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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만나다.

古典의 향기

by 巡禮者 2012. 5. 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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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만나다.

 

1.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소피스트

 

도시국가 아테네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에서이 승리 이후이다.

당시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였고, 주변 도시국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이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바로 정치와 문화이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지중해 세계의 문화적 중심지였던 아테네에는 지중해 세계의 현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젊은이들에게 변론술과 웅변술을 가르쳤다. 

 

소피스트의 뜻은 '현자들'이다.

(물론 나중에 이 말은 '지식을 팔기 위해 젊은이를 유혹하는 사냥꾼'이란 비아냥거림의 뜻으로 변화하긴 했지만...) 지중해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득한 그들이 사상에 있어 '상대주의'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양한 그들의 출신지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소피스트들로 인해  자연중심의 고대철학이 ' 인간에 대한 탐구'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들의 변론술은 수사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출처: http://cafe.daum.net/grmyth/_album/

 

대표적인 소피스트 2명을 소개하자면,먼저 프로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 ( 기원전 485? ~ 기원전 410?)

 

       "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모든 사물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 파악된다. 사물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 얻어지므로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지식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진리가 존재한다면 상대적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척도이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이다.

 

뜻도 모르고 절로 머리속에 암기되어 있던 문장, '인간은 만물의 척도'.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지식을 무조건 암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릴없이 거닐다 문득 떠오르는 이런 한 문장의 진의가 갑자기 체득되는 순간이 있으니...

그래서 박노자교수는 우리네 전통 서당교육의 유용성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고르기아스 Gorgias (기원전 483? ~ 기원전 376?)

           "진리는 없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을 파악한다 해도 그것은 전달될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상대주의를 넘어 회의주의로 나아간다.

그는 교육이 가능한가를 놓고 플라톤과 대화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다.(앞의 세 문장을 보라. 안다해도 전달할 수 없다잖은가.)

말과 사물은 일치하지 않는다. ( 이것은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로 이어진다.)

사물은 동일하지 않는 기호이므로 동일한 결론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극단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진다.아테네는 번영이 시대가 지난 후 가치의 붕괴를 겪게 되는데, 소피스트들이 이러한 정신적 혼란에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아테네를 타락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등장한 이가 바로 소크라테스다.

 

2. 소크라테스와 현실에 개입하는 철학

 

Socrates (BC 470경 ~ BC 399 )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이로폰은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소크라테스!'라는 답변을 얻는다.

 

그는 이 사실을 소크라테스에게 알렸고,이를 쉬이 납득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는 길거리에 나가 현명하다는 이들을 만나 대화를 한다. 그 결과 스스로가 최고의 현자라는 신탁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모른

 

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전제한 후 상대방이 동의할 만한 의견을 제시한 후 상대방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게끔 유도한다. 이를 산파술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누구나 보편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집요한 질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낄만큼 철저해서 궁지에 몰린 대화 상대자는 불쾌하지만 하는 수 없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게 되거나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든다. (당연히 적들이 많을 수 밖에, 그리고 이러한 그의 대화술은 종국에 그를 죽음의 재판정으로 이끌고 말았다.)

 

보편적 앎이란 감각이 아닌 이성을 통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진리를 윤리적 문제가 직접 연결시켰다.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은 선한 것을 추구하는 윤리와 같은 것이 된다. 이로써 철학은 주지주의로 나아가게 도었다.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그리스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과 편견에 맞서 싸웠고  그의 철학은 철저히 현실에 개입하여 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지중해 전역에 걸쳐 철학자들이 범람하다시피 했던 데는 기후적 요인이 한 몫 했을 것 같다. 지중해지역은 겨울철에 온난 다습하고 여름철도 건조한 편이어서1년 내내 나들이하기에 좋은 기후를 지녔다.  때문에 악처라 일컬어지는 크산티페의 등쌀에 못이겨 거리로 나온 소크라테스가  광장 여기저기서 기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것이 아니었을지.   

 

 

영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 “내가 사랑한 것은 알키비아데스와 철학뿐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스스로 철저한 애지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청년들과의 철학적인 토론을 좋아했다.

