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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에 있어 출생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記述

종교학(宗敎學)

by 巡禮者 2010. 8.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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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에 있어 출생과 죽음의 과정에 대한 記述

 

 

문상련 (正覺,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겸임교수)

 

I. 緖言


우리는 불교 사상을 一見하는 가운데 Ātman과 Saṁsāra, 그리고 Mokṣa라는 세 가지 특징적 용어와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아(Ātman)의 존재규명을 통해 업과 윤회(Saṁsāra)로부터 해탈(Mokṣa)을 촉구하는 전체 불교사상사의 주된 과제에 해당될 것으로, 또한 불교 실천도의 궁극적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위 내용은 ‘死生의 논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현 사바세계의 삶을 마감한 채 ‘윤회의 死門을 향할 것인가, 열반의 生門을 향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내적 규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본 논고를 통해 三界 四生의 流轉 가운데 나[我]란 존재가 어떻게 출생되며 어떤 과정의 삶을 살게 되는지, 또한 죽음의 과정과 죽음 이후의 전개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이에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현상적 전개와 함께, 윤회의 死門에서 열반의 生門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실천적 제시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유가사지론 및 몇몇 대승경론에 나타난 四有說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다음 내용을 기술코자 한다. 먼저 四有 가운데 中有의 求生과, 生緣으로 인해 탁태에 이르는 生有의 성립에 대한 논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어 本有의 胎內 성장과 단계적 삶에 대한 기술 및, 本有의 삶 가운데 윤회 또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원리에 대해 언급코자 한다. 또한 현상적 죽음으로서 死有 및 또다시 中有가 還滅의 세계에로 나아가게 되는 전체 과정을 기술코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삶의 현상에 대한 觀照心과 함께 불교적 생명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II. 輪廻轉生과 四有說


불교에서는 인간 輪廻轉生을 四有로 설명하고 있어,1) 生有와 本有⋅死有⋅中有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자신 業力 및 阿賴耶識이 母胎에 의탁해 태어나는 찰나를 生有라 하고, 그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相續 기간을 本有라 하며, 죽는 찰나를 死有,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상속 기간을 中有라 하고 있다.2)

 

이는 윤회전생을 십이연기로 설명했던 초기불교 생사관과 그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부파불교의 四有說로, 윤회전생 가운데 존재의 轉移를 효과적으로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도 위 四有說을 다소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3)


1. 中有와 求生


위 四有 중 中有(中陰, 中蘊)란 ‘사람이 죽어 다시 생을 받을 때까지의 識身’을 뜻하고 있다.4) 이들 識身 즉 中有는 preta라 불리며 乾闥婆라 통칭되는 채, ‘逝者(先祖의 魂)’를 지칭하기도 한다.5) 한편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를 意成⋅求生⋅食香⋅中有⋅起 등 다섯 이름으로 칭하는 바,6) 當生에 앞서 起한 존재로서 중유는 當生의 處를 구하는 求生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極善을 지은 자는 선업의 힘으로 중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무색계에 태어나며,’7) ‘極惡 등 업력이 치성한 경우는 즉시 무간지옥에 태어난다.8) 그러나 업력이 치성치 않은 색계와 욕계의 중유는 곧바로 當生을 얻지 못하며, 이 중 욕계의 중유는 食香(乾闥婆)의 존재로서 香을 섭취함으로서 그 생을 이어간다.9)

 

여기서 “중유란…二有(死有와 生有)의 중간 五蘊을 性으로 삼는 채 趣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10)를 말하는 바, 그럼에도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유의 다섯 명칭 중 起를 설명하는 가운데 “起는 출생할 곳을 향해 生起하며 중간에 괴멸이 있어도…補特伽羅가 斷滅 없이 生緣을 맺고 生起하는 것을 뜻한다”11)고 하여 非趣의 존재임에도 윤회의 주체가 됨을 말하고 있다.12) 중유는 天眼으로 자신 업력에 따른 生處를 발견한 채 태어남을 얻게 된다.13) 한편 중유는 수명에 한정이 있어 구사론에 의하면 世友尊者께서 말씀하시기를, ‘길어야 7일이며 生緣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수 차례 죽고 태어나는 바’ 다른 존자께서 이르기를 ‘길어야 7⋅7일이다…’14) 라 하고 있다. 한편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중유는 生緣을 얻지 못하면 7일이 다하도록 머물며, 生緣을 얻더라도 다음에 올 삶의 형태가 결정되지 않는다. 만약 7일이 다하도록 生緣을 얻지 못하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 7일이 다하도록 머문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生緣을 얻지 못하고 7⋅7일을 머뭄에 이르면 이로부터 이후로 결정코 生緣을 얻게 된다.15)


하여 매 7일을 기점으로 다음 삶의 형태가 결정되며, 7⋅7일에 이르러 결정코 生緣을 얻게 됨을 말하고 있다.


