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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10일 미국ㆍ일본ㆍ유럽 등 각국에서도 긴급 속보로 타전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호외'라는 표현까지 쓰며 "한국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며,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이라며 10일 오후 9시 현재 톱뉴스로 전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 즉 닛케이(日経)는 이날 "일본인 작가가 수상한다면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이후 30년 만이 된다"며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등을 유력 후보로 소개했지만 곧 한강 작가의 수상 속보를 전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과거 한강 작가와의 인터뷰를 다시 소개했다. 한 작가는 2016년 영국 부커 상의 인터내셔널, 즉 비영어권 소설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집중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부커 상 수상 역시 한국인으론 최초였다. 그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나는 불에 고기를 던지는 것을 보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라며 "학살에 대해 글을 쓰는 건 힘든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영국 부커 상 수상 이듬해인 2017년 한 작가는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메디치상 최종 후보에 『희랍어 시간』으로 올랐다. 지난해엔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가 제주도 친구 인선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의 비극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미 CNN에 따르면 이날 노벨문학위원회 안나-카린 팜 위원은 한 작가에 대해 “부드럽고 잔인하며 때로는 초현실적인 강렬하고 서정적인 산문을 쓴다”고 말했다. 이어 팜 의원은 “한강의 작품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소설 『소년이 온다』부터 읽어야 한다”며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항상 얽혀 있으며 이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인류에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한강(53)이 한국 작가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홈페이지 캡처
주요 통신사 역시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전했다. AP통신은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 여성이자 한국 작가라고 전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벨상을 받은 두 번째 한국인이라고도 설명했다.
AP는 "53세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한 여성이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결정이 파괴적 결과를 낳는 불안함을 그린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노벨문학상은 오랜 기간 유럽과 북미 지역 작가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119명의 수상자 중 여성은 17명에 불과했다"며 한강 작가의 수상 의의를 짚었다.
또 AP는 앞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는 등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이뤄진 수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로이터 통신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소설가(한승원 작가)"라면서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뿐 아니라 음악 등 다양한 예술에 열정을 쏟았고, 이런 배경이 그의 문학 전반에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한강 작가가 첫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점에 주목하며 "한강이 한국에서 선구자로 칭송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김경진 기자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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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는 18번째…유색인종으로는 8번째
스웨덴 한림원 "한강, 역사 트라우마에 맞선 인간 그린 강렬한 산문 써"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다. 한국 문학계의 경사라는 분위기 속에서 외신들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꼽았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울림 깊은 표현력으로 국내외 독자와 평단에 호평받았다.
이로써 한강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니 모리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노벨 문학상은 1901년 제정 이래 백인의 독무대였다. 지금까지 유색인종이 수상한 경우는 모두 7번뿐이다.
2024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연세대 국문과 1년 선배인 김별아 작가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한 작가 개인의 역량이며, 동시에 그동안 많은 문학가들을 통해 한국 문학이 해외 문학계에 꾸준하게 소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가는 2016년 영국 부커상 국제상,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 문학상',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을 받아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동안 한국 문학가가 여러 명 거론됐지만 수상자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러한 아쉬움이 일거에 해소돼 문학가의 한 사람으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김별아 작가는 "한강 작가는 대학 때 국문과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낸 인연이 있다"며 "문학 부문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여준 후배가 몹시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한국의 문학계나 지성계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독자까지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해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 한강의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보도했다.
AFP통신은 "작가 한강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사이의 조화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를 전하며, 작가의 그간 이력을 상세히 소개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강의 소설과 에세이, 단편 소설집은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해 왔다"고 평가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한국인의 문학상 처음이며, 아시아 여성으로도 처음"이라고 전했다.
일본 NHK는 와세다대 문학부의 도고 고지 교수 발언을 인용해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 국제상을 받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로서도,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획기적"이라고 보도했다.
한강은 과학자이자 상 창시자인 알프레트 노벨이 1896년에 사망한 기념일인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상을 받을 예정이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연보
▲1970년 11월 27일 광주광역시 출생 ▲1993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 사회' 시 당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 당선 ▲1995년 소설집 '여수의 사랑' 출간 ▲1998년 장편소설 '검은 사슴' 출간 ▲2000년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출간 ▲2000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 부문 수상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출간 ▲2010년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출간 ▲2010년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 ▲2011년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출간 ▲2012년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 출간 ▲2013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출간 ▲2014년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출간 ▲2014년 만해문학상 수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2016년 장편소설 '흰' 출간 ▲2016년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채식주의자')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 ▲2021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2022년 대산문학상 수상 ▲2023년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수상 ▲2024년 노벨문학상
김정한 정수영 권영미 박형기 최종일 기자
출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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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평화상 이어 韓 두번째 노벨상… 亞작가 5번째 문학상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등 받아… 2019년 인촌상 수상자
“놀랐고 영광, 한국독자-동료 작가들에 좋은 소식이었으면”
스웨덴 한림원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
●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한강 수상 이유 |
2024년 노벨 문학상은 한국의 작가 한강에게 수여됐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입니다. 한강은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그녀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에서 혁신자가 되었습니다. |
출처 : 한강, 한국작가 첫 노벨문학상 수상|동아일보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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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로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 4000만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이날 문학상에 이어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7일에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마이크로RNA 발견에 기여한 미국 생물학자 빅터 앰브로스와 게리 러브컨이, 8일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인공지능(AI) 머신러닝(기계학습)의 기초를 확립한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이 선정됐다.
