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에 있어 출생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記述
문상련 (正覺,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겸임교수)
I. 緖言
필자는 본 논고를 통해 三界 四生의 流轉 가운데 나[我]란 존재가 어떻게 출생되며 어떤 과정의 삶을 살게 되는지, 또한 죽음의 과정과 죽음 이후의 전개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이에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현상적 전개와 함께, 윤회의 死門에서 열반의 生門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실천적 제시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유가사지론 및 몇몇 대승경론에 나타난 四有說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다음 내용을 기술코자 한다. 먼저 四有 가운데 中有의 求生과, 生緣으로 인해 탁태에 이르는 生有의 성립에 대한 논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어 本有의 胎內 성장과 단계적 삶에 대한 기술 및, 本有의 삶 가운데 윤회 또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원리에 대해 언급코자 한다. 또한 현상적 죽음으로서 死有 및 또다시 中有가 還滅의 세계에로 나아가게 되는 전체 과정을 기술코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삶의 현상에 대한 觀照心과 함께 불교적 생명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II. 輪廻轉生과 四有說
이는 윤회전생을 십이연기로 설명했던 초기불교 생사관과 그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부파불교의 四有說로, 윤회전생 가운데 존재의 轉移를 효과적으로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도 위 四有說을 다소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3)
그럼에도 ‘極善을 지은 자는 선업의 힘으로 중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무색계에 태어나며,’7) ‘極惡 등 업력이 치성한 경우는 즉시 무간지옥에 태어난다.8) 그러나 업력이 치성치 않은 색계와 욕계의 중유는 곧바로 當生을 얻지 못하며, 이 중 욕계의 중유는 食香(乾闥婆)의 존재로서 香을 섭취함으로서 그 생을 이어간다.9)
여기서 “중유란…二有(死有와 生有)의 중간 五蘊을 性으로 삼는 채 趣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10)를 말하는 바, 그럼에도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의 다섯 명칭 중 起를 설명하는 가운데 “起는 출생할 곳을 향해 生起하며 중간에 괴멸이 있어도…補特伽羅가 斷滅 없이 生緣을 맺고 生起하는 것을 뜻한다”11)고 하여 非趣의 존재임에도 윤회의 주체가 됨을 말하고 있다.12) 중유는 天眼으로 자신 업력에 따른 生處를 발견한 채 태어남을 얻게 된다.13) 한편 중유는 수명에 한정이 있어 구사론에 의하면 世友尊者께서 말씀하시기를, ‘길어야 7일이며 生緣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수 차례 죽고 태어나는 바’ 다른 존자께서 이르기를 ‘길어야 7⋅7일이다…’14) 라 하고 있다. 한편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한편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三事가 화합하면 健達縛가 모태에 득입할 수 있다. 부모의 染心이 함께 화합하고, 母身이 調適하고 병이 없으면, 이때 건달바가 바로 나타나 모친의 胎藏에 진입한다”18)고 한다.19) 이외에 또 다른 生緣의 조건으로서 대보적경에서는 ④부모와 중유의 존귀⋅비천의 차별에 있어 평등함과 ⑤부모와 자식 업력의 감응 등을 부가하고 있기도 하다.20) 유가사지론 역시 三事和合과 受胎에 대한 위와 유사한 언급을 하고 있다.
한편 정혈이 합한 一段은 根에 해당할 것으로, 여기에 결합된 아뢰야식은 그 자체가 ‘根⋅識의 생명체’로서 生有에 해당하는 것임을 말할 수 있다. 이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은 입태의 순간을 結生이라 표현하는 가운데 “그때 中有의 蘊은 소멸하고 生有의 蘊이 생기는 것을 結生하였다 한다”24)고 한다. 한편 “生有란 무엇인가? 답하기를, 生分의 諸蘊이다. 즉 結生時의 五蘊(욕⋅색계)과 四蘊(무색계)을 性으로 삼는다”25)고 하여 結生의 순간에 ‘蘊我’로서 生有가 성립됨을 말하고 있다.
② 額部曇位 : 갈라남위에서 형성된, 四大로 인한 육체가 응고되어 ‘얇은 피부’가 생겨나는 단계로, 薄皮라 한다. 끓인 우유에 막이 생기는 것 같이 피부가 생겨나는 것으로, 이는 託生의 제2주에 해당한다.
③ 閉尸位 : 알부담위에서 형성된 ‘피부가 견고해지고 혈액이 생기는’ 기간으로, 閉尸는 血肉이라 번역된다. 제3주에 해당한다.
④ 健南位 : 폐시위에서 견고해진 피부가 ‘더욱 견고해져 육체가 형성되는 기간’으로 聖肉이라 번역한다. 거의 인간 모습이 갖춰진 상태로, 제4주에 해당한다.