2. 生緣 및 託胎로 인한 生有


그럼에도 生緣을 얻는 데에는 조건이 수반된다. 증일아함경에 의하면 ‘識身이 와서 수태할 때, 부모가 한곳에 모였을 때 가능하고, 부모의 몸에 重患이 없어야 하는 등 세 인연이 있어야 수태가 가능하다’16)고 한다. 즉 ①부모의 결합과, ②부모 몸에 重患이 없어야 함, ③識身의 도래 등 세 인연이 生緣의 조건이 됨을 말하는 바, 대보적경 역시 ①부모의 染心과 要愛, ②母腹의 淨月期, ③中蘊의 현전과 모태 진입17) 등이 生緣의 조건이 됨을 전하고 있다.

 

한편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三事가 화합하면 健達縛가 모태에 득입할 수 있다. 부모의 染心이 함께 화합하고, 母身이 調適하고 병이 없으면, 이때 건달바가 바로 나타나 모친의 胎藏에 진입한다”18)고 한다.19) 이외에 또 다른 生緣의 조건으로서 대보적경에서는 ④부모와 중유의 존귀⋅비천의 차별에 있어 평등함과 ⑤부모와 자식 업력의 감응 등을 부가하고 있기도 하다.20)

유가사지론 역시 三事和合과 受胎에 대한 위와 유사한 언급을 하고 있다.


三處現前으로 말미암아 母胎에 들어갈 수 있다. 먼저 ①어머니가 (임신할 수 있는) 調適함을 지녀야 하고, ②부모가 화합하여 함께 愛染을 일으켜야 하며, ③健達縛가 정히 現前해 있어야 한다.21)


또한 3종 장애가 없어야 함을 말하여, ①産處에 심한 병[過患]이 없어야 하고 ②種子에 심한 병[過患]이 없어야 하며, ③宿業에 허물이 없어야 한다22) 하고 있다. 한편 ?유가사지론?은 健達縛(중유)의 탁태 과정과 아뢰야식 화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때 부모는 貪愛가 극에 다르게 되고, 마지막에는 결정코 각기 한 방울의 濃厚한 精血을 出하게 되는 바, 그 두 방울은 마치 무르익은 우유가 응결될 때와 같이 화합해 모태에 머물러 一段을 이루게 된다. 바로 그 곳에 一切種子의 異熟(果報)이 所攝되며, 執受(六根)의 所依處가 되는 阿賴耶識이 화합해 依託하게 된다.23)


이는 탐애로 인한 두 방울 정혈이 합한 一段에, 根의 所依處인 아뢰야식이 결합해 생명체가 탄생됨을 의미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건달바(중유)는 소멸된 채 아뢰야식으로 전환되는 바, 건달바(中有)는 아뢰야식(生有)의 매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정혈이 합한 一段은 根에 해당할 것으로, 여기에 결합된 아뢰야식은 그 자체가 ‘根⋅識의 생명체’로서 生有에 해당하는 것임을 말할 수 있다. 이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은 입태의 순간을 結生이라 표현하는 가운데 “그때 中有의 蘊은 소멸하고 生有의 蘊이 생기는 것을 結生하였다 한다”24)고 한다. 한편 “生有란 무엇인가? 답하기를, 生分의 諸蘊이다. 즉 結生時의 五蘊(욕⋅색계)과 四蘊(무색계)을 性으로 삼는다”25)고 하여 結生의 순간에 ‘蘊我’로서 生有가 성립됨을 말하고 있다.


