 독은 깨달음을 방해하고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3독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상태의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곧 ‘위대한 완성’[마하무드라]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는 즉각적인 변형이다.


옴-아브 카아 아! OM-AV KAA AAH!


OM은 신비한 창조력이 있는 만트라이다. 이 만트라의 소리는 우주 전체에 울려 퍼진다. 따라서 초월적인 존재 또는 능력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AV KAA AAH는 많이 사용되는 만트라는 아니다. AV는 사물의 견고한 실체가 없음 즉 ‘비어-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비의 창조적인 활동력에 대한 순응을 뜻한다. KAA에서 K는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의 첫 번째 자음으로서, 근원적인 자리를 상징한다. A는 우주적인 창조력의 상징이다. 따라서 KAA는 근원에서 울려 퍼지는 우주적인 창조력을 뜻한다. AAH는 붓다의 깨달은 몸과 말을 상징하는 만트라이다.


우주 속에 충만한 완전한 진리의 궁전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진리의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무지와 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진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완전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지혜를 밝혀 주소서!


여기서는 궁극적인 실재[붓다의 진리의 몸]와 하나 된 스승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스승과 그대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궁극적인 실재인 스승과 하나 되었음을 느끼는 순간, 그대 또한 궁극적인 실재가 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총의 물결을 체험한다. 그대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무지와 망상이라는 정신의 부정적인 습관이 저절로 궁극적인 실재 속으로 녹아 들어가 변형되는 것을 느낀다.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대는 스승의 심장 의식 센터에 푸른색 사파이어로 쓰인 HUM 만트라를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청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는 자유롭게 하는 근원적인 지혜로 충만해진다. 이 수행은 제 3단계 입문[智慧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단계의 수행을 통해 죽음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투명한 직관의 빛과 붓다의 진리의 몸을 체험할 수 있다.


순수한 지혜의 기쁨이 충만한 빛의 궁전에서,

죽음을 모르는 깨달은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탐욕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깨달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을 채워 주소서!


여기서는 기쁨으로 충만한 스승의 모습[붓다의 깨달은 몸]에 초점을 맞추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스승의 현존을 느끼며 그와 결합한다. 결합하는 즉시 똑같은 희열과 기쁨이 그대 속에 흘러 넘친다. 억지로 기쁨을 만들어 내려던 탐욕과 정욕이 녹아 버린다. 이제 행복을 밖에서 찾지 않는다. 그대는 스승의 목 의식 센터에 붉은 색 루비로 쓰인 AAH 만트라를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목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그대의 목 의식 센터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이 수행은 완성 단계 수행[圓滿行]이 시작되는 제 2단계 입문[秘密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단계의 수행을 통해 저승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신비한 에너지 몸과 붓다의 깨달은 몸을 체험할 수 있다.


흠없이 완전한 연꽃 궁전에서,

스스로 나타나신 신성한 나투는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증오심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나투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마음을 밝히는 투명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여기서는 뭇 중생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 자비를 베푸는 스승의 모습[나투는 몸]에 초점을 맞추고, 그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그대 자신이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욕망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진 연꽃 계열 붓다의 일원이 되었음을 느낀다. 스승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빛나는 백색 다이아몬드 만트라 OM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눈부신 백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정수리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이 수행은 제 1단계 입문[花甁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여기서 창조 단계 수행[生起行]을 할 수 있는 힘을 전수 받으며, 이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과 붓다의 나투는 몸이 하나 된 상태를 체험한다.


내면을 관통하는 투명한 빛의 궁전에서,

만물에 고루 축복을 베푸는 세 몸이신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나와 너의 분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세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근원적이 지혜의 세 몸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여기서는 그대와 스승과 붓다의 세 몸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그대의 내면이 완전한 붓다의 땅으로 바뀌고,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붓다의 몸과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만트라 OM AH HUM의 진동과 함께, 스승의 세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그대의 세 의식 센터는 흰 색, 붉은 색, 푸른 색 광선으로 충만해진다. 이로써 그대와 스승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이 수행은 제 4단계 입문[大印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여기서 최고의 완성 단계[마하무드라]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전수 받으며, 이 수행을 통해 죽음과 중간계와 삶[환생]이 하나의 실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육체와 말과 마음도 하나이며, 붓다의 세 몸도 하나[三位一體]라는 사실을 체험한다.


오, 무지와 망상의 어둠 속에서

윤회하며 고통 당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무한한 진리의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진리의 몸을 이룰지어다!


그대는 스승과 결합함으로써 스승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은총이나 축복을 구할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의 눈을 통해 뭇 생명들로 가득한 세상을 응시한다. 그들이 그대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그대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투명하고 무한한 ‘비어-있음’ 속에서는 모두가 한 몸으로 얽혀 있다.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HUM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푸른 색 사파이어 광선이, 부드럽게 그들의 심장 의식 센터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궁극적인 실재[붓다의 진리의 몸]와 하나 되는 모습을 본다. 이제는 행복감으로 충만한 그들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푸른 색 광선이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를 비춘다. 축복의 광선은 이렇게 오고 가면서 점점 더 강렬해진다.


오, 정욕과 집착의 그릇된 길에서

윤회하며 방황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기쁨이 넘치는 깨달은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깨달은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다시 한 번 마음의 눈으로, 그대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뭇 생명들로 가득한 세상을 응시한다. 궁극적인 실재의 무한한 투명성과 하나 되어, 지복감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깨달은 몸]에 주목한다. 그대의 목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AAH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이, 그들의 목 의식 센터로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들은 점점 더 깊은 행복에 젖어 든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사랑과 기쁨의 루비 광선이 그대의 목 의식 센터를 비춘다. 기쁨의 광선은 이렇게 오고 가면서 점점 더 강렬해진다.


오, 증오심을 일으키는 이원적인 분별심 속에서

윤회하며 방황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자유로이 나투는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나투는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마음의 눈을 통해, 기쁨에 젖어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중생들을 본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쁨의 물결이 아직 깨닫지 못한 다른 중생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모습에 주목한다. 그대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OM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이, 그들의 정수리 의식 센터로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들의 기쁨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다른 생명체들과 무한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몸[나투는 몸]으로 변형되는 모습을 본다. 다이아몬드 광선을 받은 존재들이 나투는 몸으로 변형된다. 무한한 중생들이 그렇게 변형된다. 나투는 몸으로 변형된 중생들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다른 생명들을 기쁨과 자유의 길로 인도한다. 그들이 발산하는 행복과 평화의 다이아몬드 광선이 그대를 되비춘다. 그 빛을 받은 그대의 다이아몬드 광선은 이전 보다 더욱 밝게 빛난다.


오, 습관과 대상의 올가미에 걸려

아직 붓다를 이루지 못한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붓다의 나눌 수 없는 세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세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다시 한 번 마음의 눈을 통해, 지복감 속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중생들을 응시한다. 궁극적인 실재 속에서, 그대를 포함한 다른 모든 중생들과 하나 되었음을 느끼며 기쁨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대가 그들에게 비춘 축복의 광선은 더욱 밝은 빛이 되어 그대에게 돌아온다. 그대는 그 축복의 광선이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푸른 색 사파이어, 붉은 색 루비, 백색 다이아몬드의 빛이 결합된 빛의 소용돌이가 우주 전체를 감싸고돈다.

 

우주 전체가 깨달은 존재의 육체와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OM AH HUM의 진동으로 가득 찬다. 이제 시작도 끝도 없는 근원적인 실재[진리의 몸]에서 발산되는 푸른 색 사파이어 광선, 모든 존재와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몸[깨달은 몸]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 그리고 뭇 중생들과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몸[나투는 몸]에서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었다. 붓다의 영역에서 분리된 무엇인가가, 또는 누군가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착각이다. 에고에 대한 집착은 이런 착각에서 비롯된다. 착각에서 비롯되는 분리 의식은 기쁨과 지혜로 충만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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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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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4개의 기도 중에 첫 번째 기도문이다. 자신의 죽음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 또는 명상 수행을 통해 죽음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사용한다.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는 첫 구절 OM은 온 세상의 모든 붓다와 보살들이 나투어 현존하기를 바라는 만트라이다.


OM


자신의 죽음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붓다와 보살들의 도움을 청하는 이 기도를 드려라.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3가지 보물 앞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 실제로 바쳐도 좋고 상상으로 만들어 바쳐도 좋다. 향을 손에 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


여기서는 메시아적인 영웅들인 붓다와 보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그들만이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을 구원할 수 있다. 진화의 정점 즉 붓다의 경지에 도달한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라. 예를 들어, 자비의 화신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나 기적을 일으키는 여신 타라와 같은 존재는 이미 붓다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계속 이 땅에 나타나기로 맹세한 보살들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


3가지 보물[三寶]이란 붓다[佛]와 진리[法]와 수행자 공동체[僧]를 가리킨다. 스승과 스승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이 3가지 보물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람이 몸을 맡길 진정한 귀의처이다. 그래서 보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이 기도문을 읽어 줄 때는 본문에 ‘아무개’라고 되어 있는 부분과 ‘그’라는 인칭 대명사 대신 그 사람의 성별(性別)과 이름을 구체적으로 사용한다.


  오, 시방위(十方位)에 거하시는 붓다와 보살들이시여! 한없는 자비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들이시여!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중생들의 피난처 되는 분들이시여! 자비를 베푸사, 이곳으로 오시어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실제로 드리는 이 제물과 마음 속으로 드리는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무한한 지혜를 지니신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자비와 능력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시며, 중생들의 피난처 되는 분들이시여!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지금 아무개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그는 친구도 없이 혼자입니다. 피할 곳도 없고,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고, 동반자도 없이 혼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의 현생(現生)의 인식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는 지금 생명의 다른 영역을 향해 흑암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쌓은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에 이끌려 거대한 광야로, 망망한 대해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진화의 추진력이 밀어붙이는 대로 큰 싸움터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악마의 손에 붙들려 있으며, 죽음의 신 야마의 사자들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진화의 추진력이 이리 저리 끌고 다녀도 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는 혼자서 가야만 하는 길을 가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이 가련한 아무개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동반자가 되시어, 중간계의 깊은 어둠에서 그를 건져 주소서. 거세게 불어닥치는 까르마의 폭풍에서 그를 지켜 주소서. 죽음의 신 야마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길고 좁은 중간계 나그네 길에서 그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자비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고, 그를 도와주소서. 3가지 비참한 존재 차원[三惡道]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 주소서. 당신들이 오래 전에 맹세한 서원을 잊지 말고,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 붓다와 보살들이시여. 자비와 구원의 능력으로 아무개를 품어 주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힘에 굴복하지 않도록 견고하게 잡아 주소서. 3가지 보물이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에 당면한 사람은, 깊은 헌신과 신앙심으로 이 기도를 3번 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를 드려라.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이 기도는 삶의 윤회가 끝나기 전에는 그 효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SAMAYA!


‘야마’는 죽음의 신이다. ‘야마의 사자들’은 그의 졸개들로써 일종의 유령과 같은 존재다. 그들은 죽음에 당면한 영혼에게 들소 머리를 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나, 죽은 자의 영혼을 야마가 다스리는 세계로 끌고 간다. 야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선악의 무게에 따라 심판하며, 그 심판 결과에 따라 다음 생에 태어날 존재 차원이 결정된다.


‘윤회’ 또는 ‘삶의 윤회’는 산스크리트어로 ‘삼사라’(samasra)라고 하는데,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여러 존재 차원에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면 윤회가 끝난다. 시간이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는 직선적인 관점에서는, 존재들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에 윤회도 무한히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찰나에서 찰나로 이어지는 시간이 직선적인 실체가 아니다. 윤회는 직선적으로 계속되는 시간 관념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선적으로 계속되는 시간이 사라지면 윤회도 사라진다.


탄트라 경전 마지막에 자주 등장하는 산스크리트어 SAMYAMA의 문자적인 뜻은 ‘서원’ 또는 ‘맹세’이다. 본문 내용을 강력하게 시인하고 각오를 다지며 도장을 찍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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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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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앞에 나온 <붓다와 보살들께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뒤에 나올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와 함께 이어서 드리도록 되어 있다. 전반부는 5가지 지혜를 상징하는 다섯 붓다 계열의 대표 붓다와 그의 배우자 붓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지(망상), 분노(미움), 자만심(아집), 탐욕(정욕), 질투심(시기심)이라는 5가지 독을 변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간계를 여행하는 영혼이 드리도록 되어 있는 후반부는 중간계에서의 체험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함께,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들어가게 해 달라는 요청이 뒤따르고 있다. 중간계로의 전이(轉移)를 충분히 준비한 사람이라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모든 스승과 다섯 원형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들께 엎드려 절하옵나이다. 청하옵건대, 큰 사랑을 베푸사 저를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제가 심한 혼란 속에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신성한 법통을 이어 받은 스승들의 인도를 받아,

배우고 생각하고 명상하여,

흔들리지 않는 빛의 길을 가게 하소서.

그들의 수행의 짝[다끼니]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어두운 무지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이로차나 붓다(大日如來)의 인도를 받아,

궁극적인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다트비쉬바리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강한 분노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즈라사트바 붓다(持金剛佛)의 인도를 받아,

거울 같은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붓다로카나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강한 아집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라트나삼바바 붓다(寶生佛)의 인도를 받아,

평등하게 보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마마키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지나친 탐욕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미타바 붓다(阿彌陀佛)의 인도를 받아,

분석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판다라바시니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심한 질투심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모가싯디 붓다(不空成就佛)의 인도를 받아,

성취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사마야타라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아래에 나오는 기도는 저승 중간계에 관련된 본문에 나온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이 부분이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에 포함된 본문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용은 5가지 독과 다섯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5가지 지혜에 관한 것이다.

 

제가 5가지 심한 독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다섯 계열의 승리자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5가지 지혜가 어우러진 투명한 빛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다섯 붓다의 배우자 붓다들이 수호자가 되어,

윤회하는 여섯 존재 차원(六道輪廻)에서 저를 건져 주소서.

제가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여,

지극히 순수한 다섯 붓다의 땅에 이르게 하옵소서.

 

제가 강한 본능에 이끌려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깨달음을 얻은 영웅적인 스승들의 인도를 받아,

희열이 넘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들의 수행의 짝[다끼니]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영웅적인 스승’으로 번역한 산스크리트어 ‘비드야다라’(Vidyadhara)의 문자적인 뜻은 ‘지식의 보유자’이다. 고대 인도와 티벳에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의 연구실은 인간의 내면 세계였다. 그들은 마음과 그 작용에 통달한, 비물질 문명 세계의 중추적인 과학자들이다.


