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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

스포츠/월드컵

by 巡禮者 2011. 5. 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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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1938년 월드컵은 유럽의 프랑스에서 6월 14일부터 6월 29일까지 총 16일간 치러졌다. 피파의 줄 리메 회장은 모국 프랑스에서 반드시 3회 대회를 개최하길 열망했고, 그 결과 열악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개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8년 대회 역시 초대 우승국 우루과이와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가 불참을 선언하는 한편, 내전이 터진 스페인과 종주국 잉글랜드 등도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진정한 세계선수권대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직 머나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월드컵의 현주소였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프랑스, 1938년 6월 14일~6월 29일
참가국: 15개국
총 득점: 18경기 84골, 평균 4.67
총 관중: 483,000명, 평균 26,833
우승국: 이탈리아(통산 2회)

 

 

지역예선

1938년 대회에는 총 51개의 피파 가입국 가운데 36개국이 참가 의사를 표명했지만, 지역예선이 시작되자 미국과 멕시코를 포함한 북중미 국가들 및 아르헨티나 등이 줄줄이 기권하는 사태가 변함없이 발생했다. 그 결과 유럽에는 11장의 티켓이 주어진 반면 남미는 1장의 티켓만을 부여받았고, 브라질은 어부지리로 본선에 진출하며 지역예선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한편 개최국과 전 대회 우승국이 예선전을 면제 받는 시스템은 1938년 대회부터 확립됐다. 그로 인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두드러진 특징은 아시아 측에 처음으로 출전권이 부여되었다는 점인데, 월드컵 역사상 첫 아시아 출전국으로 이름을 올린 영예의 주인공은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였다. 반면 아프리카의 이집트는 유럽 예선으로 편입되어 출전 자격을 부여 받았지만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참가 자격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룹 대륙 티켓 예선참가국 본선진출국
1 유럽 2 독일, 스웨덴, 에스토니아, 핀란드 독일
스웨덴
2 유럽 1 노르웨이, 아일랜드 노르웨이
3 유럽 1 폴란드, 유고 폴란드
4 유럽•아프리카 1 루마니아, 이집트(기권) 루마니아
5 유럽 1 스위스, 포르투갈 스위스
6 유럽 1 1R: 그리스, 팔레스타인
2R: 헝가리, 그리스
헝가리
7 유럽 1 체코, 불가리아 체코
8 유럽 1 1R: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2R: 오스트리아, 라트비아
오스트리아
9 유럽 2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
10 남미 1 브라질, 아르헨티나(기권) 브라질
11 북중미 1 쿠바, 미국外 5개국(모두 기권) 쿠바
12 아시아 1 네덜란드령 동인도, 일본(기권) 네덜란드령
동인도

* 오스트리아 나치 독일에 병합되면서 기권 처리. 피파는 잉글랜드 측에 대타 출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1938년 대회 본선에는 15개국만이 참가했다.

 

 

본선 요약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조별리그 없이 16강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죽음의 방식’이 채택됐다. 단, 1938년 대회의 경우 출전 16개국 가운데 시드 배정국을 따로 분류하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는데, 이는 강팀들끼리 처음부터 맞부딪히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피파는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와 개최국 프랑스를 비롯, 독일, 체코, 브라질 등을 시드 배정국으로 지정했다.

 

한편 전문가들이 손꼽은 이 대회 최강의 우승후보는 지난 대회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2년 전 베를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명실상부한 1930년대 최강국으로 떠오른 이탈리아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의 불참으로 인해 더욱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멤버진은 주세페 메아짜와 페라리 등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들로 일신된 상태였지만, 그 막강한 조직력과 전술적 완성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개최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맞대결은 이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강호 벨기에를 3-1로 완파한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두 팀의 경기가 펼쳐지는 콜롬브 스타디움에는 무려 6만 관중이 몰려들었다. 프랑스는 1-1로 전반을 마무리 하며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 후반 들어 피올라에게 두 골을 허용함에 따라 1-3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프랑스를 무너뜨린 이탈리아의 다음 상대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이탈리아를 상대로도 해볼 만한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체코와의 8강전에서 만신창이가 된 에이스 레오니다스는 4강전에 나설 수 없었다. 결국 브라질은 레오니다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고, 이탈리아에 1-2로 패배했다. 브라질마저 격침시킨 이탈리아는 헝가리와의 결승전에서도 4-2 승리를 거두고 월드컵 역사상 첫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 독일과 스위스, 쿠바와 루마니아의 16강전, 브라질과 체코의 8강전은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재경기
** 오스트리아 나치 독일에 병합