3. 本有의 단계적 삶과 生死涅槃


이상 生緣의 三事和合과 아뢰야식의 탁태로 인한 生有의 찰나를 지나 本有의 삶이 시작된다. 여기서 ‘본유란 생유와 死有의 중간 有로서 五蘊 내지 四蘊을 性으로 삼으며, 전생 所造業으로 인해 生하는 까닭에 본유라 이름한다.’26)


1) 本有와 胎內 성장


유가사지론은 탁태의 찰나로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胎內八位說]로서 소개하는 바,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羯羅藍位 : 전생의 중유가 緣을 만나 탁태한 후 7일간의 존재로 凝滑, 즉 ‘응결된 골수’가 생겨난다. 부모의 정혈이 한 덩어리로 합해지면 전도된 인연 및 중유가 소멸되면서 一切種子識의 功能力에 의해 ‘(身根 및 身根의 所依處로부터) 意識(受⋅想⋅行⋅識)이 머물고, 엉키고, 생기고, 相續하는’ 단계이다. 色으로서 羯羅藍과 受想行識으로서 名이 합해 羯羅藍이라 통칭되며, 이때 정신은 阿賴耶識을 중심으로 前七識이 표면화되며, 육체는 지⋅수⋅화⋅풍의 四大가 점차 형성된다. 이때 中有는 소멸되고 本有의 五蘊이 형성되는 까닭에 이때를 生有라 부를 수 있다.27)

 

② 額部曇位 : 갈라남위에서 형성된, 四大로 인한 육체가 응고되어 ‘얇은 피부’가 생겨나는 단계로, 薄皮라 한다. 끓인 우유에 막이 생기는 것 같이 피부가 생겨나는 것으로, 이는 託生의 제2주에 해당한다.

 

③ 閉尸位 : 알부담위에서 형성된 ‘피부가 견고해지고 혈액이 생기는’ 기간으로, 閉尸는 血肉이라 번역된다. 제3주에 해당한다.

 

④ 健南位 : 폐시위에서 견고해진 피부가 ‘더욱 견고해져 육체가 형성되는 기간’으로 聖肉이라 번역한다. 거의 인간 모습이 갖춰진 상태로, 제4주에 해당한다.

 

⑤ 鉢羅賖佉位 : 四肢와 五臟, 六腑가 형성되는 시기로 支節이라 번역되며, 胎로부터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까지를 포괄하는 단계이다.

 

⑥ 髮毛似位 : 제6주의 태아를 말하며, 모발과 손톱 등이 나타나므로 髮毛似位라 부른다.

 

⑦ 根位 : 제7주의 태아로 眼根과 耳根⋅鼻根⋅舌根⋅身根 등 五官이 형성되며, 段肉이라 한다.

 

⑧ 形位 : 제8주부터 이후 출산 때까지를 포괄한다. 이때 태아는 인간의 형태가 분명해진다.28)


한편 유가사지론  및 불설포태경은 위 내용을 포괄한 [胎內 38位說]을 제시하기도 하며,29) 이를 부가하면 다음과 같다.


⑨ 週: 업력으로 인해 五臟, 六腑 및 九孔 등 각 신체 부위가 완성되어간다.

 

⑩ 주: 堅鞭이란 業風에 의해 胎身에 맥이 생긴다.

 

⑪ 주: 踈通이란 업풍에 의해 태가 통철해지고 九孔이 나타나며 태 속이 정리되고 형체가 안정된다. 또한 柱轉이란 업풍에 의해 胎身에 氣가 통하며 穴孔이 점점 커져 입에서는 黑血과 코에서는 穢惡水가 나온다.

 

⑫ 주: 대장과 소장⋅위가 생기며, 穿髮이란 업풍에 의해 320支節과 101穴이 몸에 생기게 된다.30)

 

⑬ 주: 업풍으로 인해 태아는 飢渴을 느끼며, 母가 음식을 먹고 생긴 滋味가 태아의 穴에 들어가 長養케 한다.

 

⑭ 주: 線口란 업풍에 의해 몸 전후좌우에 1천 개 힘줄[筋]이 생기며, 근육이 생겨 단단한 신체가 형성된다.31)

 

⑮ 주: 蓮花란 업풍에 의해 신체 각 부분에 수많은 脈이 생기며, 모친이 먹은 음식의 자미는 몸에 유입되어 몸을 潤益케 한다.

 

(16) 주: 無量이란 업력에 의해 골절이 안치되고 九孔이 모두 개통된다. 定心이 두루하고 心根이 열리며 氣息의 출입이 원만해진다.

(17) 주: 孔이 정결해지며 氣息의 출입이 잘 통하게 된다.

(18) 주: 大堅强이란 업력에 의해 聽根이 완성되고 六根이 청정해진다.