‘희열’로 번역한 티벳어 lhan skyes의 문자적인 뜻은 ‘결합의 결과’이다. 이 책 1부 해설 부분에서는 ‘오르가즘’이라고 옮기기도 했다. 이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어 사하자(sahaja)는 보통 ‘타고난’ 또는 ‘자연 그대로의’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이 말은 특별히 ‘비어-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에고가 녹아 버린 상태의 희열을 가리킨다. 육체적인 관점에서는 성적인 오르가즘에 해당하는 희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깨달음의 희열을 오르가즘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말을 사용하는 진정한 목적은, ‘비어-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삶과 죽음이 통합된 초월적인 상태를 묘사하기 위함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제가 강렬한 환각 속에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두려운 환상을 극복하는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공간을 가득 채운 다끼니[女神]의 무리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푸른색 사파이어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공간[空]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백색 다이아몬드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물[水]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노란 색 황금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땅[地]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붉은 색 루비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불[火]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초록색 에머랄드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발[風]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이처럼  무지개 빛 다섯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5가지 원소들이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이 좌정하신 장엄한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소리와 빛과 광선이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모든 소리를 제가 만들어 낸 소리인 줄 알게 하소서.

모든 빛을 제가 만들어 낸 빛인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광선을 제가 만들어 낸 광선인 줄 알게 하소서.

제 자신이 곧 중간계의 실체임을 알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붓다의 세 몸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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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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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일반적인 기도다. 저승 중간계에 국한되지 않고, 탄생 중간계와 이승 중간계까지 포함하여 중간계 여행 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어려움에서 건져 줄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다음 생을 위한 출생과 출생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원하고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기도이다.

 

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이시여!

내 생명의 추진력이 고갈되어 버릴 때,

사랑하는 가족이 더 이상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중간계를 홀로 방황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무지의 짙은 안개를 걷어 주소서.

 

오, 붓다들이시여!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별하고 홀로 방황할 때,

공허한 환상만이 눈에 보일 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중간계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소서.

 

5가지 지혜의 빛이 비칠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 빛이 곧 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주님들이 모습이 나타날 때,

제가 중간계에 들어 왔다는 것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인식하게 하소서.

 

오, 수호 붓다들이시여!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실체 세계가 밀려오는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천둥 소리처럼 들릴 때,

그 소리가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진동으로 바뀌게 하소서.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주님들이시여!

제가 진화의 힘에 질질 끌려 다닐 때,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제가 그 동안 쌓아 온 본능의 힘 때문에 고통 당할 때,

투명하게 빛나는 사마디의 희열을 허락하소서.

 

제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 탄생 중간계로 접어들 때,

악마의 유혹에 빠져 헛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하소서.

 

무섭게 울부짖는 맹수들의 포효가 들릴 때,

그 소리가 다르마의 울림으로 바뀌게 하소서.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진동으로 바뀌게 하소서.

제가 눈, 비, 바람, 흑암에 쫓겨다닐 때,

밝게 빛나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소서.

 

중간계를 여행하는 모든 중생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모두 좋은 세계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나이다.

저로 하여금, 탐욕에서 비롯되는

배고픔과 추위와 더위의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몸을 섞고 있는 미래의 부모를 보게 될 때,

그들은 자비로운 주님과 그의 배우자로 보게 하소서.

제 자신이 태어날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

상서로운 표징을 지니고,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중간계 존재가 환생하기 위해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로 보고, 어머니를 아발로키테스바라의 짝인 타라 붓다로 보는 시각화 수행이 적용된다. 탄트라 문헌에서는 ‘부모’로 번역한 티벳어 ‘야브 윰’yab yum이 성적인 결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붓다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제가 뛰어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남으로써,

저를 보는 모든 사람이 즉시 구원받게 하소서.

제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들어가게 하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힘을 거부하고,

긍정적인 진화의 힘만 따르며 키우게 하소서.

 

제가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이 생에서의 수호 붓다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태어나자마자 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전생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

 

높고, 낮고, 평범한 모든 가르침을

듣고 보는 순간 즉시 깨닫게 하소서.

제가 태어난 땅을 축복하시어,

모든 중생이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승리자들이시여!

저와 다른 모든 중생들을 당신들과 똑같게 변화시켜 주소서.

당신들과 똑같이 수많은 수행자를 거느리고,

당신들과 똑같이 장수하며,

당신들과 똑같이 순수한 땅에서 살며,

당신들과 똑같이 상서로운 표징을 지니게 하소서.

 

오, 무한히 자비로운 분이시여!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만타바드라(普賢菩薩)시여!

완성된 실체의 진리의 힘으로,

그리고 집중을 성취한 탄트라 성자의 축복으로,

제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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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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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섯 중간계로 이루어진다. 이 기도는 여섯 중간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깨달음과 자유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오! 이제 이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게으름을 버리고, 마지막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살리라.

배우고, 생각하고, 명상하는 수행자의 길에 꿋꿋이 서서

현상과 마음의 실체를 밝히고,

깨달음의 세 몸을 실현시키고 말리라!

일단 인간의 몸을 입게 되면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니,

허접 쓰레기 같은 것은 좇아 다니지 않으리라.

 


오! 이제 꿈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시체처럼 우둔하게 망상 속에서 헤매는 잠을 떠나,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실체를 체험하는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들어가리라.

꿈 속에서도 정신을 차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꾸리라.

짐승처럼 정신을 잃고 잠에 빠지지 않고,

잠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수행을 소중히 여기리라.

 


오! 이제 명상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이리 저리 흩어지는 산만함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놓지도 않고 통제하지도 않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초점을 맞추리라.

그리하여 창조 단계와 완성 단계를 확고하게 성취하리라.

이제 잡다한 생각과 행위를 포기하고,

한 점에 집중하는 명상 상태에 들리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탐착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오, 이제 죽음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진리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내적인 각성을 얻으리라.

지금 내가 버리고 떠나는, 피와 살로 된 이 육체는

일시적인 환영(幻影)이었음을 깨달으리라.

 


오, 이제 저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무엇이 나타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알아차리리라.

모든 것이 중간계의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리라.

지금까지의 진행이 일단 정지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내가 만든 환상 속에 나타나는,

자애롭고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오, 이제 탄생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마음과 뜻을 한 데 모아,

긍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을 강화시키리라.

자궁 입구를 막고,

부정적인 상황에 태어나는 것에 저항하리라.

긍정적인 생각과 용기가 필요한 이 때에,

질투심을 버리고,

결합하고 있는 모든 짝들을

나의 영적인 스승과 그의 짝으로 보리라.

 


위대한 성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죽음이 다가 오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쓰레기 같은 세상 일에 노예처럼 끌려 다니다가

빈 손으로 떠나는 가련한 인생들아!

거룩한 신들의 가르침을 왜 외면하는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 제 6 장 □


중간계 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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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중간계에서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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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통해 나타난 붓다의 세 몸께 절하나이다:

무한한 빛이며 진리의 몸이신 아미타바께 절하나이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연꽃 붓다들의 깨달은 몸 앞에 절하나이다.

중생들의 구원자로 나투시는 파드마 삼바바께 절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 이름 ‘아미타바’의 문자적인 뜻은 ‘무한한 빛(無量光)’이다. 아미타바는 서쪽에 있는 붓다의 땅 수카바티를 지배하는 붓다이며, 탄트라에서는 연꽃 계열 붓다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그를, 붓다의 속성 중에서 궁극적인 실재성을 상징하는 진리의 몸(法身)이라고 고백한다. 연꽃 계열 붓다와 보살들은 붓다의 속성 중에서 초월적인 지혜를 상징하는 깨달은 몸(報身)과 관련되어 있다. 파드마 삼바바는 인간으로 나타난 붓다의 나투는 몸(化身)이다. 수행자는 스승을 붓다의 세 몸이 구현된 존재로 보고 경의를 표한다. 현대인들로서는 자기가 편안하게 느끼는 존재를 대신 설정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삼위일체나 유일한 하느님을 경배와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괜찮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평범한 수행자들로 하여금 중간계를 통과하는 동안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다.


[준비]


뛰어난 수행자라면 적절한 수행을 통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못한 평범한 수행자라면, 죽음 중간계에서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함으로써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은 티벳어 ‘포바’pho-ba의 번역이다. 포바는 지극히 미묘한 의식이 정수리를 통해 육체에서 빠져나가 붓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고도로 숙련된 요기와 요기니들만이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이 수행법은 입문을 해야만 배울 수 있다. 육체와 미묘한 신경 에너지인 의식을 분리하는 수행을 오랜 세월 반복함으로써 의식을 성공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은,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입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 수행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포바’는 흔히 ‘나로빠 6법’이라고 하는 나로빠가 체계를 세운 6가지 요가에도 포함되어 있다. 의식전이행법(意識轉移行法)이 곧 그것이다. 역자주]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중간계를 여행하는 동안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에 계속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의 징조를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 나오는 내용을 숙지하여, 차례로 나타나는 죽음의 징조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의 징조를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과 함께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에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죽음의 징조, 꿈에 대한 해석, 의학적인 관찰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을 기초로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들로 미루어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죽은 자로 하여금 의식의 이동을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수행을 하도록 일러 주라. 의식이 성공적으로 이동되면,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식의 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신 옆에서 이 책을 또렷한 발음으로 읽어 주라.


시신이 없는 경우에는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침상이나 의자 옆에서 읽어 주라. 그가 그대 앞에 앉아서 그대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리의 힘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권고한 다음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주라.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이나 친지들이 슬퍼하거나 울면 안된다. 조용히 있어야 한다. 슬퍼하거나 울면 죽은 자의 영혼이 혼란스러워진다.


시신이 곁에 있으면, 외적인 숨은 멎었지만 내적인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동안, 그의 스승이나 동료 또는 믿고 의지하던 친척이나 친구가 입술이 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 책을 읽어 주도록 하라.


[실제적인 적용]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죽은 자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굵은 큰 글씨로 인쇄된 부분만 읽어 주면 된다. 나머지는 언제 어떻게 읽어 줄 것인가를 알려 주는 해설이다.


먼저 3가지 보물(三寶) 앞에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성대한 제물을 바친다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마음으로 상징적인 제사를 드려라. 그런 다음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3번 또는 7번 반복하라. 그리고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를 선율에 맞추어 큰 소리로 암송하라.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그 다음에 3번이나 7번 반복해서 읽어라. 읽는 회수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3가지 보물’은 붓다(佛)와 그의 가르침(法)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僧)를 가리킨다. 본문은 제단을 마련하고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불상과 때에 따라서는 불경을 함께 모셔 놓은 제단 위에 제물을 바친다. 꽃으로 장식한 제단 위에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바친다. 정성껏 준비한 다른 제물도 올려놓는다. 외적인 제물이 없이, 시각화 상상을 통해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우주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깨달은 존재들께 그 우주를 제물로 바친다.

 

죽은 사람이 그대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종교에서 거룩하게 여기는 상징이나 경전이나 제물을 사용해서 이 과정을 진행한다. 죽은 사람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기분 좋게 여길 만한 환경을 상상 속으로 만들어 이 과정을 진행한다.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는 5장에 본문이 실려 있다.


[죽음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투명한 빛]


여기서 경험하는 온 천지에 충만한 ‘투명한 빛’은 햇빛이나 달빛과는 다르다. 어두움도 아니다. 본문에서 이 단락의 제목은 <저승 중간계에서 드리는 기도>로 되어 있다. 저승 중간계와 죽음 중간계는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는 죽음 중간계에서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데, 제목 때문에 저승 중간계의 경험 인줄 착각할 우려가 있다. 죽음 직후의 짧은 기간인 죽음 중간계는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투명한 빛’ 중간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없다.

 

투명한 빛 중간계는 의식이 미묘한 신경 시스템의 중앙 통로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기 전에 나타난다. 의식이 완전히 빠져 나온 다음에는 두 번째 단계의 죽음 중간계가 시작된다. 의식은 정수리를 통해 빠져 나올 수도 있고 다른 길로 빠져 나올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죽음 중간계의 첫 번째 단계를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라고 부르고, 두 번째 단계를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라고 하겠다.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는 호흡이 멎은 직후에 나타나며,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는 그 뒤를 이어 나타난다.


죽음의 전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면 죽음 중간계 기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임을 알아야 한다. 의식을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아니면 최소한 붓다의 땅과 깨달음을 향해 방향을 돌리도록 하려면 이 기간이 최적기이다.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은 죽는 순간에 본능적인 습관과 무지와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누가 죽을 때, 죽는 사람이 병원 응급실 같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놀라지 않게 하려고 조용한 분위기를 만든다.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숨이 멎은 다음에도 여러 시간 그런 분위기를 유지한다.
 

티벳어 본문에는 각 단락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정확하게 읽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본문을 간단명료하게 하려고 번잡스러운 소제목은 모두 뺐다.


1.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


‘중간계’라는 말은 적어도 3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약간 혼동될 우려가 있다. 첫째, 가장 일상적인 의미는 죽음에서 재탄생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가리킨다. 둘째, 전문적인 의미로는 삶과 죽음과 재탄생의 전 과정인 여섯 중간계를 일컫는다. 여섯 중간계는 이승 중간계, 꿈 중간계, 명상 중간계,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중간계라는 말 속에는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여섯 중간계 중에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특정한 ‘중간계 상태’도 ‘중간계’라는 말로 표현한다.


죽음 중간계는 다시 두 단계의 중간계, 즉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와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로 나누어진다. 저승 중간계 역시 자애로운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로 구분된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의 두 단계는 다시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식으로 나누어진다. 본문에서는 이 모두를 중간계라는 말로 일컫고 있다. 이 책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본적인 여섯 중간계 이외의 구분은 ‘(무슨 무슨) 중간계 단계’라는 말로 표현했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중간계라는 말을 빼 버리기도 했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읽어 주어야 한다. 투명한 빛이 무엇인지 이해는 했으나 체험하지 못한 사람, 체험은 했으나 수행이 부족하여 체험을 깊이 심화시키지 못한 사람, 또는 에고 의식이 강해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읽어 주라. 그대가 읽어 주는 것을 듣고 그들이 투명한 빛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다른 중간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승하여,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진리의 몸을 성취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의 위력이 나타나 있다. 중간계 상태의 의식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실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변형이 일어난다. 진리를 듣고 이해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생전에 죽은 사람을 가르쳤던 스승이 읽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같은 신앙 고백을 하던 영적인 형제 자매가 읽어 주도록 하라. 그들이 그 자리에 없으면, 같은 영적인 전통에 속한 누군가가 읽도록 하라. 그것도 불가능하면, 아무나 큰소리로 또박또박 여러 차례 읽어 주도록 하라. 그러면 죽은 사람은 생전에 스승이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고, 투명한 빛을 인식함과 동시에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티벳어는 가르침이나 교훈에서 인칭 대명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인칭 대명사를 3인칭 주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도 남녀 성의 구별이 없다. 대부분의 영적인 스승이 남자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티벳에는 여자 스승 또는 여자 라마도 있다. 죽음에는 성의 구별이 없다. 남자가 죽는 만큼 여자도 죽는다. 이 번역에서 남성 인칭 대명사만 사용한다면, 티벳 사람들이 마치 성차별주의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번번이 ‘그 또는 그녀’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이 번역에서는 남성 인칭 대명사와 여성 인칭 대명사를 자유롭게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줄 시기는 다음과 같다. 숨이 멎고, 전신에 퍼져 있던 프라나[氣]가 중앙 통로로 퇴각하면서 의식이 투명한 빛을 경험하게 된다. 프라나가 중앙의 좌우 통로[이다와 핑갈라]로 퇴각할 때 중간계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 외적인 숨이 멎은 다음에도 내적인 숨은 (중앙 통로 안에) 남아 있다. 이 때가 이 책을 읽어 줄 적절한 시기이다. 숨이 멎으려는 순간에 의식이 이미 성공적으로 이동되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읽어 주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진리의 길을 찾을 때가 왔소. 지금 그대의 숨이 멎으려 하고 있소. 숨이 멎자 마자 첫 번째 중간계의 투명한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 빛에 대해서는 그대의 스승에게 들은 바가 있을 것이오. 허공처럼 비어 있고, 중심도 없고 경계도 없는, 투명한 그 빛은 실재의 본질이자 그대의 순수한 마음이라오. 그 빛이 나타나면, 그 빛이 그대 자신인 줄 알고 그 속에 머물러 있도록 하시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빛이 나타날 때 다시 일러 드리리다.