⑤ 鉢羅賖佉位 : 四肢와 五臟, 六腑가 형성되는 시기로 支節이라 번역되며, 胎로부터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까지를 포괄하는 단계이다.
⑥ 髮毛似位 : 제6주의 태아를 말하며, 모발과 손톱 등이 나타나므로 髮毛似位라 부른다.
⑦ 根位 : 제7주의 태아로 眼根과 耳根⋅鼻根⋅舌根⋅身根 등 五官이 형성되며, 段肉이라 한다.
⑧ 形位 : 제8주부터 이후 출산 때까지를 포괄한다. 이때 태아는 인간의 형태가 분명해진다.28)
⑩ 주: 堅鞭이란 業風에 의해 胎身에 맥이 생긴다.
⑪ 주: 踈通이란 업풍에 의해 태가 통철해지고 九孔이 나타나며 태 속이 정리되고 형체가 안정된다. 또한 柱轉이란 업풍에 의해 胎身에 氣가 통하며 穴孔이 점점 커져 입에서는 黑血과 코에서는 穢惡水가 나온다.
⑫ 주: 대장과 소장⋅위가 생기며, 穿髮이란 업풍에 의해 320支節과 101穴이 몸에 생기게 된다.30)
⑬ 주: 업풍으로 인해 태아는 飢渴을 느끼며, 母가 음식을 먹고 생긴 滋味가 태아의 穴에 들어가 長養케 한다.
⑭ 주: 線口란 업풍에 의해 몸 전후좌우에 1천 개 힘줄[筋]이 생기며, 근육이 생겨 단단한 신체가 형성된다.31)
⑮ 주: 蓮花란 업풍에 의해 신체 각 부분에 수많은 脈이 생기며, 모친이 먹은 음식의 자미는 몸에 유입되어 몸을 潤益케 한다.
(16) 주: 無量이란 업력에 의해 골절이 안치되고 九孔이 모두 개통된다. 定心이 두루하고 心根이 열리며 氣息의 출입이 원만해진다. (17) 주: 孔이 정결해지며 氣息의 출입이 잘 통하게 된다. (18) 주: 大堅强이란 업력에 의해 聽根이 완성되고 六根이 청정해진다. (19) 주: 입태 후 구족된 身根⋅命根⋅意根 등 三根과 함께 眼⋅耳⋅鼻⋅舌 등 四根이 성취된다. (20) 주: 200개의 微細骨이 肉과 雜合하게 된다. (21) 주: 生起란 업력에 의해 身上에 肉이 생기며, 所有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 肌肉(살근육)이 생긴다. (22) 주: 浮流란 업력에 의해 身血이 생기고, 度惡이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서 음성이 발생한다. (23) 주: 淨持란 업력에 의해 身皮가 발생한다. (24) 주: 堅持란 업풍에 의해 兒身에 皮葺(살갗)이 생겨난다. 또한 滋滿이란 업풍에 의해 피부가 조밀, 윤택해진다. (25) 주: 持城이란 업력에 의해 血肉이 더욱 윤택해지며 빛이 난다. (26) 주: 生成이란 업력에 의해 태아의 몸에 털이 나고[發毛] 껍질 같은 것이 생겨나며, 이 모두는 脈과 연결된다. (27) 주: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惡報와 善報를 받게 된다. 惡報로는, 曲藥란 업력에 의해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고 求不得의 고통을 받고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귀머거리와 소경[聾盲], 벙어리[吟哦] 및 우둔함, 추루함 등 惡報와 함께 아귀와 같은 형체, 친족의 미워함, 타인의 불신,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등의 과보를 받는다. 善報로는,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육근이 구족하며 단정함, 詞辯의 분명함과 조화로운 음성 및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28) 주: 활발한 정신활동과 함께 망상의 분별심으로 인한 8종의 顚倒想을 발생한다. (29) 주: 髓中間이란 업풍에 의해 정결한 피부와 안색을 갖으며, 전생 업에 의해 피부의 6종색(白色⋅黑色⋅不白不黑色⋅靑色⋅乾枯色⋅潤澤色 등)이 형성된다. (30) 주: 鐵口란 업풍에 의해 發毛와 低甲(피부에 각질 생김) 등이 증장된다. (31) 주: 태아의 身相이 장대해져 人相을 구족하게 된다. ③2~③4주: 태아가 장대해진다. ③5주: 모태 안에서 肢體가 구족한 상태로 된다. ③6 주: 身相이 갖춰지고 골절이 견고해지며, 모태에 대한 厭離心이 생겨난다. ③7 주: 태아는 그물[羅網]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태내에서 빠져나오고자 노력한다. ③8 주: 胎兒 중 男兒의 경우 모태 오른쪽 옆구리에 배를 의지하고 등 방향으로 자리하며, 女兒의 경우 모태 왼쪽 옆구리에 등을 의지하고 배 방향으로 자리한다. 한편 이때가 되면 태아는 趣下란 업풍으로 인해 머리를 아래로 향하며, 양 어깨를 펴고 점점 출생코자 한다. 태아가 전생에 많은 악업을 지었으면 태내에서 捨命할 수 있고, 모친 역시 大苦惱로 인해 命終할 수 있다.