(19) 주: 입태 후 구족된 身根⋅命根⋅意根 등 三根과 함께 眼⋅耳⋅鼻⋅舌 등 四根이 성취된다.

(20) 주: 200개의 微細骨이 肉과 雜合하게 된다.

(21) 주: 生起란 업력에 의해 身上에 肉이 생기며, 所有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 肌肉(살근육)이 생긴다.

(22) 주: 浮流란 업력에 의해 身血이 생기고, 度惡이란 업력에 의해 兒體에서 음성이 발생한다.

(23) 주: 淨持란 업력에 의해 身皮가 발생한다.

(24) 주: 堅持란 업풍에 의해 兒身에 皮葺(살갗)이 생겨난다. 또한 滋滿이란 업풍에 의해 피부가 조밀, 윤택해진다.

(25) 주: 持城이란 업력에 의해 血肉이 더욱 윤택해지며 빛이 난다.

(26) 주: 生成이란 업력에 의해 태아의 몸에 털이 나고[發毛] 껍질 같은 것이 생겨나며, 이 모두는 脈과 연결된다.

(27) 주: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惡報와 善報를 받게 된다. 惡報로는, 曲藥란 업력에 의해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고 求不得의 고통을 받고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귀머거리와 소경[聾盲], 벙어리[吟哦] 및 우둔함, 추루함 등 惡報와 함께 아귀와 같은 형체, 친족의 미워함, 타인의 불신,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등의 과보를 받는다. 善報로는, 世人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육근이 구족하며 단정함, 詞辯의 분명함과 조화로운 음성 및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28) 주: 활발한 정신활동과 함께 망상의 분별심으로 인한 8종의 顚倒想을 발생한다.

(29) 주: 髓中間이란 업풍에 의해 정결한 피부와 안색을 갖으며, 전생 업에 의해 피부의 6종색(白色⋅黑色⋅不白不黑色⋅靑色⋅乾枯色⋅潤澤色 등)이 형성된다.

(30) 주: 鐵口란 업풍에 의해 發毛와 低甲(피부에 각질 생김) 등이 증장된다.

(31) 주: 태아의 身相이 장대해져 人相을 구족하게 된다.

③2~③4주: 태아가 장대해진다.

③5주: 모태 안에서 肢體가 구족한 상태로 된다.

③6 주: 身相이 갖춰지고 골절이 견고해지며, 모태에 대한 厭離心이 생겨난다.

③7 주: 태아는 그물[羅網]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태내에서 빠져나오고자 노력한다.

③8 주: 胎兒 중 男兒의 경우 모태 오른쪽 옆구리에 배를 의지하고 등 방향으로 자리하며, 女兒의 경우 모태 왼쪽 옆구리에 등을 의지하고 배 방향으로 자리한다. 한편 이때가 되면 태아는 趣下란 업풍으로 인해 머리를 아래로 향하며, 양 어깨를 펴고 점점 출생코자 한다. 태아가 전생에 많은 악업을 지었으면 태내에서 捨命할 수 있고, 모친 역시 大苦惱로 인해 命終할 수 있다.

 

이상 태아 탁태에 대한 38주의 논의는 이외 여러 경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바,32) 유가사지론에서는 출생 일자에 대한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胎中에서 38의 7일이 지나면 胎藏의 일체 支分이 구족해진다. 그로부터 다시 4일이 지나면 비로소 출생하게 된다. 부처님[薄伽梵]께서 ?入胎經?에서 널리 설하셨듯, ‘極滿足해야 한다’는 것은 9개월 혹은 이를 지나야 함을 말하신 것이다. 만약 오직 8개월만을 지나야 할 것이라면 圓滿이라 하셨을 것이요, 極圓滿이라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6개월이거나 7개월만을 지냄은 圓滿함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33)

 

즉 출생에 필요한 기간으로는 38주(266일)와 그로부터 4일이 지난 270일 즉 9개월 혹은 그 이상을 지나야 할 것으로, 이렇게 하여 ‘태아가 産門을 나왔을 때를 正生位라 하며 생후 점차 觸이 발생, 眼觸과 觸을 분별하는 意觸이 생겨난다’34)고 유가사지론은 전하고 있다.


2) 本有의 단계적 삶


이상 탁태기와 출생 순간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本有의 삶이 이어진다. 탁태와 출생, 죽음에 이르는 전체 과정은 또다시 八位로 나뉠 수 있어, 유가사지론은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다.35)


① 處胎位 : 羯羅藍 등을 일컫는다.