중간계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책 8장에 실려 있는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 자세한 설명이 있다. 투명한 빛으로 나타나는 순수한 각성은 형태도 내용도 없다. 주관적인 느낌도 아니도 객관적인 대상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원성에 사로잡힌 사람은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을 구별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투명한 빛이 나타날 때, 그것을 외적인 대상으로 여긴다. 그 빛이 자기 자신의 순수한 각성인 줄을 모르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빛 속에 머물지 못한다. 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이 곧 자기 자신, 즉 에고가 사라진 자신의 본성임을 인식하도록 권면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는 사람이 마음 속으로 확신할 수 있도록, 외적인 숨이 멎기 전에 이 가르침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도록 하라. 숨이 멎으려고 하면 사자가 누워 있는 자세처럼 오른 쪽으로 돌려 눕히고, 목에 있는 양쪽 경동맥을 눌러라. 피가 통하지 않도록 세게 눌러서 잠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프라나가 중앙 통로로 들어가 다시 빠져 나오지 않고, 정수리에 있는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것이다.


숨이 멎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로 숙련된 경험자가 아니고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른 쪽으로 돌려 눕히고 경동맥을 압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브라흐마의 구멍’은 정수리에 있는 숫구멍[頂門]을 가리킨다. 미묘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는 영혼은 그 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영혼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통해서도 빠져나갈 수 있고,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함으로써도 그렇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때 앞에서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어라. 영혼이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순간,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로 들어감과 동시에 진리의 몸에 대한 순수한 각성이 생긴다. 이 경험은 누구나 한다. 외적인 숨이 멎은 후에도 내적인 숨은 한동안 남아 있다. 이때 온 몸에 퍼져 있던 프라나가 중앙 통로로 퇴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의식을 잃었다’고 말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어떻게 살았느냐, 또는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수행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차이가 난다. 수행을 통해 정신의 안정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던 사람이나 의식-에너지 통로를 상당히 활성화시킨 사람에게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앞에서 읽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그래서 그의 결단이 확고해지게 하라. 눈, 코, 귀 등의 감각 기관에서 누런 액체가 흘러나올 때까지 거듭거듭 읽어 주어라. 악으로 일관된 삶을 산 사람이나 의식-에너지 통로가 막혀 있는 사람에게는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상태가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만 지속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전과 탄트라 문헌은, 외적인 숨이 멎은 후 의식이 중앙 통로에 머무는 기간을 4일 반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죽는 사람이 이 상태에 머무는 동안 투명한 빛에 대해서 거듭거듭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설명해 주는 방법은 이렇다. 생전에 받은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죽음의 해체 과정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의 스승이나 영적인 형제 자매 또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곁에 앉아서 해체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징조들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신기루는 흙의 요소가 물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자욱한 연기는 물의 요소가 불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반짝이는 반딧불은 불의 요소가 바람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밝은 촛불은 바람의 요소가 바람의 요소가 의식[空]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달빛 밝은 하늘은 의식이 1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햇빛 찬란한 하늘은 1단계 직관이 2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순수한 어두움은 2단계 직관이 3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투명한 새벽 빛은 3단계 직관이 투명한 빛 속으로 해체되어 들어가는 징조라오.


본문에는 “신기루를 비롯한 여러 징조들”로 되어 있는데, 번역에서는 8단계 해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징조들을 재구성하여 삽입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이 징조들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징조들을 이해하면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따른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징조가 모두 나타난 다음에는, 그의 깨달은 존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라. 만약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승려라면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말하라.


   존경하는 스님! 스님의 영적인 인식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깨달은 존재의 마음’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치타bodhichitta의 번역이고, ‘영적인 인식’은 보디치토트파다bodhicittotpada의 번역이다. 둘 다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하기로 맹세한 메시아적인 영웅, 보디사트바(菩薩)의 영적인 특징이다. ‘깨달은 마음’과 ‘영적인 인식’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행복으로 인도하겠다는 결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보디사트바의 사랑과 자비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지혜와 모든 중생이 무한한 상호 관계 속에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다. 티벳 사람들은 이타적인 태도가 자신의 운명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역설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영적인 인식을 되새기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승려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름과 같이 말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이 소위 ‘죽음’이라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영적인 인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오.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도록 하시오. “아! 이제 죽는구나. 이 죽음을 기회로 삼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깨달은 존재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를 가득 메운 중생들을 위해 완전한 불성을 성취하고 말리라.” 특히 이런 생각을 품도록 하시오. “모든 중생을 위해, 지금 내가 경험하는 죽음의 투명한 빛을 붓다의 진리의 몸으로 인식하리라.


이 체험 속에서, 마하무드라[大印]의 지고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혹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중간계를 지나는 동안 이것이 중간계라는 것만큼은 인식하리라. 그리하여 중간계에서 마하무드라의 통합된 몸을 성취하여, 무한한 우주를 가득 메운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필요한 때 필요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리라.” 그대는 이같은 영적인 인식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대가 생전에 들은 영적인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얻은 체험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산스크리트어 마하무드라mahamudra의 문자적인 뜻은 ‘위대한 도장(大印)’이다. 궁극적인 실재인 우주적인 ‘비어-있음’에 대한 체험적인 깨달음을 가리킨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비어-있음’의 본질인 투명한 지혜와 하나 됨으로써 우주적인 오르가즘을 체험한다. 마하무드라는 ‘위대한 완성’이라는 말과 함께, 탄트라 수행의 최고 경지를 일컫는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분명한 발음으로 읽어 주도록 하라. 그의 마음이 한 순간이라도 흩어지지 않도록, 간청하는 심정으로 읽어 주어라.

외적인 숨이 완전히 멎으면, 목에 있는 경동맥을 세게 누르고 다음과 같이 말하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승려나 영적으로 높은 경지의 수행을 쌓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라.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지금 당신에게 근원적인 투명한 빛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도록 하십시오. 부디 그 빛과 하나 되도록 하십시오.


승려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듣기 바라오. 지금 근원적인 실재의 순수하고 투명한 빛이 그대에게 비치고 있소.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 빛은 본래 투명하게 ‘비어-있는’ 그대 자신의 의식이라오. 그대의 의식은 원래 구성 물질도 없고, 어떤 특징이나 색깔도 없는 궁극적인 실재 그 자체라오. 투명하게 ‘비어-있는’ 그대의 의식[空]과 어머니 사만타바드리(普賢) 붓다는 원래 하나라오. 그대의 의식이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오. 그대의 의식은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소.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는 그대 의식의 각성이 곧 아버지 사만타바드라(普賢) 붓다라오. 그대의 본래 의식은 물질적인 실체가 없는 ‘비어 있음’이라오.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는 ‘비어-있음’, 즉 그대의 각성된 의식이 곧 붓다의 진리의 몸(法身)이라오. 그대의 의식과 투명하게 ‘비어-있는’ 무한한 빛은 구별할 수 없다오. 그대의 의식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빛의 붓다[아미타바]라오. 이 점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하시오. 그대의 순수한 의식이 곧 붓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대의 의식이 모든 붓다들의 깨달음 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하도록 하시오.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산스크리트어 이름 사만타바드라와 여성형 사만타바드리의 문자적인 뜻은 ‘완전한 선’(all-around goodness)이다. 사만타바드라는 아바탐사카 수트라(Avatamsaka-sutra 華嚴經)에 나오는 유명한 보살이다. 그는 아무리 작은 것이든지 아무리 큰 것이든지, 어느 곳에든지 자유자재로 깃들어, 동시 다발적으로 선을 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원자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중생들을 아원자 세계의 붓다들께 인도함과 동시에, 현상 세계에 나타나 현상 세계의 중생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어머니 사만타바드리’와 ‘아버지 사만타바드라’의 결합은 투명하게 비어 있는 의식의 본질[空]과 그에 대한 각성[진동하는 빛]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 그 결합체가 곧 진리의 몸(法身)이며, 결합의 결과가 무한한 희열(法悅)이다.


이 부분의 설명은 요가 탄트라의 4단계 입문 중에서 제 3단계 입문(智慧入門)의 내용과 비슷하다. 궁극적인 실재(法身)는 태어난 것도 아니고, 노력으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영원토록 각성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깨닫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음 상태에 있다. 필요한 것은 궁극적인 실재와 자신이 지금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뿐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것을 똑똑한 발음으로 명확하게 읽어 주어라. 3번이나 7번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첫 번째 읽어 줄 때는 생전에 배운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읽어 줄 때는 투명하게 빛나는 자신의 순수한 각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읽어 줄 때는 자신의 본성과 진리의 몸이 하나임을 인식하고 그 결합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있다.


2.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


만약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내용을 의심하고,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 번째 투명한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외적인 숨이 멎고 나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에 나타난다. 프라나는 생전에 쌓은 선과 악의 진화력[까르마]에 따라 오른 쪽이나 왼 쪽 통로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육체에 있는 여러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의식은 그 순간 투명한 상태가 된다. 위에서 말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라는 것은, 중앙 통로의 상태와 생전의 수행 정도에 따라 더 길 수도 있고 더 짧을 수도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때,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기가 지금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는 소리도 듣는다. 그대는 그가 쌓은 진화력에서 비롯되는 두려운 환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찾아오기 전에, 다음 가르침을 읽어 주어야만 한다. 이 때 이미 탄트라 수행의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다.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이름을 3번 부른 다음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빛에 대한 가르침을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수호불(守護佛)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도록 다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의식은, 몸에서는 빠져나갔지만 아직 시신 주위를 떠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태는 숨이 완전히 멎은 후 약 30분 후부터 여러 날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옮기거나 매장하지 않고  여러 날 그대로 둔다. 물론 더운 지방에서는 시체가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수행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라마승의 경우 앉은 채로 죽는 일이 있는데, 상당 기간 부패하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완성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미묘한 신경계의 의식-에너지 통로가 활성화되어 있다. 통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미묘한 내적인 차원과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투명한 빛을 즉시 자기 자신의 의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창조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시각화하는 능력이 계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수호불과 성스러운 환경인 만다라에 익숙해져 있다. 수호불의 형상과 만다라의 구조에 대한 시각화 상상은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와 빈두의 각성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수호불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고, 그와 결합하라고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의 수호불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그에게 집중하도록 하시오.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됩니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그대의 수호불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호불의 모습을 뚜렷이 시각화하되, 물질적인 실체로 여기지는 마시오. 물에 비친 달처럼 실체가 없지만,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집중하시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해 주도록 하라.


 위대한 자비의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시오.


‘평범한 사람’은 체계적인 시각화 수행이나 변형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육체적인 에너지와 의식을 다른 상태로 변형시킬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런 수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붓다나 보살들에 대해서는 친숙한 상태이다. 따라서 자신의 명상 대상인 수호불을 선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나 국가적인 상징을 명상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장소를 만다라로 여기고 거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대천사장격인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를 구원자로 여긴다.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고통에서 건져 주는 존재가 바로 아발로키테스바라이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나 모세, 또는 무하마드나 크리슈나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와칸 탕카, 오딘, 제우스, 또는 우주적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그 어떤 여성신을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 자비와 궁극적인 실재가 인격화된 존재로 선택된 신이라면, 그에 대한 명상은 영혼을 평안하게 해준다. 또 그와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인 실재와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어떤 환상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구원자의 모습에 집중함으로써, 그들 위대한 구원자들의 본질인 자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중간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사람도, 분명히 이 가르침을 통해 중간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생전에 스승으로부터 중간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어도 수행을 통한 체험이 깊지 않은 사람, 혼자서는 중간계의 투명한 빛과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스승이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이 가르침을 읽어 줌으로써 일깨워 주어야 한다. 생전에 이 진리를 깨닫고 통찰력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고 차원이 낮은 단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 가르침을 꼭 읽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으면 대단히 비참한 상황에 떨어진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따라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어 본능의 충동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생명 에너지는, 깨달음을 얻은 만큼 확장되고 유연해진다.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영적인 상태가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어둠을 향해 방향을 전환한다면 자연히 극단적인 어두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상태가 개방적이고 유연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지옥 상태에 들어가기도 그만큼 쉬운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두 번째 중간계에 대한 이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각성되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중간계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던 불투명한 의식이 갑자기 투명해진다. 이 상태를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이라고 한다. 이 때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전달되면 어머니 실재와 자식 실재가 융합되고,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이 힘을 잃는다. 햇빛이 어두움을 정복하는 것 같이, 투명한 진리의 빛이 진화의 추진력을 소멸시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신비한 몸은 마음으로 만든 미묘한 에너지 몸으로써 꿈에서 경험하는 몸과 비슷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이 몸을 만든다. 중간계에서는 까르마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신비한 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중간계에서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면, 그 몸이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만들 수 있는 투명하게 각성된 몸으로 즉시 변형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한 진화가 이렇게 엄청나게 가속되는 이유는, 중간계 상태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유연성과 개방성 때문이다.


‘어머니 실재’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 즉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가리킨다. 이 궁극적인 실재가 만물의 모체이다. 그래서 ‘어머니’라고 한다. ‘자식 실재’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투명한 빛을 말한다. 이 빛은 인간의 개념적인 지식에 가려 희미하게 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는 이원성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상태의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몸을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이라고 한다. 이 몸은 투명한 ‘어머니’ 빛과 하나 될 때 완전히 투명해진다.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아버지’로서의 신비한 몸과 ‘어머니’로서의 투명한 빛이 결합할 때 탄트라 요가 최고 단계인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 통합이 마하무드라이자 위대한 완성이며,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이다.


