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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영원히 살고 싶습니까?/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4. 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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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19) 영원히 살고 싶습니까?/ 최인각 신부

사순 제5주일 (요한 11, 1-45)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이유
발행일 : 2011-04-10 [제2741호, 10면]

벌써 사순시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머리에 재를 얹으며 다짐했던 회개와 보속의 삶이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 다시금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순 제5주일을 맞으면서 교회는 우리에게 죽은 이를 무덤에서 일으키겠다고 선언하시는 주 하느님의 말씀(제1독서), 죽어 무덤에 묻힌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모습(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통하여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제2독서)을 들려주며,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주재자이신 하느님을 묵상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으면, 주님께서 찾아오시어 우리의 무덤을 열고, 우리를 무덤에서 끌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준은 부활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이며 부활이신 주님을 믿다가 죽으면, 그분이 죽음의 무덤까지 찾아와 다시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알리려 애를 쓰신 분은 예수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신앙이 별로 깊지 않았을 때,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치유해 주시며,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시고, 기적을 베푸시며, 죽은 이를 살리신 것은 우리가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지상의 여정에서 우리가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기보다는, 예수님을 구세주이시며 하느님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병을 고쳐주시고, 죽었던 이를 살려주시는 등 이 지상의 삶을 잘살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통해 배불리 먹고, 병을 치유받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묵상하며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우리를 믿음의 자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믿도록 가르치셨는데, 무엇을 믿도록 가르치셨는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오늘 복음에 잘 나타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부활이요 생명인 당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믿으면 부활과 생명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신은 누구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탈출기에 나오는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는 말씀, 즉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때 사용하시던 어법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할 때, 이 어법(나는 ∼이다)을 자주 사용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은 ‘나는 생명의 하느님이다.’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예수를 믿으면 먹을 것이 나오고, 돈이 생깁니까?’ 혹은 ‘그 사람이 생명을 주고 죽지 않게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을 생명의 하느님으로 믿는 것은 허구이며 바보짓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구원자이며 하느님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시기 위해, 그 어디나, 아니 무덤까지 찾아오시어 살려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누리시렵니까? 아니면 뚱딴지같은 소리로 치부하시렵니까?


최인각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학생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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