② 出生位 : 갈라람 이후[額部曇位]로부터, 아주 늙음[耄熟位]에 이르기까지를 일컫는다.

③ 嬰孩位 : 능히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기 이전까지를 일컫는다.

④ 童子位 : 멀리 다니며 즐겁게 노닐 수 있는 때를 일컫는다.

⑤ 少年位 : 능히 欲塵을 수용하게 되는 30세까지를 일컫는다.

⑥ 中年位 : 31세로부터 50세까지를 일컫는다.

⑦ 老年位 : 51세로부터 70세까지를 일컫는다.

⑧ 耄熟位 : 71세 이상을 일컫는다.


이렇듯 현상의 단계적 삶을 사는 가운데 중생은 ‘施設의 事’에 떨어져 순응케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혹 宿業에 의한 苦樂을 받으며, 혹 現生 造業에 따라 五趣[六道] 내지 열반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에 유가사지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다시 施設의 事에 떨어지게 되니, 소위 世事와 言說을 따라 배우게 된다. 다음에는 다시 家室에 耽著하게 되니, 大種의 類가 장대해져 諸根이 성취된 까닭이다. 다음에는 諸業을 짓게 되는 것으로, 세간 일[工巧]과 業處를 일으키게 된다. 다음에는 다시 소위 色 등의 경계를 수용하는 것이니, ‘사랑할만하다’ ‘사랑할만하지 못하다’ 하면서 苦樂을 받게 되는데 이는 전생 업[先業]의 因을 말미암는 것이다. 혹 현재의 緣을 말미암아 五趣에 나아가거나 열반을 향해 가기도 한다.36)


3) 本有의 緣에 따른 生死와 涅槃


여기서 ‘현재의 緣’으로 인해 五趣의 生死 내지 涅槃이 제시되고 있음은, 苦樂 生死로부터 열반을 향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에 별역잡아함경은 다음 내용을 전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偈로서 설하시되, 일체 生은 모두 死한다. 壽命은 반드시 마쳐 業에 따라 緣의 報를 받는다. 선과 악(에 따라) 각각 果를 얻는다. 복을 닦아 天에 상승하고, 악을 지어 지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道를 닦으면 生死를 끊고 길이 涅槃에 든다…해탈하여 死를 받지 않는다.37)


여기서 ‘道를 닦아 생사를 끊고 열반에 든다…해탈하여 死를 받지 않는다’ 함은 魔를 여읠 것을 말한다. 魔는 Māra-papimā의 音譯으로, Māra는 ‘죽이는 것’ ‘죽게끔 하는 것’이란 어원을 갖으며, papimā는 惡이라 번역한다. 즉 魔란 ‘죽게끔 하는 악’을 말한다. 이는 生死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대지도론?에 의하면 ‘魔에는 마왕 波旬의 세 딸로서 貪⋅瞋⋅癡 등 內魔가 있으며, 諸法實相을 벗어난 外魔가 있다’38) 하였다.

 

魔를 극복코자 하는 논의는 초기불교로부터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음을 말할 수 있다. 이에 탐⋅진⋅치에 대한 戒⋅定⋅慧의 가르침으로부터, 탐⋅진⋅치를 기저한 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 등 십이연기에 대한 順觀과 逆觀의 논의,39) 그리고 惑⋅業⋅苦의 순차적 전개 속에서 行蘊에 대한 논의40)를 거치는 가운데 業力과 果報 형성에는 五蘊의 積集體에 대한 我執이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한다.41)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는 蘊魔의 我執을 넘어, 煩惱魔로 인한 法執을 포함해 四魔를 말하고 있다.


四魔란 무엇인가? 蘊魔와 煩惱魔, 死魔, 天魔가 그것이다. 蘊魔란 五取蘊을 말한다. 煩惱魔는 三界 중 일체번뇌를 말한다. 死魔란 각 유정의 죽음 자체[衆殀喪殞歿]를 말한다. 天魔란 勤修勝善品者의 마음[心] 가운데 蘊煩惱와 死의 三種魔를 초탈코자 할 때, 욕계 最上天子인 得大自在가 나타나 그 마음 일으키는 것을 장애하고 종종의 어지러운[擾亂] 일들을 지음을 말한다…이 4종이 四魔를 건립하니…이러한 번뇌로 말미암아 當來의 生을 받게 된다.42)