‘두 번째 중간계’라고 부르는 상태가 정신적인 몸[心體] 앞에 나타날 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의식은 그대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이 가르침을 읽어 주면 효과가 있다. 아직은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방향을 바꾸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첫 단계 중간계에서는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인식하여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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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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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된다. 각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해당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의 내용을 듣고 이해하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는 말로 끝맺는다. 신비한 통찰력이 있는 경험 많은 라마승이나 영적인 스승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그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어지는 가르침을 계속 읽어 줄 필요가 있다.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잘못 판단하여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세 번째 중간계’인 저승 중간계로 접어든다. 이 세 번째 중간계에서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난다. 이때 저승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을 읽어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가르침은 대단히 큰 힘과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때 가족들이 슬퍼하며 우는 모습을 볼 것이다. 식구들의 밥상에 자기 자리가 더 이상 마련되지 않고, 옷이 벗겨져 있으며, 자기가 쓰던 침상이 옮겨져 있는 것도 볼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를 보지 못한다. 그는 가족들이 애통해 하며 자기를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가족들은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절망감에 빠져 떠날 수밖에 없다. 이때 그의 의식 속에 여러 가지 소리와 여러 색깔의 빛과 광선이 나타난다. 그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당황하게 된다. 이때 저승 중간계에 관한 이 가르침을 읽어 주어야 한다. 그의 이름을 부른 다음, 분명하고 똑똑한 목소리로 이렇게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 차려 똑바로 들으시오. 중간계는 여섯 종류가 있소. 이승 중간계, 꿈 중간계, 명상 중간계,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그리고 탄생 중간계가 있소.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라는 3가지 중간계를 경험하게 된다오. 그대는 어제까지 근원적인 투명한 빛이 비치는 죽음 중간계를 지나왔소. 그러나 그대는 그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 여기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라오. 앞으로 저승 중간계와 탄생 중간계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지금부터 그 두 중간계에 대해 내가 일러주는 말을 명심하여 실패가 없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있는 중이오. 이런 일은 그대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일이오. 그러니 이승의 삶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머물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럴 수 없다오. 그대가 끝까지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윤회 세계를 방황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오. 욕망을 버리시오! 이승의 삶에 매달리지 마시오! 3가지 보물만 생각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저승 중간계에서 어떤 무서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음에 일러주는 말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그 뜻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앞으로 전진하시오.


오, 이제 저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무엇이 나타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알아차리리라.

모든 것이 중간계의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리라.

지금까지의 진행이 일단 정지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내가 만든 환상 속에 나타나는,

자애롭고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 부분은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에서 따온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제 꿈 속의 세계 같은 중간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그의 감각은 대단히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어떤 모습이 나타나면 대단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잠재되어 있던 본능적인 직관력이 빠른 속도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두려운 체험이든지 즐거운 체험이든지 그 느끼는 정도가 대단히 강렬하다.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잠재적인 본능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중간계 상태에 들어가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상태가 현실로 나타난다. 그때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잠재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감각의 문을 닫고, 점점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두려운 현상을 만들어 내고, 두려운 현상이 또 다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상황의 악순환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두려운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기도를 뜻을 생각하면서 큰 소리로 드리도록 하시오. 어떤 무서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그 모두가 그대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의 육체와 마음이 분리될 때, 봄에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눈부신 환상이 나타날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시오. 마음을 진정하시오. 그대의 몸은 피와 살로 된 물질적인 육체가 아니라 마음의 몸이라오. 그러므로 그 무엇도 그대를 해칠 수 없다오. 눈부신 빛이 비치고, 천둥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릴지라도 그대는 조금도 다치지 않는다오. 그대는 죽을 수가 없소. 두려운 소리가 들리고 무서운 환상이 나타날 때, 그 모든 것이 그대의 바닥 의식이 만들어 낸 것임을 꼭 기억하도록 하시오. 그대는 지금 중간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나타나는 현상을 그대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소. 그대가 생전에 수행을 많이 하고, 아무리 높은 경지의 체험을 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오.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그대 자신의 바닥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빛과 소리에 놀라 떨 수밖에 없다오. 들리는 소리와 나타나는 빛과 환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윤회 세계를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오.


[첫째 날]


본문에는 ‘첫째 날’이라는 표시가 없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날에 표시는 ‘둘째 날’만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번역에서는 명확성을 도모하고, 실제 사용하는데 편리하도록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날을 표시했다. 다음에 나오는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4일 반 동안 무의식 상태에 있다가 깨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4일 반은 시간으로는 108시간인데, 정확한 시간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죽는 날부터 49일 째 되는 날까지 꾸준히 읽어 주면 된다.


하루 하루 날이 진행됨에 따라, 만다라 즉 붓다의 5가지 지혜로 이루어진 신성한 우주와 차례로 만나게 된다. 다섯 계열의 대표 붓다들로 인격화된 붓다의 5가지 지혜가 언급되고(도표 10.을 보라), 그와 결합하도록 인도한다. 일상적인 우주는 5가지 독으로 말미암아 고통으로 뒤덮여 있다. 5가지 지혜는 5가지 독을 변형시켜, 고통으로 뒤덮인 우주를 사랑과 자비와 기쁨으로 충만한 붓다의 땅으로 바꾼다.


본문은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六道: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인간계, 아수라계, 천상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참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지 말고,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가 용이한 좋은 환경에 태어나도록 애쓰라는 뜻이다. 본문에는 여러 가지 색깔과 빛에 대한 언급이 있고,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묘사도 다양하게 나온다. 이런 것을 있는 그대로, 세세하게 적용하려고 하다가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불교적인 상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편안하게 느끼는 상징으로 대체해서 이 책을 사용하면 된다. 본문에 삽입되어 있는 칼라 그림 5, 6, 7, 8은 다섯 계열의 붓다와 보살들을 그린 것이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는 4일 반 동안 의식이 없이 몽롱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 막 깨어났소. 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할 것이오. 그대는 지금 중간계에 들어 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오. 이제부터 그대 앞에 온갖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오. 여러 가지 빛과 신들이 나타날 것이오.


공간[空] 전체가 청색 빛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고, 만물의 씨앗을 품고 있는 바이로차나(大日如來) 주님께서 중앙에 있는 순수한 땅(中央淨土) 가나뷰하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희고, 살이 8개 달린 바퀴를 들고, 사자좌(獅子座)에 앉아 배우자 아카샤 다트비쉬바리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바이로차나 부부의 심장에서 비치는 눈부신 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 빛은 궁극적인 지혜(法界體性智)의 빛이며, 집적된 순수한 의식[識]의 빛이라오. 그대는 청색으로 빛나는 밝고 투명한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그 빛과 함께 신들의 영역(天上界)에서 비치는 희미한 백색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부정적인 까르마의 힘 때문에, 밝게 빛나는 근원적인 지혜의 청색 빛을 두려워하며 도망가려 할 것이오.


그러나 신들의 영역에서 비치는 희미한 백색 빛에는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싶어질 것이오. 하지만 푸른 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궁극적인 지혜의 빛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오. 그 빛은 초월자 주님의 궁극적인 지혜의 빛이오. 그러니 신앙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에 접근하시오. “이것은 자비로운 주님 바이로차나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간구하도록 하시오. 투명하게 빛나는 청색 빛은,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그대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바이로차나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 빛은 바이로차나 주님의 자비의 빛이라오.


  신들의 영역에서 비치는 희미한 백색 빛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 빛에 애착을 갖지 말고, 갈망도 하지 마시오. 거기에 매달리면 신들의 영역을 떠돌게 되고, 결국은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을 오락가락 하는 신세가 될 것이오. 신들의 영역에서 비치는 희미한 백색 빛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오. 그러니 그 빛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대신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청색 빛에만 매달리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바이로차나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제가 어두운 무지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이로차나 붓다(大日如來)의 인도를 받아,

궁극적인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다트비쉬바리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바이로차나 주님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만물의 씨앗으로 가득 찬, 중앙에 있는 순수한 땅(中央淨土) 가나뷰하에 들어가 붓다의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할 것이오.


본문의 내용은 불교의 우주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동, 서, 남, 북 사방과 중앙에 깨달음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다섯 붓다의 땅이 있다는 우주론을 전개한다. 중간에 삽입된 기도는 <중간계의 곤경에서 도움을 청하는 기도>에서 따온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바이로차나와 그의 배우자 대신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해도 좋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지혜를 중심점으로 삼고 그와 결합한다면, 그 역시 의식을 변화시켜 어리석은 망상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본문은 천상 세계의 유혹을 뿌리치고, 찬란하게 빛나는 붓다의 땅을 갈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날]


위와 같은 가르침을 읽어 주어도 분노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애물 때문에, 바이로차나(大日如來)의 청색 빛을 두려워하고 도망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대가 일러주는 대로 기도를 드리고 나서도 계속 방황한다. 그러면 둘째 날, 그를 돕기 위해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가 수행원 보살들과 함께 나타난다. 이 즈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에 끌려, 이리 저리 헤매면서 지옥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둘째 날이오. 이제 순수한 물[水]의 원소가 백색 빛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때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인 아크소비야(不動佛) 주님께서 동쪽에 있는 청색의 순수한 땅(東方淨土) 아비라티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푸르고, 5개의 뾰족한 날이 달린 바즈라(金剛杵)를 들고, 코끼리 왕좌(象座)에 앉아 배우자 붓다로카나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남성 보살인 크쉬티가르바(地藏菩薩)와 마이트레야(彌勒菩薩), 그리고 여성 보살인 라스야와 푸쉬파가 아크소비야와 붓다로카나를 수행함으로써 모두 여섯 명의 붓다와 보살들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바즈라사트바 부부의 심장에서 비치는 눈부신 백색 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 빛은 거울 같이 비추는 지혜(大圓鏡智)의 빛이며, 집적된 순수한 형상[色]의 빛이라오. 그대는 백색으로 빛나는 밝고 투명한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그 빛과 함께 지옥계에서 비치는 탁한 연기 같은 침침한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밝게 빛나는 백색 빛을 두려워하며 도망가려 할 것이오. 그러나 지옥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빛에는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싶어질 것이오.

 

하지만 흰 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거울 같은 지혜의 빛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오. 신앙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을 맞이하시오. “이것은 자비로운 주님 바즈라사트바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고 기도하시오. 그 빛을 사랑하도록 하시오. 투명하게 빛나는 백색 빛은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그대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바즈라사트바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 빛은 그대를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는 바즈라사트바 주님의 자비의 빛이라오. 그러니 그 빛을 믿으시오.


지옥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빛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 빛은 그대가 쌓은 산더미 같은 분노에서 발산되는 것이라오. 그 빛을 따라가면 파멸에 이르오. 거기에 애착을 갖고 매달리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소. 그러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괴로움을 당할 것이오. 지옥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빛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오. 그러니 그 빛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모든 분노를 버리시오. 분노의 빛에 애착을 갖지도 말고 갈망하지도 마시오. 대신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백색 빛에만 매달리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바즈라사트바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제가 강한 분노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즈라사트바 붓다(持金剛佛)의 인도를 받아,

거울 같은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붓다로카나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바즈라사트바 주님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동쪽에 있는 순수한 땅(東方淨土) 아비라티에 들어가 붓다의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할 것이오.


[셋째 날]


위와 같은 가르침을 읽어 주어도 아집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애물 때문에 바즈라사트바의 백색 빛을 두려워하고 도망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대가 일러주는 대로 기도를 드리고 나서도 계속 방황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셋째 날, 그를 돕기 위해 라트나삼바바(寶生佛)가 수행원 보살들과 함께 나타난다. 이 즈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간계에서 비치는 빛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셋째 날이오. 이제 순수한 흙[地]의 원소가 황색 빛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때 라트나삼바바(寶生佛) 주님께서 남쪽에 있는 황색의 순수한 땅(南方淨土) 쉬리마트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노랗고, 소원을 이루어 주는 보석을 들고, 준수한 말 왕좌(龍馬座)에 앉아 배우자 마마키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남성 보살인 아카샤가르바(空藏菩薩)와 사만타바드라(普賢菩薩), 그리고 여성 보살인 말라와 두파가 라트나삼바바와 마마키를 수행함으로써 모두 여섯 명의 붓다와 보살들이 무지개 빛 후광을 등에 업고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라트나삼바바 부부의 심장에서 비치는 눈부신 황색 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 빛은 평등하게 보는 지혜(平等性智)의 빛이며, 집적된 순수한 느낌[受]의 빛이라오. 그대는 황색으로 빛나는 밝고 투명한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그 빛과 함께 인간계에서 비치는 희미한 청색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아집의 힘 때문에, 밝게 빛나는 황색 빛을 두려워하며 도망가려 할 것이오. 그러나 인간계에서 비치는 희미한 청색 빛에는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싶어질 것이오. 하지만 황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평등하게 보는 지혜의 빛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오. 신앙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을 맞이하시오.

 

그 빛에 마음을 의지하시오. 그 빛을 투명하게 체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가 만약 그 빛이 그대 자신의 각성된 의식에서 비치는 빛임을 인식한다면, 특별히 기도하거나 신앙심을 가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빛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붓다가 되는 것이오. 그 빛이 그대의 각성된 의식에서 비치는 빛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거든 “이것은 자비로운 주님 라트나삼바바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고 기도하시오. 그 빛을 사랑하도록 하시오. 자비로운 주님 라트나삼바바께서 그대를 인도하기 위해 비쳐 주는 빛을 믿고 의지하시오.


인간계에서 비치는 희미한 청색 빛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 빛은 그대가 쌓은 지독한 아집에서 발산되는 것이라오. 그 빛을 따라가면 파멸에 이르오. 거기에 애착을 갖고 매달리면 인간계에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소. 그러면 생로병사가 반복되는 윤회의 수레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할 것이오. 인간계에서 비치는 희미한 청색 빛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오. 그러니 그 빛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아집과 자만심을 버리시오. 본능적인 에고 의식을 버리시오. 아집과 자만심의 빛에 애착을 갖지도 말고 갈망하지도 마시오. 대신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황색 빛에만 매달리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라트나삼바바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제가 강한 아집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라트나삼바바 붓다(寶生佛)의 인도를 받아,

평등하게 보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마마키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라트나삼바바 주님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남방에 있는 순수한 땅(南方淨土) 쉬리마트에 들어가 붓다의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할 것이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평등하게 보는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 된다면, 생전에 수행 능력[根氣]이 아무리 미약했던 사람일지라도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넷째 날]


그러나 아무리 일러 주어도 악한 행위를 일삼은 사람이나, 맹세와 서원을 저버린 사람은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자신의 의식이 빚어내는 환상임을 인식하는 데 실패한다. 그들은 갈망과 죄로 인해 심하게 동요한다. 중간계에서 들리는 소리와 나타나는 빛을 무서워하며, 거기에서 도망가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넷째 날, 그를 돕기 위해 아미타바(阿彌陀佛)가 수행원 보살들과 함께 나타난다. 이 즈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탐욕과 갈망이 만들어 내는 아귀계(餓鬼界)에서 비치는 침침한 빛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넷째 날이오. 이제 순수한 불[火]의 원소가 붉은 색 빛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때 아미타바(阿彌陀佛) 주님께서 서쪽에 있는 붉은 색 순수한 땅(西方淨土) 수카바티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붉고, 연꽃을 들고, 공작 왕좌(孔雀座)에 앉아 배우자 판다라바시니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남성 보살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와 만주스리(文殊菩薩), 그리고 여성 보살인 기타와 알로카가 아미타바를 수행함으로써 모두 여섯 명의 붓다와 보살들이 무지개 빛 후광을 등에 업고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아미타바 부부의 심장에서 비치는 눈부신 붉은 색 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 빛은 낱낱이 분석하는 지혜(妙觀察智)의 빛이며, 집적된 순수한 지각[想]의 빛이라오. 그대는 붉은 색으로 빛나는 밝고 투명한 그 빛을 똑바로 바라 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그러나 밝고 투명한, 분석하는 지혜의 빛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지혜의 빛과 함께 아귀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황색 빛이 나타날 것이오. 이 침침한 황색 빛에 빠지지 마시오. 탐욕과 갈망을 버려야 하오. 탐욕과 갈망이 지배하면, 그대는 밝게 빛나는 붉은 색 지혜의 빛을 두렵게 느끼고 도망가려 할 것이오. 반면에 아귀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황색 빛에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자 할 것이오.