라파엘로(Raffaello)의 <아테네 학당>에는 토론에 열중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대머리에 들창코의 외모로 알려진 소크라테스가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편에 투구를 쓰고 있는 청년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군인이며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Alcibiades)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강한 윤리관과 예리한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소크라테스 역시 알키비아데스의 준수한 외모와 지적인 소양에 매혹되었다.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의 사랑만이 아니라 철학적인 측면에서 오랜 기간 영혼의 교감을 이어갔다. 그 옆에 모자를 쓰고 경청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역사 저술가인 크세노폰(Xenophon)이다. 그리고 그 옆에 녹색 옷을 입고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이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다.

 

- 박홍순 [미술로 보는 서양철학사] 중-

 

당시 그리스에서는 남성들의 동성애가 전혀 이상스런 행위가 아니라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3. 플라톤의 이데아론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플라톤은 이집트 및 지중해 지역을 여행한다.

시라쿠사의 참주인 디오니시오스 2세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머물다 그곳 귀족들의 모함으로 노예로 팔리기도 하는 등 수난을 겪다가 12년만에 아테네로 귀향을 하게 된다.

여러 차례 현실 정치를 통해 자신이 생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시도가 좌절되자 그는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아카데미에서 학문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좇아 영원의 진리 또는 정의의 탐구를 철학자의 사명으로 간주한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것, 모든 감각적 세계의 원형으로서의 진리는 현실 속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의 세계와 이념의 세계로 분리하여 전자를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현상의 세계, 즉 '가시계'로 규정하고 후자를 정신적 사유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이념의 세계 '가지계'로 파악한다. 그에게는 이념의 세계야말로 감각적 세계의 원인이자 원형으로, 현실의 세계의 근원이다.

 

 

 

 

 

 

 

  

 

 

진리는 직접 드러나지 않으며 직접 파악되는 것은 이데아가 아니다. 이미지는 다른 과정을 거쳐 이데아에 이르는데, 이념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수학이다.                                                      

 

플라톤에게 여러 이데아중에서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선의 이데아는 모든 이데아가 완성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에게 선과 진리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플라톤(platon, BC429~347)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집대성하여 체계화하고, 그의 관념론 철학을 더 진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유명한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긴 각주”라고 했는데, 이러한 규정을 과장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정도로 플라톤의 사상이 서양철학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 그림에서 플라톤은 옆구리에 자신의 후기 대화편의 하나인 <티마이오스>(Timaeus)를 끼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플라톤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신의 주요 저서인 <윤리학>(Eticha)을 허벅지에 받치고 손가락으로 지상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아마도 플라톤 철학의 정수인 이데아론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상을 가리키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비판하면서 현실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면을 묘사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 같다.

                         

- 박홍순 [미술로 보는 서양철학사] 중-

 

 

     ▲ 켄스타우트(Kenstout), <플라톤의 동굴> 2007

 

이 동굴 속에는 등을 입구로 향하고 있어서 얼굴을 밝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쇠고랑에 연결된 죄인들이 있다. 그림의 중앙 하단, 동굴의 벽과 벽 사이에 다리에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앞 쪽의 동굴 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이 죄인들의 뒤쪽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도구를 갖고 있는 여행자들이 지나간다. 태양의 빛은 이들 도구를 비추고 그 그림자가 동굴 속의 벽에 비친다. 쇠고랑에 연결된 죄인들은 이들 그림자를 보는 것이 가능할 뿐이고 태양이나 여행자 등 동굴 밖의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톤은 “사람들이 인공적인 제작물들의 그림자들 이외의 다른 것을 진짜라 생각하는 일은 전혀 없을 걸세.”라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동굴 속의 그림자를 마치 진리인 것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동굴 안을 의미하는 현실의 감각적인 세계가 그림자, 즉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리의 세계는 현실적인 감각적인 세계, 혹은 그림자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동굴 밖의 그 어떤 세계,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굴의 비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플라톤은 그림자만 보던 사람이 실재, 즉 이데아를 보게 될 경우를 가정한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은 “전에는 그 그림자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데아의 세계를 본 사람도 감각적인 세계, 그림자의 세계를 더 진실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익숙해짐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어두운 극장에 오래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빛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해져서 해를 본 사람이 동굴로 돌아오게 되면 다시 어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동굴 벽의 그림자를 판별하는 데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자기들을 풀어 주고서는 위로 인도해 가려고 꾀하는 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붙잡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를 죽여 버리려”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모사물의 세계인 감각적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오직 감각적인 세계를 벗어날 때뿐이다. 이데아의 인식과정은 육체나 감각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한 것인데 철학자는 육체나 감각을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순수한 진리를 직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데아를 찾는데 필요한 고통을 끝까지 감내할 수 있는 지극히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 말미에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한다.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고 끝에 보게 되는 것이 ‘좋음(善)의 이데아’이네. 그러나 일단 이를 본 다음에는, 이것이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옳고 아름다운 것의 원인이라고, 또한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는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고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에서도 스스로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또 장차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슬기롭게 행하고자 하는 자는 이 이데아를 보아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하네.”

