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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고대철학

古典의 향기

by 巡禮者 2012. 5. 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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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고대철학

 

인간의 사유는 그 시대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이란 문.사.철 을 그냥 의미하는 걸까?

 

우리사회가 정해준 규칙,규율을 좇아 평균이 되기 위해 안달복달 하며 달려가다가 문득 문득 공허해질 떄가 있다.

 

내가 잘 사는 걸까?  행복한 걸까?  왜 갑자기 평소 하고 있던 일들이 시들하게 여겨지지?  왜 자꾸 지치지?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말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같은 말랑말랑해진 철학 서적이 CEO 필독서가 되었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사유'없이 달려가는 데 급급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멈춰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박현희샘이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라고 묻기 전에 이미 내 멋대로 '참된 삶을 살기 위한 자기안으로의 여행'이라고 인문학의 의미를 규정해버렸다. 세계사를 가르치며 휙 지나가는 '헬레니즘 시대'가 꼭 지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페르시아의 침임을 격퇴하고 전성기를 맞이했던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더불어 서서히 몰락하고 마침내 북쪽의 마케도니아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어렸을 적 아버지 필리포스가 원정을 떠날 때마다 내가 정복할 땅을 아버지가 다 점령한다고 펑펑 울었다고 하는데, 왕위에 오르자 마자 벼렀던 동방원정을 나선다.

 

- 이럴때 학문의 아버지,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으로서 3년간 과연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발의 편자였던 듯. 그리스는 이미 몰락했지만, 스스로를 그리스의 조상인 헬렌의 후예라고 여겼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은 알렉산드로가 넓혀갔던 제국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이 시기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 철학은 인간과 사회,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던 그리스의 철학과는 아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대 혼돈의 시대, 사람들에게 중요해진 것은 도덕과 윤리였다.

이상주의나 진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인간의 처세와 지혜로운 삶의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이 시기는 위대한 철학자보다는 여러 사람이 집단을 형성하여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고 철학적 세계를 창조하기 보다는 현실에 대처하는 개인주의적 실천의 철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 세계화의 광풍에 놓이 세계가 잃은 것은 마을과 공동체다.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힐러리가 말했는데, 그때의 마을은 익명성이 아니라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이웃들의 연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마을엔 이웃이 없다. 해외여행을 간 이웃집에 대형 이사차량이 밀고 들어와 온집안을 털어가도 옆집 이웃은 그냥 이사가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통이 없다. 신뢰와 소통이 부재한 시대, 우리는 철저한 경쟁과 개인주의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세계주의와 나란히 하는 것은 그래서 개인주의다. 세계화도 그렇다. 그 옛날 그리스인들도 그랬나보다.

 

 

 

스토아 학파는 소트라테스의 제자로 알려진 안티스테네스가 설립한 키니코스 Cycicos학파가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1. 스토아 학파의 철학

 

 

 

▲아테네의 고대 아고라: 녹지공간의 오른쪽 빨간 지붕 건물이 아고라 박물관이고, 왼쪽 흰색 건물이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다.


 

 

 

▲이 건물은 원래 아탈로스(Attalos)의 스토아였다. 기원전 159-138년 페르감몬의 왕 아탈로스 2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지어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스토아란 공공건물, 종교적인 건물, 학교건물, 상업적인 건물을 말한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 사람 제논Zenon (기원전 335?~기원전263?)이

아테네 아고라 광장의 스토아(기둥들이 늘어선 복도)에서 가르쳤다 하여 '스토아 Stoa'학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대략 기원전 300년경부터 로마제국의 말기까지 지속되었던 이 학파는 초기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중기에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로 건너가 더욱 발전하였다. 스토아 철학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폭군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한 세네카가 등장한다.

 

스토아 철학은 소크라테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윤리학에 중심을 둔 철학으로 발전한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의 역사』,서용순,두리미디어 중-

 

 

스토아 철학은 자연의 질서를 중심에놓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의 질서안에 살아가고 있으므로 인간의 삶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세속적 행복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모든 비이성적인 욕망, 육체적 본능들은 모두 반이성적 본능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란 이런 본능을 벗어날 때만 가능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이성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란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이성의 고향인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만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전제는 인간들에게 세속적인 행복을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안락함과 물질적 풍요와 같은 세속적 행복으로는 결코 선을 이룰 수 없다. 스토아 철학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이성적인 활동을 통해 갖추게 되는 식견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덕이다. 이에 반해 무지와 어리석음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인간의 행복을 해치게 된다. 행복을 위해서는 지성을 훈련시키고 엄격한 생활을 하며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결국 스토아 철학의 윤리적 금어는 '절제'에 있다. 오로지 절제하는 이성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행복에 도달 할 수 있다.

 

 

 

 

세네카의 죽음

사랑과 박애의 교훈을 통해 인간 정신을 계몽하고자 했던 세네카는 폭군 네로 황제의 미움을 사 자살하게 된다.