그러나 눈부시게 빛나는 지혜의 빛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 빛을 피하지 마시오. 그 빛에 마음을 의지하시오. 그 빛을 투명하게 체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오. 신앙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을 맞이하시오. 그대가 만약 그 빛이 그대 자신의 각성된 의식에서 비치는 빛임을 인식한다면, 특별히 기도하거나 신앙심을 가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빛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붓다가 되는 것이오. 그 빛이 그대의 각성된 의식에서 비치는 빛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거든 “이것은 자비로운 주님 아미타바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고 기도하시오. 자비로운 주님 아미타바께서 그대를 인도하기 위해 비쳐 주는 빛을 믿고 의지하시오. 그 빛을 피하지 마시오. 그대가 피하지 않는데 그 빛이 그대를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아귀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황색 빛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 빛은 그대가 쌓은 집착의 힘에서 발산되는 것이라오. 거기에 애착을 갖고 매달리면 아귀계에 떨어져 참을 수 없는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괴로움을 당할 것이오. 아귀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황색 빛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오. 그러니 그 빛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집착을 버리시오. 본능적인 탐욕을 버리시오. 집착과 탐욕의 빛에 애착을 갖지도 말고 갈망하지도 마시오. 대신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붉은 색 빛에만 매달리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아미타바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제가 지나친 탐욕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미타바 붓다(阿彌陀佛)의 인도를 받아,

분석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판다라바시니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아미타바 주님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서쪽에 있는 순수한 땅(西方淨土) 수카바티에 들어가 붓다의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할 것이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이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면 분명히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다.


[다섯째 날]


그러나 아무리 일러주어도,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는 자비의 빛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부정적인 진화력과 질투심 때문에 중간계에서 나타나는 지혜의 빛과 소리를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섯째 날, 그를 인도하기 위해 아모가싯디(不空成就佛)가 수행원 보살들과 함께 나타난다. 이 즈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수라계(阿修羅界)에서 비치는 습관적인 질투의 빛을 따라 가려고 할 것이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을 다섯째 날이오. 이제 순수한 바람[風]의 원소가 녹색 빛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때 아모가싯디(不空成就佛) 주님께서 북쪽에 있는 녹색의 순수한 땅(北方淨土) 푸라쿠타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녹색이며, 십자 바즈라(金剛杵)를 들고, 독수리좌에 앉아 배우자 사마야타라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남성 보살인 바즈라파니와 사르바니바라나비스캄빈, 그리고 여성 보살인 간다와 나르탸가 아모가싯디를 수행함으로써 모두 여섯 명의 붓다와 보살들이 무지개 빛 후광을 등에 업고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아모가싯디 부부의 심장에서 비치는 눈부신 녹색 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 빛은 모든 것을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의 빛이며, 집적된 순수한 의지[行]의 빛이라오. 그대는 녹색으로 빛나는 밝고 투명한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그 빛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 빛은 그대의 각성된 의식에서 비치는 것이라오. 그 편안한 마음으로 그 빛과 결합하시오. 모든 것을 성취하는 지혜의 녹색 빛과 함께 아수라계에서 비치는, 질투심이 만들어 내는 희미한 붉은 색 빛이 나타날 것이오. 이때 그대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하오. 그대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힘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으면, 밝게 빛나는 녹색 빛을 두려워하며 도망가려 할 것이오.

 

그러나 아수라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붉은 빛에는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싶어질 것이오. 하지만 녹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지혜의 빛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오. 그 빛을 투명하게 체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오. 신앙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을 맞이하시오. “이것은 자비로운 주님 아모가싯디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고 기도하시오. 그 빛을 사랑하도록 하시오. 투명하게 빛나는 녹색 빛은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그대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아모가싯디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 빛을 피해 도망가지 말고, 믿고 의지하시오. 그대가 피하지 않는데 그 빛이 그대를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아수라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붉은 색 빛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 빛은 그대가 쌓은 시기심과 질투심에서 발산되는 것이라오. 그 빛을 따라가면 파멸에 이르오. 거기에 애착을 갖고 매달리면 아수라계에 떨어져 끝없는 싸움 속에서 괴로움을 당할 것이오. 아수라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붉은 색 빛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오. 그러니 그 빛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시오. 시기와 질투의 빛을 갈망하지 마시오. 대신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녹색 빛에만 매달리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아모가싯디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제가 심한 질투심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모가싯디 붓다(不空成就佛)의 인도를 받아,

성취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사마야타라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아모가싯디 주님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북쪽에 있는 순수한 땅(北方淨土) 프라쿠타에 들어가 붓다의 깨달음 몸(報身)을 성취할 것이오.


생전에 수행 능력[根氣]이 미약했던 사람일지라도 그대가 읽어 주는 가르침을 통해, 밝게 빛나는 지혜의 빛을 자신의 의식에서 발산되는 빛으로 인식하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5가지 지혜의 빛 중에 어느 하나와는 틀림없이 결합할 수 있으리라.


[여섯째 날]


그러나 아무리 일러주어도, 본능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앞에서 얘기한 지혜의 빛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명확한 안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에 끌려 다닌다.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는 자비의 빛을 두려워하며 낮은 차원으로 떨어져 들어간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섯째 날, 그를 돕기 위해 다섯 붓다들이 수행원 보살들과 함께 동시에 나타난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어제까지는 다섯 게열의 붓다와 보살들이 하루에 한 계열씩 차례로 나타났소. 나는 그들과 결합하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었소.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쌓은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며 피했소. 그래서 지금 여기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오. 만약 다섯 계열의 붓다와 보살들에게서 비치는 지혜의 빛 중에서 그 어느 하나라도 그대 자신의 의식에서 비치는 빛으로 인식했다면, 그대가 인식한 붓다의 무지개 빛 찬란한 몸과 하나가 되어 붓다의 깨달은 몸을 성취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다섯 계열 붓다들의 지헤의 빛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 여기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라오. 이제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시오. 다섯 계열의 붓다와 보살들이 모두 나타날 것이오. 그대를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4가지 지혜의 빛이 각 방향에서 나타나 일시에 그대를 비출 것이오. 그것을 똑바로 인식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순수한 4가지 원소[地, 水, 火, 風]에서 발산되는 4가지 색깔의 빛이 그대를 비칠 것이오. 그와 동시에 중앙에서는 바이로차나 붓다(大日如來)가 그의 배우자와 그 계열의 보살들과 함께, 만물의 씨앗으로 가득 찬 중앙에 있는 순수한 땅(中央淨土) 가나뷰하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동쪽에서는 바즈라사트바 붓다(持金剛佛)가 그의 배우자와 그 계열의 보살들과 함께, 기쁨으로 충만한 동쪽에 있는 순수한 땅(東方淨土) 아비라티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남쪽에서는 라트나삼바바 붓다(寶生佛)가 그의 배우자와 그 계열의 보살들과 함께, 남쪽에 있는 순수한 땅(南方淨土)에 쉬리마트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는 아미타바 붓다(阿彌陀佛)가 그의 배우자와 그 계열을 보살들과 함께, 연꽃으로 뒤덮인 서쪽에 있는 순수한 땅(西方淨土) 수카바티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는 아모가싯디 붓다(不空成就佛)가 그의 배우자와 그 계열의 보살들과 함께, 북쪽에 있는 순수한 땅(北方淨土) 푸라쿠타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이들은 모두 무지개 빛 후광을 등에 업고 나타날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들 다섯 계열의 붓다와 보살들 주위에 여러 수문장 신들과 붓다와 보살들이 함께 나타날 것이오. 무서운 모습의 수문장 신인 비자야, 야만타카, 하야그리바, 아메르타쿤달리니, 그리고 그들의 짝 안쿠샤, 파샤, 스포타, 간타가 나타날 것이오. 천상계를 지배하는 붓다 인드라샤타크라투, 아수라계를 지배하는 붓다 베마치트라, 인간계를 지배하는 붓다 석가모니, 축생계를 지배하는 붓다 시마, 아귀계를 지배하는 붓다 즈발라무카, 그리고 지옥계를 지배하는 붓다 다르마라자가 나타날 것이오.

 

또 두루 두루 선을 베푸는, 모든 붓다들의 조상인 아버지 사만타바드라(普賢菩薩)와 어머니 사만타바드리도 나타날 것이오. 이렇게 붓다의 깨달은 몸을 구성하고 있는 42명의 보살과 신들이 다섯 원형 붓다들과 함께 나타날 것이오. 이들은 모두 그대의 심장 센터에서 나온다오. 그대는 그들이 그대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인식해야 하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붓다의 순수한 땅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오. 다섯 붓다의 땅은 모두 그대의 심장 안에 있소. 그것이 그대의 심장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오. 그대 앞에 나타나는 순수한 땅과 붓다와 보살들의 환상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이들은 모두 그대의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42명의 보살과 신들은 덩치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소. 그들은 모두 균형 잡힌 몸매를 하고 있소. 그들은 각각 독특한 장식을 하고 있으며 색깔도 다르다오. 앉은 자리와 자세와 몸짓도 다양하고, 각기 자기가 속한 붓다 계열을 상징하는 상징물[만트라]을 지니고 있소. 남성 보살들은 신적인 아버지 역할을 하고 여성 보살들은 신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며, 전체가 하나의 완전한 만다라를 이루고 있소. 이들이 모두 그대의 수호불이라오. 이들을 알아보아야 하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다섯 원형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의 심장에서 발산되는 지극히 미묘하고 투명한 4가지 지혜의 빛이 하나로 결합하여, 한 줄기 태양 광선처럼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바이로차나(大日如來)의 심장 센터에서 뻗어 나오는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 광선이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이 빛은 궁극적인 지혜(法界體性智)의 빛이오. 이 빛줄기 속에 있는 반짝이는 5개의 투명한 백색 구슬이, 반짝이는 유리 거울처럼 그대를 비추어 줄 것이오. 이 구슬들은 각기 그 보다 더 큰, 원반 모양의 투명한 다른 구슬들에 감싸인 채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상태에서 그대를 비추어 주고 있소. 따라서 5개의 작은 구슬과 큰 구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빛거울은 중심도 없고 테두리도 없소.


여기서는 궁극적인 지혜(法界體性智)의 빛이 백색으로 나온다. 하지만 ‘첫째 날’ 가르침에는 청색으로 되어 있다. 뒤에 나올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인 아크소비야(不動佛)의 거울같이 비추는 지혜(大圓鏡智)의 빛은 백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었다. 두 지혜의 빛 색깔이 이렇게 바뀌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원래는 무지와 망상을 제거하는 궁극적인 지혜는 때에 따라 분노와 미움을 변형시키고, 분노와 미움을 제거하는 거울 같은 지혜는 때에 따라 무지와 망상을 변형시킨다. 따라서 이 두 지혜의 속성이나 역할이 상호 교체되어 언급되는 것이다.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의 심장 센터에서 뻗어 나오는 눈부시게 빛나는 청색 광선이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이 빛은 거울같이 비추는 지혜(大圓鏡智)의 빛이오. 이 빛줄기 속에 있는 투명한 푸른 색 구슬들이, 반짝이는 터키석 접시처럼 그대를 비추어 줄 것이오. 이 구슬들은 각기 그 보다 더 큰, 원반 모양의 투명한 다른 구슬들에 감싸인 채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상태에서 그대를 비추어 주고 있소.


   라트나삼바바(寶生佛)의 심장 센터에서 뻗어 나오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색 광선이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이 빛은 평등하게 보는 지혜(平等性智)의 빛이오. 이 빛줄기 속에 있는 투명한 노란 색 구슬들이, 반짝이는 황금 접시처럼 그대를 비추어 줄 것이오. 이 구슬들은 각기 그 보다 더 큰, 원반 모양의 투명한 다른 구슬들에 감싸인 채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상태에서 그대를 비추어 주고 있소.


   아미타바(阿彌陀佛)의 심장 센터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적색 광선이 뻗어나올 것이오. 이 빛은 분석하는 지혜(妙觀察智)의 빛이오. 이 빛줄기 속에 있는 투명한 빨간 색 구슬들이, 반짝이는 주홍빛 산호 접시처럼, 깊은 지혜의 빛을 그대를 비추어 줄 것이오. 이 구슬들은 각기 그 보다 더 큰, 원반 모양의 투명한 다른 구슬들에 감싸인 채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상태에서 그대를 비추어 주고 있소. 따라서 5개의 작은 구슬과 큰 구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빛거울은 중심도 없고 테두리도 없소. 이 빛 역시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 모든 빛이 다 그대의 의식에서 발산되는 것이라오. 결코 밖에서 비치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애착을 갖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무념무상 상태로, 편안하게 그 빛을 체험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모든 붓다와 보살들과 신들의 빛이 그대 안으로 녹아 들어와, 그대를 붓다로 변형시킬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아모가싯디(不空成就佛)의 녹색 빛이 비치지 않는 이유는, 그대의 이해력이 아직 모든 것을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같은 4가지 지혜의 결합된 빛줄기가 곧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가 임하는 통로라오. 이 빛줄기가 비칠 때, 그대는 생전에 스승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만약 그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그대가 보고 있는 환상들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만나듯이, 또는 오래 만나지 못하던 친구를 만나듯이 궁극적인 실재를 반갑게 맞을 수 있을거요.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그대가 보고 있는 환상을 그대가 창조한 것으로 분명히 인식할 것이오.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의 길에 굳건히 서서, 단절되지 않고 흐르는 사마디(三昧)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오. 그대의 의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적인 몸 속으로 녹아 들어가, 미혹의 세계로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 붓다의 깨달은 몸을 성취하게 될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4가지 지혜의 결합된 빛줄기와 함께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六道)에서 비치는,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불순한 빛 또한 그대를 비칠 것이오. 천상계에서 비치는 희미한 백색 빛, 아수라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붉은 빛, 인간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푸른 빛, 축생계에서 비치는 어두운 녹색 빛, 아귀계에서 비치는 어두운 황색 빛, 그리고 지옥계에서 비치는 탁한 연기 같은 빛이 그대를 비칠 것이오. 이 6가지 빛은 순수한 4가지 지혜의 빛과 나란히 비칠 것이오. 그대는 이 6가지 빛에 애착을 갖지도 말고 끌려 들어가지도 마시오.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무심하게 대하시오. 지혜의 빛을 두려워하면서, 불순한 6가지 빛에 애착을 가지고 끌려 들어가면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 그 어디엔가에 태어난다오. 그러면 고통스러운 윤회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괴로운 삶을 반복하게 될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가 만약 생전에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순수한 지혜의 빛과 여러 신들을 두려워할 것이오. 두려운 나머지 윤회 세계에서 비치는 불순한 빛을 따라가려 할 것이오. 그러나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되오. 눈부시게 빛나는 순수한 지혜의 빛을 믿으시오. 지혜의 빛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하시오. “이것은 자비로운 다섯 주님들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비추어 주는 자비의 빛이다. 그러니 이 빛에 나를 맡기겠다.”라고 말이오.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에서 비치는,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불순한 빛에는 절대로 매달려서는 안되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다섯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에게만 마음을 집중하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제가 5가지 심한 독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다섯 계열의 승리자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5가지 지혜가 어우러진 투명한 빛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다섯 붓다의 배우자 붓다들이 수호자가 되어,

윤회하는 여섯 존재 차원(六道輪廻)에서 저를 건져 주소서.