이에 대해 보살영락본업경은 ‘色에 대한 戒蘊(戒身: 形의 非를 제거)과 受에 대한 定蘊(定身: 心의 亂을 제거), 想에 대한 慧蘊(慧身: 想의 虛를 제거), 行에 대한 解脫蘊(解脫身: 無累의 획득), 識에 대한 解脫知見蘊(解脫知見身: 無漏로 인한 해탈)’인 ‘無漏의 五蘊’43)을 얻어 가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편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一乘章」에서는 ‘有漏의 탐진치(선악업)를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는 分段死와, 無漏의 無分別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는 不思議變易死를 드는 가운데, 無漏의 五蘊 즉 五分法身의 意生身으로서 佛果에 이를 수 있음’44)을 말하고도 있다. 이에 無漏의 지혜로써 法執을 넘어선 緣을 추구하는 가운데 生死 가운데 열반을 증득할 것을 촉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4. 죽음과 死有, 그리고 中有


그럼에도 위 變易死로 인한 無有生死거나, 分段死로 인한 生死거나 모두 오온의 결합이 해체됨으로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적 죽음을 맞게 된다. 이 현상적 죽음에 대해 ?대지도론?에서는 “壽⋅煖⋅識의 三法이 身을 버릴 때 버려진 身은 쓰러져 죽는다”45)고 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에서는 “壽와 煖과 識이 身을 버릴 때…모든 根이 다 무너지고 身과 命이 분리되며, 이를 死라 이름한다”46)고 한다.


1) 死有의 현상적 측면


여기서 ‘命’이란 壽⋅煖⋅識을 통칭하는 ‘정신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命根이라 표현하는 바, “命根의 體는 壽이고 능히 煖과 識을 支持한다”47) 하고 있다. 한편 성유식론에 의하면 “壽⋅煖⋅識은 서로를 의지하며 상속하고 지속된다. 壽와 煖을 끝없이 지속시키는 것은 (阿賴耶)識이다”48)라고 하는 바, 命 내지 命根, (阿賴耶)識이 신체에서 분리됨을 死라 말할 수 있다.

 

한편 死는 生⋅老⋅病과 함께 四相이라 칭해지기도 하며, 범어 maraṇa(末剌諵)의 번역으로 ‘수명이 마쳐 다한다’는 뜻을 갖는다. 이때가 되면 신체에 변괴의 상이 찾아오며, 성유식론은 이때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오직 異熟心만이 先業力을 말미암아 항상 두루 相續하며, 身分(신체)를 執受한다. 執受를 버린 處에는 冷觸이 生한다. 壽⋅煖⋅識 셋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冷觸이 일어난 處는 非情이 된다.49)


즉 수명을 마치면 異熟心(아뢰야식)이 신체를 거두어가며, 그 거두어진 장소는 차갑게 되며 非情이 된다는 것으로,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장차 목숨이 마칠 때 악업을 지은 자는 識이 (신체의) 上分부터 버리게 되어 상분에 冷觸이 일어난다. 이와같이 점차로 (냉촉이) 心處에까지 이르게 된다. 선업을 지은 자는 識이 (신체) 下分부터 버리게 되어 下分에 냉촉이 일어난다…”50)고 한다. ?諸經要集?은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善을 지은 사람은 冷觸이 아래로부터 배꼽 위로 올라가며, 따뜻한 기운이 다하면 곧 사람 가운데 태어나고, 만약 머리와 얼굴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곧 天道에 태어난다. 만약 악을 지은 자라면 이와는 반대가 된다. 위로부터 배꼽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鬼趣에 나고 배꼽으로부터 무릎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축생에 태어나며, 무릎으로부터 다리에 이르러 열기가 다하면 지옥에 태어난다. 無學의 사람으로서 열반에 든 자는 혹 심장이거나 정수리에 온기가 있다.51)


이렇듯 신체에 냉기가 드리워지고 목숨이 다할 때, 신체에는 많은 고뇌가 찾아온다. 命終時의 고뇌에 대해 ?아비달마구사론?은 “죽을 때의 고통은 斷末摩苦”라 칭하고 있다. 末摩(marman) 즉 死穴(死節)에 傷害가 가해져 끊어질 듯한 고통을 당한 채 죽게 된다는 것이다.52)

 