 

 

2.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 - 선을 통하여 얻는 진정한 쾌락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이어받은 철학자다. 그의 저작들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지만 우리는 루크레티우스 (기원전 96?~기원전 55?)의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통하여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모든 세계가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원자는 태초부터 항상 존재해왔던 것인데, 낙하운동 속에서 우연히 그 궤도를 벗어나 주변의 원자와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다. 만약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물질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세계란 그 원자들의 우연적 운동을 통하여 생겨났다는 것이므로 자연히 모든 필연이나 목적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린다면 신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은 그러한 신과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를 대표하는 윤리적 철학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에서 연유한다.

선의 기준은 바로 쾌락이다. 자신의 쾌락이 중요한 것이고 이것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학파가 주장하는 쾌락이란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인 공포에서 벗어난 정신의 자유이다. 진정한 쾌락이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난 마음의 평정상태이며,  지나친 열정에서 벗어난 흔들림 없는 고요한 상태다. 이러한 상태를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 Ataraxia'라고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진정한 쾌락을 분별력 있게 추구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윤리적 철학은 무척 소극적인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세속적인 욕망과 탐욕은 인간에게 결국 고통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에 피해야한다.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는 길은 사회에 등을 돌리고 고요한 평정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뿐이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세속과 담을 쌓는 은둔자의 삶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 서쪽 해안엣 몇 마일 떨어진 사모스라는 초록빛의 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그는 철학에 전념하여 열네살부터 플라톤주의자인 팜필로스와 원자론자 나우시파네스로부터 가르침을 듣기 위해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그는 그 철학자들이 가르쳐주는 내용의 상당 부분에 자신이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십대 후반에 자신의 사상을 정리해 삶의 철학으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비록 일련의 재난으로 인해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 그의 철학은 몇몇 남은 단편들과 후세의 에피쿠로스 학파들의 증언에 의해 재구성되었지만 그가 쓴 책에는

『사랑론』,『음악론』『정당한 협상론』『인생론』그리고 『자연론』이 들어 있었다.

...

"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삶의 기초가 되는 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진정한 친구는 큰 재산으로도 얻을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을 베푼다는 점을 인정했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기들에게 치욕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

독립을 누리는 대신에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수용하면서 일종의 공동생활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의 식단은 호화롭지도 않았고 풍성하지도 않았지만 먹음직스럽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채워졌다.

에피쿠로스가 친구 메노에세우스에게 설명했듯이,

" (현명한)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앨랭 드 보통, 생각의 나무 중-

 

 

 

 

3.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 모든 것을 흘러나오게 하는 '유일자'의 철학

 

플로티노스는 3세기경 이집트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그는 당시 고대 세계 지성의 중시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며 플라톤을 비롯한 다양한 철학을 섭렵하였다. 플로티노스가 살았던  기원 후의 세계는 또하나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당시는 진리의 문제를 떠나 삶의 문제를 생각했던 로마제국의 철학이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막 생겨난 기독교 사상이 점점 더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 기독교 교리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체 여러 철학적 사유와 기독교의 결합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었고 이 때 등장한 사람이 플로티노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철학을 땅위의 사물들에서 시작한다면 플로티노스는 자신의 철학을 하늘에서 부터 시작햇다.  플라톤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참실재로서의 이데아의 세계와 감각적인 세계인 사물의 세계가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감각적인 세계 속에서 형상이라는 본질을 보았다면 플로티노스는 사물의 세계를 계속 변화하는, 어떠한 불변적인 실재도 존재할 수 없는 세계로 파악한다. 참된 실재란 오직 신과도 같은 '일자 the one'뿐이다.

 

'일자'란 모든 물질적인 것과는 구분되는 불변의 실재이자 참된 실재로서의 신이며 만물을 초월해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일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것을 절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자'는 움직이지 않는 불변의 존재이기 때문에 '창조'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만약 '일자'가 창조라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불변의 존재가 아니게 된다. 만물은 창조가 아닌 '일자'의 유출, 즉 흘러내림을 통하여 나온다.  태양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듯이 만물은 바로 '일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태양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그 빛을 자기 안에 가두고 있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이 빛인 태양이 자신의 밖으로 계속해서 빛을 발하듯이 '일자' 역시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것을 '유출'이라고 한다. 플로티노스에게 만물은 이러한 '유출'을 통하여 나온 것이다.

 

일자에서 맨처음 유출되는 것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정신(누스nous)이고 그 다음으로 유출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다. 세번째로 유출을 통해 나오는 것이 육체를 포함하는 물질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 가지 단계의 유출은 일자의 존재가 점점 약해지는 과정과 같다.

 

플로티노스에게 인간의 이성과 영혼은 육체나 물질에 앞서는 것으로 이성가 영혼은 빛에, 육체나 물질은 어둠에 비유된다. 결국 인간은 이성과 영혼을 통해서만 더 선하고 아름다운 빛의 세계에 있을 수 있다. 존재의 근원을 설명하는 플로티노스의 철학의 방법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의 윤리학적 신학적 사상은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해 하늘을 향한다.

 

이것은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구원의 사상이다. 플로티노스의 구원은 일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인간은 원래 일자, 즉 신에게서 나온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근원인 신으로 돌아가  신과 합일을 이루려한다는 것이 플로티노스의 주장이다. 이것은 영혼이 신을 향해 상승하는 것으로 도덕적이고 지적인 덕을 성취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특히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설명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기독교 신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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