제가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여,

지극히 순수한 다섯 붓다의 땅에 이르게 하옵소서.


영성이 잘 계발되어 있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하면서, 자기 앞에 나타나는 모든 환상을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 인식하고 붓다와 하나로 결합한다. 보통 사람은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강한 신앙심을 가짐으로써 자유에 이른다. 영성이 계발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열심히 기도하면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에 태어나는 자궁 입구를 막을 수 있다. 그러면 4가지 지혜의 결합된 빛을 인식하는 때가 오고, 결국은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의 통로가 열려 붓다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자세하고 분명한 안내를 받는다면, 거의 모든 중생이 궁극적인 실재를 인식하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


[일곱째 날]


그러나 진리란 털끝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극도로 야만적인 환경에 거하는 사람, 그리고 종교적인 맹세와 서원을 저버린 몇몇 사람은 자신이 쌓은 악한 진화의 추진력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갈 것이다. 아무리 일러주어도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낮은 차원에서 방황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곱째 날, 그를 인도하기 위해 내면 세계를 깨달은 영웅적인 스승이 다끼니들의 낙원에서 나와 그에게 나타난다. 이즈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축생계에서 비치는, 무지와 망상이 만들어 낸 빛을 따라 가려고 할 것이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일곱째 날이오. 이제 다섯 무지개 색깔의 빛이 그대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비추기 위해 나타날 것이오. 이때 그대를 인도하기 위해 내면 세계를 깨달은 영웅적인 스승들이 다끼니들의 낙원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무지개 빛에 휩싸인 만다라의 중심에서,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영웅적인 스승 파드마나르테쉬바라(蓮花神王)가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오색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양손에 금강도(金剛刀)와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며 배우자 홍색 다끼니(天女)와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자세로 나타날 것이오.


‘영웅적인 스승’으로 번역한 산스크리트어 ‘비드야다라’Vidyadhara는 고대 인도에 존재한 84명의 위대한 성자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그들은 인간의 영역을 통과하여, 히말라야의 비밀스러운 계곡에 있는 ‘다끼니들의 낙원’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무서운 모습의 신들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불로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다. 왼 손에는 악마의 피가 가득 담긴 해골을 들고 있고, 오른 손에는 손잡이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금강도(金剛刀)를 들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금강도는 예리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상징한다. 또 뼈와 살로 된 육체를 조각 조각 잘라 불로 불사의 몸으로 변형시킨다는 뜻도 있다. 예리하게 판단하는 지혜는, 본능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낱낱이 분석하여 모든 것이 ‘비어-있음’을 깨닫게 한다. 모든 것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불로 불사의 몸으로 영원한 자유를 누린다.


   무지개 빛에 휩싸인 만다라의 동쪽에서 보살의 수행 단계(十地)를 완성한 영웅적인 스승이 나타난다. 그의 몸은 희고, 배우자 백색 다끼니와 껴안은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다. 그는 양손에 금강도와 해골 바가지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며 춤을 추면서 나타난다.


   무지개 빛에 휩싸인 만다라의 남쪽에서 수명을 초월한 영웅적인 스승이 나타난다. 그의 몸은 노랗고, 배우자 황색 다끼니와 껴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양손에 금강도와 해골 바가지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며 춤을 추면서 나타난다.


   무지개 빛에 휩싸인 만다라의 서쪽에서 마하무드라(大印)를 성취한 영웅적인 스승이 나타난다. 그의 몸은 붉고, 배우자 홍색 다끼니와 껴안고 미소지으며 나타난다. 그는 양손에 금강도와 해골 바가지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며 춤을 추면서 나타난다.


   무지개 빛에 휩싸인 만다라의 북쪽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웅적인 스승이 나타난다. 그의 몸은 녹색이고, 배우자 녹색 다끼니와 껴안고 미소와 분노를 동시에 보이며 나타난다. 그는 양손에 금강도와 해골 바가지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며 춤을 추면서 나타난다.


   이들 영웅적인 스승들이 나타나는 만다라 밖에서는, 맹세와 서원을 지키는 자는 보호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벌주기 위해 무수한 다끼니 무리가 나타난다. 8군데 화장터를 지키는 다끼니들, 4계급을 수호하는 다끼니들, 3계(三界)를 지키는 다끼니들, 시방위(十方位)를 지키는 다끼니들, 순례자들의 24성소를 지키는 다끼니들이 함께 나타난다. 또한 수많은 남녀 영웅들과 진리의 용사와 수호자들도 함께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6개의 사람 뼈를 치렁치렁 매달고 북, 넙적 다리 뼈로 만든 나팔, 해골로 만든 북을 들고 나타난다. 이들은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깃발과 양산을 들고 있으며, 역시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리본을 달고 있다. 이들은 시체 타는 냄새 속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가지고 괴이한 음악을 연주한다. 그 소리는 온 우주를 가득 채울 만큼 크다. 그 소리에 바위가 흔들리고 땅이 요동한다. 그들은 이렇게 머리가 깨질 듯한 악기 소리를 내며, 현란하게 춤을 추면서 나타난다.


영웅적인 스승들과 다끼니들은 내면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무의식 차원에 들어간 자들이다. 이들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길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위험을 각오하고 용감하게 탐험을 떠난 자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하다. 인간의 뼈와 창자로 장식을 하고, 해골과 뼈와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악기를 들고 있으며, 시체를 태운 재를 얼굴과 몸에 바르고 있다. 이들은 묘지나 화장터를 지키는 존재로 종종 등장한다. 이들이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을 할 소름끼치는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죽음과 공포를 초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수행자나 중간계 여행자가 이 점을 이해하면, 이들 무시무시한 모습의 영웅적인 스승들과 다끼니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본질적으로 순수한 지혜의 눈부신 다섯 무지개 빛이, 색실을 꼰 듯이 한줄기로 결합하여 그대를 비칠 것이오. 눈부시게 빛나는 투명한 그 빛은 다섯 영웅적인 스승들의 심장에서 곧게 뻗어 나와 그대의 심장 센터를 비출 것이오. 그대는 너무 눈이 부시기 때문에 그 빛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느낄 것이오. 그 빛과 함께 축생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녹색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대는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혼란의 힘 때문에 눈부시게 빛나는 오색 지혜의 빛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할 것이오. 그러나 축생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녹색 빛에는 친근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싶어질 것이오. 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투명한 무지개 빛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오. 그 빛을 무서워하지 마시오. 그 빛이 지혜의 빛인 줄 알아야 되오.


   눈부신 오색 무지개 빛 가운데에서 진리의 소리가 마치 연달아 울리는 천둥 소리처럼 터져 나올 것이오. 하늘이 무너지듯 메아리치며 울리는 그 소리는, 무시무시한 만트라의 울림처럼 그대를 공포에 떨게 할 것이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시오. 도망가지 마시오. 떨지 마시오. 그 소리는 그대의 의식에서 나오는, 그대 자신이 만들어 내는 소리 인줄 알아야 하오.


   축생계에서 비치는 침침한 녹색 빛에 애착을 갖지도 말고 갈망하지도 마시오. 그 빛에 끌려 들어가면 무지와 망상이 지배하는 축생계에 떨어지오. 그러면 말 못하는 노예처럼,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우둔함에 속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할 것이오. 그러니 이 침침한 녹색 빛을 따라가지 마시오. 대신 눈부시게 빛나는 투명한 오색 무지개 빛만 의지하고 따르시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영웅적인 스승들에게만 마음을 집중하고, 이렇게 생각하시오.


   “영웅적인 스승들과 다끼니들과 진리의 용사들이 나를 정결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렇게 나타났구나! 세상에 나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또 있을까.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붓다들(三世諸佛)께서 나타나셨고, 다섯 계열의 원형 붓다들께서 나타나 빛을 비추어 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했구나. 아, 나같이 미련한 놈이 어디 또 있겠는가. 영웅적인 스승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소서. 자비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저를 다끼니 붓다들의 순수한 낙원으로 이끌어 주소서.”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오.


오, 영웅적인 스승들이여!

저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당신들의 큰 사랑으로 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소서.

제가 강한 본능에 이끌려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깨달음을 얻은 영웅적인 스승들의 인도를 받아,

희열이 넘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들의 수행의 짝[다끼니]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깊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는 무지개 빛 찬란한 영웅적인 스승들의 심장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오. 그리하여 다끼니 붓다들의 순수한 낙원에 태어날 것이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오.


영성(靈性)의 질이 어떠하든지, 이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다. 대단히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이 가르침을 통해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다.


이제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의 1부인, 죽음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투명한 빛과 저승 중간계에서 나타나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가르침을 마친다.


SAMAYA GYA GYA G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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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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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모습의 신들은 다섯 원형 붓다들-바이로차나, 아크소비야, 라트나삼바바, 아미타바, 아모가싯디-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모습의 신인 헤루까Heruka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헤루까는 헤르쿨레스Hercules와 같은 계열에 속한 신으로써, 산스크리트어로 공격적인 힘센 영웅을 가리킨다. 원형 붓다들은 중간계 존재의 바닥 의식에 쌓여 있는 무지를 공격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런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앞에서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붓다들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붓다의 땅 즉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좌충우돌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바닥 의식의 충동에 몰려 더욱 탐욕스럽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난다.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충격을 주어 각성시키기 위함이다.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 붓다들은 여러 가지 지혜의 빛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3개의 얼굴, 6개의 팔, 4개의 다리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모습의 무서운 신들에 대해 익숙지 않다면, 또는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몸담고 있다면 자기가 속한 종교 전통에 나오는 유사한 신이나 천사로 대체해도 좋다. 무서운 모습의 신이나 천사에 대한 전승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헤루까 대신 구약성서에 나오는 케루빔과 세라핌의 모습을 상상해도 괜찮을 것이다. (케루빔과 스라핌은 한글판 개역성서에 ‘그룹’과 ‘스랍’으로 표기된 천사들의 복수형이다. 케루빔과 세라핌은 에덴 동산과 여호와의 성소(聖所)를 지키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과 적절히 상응하지 않는다. 이들 보다는 오히려 에스겔 1장에 나오는 짐승의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사람의 모습을 갖춘 네 생물이나,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각기 다른 색 말을 탄 네 천사 또는 15장 이하에 나오는 재난을 가지고 오는 일곱 천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어울릴듯 싶다. 譯者主)


[여덟째 날]


이제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이다. 앞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은 7단계에 걸쳐 나타났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다. 먼저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의 빛이 나타나고, 그것도 인식하지 못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투명한 빛이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악한 업장]이 너무 강해서, 수북히 쌓인 장애물 속에서 본능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무지와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자세히 알려 주어도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과 영웅적인 스승과 수호하는 다끼니들이 나타난 다음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피를 마시는 신]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 58명의 헤루까 무리는 이전에 나타났던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다만 무서운 모습으로 형상만 바꾸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이 나타나는 시기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시기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는 자제력을 잃고 심한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빛에 대한 인식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자유의 경지에 쉽게 이를 수 있다.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환상이 나타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흩어질 여유가 없고,  집중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올바른 안내를 받지 못한다면, 그가 산더미처럼 엄청난 지식을 쌓았다 할지라도 그 지식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중간계 길을 안내하는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생전에 수도원장을 지낸 사람이거나 아무리 박식한 종교학자일지라도,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고 윤회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다. 이들이 그러할진대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두려움과 공포에 쫓겨 달아나다가, 결국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뒤범벅 된 비참한 차원에 떨어지고 만다.


탄트라 요가를 수행한 사람은, 수행이 아주 미미했다 할지라도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을 만나자 마자 즉시 자신의 수호불인줄 알아본다. 그런 사람들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을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으며, 그들을 신뢰하고 하나로 결합하여 붓다가 될 것이다. 생전에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시각화하는 수행을 했거나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예배했던 사람, 아니면 적어도 그런 신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나 불상을 보았던 사람 역시 그들을 알아보고 자유의 경지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생전에 탄트라 수행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탄트라의 신들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중간계에서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날 때 그들의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무리 유명한 수도원장이거나 박식한 종교학자라 하더라도 탄트라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아무런 징조도 나타내지 못한다. 무지개 빛 후광이 나타나지도 않고, 시체를 화장해도 사리 한 알 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면, 자기를 해치려는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대해 적개심을 보이고, 그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유명한 수도원장이나 박식한 종교학자가, 죽으면서 무지개 빛 후광이나 사리와 같은 징조를 남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탄트라의 내적인 수행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징조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탄트라의 견해를 오해하지 않고 신뢰한 사람은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는 중간계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다. 깊은 차원의 탄트라를 수행하기에는 근기(根氣)가 부족하고, 수행이 피상적이고 조잡하며, 행동 또한 깔끔하게 정화되지 않아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던 사람일지라도 탄트라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사람은 죽으면서 무지개 빛 후광이나 사리와 비슷한 징조를 남길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이 탄트라 가르침의 힘 때문이다.


수행의 경지가 신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창조 단계와 그 신들과 결합하는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이나, 또는 핵심 만트라를 반복하는 수행을 한 사람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이 중간계까지 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숨이 멎자 마자 영웅적인 스승들과 수호자 다끼니들과 수행원 신들의 이끌림을 받아 다끼니 붓다들의 순수한 낙원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뛰어난 수행자들의 죽음에는 맑은 하늘, 무지개,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 공간을 가득 채우는 향기, 천상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눈부신 빛, 그리고 화장 뒤에 남는 사리 등이 징조로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탄트라의 가르침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만 있어도 영적으로 특별한 정화(淨化)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티벳에서는 요기와 요기니들의 시체를 화장한 다음에, 잿더미 속에서 진주 비슷한 사리를 발견된 예가 많다. 때로는 불상이나 보살상 또는 수호불상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수도원장이나 종교학자, 또는 맹세와 서원을 깬 탄트라 수행자나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위대한 완성’[마하무드라]과 같은 고도의 수행을 한 사람은 죽음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함으로 진리의 몸(法身)을 성취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읽어 줄 필요가 없다.
 