그럼에도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살아 있을 때 행한 善法을 憶念한 즉 信 등 선법의 마음이 일어나 현행하는 까닭에 안락한 죽음을 맞이해 몸에 극한 고통이 생겨나지 않으며, 不善心으로 죽는 자는 命終時 불선심이 現起하여 ‘死苦의 五種相(所愛 財寶⋅眷屬⋅自身⋅朋友 및 諸種 極重之憂苦를 갖춤)을 겪게 됨’53)을, 그리고 善心도 惡心도 아닌 無記心으로 죽는 자는 安樂死도 苦惱死도 아닌 상태의 죽음을 맞게 될 것임을 전하고 있다.54)

 

한편 命終時의 心相에 대해 ?현양성교론?은 “명종시 分明心 속에는 善心⋅不善心⋅無記心 등 三種心이 없으며, 不分明心 속에 不苦⋅不樂의 無記心이 나타나 미구에는 死有에서 中有에로, 中有에서 生有에로 옮아가게 된다”55) 하고 있다. 이는 죽는 순간 (업에 의한) 心相 여하에 따라 윤회에 流轉하게 됨을 말하는 바, 임종시 마음가짐 및 임종의례의 단초를 제시해 주는 근거가 된다.

  

2) 中有를 넘어 還滅로


‘所受身을 버림’으로서 本有는 죽음에 이르며,56) 死有의 찰나가 존재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의하면 死有란 “死分의 諸蘊이다. 곧 命終時의 五蘊과 四蘊을 性으로 삼는다”57)고 하며, ?유가사지론?에는 死有로부터 中有가 生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諸 중생이 장차 命終時에 惛昧想位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오랜 기간 익힌 ‘我에 대한 愛[我愛]’가 현행한다. 이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없어지려 한다[我常無]’고 하면서 문득 자기 몸을 사랑하는[愛自身] (생각을) 내게 되는데, 이를 말미암아 中有의 生報를 建立한다.

預流果 및 一來果의 경우에도 命終時 我愛가 역시 現行한다. 그러나 預流 및 一來果의 경우 智慧力으로써 我愛를 자제하여 집착하지 않으니…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다시 現行하지 않는다.58)


위 내용에 따르면 轉生의 원인은 ‘我愛로 인한 中有의 生報가 建立됨’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바, 我愛에 대한 我滅이야말로 中有의 建立을 여읜 채 轉生의 고리를 끊는 시발점이 됨을 알 수 있다.

 

한편 中有의 建立을 여읠 수 있는 또다른 방편을 往生論에서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이에 ?釋淨土群疑論?에는 淨土에 왕생한 존재의 中有 여부에 대한 다음 문답이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生을 쫓아 淨土에 나면 (그곳에) 中有 역시 존재하는가?…”

 

“(答曰) …中有란 있지 않은 것으로, 이 목숨 마치면 蓮華池 가운데 앉게 되는데, 이는 生陰[생유]에 所攝되는 바이다. 蓮華 가운데 들어감은 處胎함과 같은 까닭이다.”59)


위 인용은 生有로서 인간계의 胎生이 아닌 蓮花化生의 상황을 제시하며, ‘極善者는 中有를 거치지 않고 無色界에 태어난다’60)는 ?대보적경?의 논리를 능가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듯 穢土 너머 세계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탄생 세계는 我愛를 넘어 我滅로써 도달할 수 있는 세계와 부합되는 측면이 있음을 말할 수 있다.

 

III. 結語


이상 필자는 대승경론에 나타난 四有說을 바탕으로 출생과 죽음 과정에 대한 기술을 행하였는바, 이를 통해 다음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중생 四有 중 中有는 當生의 處를 구하는 求生의 존재로서 四蘊 내지 五蘊의 性을 갖는 非趣의 존재에 해당, 名色⋅補特伽羅⋅健達縛⋅(阿賴耶)識 등으로 불린다. 이 존재는 7⋅7일을 기점으로 母의 調適함과 부모의 愛染 및 健達縛의 現前 등 三事和合의 生緣을 통해 탁태한 채 生有로 전환, ‘태내 38주’간 本有의 삶으로부터 이후 耄熟位를 거치는 가운데 ‘施設의 事’에 순응한 삶을 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숙업에 의한 苦樂을 받고, 또한 현재의 緣인 現生 造業에 따라 四魔로 인한 五趣의 길[分段死] 내지 我執과 法執을 넘어선 지혜를 통해 열반의 길[變易死]로 나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위 分段死건 變易死건 壽와 暖을 지속시키는 (阿賴耶)識이 身과 분리됨으로 현상적 죽음을 맞으며 이때 惡心死에는 死苦의 斷末魔적 고통이, 善心死에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 한편 命終時의 五蘊(四蘊)을 性으로 하는 死有의 찰나가 존재하며, 이때 생겨나는 ‘愛我心의 念’으로 말미암아 中有의 生報가 建立된다.