  

 

주요 선수

1938년 대회를 통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두 선수는 이탈리아의 실비오 피올라와 브라질의 레오니다스였다. 유럽과 남미 스트라이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 피올라와 레오니다스는 득점왕과 MVP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 한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기자단 MVP 및 득점왕 등 개인상을 휩쓴 쪽은 레오니다스였지만, 우승의 영광은 피올라에게로 돌아갔다.

 

한편 지난 대회 MVP였던 주세페 메아짜 역시 이탈리아의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완숙미 넘치는 기량을 선보였다. 메아짜와 찰떡콤비를 이룬 페라리의 건재함도 대회 내내 빛을 발했다. 준우승팀 헝가리에서도 스타 선수들이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특히 ‘헝가리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르지 사로시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를 모두 소화해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 밖에 체코의 골키퍼 플라니츠카는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레오니다스와 벌인 진검승부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레오니다스는 플라니츠카를 상대로 재경기 포함 두 골을 성공시켰지만 그 외에는 득점이나 다름없는 슈팅들을 모두 방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브라질에서는 이 레오니다스와 함께 수비수 도밍구스가 매우 인상 깊은 활약을 선보였으며, 두 선수는 마라카낭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전설 중의 전설들이다.

 

 

수상 기록

MVP
1위 레오니다스(브라질)
2위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3위 제르지 사로시(헝가리)

 

득점
1위 레오니다스(브라질/7골)
2위 제르시 사로시, 줄라 젠겔레르(이상 헝가리/5골),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5골)
5위 지노 콜라우씨(이탈리아/4골) 외 1명.

 

베스트 팀
골키퍼: 프란티섹 플라니츠카(체코).
수비수: 피에트로 라바, 알프레도 포니(이상 이탈리아), 도밍구스(브라질).
미드필더: 미켈레 안드레올로, 우고 로카텔리(이상 이탈리아).
공격수: 실비오 피올라, 지노 콜라우씨(이상 이탈리아), 제르지 사로시, 줄라 젠겔레르(이상 헝가리), 레오니다스(브라질).

 

 

프랑스 월드컵 이모저모

01

본래 프랑스는 열악한 경기장 시설로 인해 3회 월드컵 개최권을 피파에 반납할 뻔했다. 그러나 줄 리메의 열정적인 노력에 힘입어 대규모 경기장 확장 및 신축 공사에 착수한 프랑스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밤샘 작업을 반복한 끝에 제대로 된 시설을 완비할 수 있었다.

02

프랑스는 줄 리메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게 개최권을 넘겨주거나 공동 개최 형식으로 1938년 대회를 진행시킬 뻔했다.

03

독일은 ‘분더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여 의욕적으로 1938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시드 배정국으로서 유일하게 16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 사실에 분노한 히틀러는 독일 대표팀 선수들 전원을 구속해버렸다.

04

브라질은 이 대회를 통해 유럽 팀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스타일의 기술축구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공격수 레오니다스는 ‘검은진주(Diamante Negro)’, ‘고무인간(Homem-Borracha)’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프랑스 현지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05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전은 내용적으로 명승부였을 뿐 아니라,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힘입어 월드컵 역사에 긍정적인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선수들은 승리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홈 관중들 역시 프랑스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를 양 손에 들고 흔들며 38년 대회를 ‘평화의 제전’ 분위기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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