죽음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진리의 몸(法身)을 성취한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깨달은 몸(報身)을 성취한다. 탄생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을 인식하면 나투는 몸(化身)을 성취하여, 탄트라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바람직한 환경에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환생하는 사람은 전생에 쌓은 긍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을 계속 키워 나가는 삶을 산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중생들을 돕기 위해 언제 어떤 모습으로든 환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는,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은 무지와 혼란과 본능적인 습관에 이끌리는 고통스러운 환경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태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뜻이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명상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읽어 주는 내용을 이해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비밀의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며, 무지를 일순간에 제거하는 가르침이며,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즉각 이르게 하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절대 비참한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는 영혼에게 이 책과 함께 <육체의 자연스러운 해탈>을 읽어 주도록 하라. 이 두 가르침을 황금 만다라에 청옥을 박아 넣는 것처럼 서로 결합시키도록 하라.


<육체의 자연스러운 해탈>은 원래 문헌인 <명상을 통한 자유> 21쪽에 실려 있다. 내용은 <명상을 통한 자유> 시스템에 나오는 100명의 붓다와 보살들과 신들에 관련된 만트라로 되어 있다. 이 만트라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티벳 사람들은  이 만트라를 적은 종이를 시체의 품 속에 넣어 두면 그 영혼이 처참한 상태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어 주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 길을 안내해 주기로 하자.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3번 부르고 나서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시신 곁에서 일어 주어야 한다. 만약 시신이 없다면 그가 늘 앉아 있던 자리나 누워 있던 자리 옆에서, 그가 거기에 있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어야 한다. 그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읽는 경우라도 시신이 그대 앞에 있다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큰 소리로 읽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이미 나타났지만 그대는 그 빛을 깨닫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까지 방황하고 있는 거라오. 오늘을 여덟째 날이오. 이제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 붓다들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동요하지 말고 그들을 인식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다(佛呼金剛)께서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검붉은 포도주 색이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가운데 얼굴은 검붉은 포도주 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붉은 색이라오. 부릅뜬 눈은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고, 몸에서는 불길을 내뿜고 있소. 그의 이마는 번갯불처럼 번쩍이며, 이빨은 숫돌에 간 칼처럼 번뜩인다오. 그는 천둥 같은 소리로 “아-라-라, 으아-하-하” 웃으며, “슈-우”하는 태풍 같은 바람소리를 내며 나타난다오. 그는 밝은 오렌지 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해골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나타난다오. 머리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장식을 매달고, 목에는 시커먼 뱀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방금 자른 인간의 머리통을 걸고 있다오.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들고, 두 번째 손에는 도끼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칼을 들고 있소. 왼쪽 첫 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쟁기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들고 있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다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헤루까 붓다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그가 피를 마시면서 내는 쩝쩝거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처럼 들릴 것이오. 그들의 온 몸의 털구멍에서는 금강저(金剛杵)와 같이 날카로운 지혜의 불꽃이 발산되고 있소. 그들은 반인반조(半人半鳥)인 가루다가 떠받치고 있는 왕좌에 용사의 자세로 앉아서, 이런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오.


   이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마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바이로차나(大日如來)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아카샤 다트비쉬바리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여기에 묘사된 수호불 헤루까 붓다의 모습은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붓다와 보살들의 일반적인 형상이다. 해골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 쓴 것은 5독-분노, 정욕, 시기심, 자만심, 무지-을 정복했음을 상징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을 목에 걸고 있는 것은 부정적인 태도와 정신적인 습관을 모두 극복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배우자 크로디쉬바리(문자적인 뜻은 ‘잔인한 여신’)와 껴안고 있는 것은 지혜와 자비의 결합을 상징한다. 해골 바가지에 담긴 피를 마시는 것은, 무지라는 악마의 생명력인 피를 희열이 넘치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연금액(鍊金液)으로 변형시키는 궁극적인 지혜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피는 또한 여성성 즉 초월적인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성 헤루까가 여성성의 상징인 피를 마시고 힘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비가 초월적인 지혜를 통해 힘을 받아 나오는 것임을 상징한다. 헤루까의 뱀으로 된 목걸이, 머리띠, 팔찌, 발목 장식, 허리띠 등은 뱀의 힘을 정복했음을 뜻한다.


헤루까가 손에 들고 있는 도구들은 여러 가지 깨달음을 상징한다. 즉 중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무지와 망상의 굴레를 깨뜨리는 도구들이다. 금강저(金剛杵, vajra)는 천둥, 번개, 다이아몬드와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즉 지혜와 자비를 상징한다. 무서운 모습의 신들은 머리와 이마와 몸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는 듯한, 금강저와 같이 날카롭고 강렬한 불꽃을 내뿜는다. 이것은 그들이 금강저와 같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자비의 소유자라는 것을 상징한다. 가끔 언급되는 5개나 9개의 뾰족한 날이 달린 금강저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왕좌를 떠받치고 있는 독수리 비슷한 반인반조(半人半鳥)인 ‘가루다’는 먼 곳까지 낱낱이 살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정복하는 지혜의 힘을 상징한다. 이런 무서운 모습의 신들과 결합하여 하나가 된 사람은, 진화 과정에 가로놓인 모든 어려움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


[아홉째 날]


분노와 두려움 때문에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헤루까 붓다(佛呼金剛)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홉째 날 금강 붓다 계열의 헤루까가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아홉째 날이오. 이제 그대의 두뇌 한쪽(동쪽)에서 금강 붓다 계열의 바즈라 헤루까 주님께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짙은 청색이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그는 네 다리를 쭉 펴고 버티고 선 자세로 나타날 것이오. 가운데 얼굴은 짙은 청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붉은 색이라오. 그는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두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소. 왼쪽 첫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쟁기를 들고 있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바즈라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바즈라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바즈라 헤루까 주님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바즈라 헤루까 주님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바즈라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이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마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바즈라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바즈라사트바(持金剛佛)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붓다로카나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즈라 헤루까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


[열 번째 날]


분노와 두려움 때문에 바즈라 헤루까 주님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열 번째 날 보석 붓다 계열의 헤루까가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열 번째 날이오. 이제 그대의 두뇌 한쪽(남쪽)에서 보석 붓다 계열의 라트나 헤루까 주님께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짙은 황색이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그는 네 다리를 쭉 펴고 버티고 선 자세로 나타날 것이오. 가운데 얼굴은 짙은 황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붉은 색이라오. 그는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보석 들고, 두 번째 손에는 사람의 머리가 꿰어 있는 삼지창을,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소. 왼쪽 첫 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라트나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라트나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라트나 헤루까 주님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라트나 헤루까 주님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라트나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이들은 그대의 두뇌 남쪽 부분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마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라트나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라트나삼바바(寶生佛)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마마키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오른 쪽 두 번째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의 머리가 꿰어 있는 삼지창’은 미묘한 차원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3개의 중앙 통로-수슘나, 이다, 핑갈라-를 완전히 활성화시킨 것을 상징한다. 8각으로 되어 있는 자루의 손잡이 부분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 3개의 날에 사람의 머리 3개가 꿰어 있는 것은 탐욕과 분노와 무지를 정복했다는 상징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라트나 헤루까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


[열 한 번째 날]


그대가 알려주는 대로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만나고서도, 부정적인 성향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며 피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지 못하고, 죽음의 사자로 오해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열 한 번째 날, 연꽃 붓다 계열의 헤루까가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이때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열 한 번째 날이오. 이제 그대의 두뇌 한쪽(서쪽)에서 연꽃 붓다 계열의 파드마 헤루까 주님께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짙은 붉은 색이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그는 네 다리를 쭉 펴고 버티고 선 자세로 나타날 것이오. 가운데 얼굴은 짙은 붉은 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푸른 색이라오. 그는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연꽃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사람의 머리가 꿰어 있는 삼지창을,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소. 왼쪽 첫 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작은 북을 들고 있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파드마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파드마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파드마 헤루까 주님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파드마 헤루까 주님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파드마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성적으로 결합한 자세로 나타나는 이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말고 반갑게 맞이도록 하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파드마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아미타바(阿彌陀佛)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판다라바시니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파드마 헤루까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


[열 두 번째 날]


그대가 알려주는 대로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만나고서도, 부정적인 성향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며 피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지 못하고, 죽음의 사자로 오해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열 두 번째 날, 까르마 붓다 계열의 헤루까와 가우리 여신, 그리고 시체를 파먹는 피샤치 여신과 이쉬바리 여신이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이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심한 공포 속에서 떨게 된다. 그러므로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 다음,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가우리, 피샤치, 이쉬바리는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여성신이다. 이들의 모습은 이어지는 본문 가르침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의식 속에 깊이 억압되어 있던 요소들이 인격화하여 나타나는 존재들이다. 평소에 부정하고 억압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간계에서는 억압되어 있던 모든 것이 풀려난다. 아무 것도 억압하거나 감출 수 없다. 따라서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근원적인 힘을 상징하는, 무서운 모습의 여성 신들을 만나는 것을 통해 억압되어 있던 불쾌한 것들을 극복 할 수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오늘은 열 두 번째 날이오. 이제 그대의 두뇌 한쪽(북쪽)에서 까르마 붓다 계열의 까르마 헤루까 주님께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의 몸은 짙은 녹색이며,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다리가 넷이라오. 그는 네 다리를 쭉 펴고 버티고 선 자세로 나타날 것이오. 가운데 얼굴은 짙은 녹색이며, 오른쪽 얼굴은 희고, 왼쪽 얼굴은 붉은 색이라오. 그는 오른쪽 첫 번째 손에는 칼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사람의 머리가 꿰어 있는 삼지창을,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소. 왼쪽 첫 번째 손에는 종(鐘)을 들고, 두 번째 손에는 해골 바가지를, 그리고 세 번째 손에는 쟁기를 들고 있다오. 그는 이런 모습으로 배우자 붓다 까르마 크로디쉬바리와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오. 까르마 크로디쉬바리는 오른 손으로 까르마 헤루까 주님의 목을 끌어안고, 왼 손으로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까르마 헤루까 주님의 입에 대주고 있다오. 까르마 헤루까 주님은 그 피를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오. 성적으로 결합한 자세로 나타나는 이들은 그대의 두뇌 북쪽에서 나오는 존재라오.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을 증오하거나 적개심을 품지 마시오. 그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무서운 모습의 까르마 헤루까 붓다와 배우자가 곧 아버지 아모가싯디(不空成就佛) 주님과 그의 배우자인 어머니 사마야타라라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마시오. 이들을 믿고 깊히 존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들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까르마 헤루까 붓다와 그의 배우자를 자신의 수호불로 인식하고 하나로 결합한다면, 그는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중간계에서 나타나는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사실은 그대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지푸라기로 만든 사자를 진짜 사자라고 여기는 동안에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은 지푸라기로 만든 사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본인이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간을 꽉 채울듯이 거대한 몸집에 무쇠같은 팔다리를 가지고 나타나는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만나는 순간 공포에 몸을 떨 것이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통해 안내를 받는 사람은 그들이 그대 자신의 의식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이전에 명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투명한 빛과 현재 인식에서 발산되는 자신의 투명한 빛이 어머니와 자식처럼, 또는 다정한 옛친구와 만나는 것처럼 하나로 결합하여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들어간다. 절대 자유의 경지는 이렇게 본래부터 자기 자신 속에 간직되어 있는 투명한 빛을 인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이런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을 피하려 들 것이다. 그러면 윤회 세계에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까르마 헤루까와 그의 배우자를 피하는 사람은 머리가 동물 형상인 8명의 가우리 여신과 또 다른 8명의 피샤치 여신을 만나게 된다. 이들 역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며, 그를 돕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이 나타날 즈음에, 그대는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다음과 같이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이제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8명의 가우리 여신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대 두뇌의 동쪽에서 나온 백색 가우리 여신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는 오른 손에는 몽둥이 대신 시체를 들고, 왼 손에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들고 나타날 것이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마시오. 남쪽에서는 황색 가우리 여신이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는 화살을 매긴 활을 그대에게 겨누고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는 붉은 프라모하 여신이 승리의 악어 깃발을 들고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는 검은 베탈리 여신이 금강저(金剛杵)와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들고 나타날 것이오. 남동쪽에서는 오렌지 빛의 푸카티 여신이, 오른 손에 창자를 들고 왼 손으로는 창자를 입에 집어 넣으며 나타날 것이오. 남서쪽에서는 어두운 녹색의 가스마리 여신이, 오른 손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왼 손에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들고 나타날 것이오. 그는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금강저로 해골 바가지에 담긴 피를 저으며, 그 피를 들이키면서 나타날 것이오. 북서쪽에서는 창백한 황색의 찬달리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그는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머리를 떼어내고, 오른 손에는 심장을 들고 왼 손으로는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나타날 것이오. 북동쪽에서는 검푸른 색의 스마사니 여신이 머리를 떼어 낸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나타날 것이오. 이렇게 여덟 방향에서 나오는 가우리 여신들은 실제로는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라오. 그들은 그대 앞에 나타나 5명의 헤루까 주님을 둘러쌀 것이오.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가우리 여신들은 눈이 3개인 것을 빼고는 인간과 모습이 비슷하다. 세 번째 눈은 이마 한 복판에 붙어 있다. 팔과 다리도 두 개씩이고 얼굴과 머리도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세상의 각 방향에 있는 거룩한 땅에서 온다고 한다. 이들 가우리 여신들은 화장터나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장소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도 한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이제는 성스러운 땅에서 오는 8명의 피샤치 여신이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동쪽에서는 사자 머리를 한 짙은 포도주 색의 시마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입에는 시체를 물고, 팔짱을 끼고, 머리 갈기를 휘날리며 나타날 것이오. 남쪽에서는 호랑이 머리를 한 붉은 색 비야그랴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팔을 엇갈리게 늘어뜨리고, 최면을 걸듯이 노려보면서, 이를 갈며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는 여우 머리를 한 검은 색 쉬리갈라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왼 손으로는 창자를 입에 움켜넣으면서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는 늑대 머리를 한 검푸른 쉬바나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입에 문 시체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최면을 걸듯이 노려보며 나타날 것이오. 남동쪽에서는 대머리 독수리 머리를 한 창백한 황색의 그르드라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어깨에 시체를 메고, 손에는 해골을 들고 나타날 것이오. 남서쪽에서는 매 머리를 한 검붉은 칸카샤 여신이 어깨에 시체를 메고 나타날 것이오. 북서쪽에서는 까마귀 머리를 한 검은 카카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 허파와 심장을 뜯어 먹으며 나타날 것이오. 북동쪽에서는 올빼미 머리를 한 검푸른 울루카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오른 손에는 금강저 왼 손에는 칼을 들고, 시체를 뜯어 먹으며 나타날 것이오. 성스러운 땅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나는 이들 8명의 피샤치 여신들은 실제로는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라오. 그들은 그대 앞에 나타나 5명의 헤루까 주님을 둘러쌀 것이오.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모두 그대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환상임을 알아야 하오.