이상 태아 탁태에 대한 38주의 논의는 이외 여러 경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바,32) 유가사지론에서는 출생 일자에 대한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즉 출생에 필요한 기간으로는 38주(266일)와 그로부터 4일이 지난 270일 즉 9개월 혹은 그 이상을 지나야 할 것으로, 이렇게 하여 ‘태아가 産門을 나왔을 때를 正生位라 하며 생후 점차 觸이 발생, 眼觸과 觸을 분별하는 意觸이 생겨난다’34)고 유가사지론은 전하고 있다.
② 出生位 : 갈라람 이후[額部曇位]로부터, 아주 늙음[耄熟位]에 이르기까지를 일컫는다. ③ 嬰孩位 : 능히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기 이전까지를 일컫는다. ④ 童子位 :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는 때를 일컫는다. ⑤ 少年位 : 능히 欲塵을 수용하게 되는 30세까지를 일컫는다. ⑥ 中年位 : 31세로부터 50세까지를 일컫는다. ⑦ 老年位 : 51세로부터 70세까지를 일컫는다. ⑧ 耄熟位 : 71세 이상을 일컫는다.
魔를 극복코자 하는 논의는 초기불교로부터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음을 말할 수 있다. 이에 탐⋅진⋅치에 대한 戒⋅定⋅慧의 가르침으로부터, 탐⋅진⋅치를 기저한 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 등 십이연기에 대한 順觀과 逆觀의 논의,39) 그리고 惑⋅業⋅苦의 순차적 전개 속에서 行蘊에 대한 논의40)를 거치는 가운데 業力과 果報 형성에는 五蘊의 積集體에 대한 我執이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한다.41)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는 蘊魔의 我執을 넘어, 煩惱魔로 인한 法執을 포함해 四魔를 말하고 있다.
한편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一乘章」에서는 ‘有漏의 탐진치(선악업)를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는 分段死와, 無漏의 無分別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는 不思議變易死를 드는 가운데, 無漏의 五蘊 즉 五分法身의 意生身으로서 佛果에 이를 수 있음’44)을 말하고도 있다. 이에 無漏의 지혜로써 法執을 넘어선 緣을 추구하는 가운데 生死 가운데 열반을 증득할 것을 촉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死는 生⋅老⋅病과 함께 四相이라 칭해지기도 하며, 범어 maraṇa(末剌諵)의 번역으로 ‘수명이 마쳐 다한다’는 뜻을 갖는다. 이때가 되면 신체에 변괴의 상이 찾아오며, 성유식론은 이때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살아 있을 때 행한 善法을 憶念한 즉 信 등 선법의 마음이 일어나 현행하는 까닭에 안락한 죽음을 맞이해 몸에 극한 고통이 생겨나지 않으며, 不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불선심이 現起하여 ‘死苦의 五種相(所愛 財寶⋅眷屬⋅自身⋅朋友 및 諸種 極重之憂苦를 갖춤)을 겪게 됨’53)을, 그리고 善心도 惡心도 아닌 無記心으로 죽는 자는 安樂死도 苦惱死도 아닌 상태의 죽음을 맞게 될 것임을 전하고 있다.54)
한편 命終時의 心相에 대해 ?현양성교론?은 “명종시 分明心 속에는 善心⋅不善心⋅無記心 등 三種心이 없으며, 不分明心 속에 不苦⋅不樂의 無記心이 나타나 미구에는 死有에서 中有에로, 中有에서 生有에로 옮아가게 된다”55) 하고 있다. 이는 죽는 순간 (업에 의한) 心相 여하에 따라 윤회에 流轉하게 됨을 말하는 바, 임종시 마음가짐 및 임종의례의 단초를 제시해 주는 근거가 된다.