 

이렇듯 플라톤 사상은 감각적인 것과 지성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 감각적인 것이란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감각과 그 감각의 대상들인 물질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이데아는 오직 지성적인 접근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한다.    

 

- 박홍순 [미술로 보는 서양철학사] 중-

 

수요일에 들었던 강좌내용을 일요일이 되어서야 정리해 올리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우연히 소크라테스의 초상화를 검색하다 만나게 된 ' 레디앙 싸이트'에서 박홍순씨의 글을 보고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동굴의 우화에 대해 그림과 설명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 글의 부분을 퍼왔다.

 

우리가 현상 이면에 있는 존재의 근원=이데아를 파악하려면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수학은 논리적 추론을 연마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현실에서 수학을 잘 하는 아이치고 논리정연한 글쓰기나 언변을 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암기과목화 되어버린 수학은 이미 수학이 아닌 게 아닐까. - 현재 우리나라 수학시험은 스피드와 정확도의 싸움이다. 절대로 생각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플라톤을 이해하려다가 다시금 나는 학교의 울타리안으로 기어들어왔다. 휴우~.

 

4. 《국가》에서 드러나는 플라톤의 정치철학

   10권으로 이루어진《국가》는 알렉산드리아 사서가 자의적으로 나눠놓은 것으로 논리적 분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에 나타난 플라톤의 인간관을 보면

그는 영혼의 구성요소로 이성, 기개, 욕망 을 들었다.

 

인간은 두 마리 말이 모는 마차이다.

기개라는 말은 용기를 말하며 중립적인 부분이다. 행동을 위한 정력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욕망이라는 말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 갈망이다. 비이성적이고 기개에 비해 열등하며 악의 가능성이 있다. 이성이라는 마부가 기개와 욕망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달라진다.

 

이성이 욕망에 지배당할 때 기개는 욕망에 의해 타락하게 되고, 이성의 통제아래 기개와 욕망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훌륭한 인간, 탁월한 인간이 된다.

 

플라톤에게 국가란 하나의 거대한 인간이다. 그는 《국가》에서 국가를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아닌 거대한 분업의 틀로 이해한다. 분업을 통해 인간들은 큰 생산자 집단을 이룬다. 또한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자뿐만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고 다른 나라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전사들과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고 계획하는 통치자가 있어야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생산자, 전사, 통치자 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았다.

 

생산자는 경제활동을 담당하며 그가 갖춰야할 덕목은 절제이다. 욕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싸움과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전사가 갖워야할 미덕은 용기이다. 용기는 두려워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전사가 두려워하지 말야아할 것은 고통과 가난이다. 이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엉뚱한 곳에 칼을 겨누게 된다.

 

통치자의 미덕은 지혜로 잘 다스리는 특수한 능력이다. 국가를 잘 통치하기 위해서는 식견과 지혜가 필요한데 통치자들은 꾸준한 교육을 통해 선의 이데아를 깨달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철인군주가 될 것이다.

 

선의 이데아 , 최상의 덕은 다름아닌 정의이다.

플라톤은 아테네 타락상을 보며 불의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은  징벌이 아니라 정의라고 보았다. 정의는 덕들이 어우러진 것이다. 모든 이가 저마다의 미덕을 발휘했을 때, 국가 구성원들이 각자의 일을 함으로써 통일성이 확보되며 비로소정의가 나타난다.

 

각 개인들은 절제와 용기와 지혜의 조화를 자기 내부에서 이뤄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치자로 '선의 이데아'에 더 접근해야 한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정의로운 국가가 되는 것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그림에서 플라톤은 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것은 통치자가 "선의 이데아"를 인식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 현실속에서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며 그가 깨달은 선의 이데아에 대한 인식을 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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