 

여기서 ‘愛我心’은 中有 建立의 조건으로 중생 轉生의 고리가 된다. 그러나 예류과 및 일래과의 경우 命終時 智慧力으로 我愛를 자제해 집착하지 않으며, 不還果의 경우 命終時 我愛가 현행하지 않는 까닭에 轉生을 위한 中有가 建立되지 않는다. 또한 淨土往生者의 경우도 中有의 建立 없이 蓮花에 處生케 됨을 알 수 있는 바, 我愛心을 멸한 지혜와 往生 수행을 통해 中有의 建立을 벗어나 還滅門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할 수 있다.

 

 


주제어

四有(four forms of existence), 중유(intermediate existence), 건달바(Gandharva), 임종(facing death), 아뢰야식(Ālaya-vijñāna)

 

A Description on the Process of Birth and

Death in Mahayāna Buddhism

 

Moon, Sang-Leun (Ven. Jung gak, Dongguk Univ.)


The five components (五蘊, five Skandhas), as they exist between the two stages of death and rebirth, are called "intermediate existence(中有)." It has not yet arrived at its destination; therefore, one cannot say yet that it is born. After the stage of death and before the stage of birth―that is, in the interim between the two―there arises an existence, manifesting a body in order to move toward where it will be reborn. This "intermediate existence" is also called Pudgala, Gandharva or Ālaya-vijñāna.

The five components of the interim body, however, differ from those which formed the individual while he was alive. When the five components are mentioned in regard to an intermediate existence, they seem to indicate the latent energy of the five components which will manifest themselves in the next existence.

From the standpoint of Mahayāna Buddhism, we may say that life after death exists in the state of Emptiness or non-substantiality, dissolving back into the great cosmos and flowing together with the cosmic life. To employ the terminology of the Consciousness-Only school, the "interim body" is in fact nothing other than the ālaya-consciousness, the framework of individual existence which trans-migrates from one lifetime to the next, containing within itself the potential for all physical and mental functions in the form of "seeds."

In the after-death process, the subjective "self" of each individual existence is acted upon by the seeds, especially the karma-seeds, contained in its ālaya-consciousness. In other words, while being merged with the cosmic life, the "interim body" or subjective self experiences the latent force of its karma―and other seeds, and while receiving suffering or pleasure, perceives a variety of images.

From the Buddhist viewpoint, the emergence of the ālaya-consciousness―that is, the emergence of life from the latent or intermediate-existence phase―is  regarded as an essential condition. Buddhism accordingly sums up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rebirth as "the union of the three factors."

Here the "three factors" are defined as the sexual union of the parents, the proper functioning of the monthly cycle, and the emergence of the interim body from the intermediate-existence phase. Moreover, in order for these three factors to unite, there must be no physical disorder that would interfere with pregnancy, and an affinity must exist between the karma of the parents and the karma stored in the ālaya-consciousness of the life in intermediate existence.

Because the merit and wisdom of bodhisattvas is so highly developed, when they wish to enter the womb,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and are not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Wheel-turning kings and pratyekabuddhas have merit and wisdom, but it is not developed to the highest extent. Therefore, when they enter the womb, though they have no perverted thoughts, they are nevertheless seized by licentious desires.

The many classes of living beings in this way arouse perverted thoughts and enter the mother’s womb. only the bodhisattva, when he would enter the womb, correctly discerns his father as his father, and his mother as his mother. Moreover, he arouses filial love toward his mother, and by its power enters into her womb.

For one who obtains wisdom, practices to be born in the Pure Land and establishes the state of Buddhahood in this lifetime, after death, there is no wandering through intermediate existence. Past the moment of death, that person is immediately welcomed by all Buddha’s, bodhisattvas and benevolent deities, and escorted by them to the Pure Land of Eagle Peak. "The Teachings Affirmed by All Buddha’s through Time," expresses this with the phrase, "[He] attains rebirth of the highest kind in the Land of Tranquil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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