2) 中有를 넘어 還滅로
預流果 및 一來果의 경우에도 命終時 我愛가 역시 現行한다. 그러나 預流 및 一來果의 경우 智慧力으로써 我愛를 자제하여 집착하지 않으니…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다시 現行하지 않는다.58)
한편 中有의 建立을 여읠 수 있는 또다른 방편을 往生論에서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이에 ?釋淨土群疑論?에는 淨土에 왕생한 존재의 中有 여부에 대한 다음 문답이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答曰) …中有란 있지 않은 것으로, 이 목숨 마치면 蓮華池 가운데 앉게 되는데, 이는 生陰[생유]에 所攝되는 바이다. 蓮華 가운데 들어감은 處胎함과 같은 까닭이다.”59)
III. 結語
중생 四有 중 中有는 當生의 處를 구하는 求生의 존재로서 四蘊 내지 五蘊의 性을 갖는 非趣의 존재에 해당, 名色⋅補特伽羅⋅健達縛⋅(阿賴耶)識 등으로 불린다. 이 존재는 7⋅7일을 기점으로 母의 調適함과 부모의 愛染 및 健達縛의 現前 등 三事和合의 生緣을 통해 탁태한 채 生有로 전환, ‘태내 38주’간 本有의 삶으로부터 이후 耄熟位를 거치는 가운데 ‘施設의 事’에 순응한 삶을 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숙업에 의한 苦樂을 받고, 또한 현재의 緣인 現生 造業에 따라 四魔로 인한 五趣의 길[分段死] 내지 我執과 法執을 넘어선 지혜를 통해 열반의 길[變易死]로 나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위 分段死건 變易死건 壽와 暖을 지속시키는 (阿賴耶)識이 身과 분리됨으로 현상적 죽음을 맞으며 이때 惡心死에는 死苦의 斷末魔적 고통이, 善心死에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 한편 命終時의 五蘊(四蘊)을 性으로 하는 死有의 찰나가 존재하며, 이때 생겨나는 ‘愛我心의 念’으로 말미암아 中有의 生報가 建立된다.
여기서 ‘愛我心’은 中有 建立의 조건으로 중생 轉生의 고리가 된다. 그러나 예류과 및 일래과의 경우 命終時 智慧力으로 我愛를 자제해 집착하지 않으며, 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현행하지 않는 까닭에 轉生을 위한 中有가 建立되지 않는다. 또한 淨土往生者의 경우도 中有의 建立 없이 蓮花에 處生케 됨을 알 수 있는 바, 我愛心을 멸한 지혜와 往生 수행을 통해 中有의 建立을 벗어나 還滅門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할 수 있다.
四有(four forms of existence), 중유(intermediate existence), 건달바(Gandharva), 임종(facing death), 아뢰야식(Ālaya-vijñāna)
A Description on the Process of Birth and Death in Mahayāna Buddhism
Moon, Sang-Leun (Ven. Jung gak, Dongguk Univ.)
The five components of the interim body, however, differ from those which formed the individual while he was alive. When the five components are mentioned in regard to an intermediate existence, they seem to indicate the latent energy of the five components which will manifest themselves in the next existence. From the standpoint of Mahayāna Buddhism, we may say that life after death exists in the state of Emptiness or non-substantiality, dissolving back into the great cosmos and flowing together with the cosmic life. To employ the terminology of the Consciousness-Only school, the "interim body" is in fact nothing other than the ālaya-consciousness, the framework of individual existence which trans-migrates from one lifetime to the next, containing within itself the potential for all physical and mental functions in the form of "seeds." In the after-death process, the subjective "self" of each individual existence is acted upon by the seeds, especially the karma-seeds, contained in its ālaya-consciousness. In other words, while being merged with the cosmic life, the "interim body" or subjective self experiences the latent force of its karma―and other seeds, and while receiving suffering or pleasure, perceives a variety of images. From the Buddhist viewpoint, the emergence of the ālaya-consciousness―that is, the emergence of life from the latent or intermediate-existence phase―is regarded as an essential condition. Buddhism accordingly sums up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rebirth as "the union of the three factors." Here the "three factors" are defined as the sexual union of the parents, the proper functioning of the monthly cycle, and the emergence of the interim body from the intermediate-existence phase. Moreover, in order for these three factors to unite, there must be no physical disorder that would interfere with pregnancy, and an affinity must exist between the karma of the parents and the karma stored in the ālaya-consciousness of the life in intermediate existence. Because the merit and wisdom of bodhisattvas is so highly developed, when they wish to enter the womb,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and are not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Wheel-turning kings and pratyekabuddhas have merit and wisdom, but it is not developed to the highest extent. Therefore, when they enter the womb, though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they are nevertheless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The many classes of living beings in this way arouse perverted thoughts and enter the mother’s womb. only the bodhisattva, when he would enter the womb, correctly discerns his father as his father, and his mother as his mother. Moreover, he arouses filial love toward his mother, and by its power enters into her womb. For one who obtains wisdom, practices to be born in the Pure Land and establishes the state of Buddhahood in this lifetime, after death, there is no wandering through intermediate existence. Past the moment of death, that person is immediately welcomed by all Buddha’s, bodhisattvas and benevolent deities, and escorted by them to the Pure Land of Eagle Peak. "The Teachings Affirmed by All Buddha’s through Time," expresses this with the phrase, "[He] attains rebirth of the highest kind in the Land of Tranquil L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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