여기에 나오는 동물 머리를 하고 있는 8명의 피샤치 여신들은 시체를 뜯어먹는 비위를 상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시오. 이제 4명의 수문장 여신이 그대의 두뇌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러니 그들을 올바로 인식하도록 하시오. 그대 두뇌의 동쪽에서 말 머리를 한 흰 색 안쿠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오른 손에는 쇠 갈고리 왼 손에는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들고, 그대 두뇌의 동쪽에서 나와 그대의 오른 편에 나타날 것이오. 남쪽에서는 돼지 머리를 한 노란 색 파샤 여신이 올가미를 들고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는 사자 머리를 한 붉은 색 쉐른칼라 여신이 쇠사슬을 들고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는 뱀 머리를 한 녹색의 간타 여신이 종(鐘)을 들고 나타날 것이오. 이들 4명의 수문장 여신은 모두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모두 그대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환상임을 알아야 하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들 30명의 헤루까 신 둘레에 다시 28명의 이쉬바리 여신들이 나타난다오. 여러 가지 형상의 머리를 하고, 이런저런 물건을 들고나타나는 이들 역시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모두 그대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환상임을 알아야 하오.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나는 이 위기의 순간에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30명의 헤루까 신’은 아버지 헤루까 5명, 어머니 헤루까 5명, 가우리 여신 8명, 피샤치 여신 8명, 수문장 여신 4명을 가리킨다. 이들 둘레에 나타나는 ‘이쉬바리 여신’은 내면의 수행을 통해 신들의 경지에 도달하여 성자가 된 수행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이들을 ‘요기니’라고 일컫는다. 힌두교 전승에는 브라흐마, 인드라. 쿠마라 등이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곧 이쉬바리 여신이다.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문화와 종교에서 말하는 무서운 역할을 하는 천사로 대체해서 생각해도 된다. 이들을 자신의 심령(心靈)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들이 동물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은 자연계의 힘을 정복한 존재들이라는 암시다. 어떤 문화에든 신적인 영역에 대한 관념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처해 있는 일상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관념에서 비롯되는 신적인 영역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제 동쪽에서 들소 머리에 금강저를 손에 든 짙은 포도주 색의 라카샤시 여신, 뱀 머리에 연꽃을 손에 든 오렌지 빛깔의 브라흐미 여신, 표범 머리에 삼지창을 손에 든 짙은 녹색의 마헤쉬바리 여신, 몽구스 머리에 윤회의 수레바퀴를 손에 든 푸른색 로바 여신, 노새 머리에 창을 손에 든 붉은색 쿠마리 여신, 곰 머리에 창자로 만든 올가미를 손에 든 흰색 인드라니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동쪽에 나타나는 이들 6명의 요기니 여신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제 남쪽에서 박쥐 머리에 날카로운 칼을 손에 든 노란색 바즈라 여신, 악어 머리에 사람 뼈가 담긴 단지를 손에 든 붉은색 샨티 여신, 전갈 머리에 연꽃을 손에 든 붉은색 아메르타 여신, 매 머리에 금강저를 손에 든 흰색 챤드라 여신, 여우 머리에 몽둥이를 손에 든 짙은 녹색의 가다 여신, 호랑이 머리에 피가 가득 담긴 해골 바가지를 손에 든 짙은 황색의 라크샤시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남쪽에서 나타나는 이들 6명의 요기니 여신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제 서쪽에서 대머리독수리 머리에 몽둥이를 손에 든 짙은 녹색의 바크샤시 여신, 말 머리에 사람의 몸통을 손에 든 붉은색 라티 여신, 반인반조(半人半鳥)인 가루다 머리에 몽둥이를 손에 든 흰색 마하발리 여신, 개 머리에 금강도(金剛刀)를 손에 든 붉은색 라크샤시 여신, 후투티 머리에 화살을 매긴 활을 든 붉은색 카마 여신, 사슴 머리에 사람의 뼈가 담긴 단지를 들고 있는 적녹색의 바수라크샤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 나타나는 이들 6명의 요기니 여신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제 북쪽에서 늑대 머리에 깃발을 손에 든 푸른색 바야비 여신, 야생 염소 머리에 끝이 뾰족한 말뚝을 손에 든 붉은색 나리니 여신, 멧돼지 머리에 어금니로 만든 덫을 손에 든 검은색 바라히 여신, 까마귀 머리에 어린 아이의 살 가죽을 손에 든 붉은색 라티 여신, 코끼리 머리에 손에는 죽은지 얼마 안되는 시체를 들고 해골 바가지에 담긴 피를 마시는 짙은 녹색의 마하나시 여신, 뱀 머리에 뱀으로 만든 오랏줄을 손에 든 푸른색 바루니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 나타나는 이들 6명의 요기니 여신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이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제 4명의 수문장 요기니 여신이 그대의 두뇌에서 나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동쪽에서는 뻐꾸기 머리에 쇠갈고리를 손에 든 검은색 바즈라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남쪽에서는 거위 머리에 오랏줄을 손에 든 노란색 바즈라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서쪽에서는 사자 머리에 쇠사슬을 손에 든 붉은색 바즈라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북쪽에서는 뱀 머리에 종(鐘)을 손에 든 짙은 녹색의 바즈라 여신이 나타날 것이오. 이들 4명의 요기니 여신들은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지금까지 등장한 28명의 여신은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헤루까 붓다들의 몸에서 저절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그러니 이들이 곧 붓다의 지혜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은 ‘비어-있음’[空] 즉 진리의 몸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며,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은 ‘투명성’ 즉 깨달은 몸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라오. 이 점을 꼭 인식하도록 하시오. 그대의 두뇌에서 나오는 58명의 헤루까 신들이 무서운 모습으로 그대 앞에 나타날 때,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모두 그대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그대가 이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면, 그 자리에서 헤루까 붓다들과 한 몸이 되어 붓다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오.


절대적인 붓다의 진리의 몸(法身)과 상대적인 깨달은 몸(報身)이 둘이 아닌 것처럼 ‘비어-있음’과 ‘투명성’도 분리할 수 없다. ‘비어-있음’은 아무 것도 없는 흑암이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의 영역은 상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불 ‘비어-있다’는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비어-있음’은 만물의 본질적인 실체이다. ‘비어-있음’은 상대적인 절대가 아니라 절대적인 절대다. 그러면서도 상대적인 존재들이 무한한 상호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비어-있음’은 투명성과 밝음과 명료함의 근원이다. ‘비어-있음’은 고유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명료한 상태의 상호 관계를 창조해낸다. 명료한 상호 관계와 고유한 실체가 없음, 그리고 투명성과 비어-있음은 둘이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 자체에 대한 깨달음으로 충만한, 고요한 상태의 ‘비어-있음’이 붓다의 진리의 몸(法身)이다. 반면에 궁극적인 실재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대적인 상호 관계에 대한 깨달음으로 충만한, 오르가즘의 환희를 체험하고 있는 ‘투명성’은 붓다의 깨달은 몸(報身)이다. 고요한 상태의 진리의 몸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로 나타난다. 오르가즘의 환희를 체험하고 있는 깨달은 몸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무서운 신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결국 인간 본래의 지성과 감성에서 나오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본성이 이러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곧 불성(佛性)을 성취하는 것이며, 불성을 성취한 자는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의 겉모습에 놀라 두려워하며 도망간다면 엄청나게 비참한 처지에 떨어질 것이오. 헤루까 신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죽음의 신 야마로 오인한다면 그들을 두려워하고 적대심을 품게 될 것이오. 그러면 그들은 악마와 다름 없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대는 또 다시 윤회 세계를 방황하게 된다오.


죽은 자의 선과 악을 심판하여 그들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 야마는 이미 오래 전에 나타났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야마와 그의 졸개들을 만날때, 삶과 죽음과 장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그들을 매우 낯설게 느끼며 거부감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억압되어 있는 생각과 감정들이 낯설고 무서운 신의 형상으로 투영되어 나타날때, 그것이 자신의 의식에서 나오는 것인줄 모르는 사람은 거부감과 적대감을 품는다. 그들을 외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적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도망간다. 그러므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가르침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에 대해서도 올바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인도와 티벳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미지가 낯설고 괴이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종교의 이미지로 대체해도 좋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케루빔이나 세라핌, 또는 동물 토템이나 샤머니즘에 등장하는 정령(精靈) 등으로 대체해서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을 안내해 줄 수도 있다. 어떤 이미지를 사용하든,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만나는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가 실제로는 자신의 의식에서 나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은 하늘을 꽉 채울 정도로 몸집이 크다오. 중간 크기의 신들은 지구의 중심에 있는 수메루산 만하고, 가장 적다고 해도 그대 몸집의 18배 정도는 된다오. 그들각양각색이며 몸에서는 빛이 발산되고 있소.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대 앞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그대의 의식 에너지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신들과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빛과 하나로 융합하면, 그대는 붓다가 될 것이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어떤 무서운 모습이 나타날지라도, 그대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그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알아야 하오. 투명한 빛이 그대 자신의 각성된 의식의 빛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그 순간 붓다가 될 것이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오. 그대는 한 순간에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가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의 빛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워 한다면,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이 시커먼 마하칼라 수호신들로 변하여 나타날 것이오. 무서운 모습의 신들은 죽음의 신 야마 다르마라자[다르마의 왕]의 사자들로 변하여 나타날 것이오. 그러면 그대은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들의 환상에 시달리면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게 될 것이오.


나타나는 현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들조차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난다. 무서운 모습의 신들은 죽음의 사자들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난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 앞에 나타나는 환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경전을 줄줄 꿰고 아무리 오랜 세월 수행을 했다 할지라도 붓다의 경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그대 앞에 나타나는 환상을 올바로 인식하면, 그 하나만으로 붓다가 될 것이오. 그대의 의식이 투영된 환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죽음과 동시에 중간계에서, 그대의 의식이 죽음의 신 야마 다르마라자의 사자들이 나타날 것이오. 이들 역시 그대의 의식이 투영된 존재들이오. 이들은 하늘을 꽉채울 정도로 몸집이 크다오. 중간 정도라야 수메루산만 하다오. 이들이 그대 앞에 보이는 온 세상을 꽉채울 것이오.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삐져나와 있고, 눈은 유리알처럼 번득인다오. 머리는 정수리 부근에서 질끈 동여매고, 목은 가늘고 배는 불쑥 튀어나왔소. 이들은 손에 판결 문서를 들고, ‘그를 쳐라! 그를 죽여라!’하고 소리를 지른다오. 또 인간의 뇌를 핥고, 목을 잘라내며, 시체를 헤집어 심장과 내장을 뜯어낸다오. 그들의 이런 모습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오.


죽음의 신 야마의 사자들은 죽은 자가 범한 죄와 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는 악한 충동을 생생하게 비추어 주는 존재들이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이런 환상이 나타날 때 두려워하지 마시오. 떨지 마시오. 그대의 몸은 직관으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몸이오. 그러니 죽이거나 팔다리를 자른다해도 그대는 죽지 않는다오. 그대의 몸은 ‘비어-있는’[空] 형상이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소. 죽음의 신 야마의 사자들은 실체가 아니라, 그대의 의식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그 역시 ‘비어-있는’ 허상이라오. ‘비어-있는’ 것이 ‘비어-있는’ 것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않겠소.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신들, 피를 마시는 헤루까 신들, 동물 머리를 한 여신들, 붓다와 보살들에게서 발산되는 무지개 빛, 그리고 야마의 사자들은 모두 그대의 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오. 객관적으로 실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소.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한다면,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질 것이오. 그리고 그들과 하나로 결합하여 붓다가 될 것이오. 그러기 위해 그대는 그들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이렇게 생각하시오, “이들은 나를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온 수호불들이다. 그러니 이제 이들에게 나를 맡기겠다.”


   3가지 보물(三寶)에 마음을 집중하시오. 그대의 수호불을 기억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저를 구원해 주소서. 제가 지금 중간계에서 방황하고 있나이다. 오, 구하신 분이여! 당신의 자비로 저를 붙들어 주소서.” 그리고 그대의 스승의 이름을 부르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저를 구원해 주소서. 제가 지금 중간계에서 방황하고 있나이다. 자비를 베푸사, 저를 이대로 놓아 두지 마소서.” 그리고 헤루까 신들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제가 강렬한 환각 속에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두려운 환상을 극복하는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무서운 모습의 이쉬바리 여신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제가 지금 사랑하는 자들을 떠나 홀로 방황하고 있나이다.

제 앞에는 공허한 환상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붓다들이시여, 자비를 베푸사 두려움을 없애주소서.

이 무시무시한 중간계를 벗어나게 해주소서.


5가지 지혜의 빛이 밝게 비칠때,

두려움에 떨지 않고 용감하게,

그 빛이 곧 나 자신임을 알게 하소서.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이 나타날때,

두려움에 떨지 않고 용감하게,

그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게 하소서.

제가 부정적인 진화의 힘에 끌려 다닐때,

수호불들께서 저를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실체 세계 밀려 오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릴때,

그 소리가 ‘옴 마니 파드메 훔’ 만트라가 되게 하소서.


제가 진화의 추진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 다닐때,

자비로운 주님[觀世音菩薩]께서 저를 보호해 주소서.

제가 쌓아 놓은 악한 성향 때문에 고통 당할때,

사마디의 희열과 투명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5가지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않게 하소서.

저로하여금 순수한 다섯 붓다의 땅을 보게 하소서.


   강한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이 기도를 드리시오. 그러면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고, 틀림없이 깨달은 몸을 성취한 붓다가 될 것이오. 그러니 강한 믿음을 가지고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오.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대는 이 가르침을 3번 또는 7번 반복해서 읽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러 주어도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3번째 중간계인 탄생 중간계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앞으로 일러줄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체험의 강도가 미약하거나 강렬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주는 것 외에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생전에 투명한 빛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육체와 마음이 분리되는 순간 진리를 깨닫는다. 생전에 실재의 빛을 인식하고 어느 정도 체험도 있는 사람은, 죽음 중간계에서 투명한 빛이 비칠 때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동안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생전에 창조 단계와 완성 단계 수행을 통해 탄트라 신들을 시각화하고 집중하는 훈련을 한 사람은, 저승 중간계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신들과 무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날 때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동안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통해 훈련을 해 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대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열심히 수행하도록 하라. 내용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도록 하라.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3번씩 반복해서 읽도록 하라. 말과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여, 설령 수 백명의 폭도들이 그대를 죽이려고 달려 들어도 내용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라.


이것은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5가지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이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읽어라. 한 번 듣기는 들었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중간계에 들어가면 지성이 9배 이상 맑아지지 때문에 한 낱말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을 읽어 주도록 하라. 앓아 누워 있는 모든 사람에게 꼭 읽어 주도록 하라. 모든 죽은 자들의 시신 옆에서 이 가르침을 읽어 주어라. 그대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해 주도록 하라.


이 가르침을 만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가르침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공덕을 쌓지 못한 사람, 그리고 감정과 지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지혜를 연마하지지 않은 사람은 이 가르침을 만나기가 어렵다. 이 가르침을 이해하고, 의심없이 믿는 사람은 누구나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이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라. 이 가르침은 이 세상 모든 가르침의 정수(精髓)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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