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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스포츠/월드컵

by 巡禮者 2011. 5.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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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930년 월드컵은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7월 13일부터 30일까지 총 18일간 치러졌다. 피파(FIFA)는 건국 100주년을 맞이했을 뿐 아니라 1924년 올림픽과 1928년 올림픽을 2연패하며 세계적인 강호로 떠오른 우루과이를 개최국으로 낙점했지만, 장거리 항해에 난색을 표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불참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로 인해 불과 13개국만이 참가한 초대 월드컵은 진정한 세계선수권대회로 거듭나지 못한 채 그 시작 자체에 의의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우루과이, 1930년 7월 13일~7월 30일

참가국: 13개국
총 득점: 18경기 70골, 평균 3.89
총 관중: 434,500명, 평균 24,139
우승국: 우루과이(통산 1회)

 

 

지역예선

우루과이가 초대 월드컵 개최국으로 확정된 직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자존심과 장거리 항해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참가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줄 리메 피파 회장이 분주히 움직인 끝에 프랑스, 루마니아, 벨기에, 유고를 가까스로 설득시켰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소득을 거둘 수 없었다.

 

유럽 팀들의 대거 불참으로 인해 피파는 그 빈 자리를 남미와 북중미 국가들로 메워야 했다. 그 결과 1930년 대회 참가국은 개최국 우루과이를 포함한 남미 7개국, 북중미 2개국, 그리고 유럽 4개국까지 총 13개국에 그치고 말았다. 저조한 참가율로 인해 피파는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고 곧바로 본선을 진행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본선요약

피파는 13개의 참가국이 확정된 직후 이를 4개조로 나누어 조별리그 방식으로 1라운드를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 결과 A조에는 아르헨티나, 칠레, 프랑스, 멕시코 4개국이, B조에는 유고, 브라질, 볼리비아 3개국이, C조에는 우루과이, 루마니아, 페루 3개국이, 그리고 D조에는 미국, 벨기에, 파라과이 3개국이 배정됐다.

 

이후 각 조 1위 팀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준결승을 치렀다. 역사적인 초대 월드컵 4강 진출 팀은 A조 1위 아르헨티나와 B조 1위 유고(B조), 그리고 C조 1위 우루과이와 D조 1위 미국으로 판가름이 났다. 반면 의욕적으로 참가한 줄 리메 회장의 조국 프랑스와 아직 발전 도상 단계에 있던 브라질 등은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4강전은 생각 이상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남미의 쌍두마차로 손꼽히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미국과 유고를 각각 6-1로 대파해 버린 것이다. 두 나라는 지난 1928년 올림픽 결승전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컵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먼저 앞서 나간 쪽은 전반전을 2-1로 마무리 한 아르헨티나였지만, 개최국 우루과이는 후반 뒷심을 발휘하며 경기를 4-2로 뒤집는 데 성공했다. 결국 제1회 월드컵 우승의 영예는 개최국 우루과이에게 돌아갔다.

 

 

 

 

 

주요선수

1930년 대회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초대 득점왕 기예르모 스타빌레였다. 스타빌레는 본래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던 무명 공격수에 불과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을 틈 타 멕시코전에서 선발 기회를 부여받았고,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뒤이어 칠레전과 미국과의 4강전, 그리고 결승전에서 도합 다섯 골을 성공시킨 스타빌레는 총 8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우승국 우루과이 역시 전설 속 월드컵 스타들을 여럿 배출해냈다. 대회 내내 화제를 불러 모았던 주인공은 ‘외팔이 공격수’ 엑토르 카스트로였다.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카스트로는 불굴의 투지로 장애를 이겨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떨쳤고, 우루과이 홈 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엑토르 스카로네와 흑인 미드필더 호세 안드라데 또한 초대 월드컵이 배출해낸 대표적인 스타들이었다. 한편 기자단이 선정한 대회 MVP의 영예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이자 핵심 수비수 호세 나사찌에게 돌아갔다. 나사찌는 타고난 리더십과 견고한 수비력을 앞세워 우루과이의 조별리그 무실점에 혁혁한 공헌을 세웠고,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수상기록

MVP
1위 호세 나사찌(우루과이)
2위 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
3위 호세 안드라데(우루과이)

 

득점
1위 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8골)
2위 페드로 세아(우루과이/5골)
3위 베르나르 파테노드(미국/4골)

 

베스트 팀
골키퍼: 엔리케 바예스테로스(우루과이).
수비수: 호세 나사찌(우루과이), 밀루틴 이브코비치(유고).
미드필더: 루이스 몬티(아르헨티나), 알바로 헤스티도, 호세 안드라데(이상 우루과이).
공격수: 페드로 세아, 엑토르 카스트로, 엑토르 스카로네(이상 우루과이), 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 베르나르 파테노드(미국).

 

 

제 1회 월드컵이 탄생시킨 기록들

월드컵 첫 경기: 프랑스-멕시코(개막전, 1930년 7월 13일).
월드컵 첫 득점: 루시앙 로랑(프랑스, 1930년 7월 13일).
월드컵 첫 승리: 프랑스 4-1 멕시코(1930년 7월 13일).
월드컵 첫 퇴장: 플라시도 갈린도(페루), 1930년 7월 14일 루마니아전.
월드컵 첫 해트트릭: 베르나르 파테노드(미국), 1930년 7월 17일 파라과이전.
- 본래 기예르모 스타빌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으나 2006년 11월에 공식 수정.
월드컵 첫 결승전 득점: 파블로 도라도(우루과이), 1930년 7월 30일 아르헨티나전.

 

 

이모저모

 

 

01

개최국 우루과이는 초대 월드컵 개막전의 영광을 줄 리메 회장의 조국 프랑스 측에 양보했다. 이러한 배려는 월드컵 창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온 줄 리메 회장에 대한 우루과이 측의 예우 차원에서 이뤄졌다. 프랑스의 월드컵 역사상 첫 경기 상대는 멕시코였다.

02

이 경기에서 프랑스 골키퍼 테포는 전반 24분 만에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수교체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는 하프백 샹트렐에게 골키퍼 역할을 맡겨야 했다.

03

또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후반 39분에 돌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0-1로 뒤지고 있던 프랑스는 이에 강력히 항의했고, 경기는 15분간 중단된 후 다시금 재개됐다.

04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에는 무려 9만3천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그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반면 페루와 볼리비아의 조별리그 경기에는 고작 3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는데, 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 수치에 해당하는 비공식 기록이다.

05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당시 남미를 대표하는 라이벌 국가들로서 경기 전부터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펼쳤다. 당시에는 월드컵 공인구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월드컵 공인구는 아디다스의 후원 아래 1970년 대회부터 정식으로 사용됐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의 공으로, 후반전은 우루과이의 공으로 결승전을 치렀을 정도였다.

06

아르헨티나 팬들은 우루과이와의 결승전 패배 이후 폭동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아르헨티나 내 우루과이 영사관에도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양국은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뒤 일시적으로 국교를 단절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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