9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은 미국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와 구글의 AI 기업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 경영자(CEO)·존 점퍼(39) 연구원이 받았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서 소설가로 첫발
영국 맨부커상,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한강은 이후 서울로 올라와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과거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아파서 쓴 것인지, 씀으로 해서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프면서 썼다. 밤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새벽은 늘 여지없었다. 어둠의 여지없음만큼이나 지독한 힘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무릎이 꺾인다 해도 그 꺾이는 무릎으로 다시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를 이제부터 배워야 하리라”라고 다짐했다.
이후 한강은 2016년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 ‘맨부커상’에서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연방 이외 지역 작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2023년에는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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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54)이 선정됐다. 국내 작가로는 최초이고,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최초다. 노벨상 전체로 보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작가가 소설로 등단한 지 꼭 30년 만, 국내에 최초 근대 소설이 소개된 지 107년 만의 영예다. 그동안 시인 고은이 후보군으로 거명된 적이 있으나, 한강 작가가 50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거머쥐리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저녁 8시(한국시각)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의 작가로 한강을 소개하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9살 때 상경했다. 아버지가 유명 소설가 한승원(85)이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1993년 시로 등단했고, 이듬해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거듭 등단했다. 2005년 당시 첫 70년대생으로 수상한 이상문학상(단편 ‘몽고반점’)에 이어,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으며 국내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지는 오래다.
작가는 2016년 5월 ‘채식주의자’(2007)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본격 호명되기 시작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문학상, 올 3월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받았다. 메디치상 심사위원단은 당시 한강 작가를 두고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여겨진다”며 “작가의 책이 출판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된다”고 평가했다.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출간 이래,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희랍어 시간’(2011), ‘소년이 온다’(2014), ‘흰’(2016), ‘작별하지 않는다’(2021),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 ‘노랑무늬영원’(2012),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 등이 있다.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지독할 정도로 피해자 내지 주인공에 수렴한다. 작가는 2011년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고 쓴 바 있다. 지난해 메디치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도 “9년에 걸쳐 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하나의 짝인 셈인데, 너무 추웠다. 겨울에서 이젠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 역사적 소설은 그만 쓰겠다”며 “좀 더 개인적인, 생명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노벨문학상이 그 전환점에 선 그를 떠밀고 있다.
출처 : [영상] “너무 추웠던 9년”…봄으로 가는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이 왔다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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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처음이다. 사진은 작년 11월14일 열린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모습. (뉴스1DB)2024.10.10/뉴스1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꼽았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울림 깊은 표현력으로 국내외 독자와 평단에 호평받았다.
▲1970년 11월 27일 광주광역시 출생
▲1993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 사회' 시 당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 당선
▲1995년 소설집 '여수의 사랑' 출간
▲1998년 장편소설 '검은 사슴' 출간
▲2000년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출간
▲2000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 부문 수상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출간
▲2010년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출간
▲2010년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
▲2011년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출간
▲2012년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 출간
▲2013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출간
▲2014년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출간
▲2014년 만해문학상 수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2016년 장편소설 '흰' 출간
▲2016년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채식주의자')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
▲2021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2022년 대산문학상 수상
▲2023년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2024년 노벨문학상
뉴스1 정수영 기자
출처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연보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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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출생…1993년 작품 활동 시작
소설가 딸에서 세계적 작가로 거듭
2007년작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수상
전 세계 40여개국에 번역 판권 판매
스웨덴 한림원 "현대산문 혁신가" 평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영예를 안은 한강(54)은 다수의 베스트셀러작을 써낸 세계적인 작가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풍문여고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쳤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강3(ⓒ김병관)국내에서는 이상학을 비롯해 만해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꼽을 수 있다. 2007년 발간한 ‘채식주의자’로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2014년에 낸 ‘소년이 온다’로 2017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로 거듭났다.
‘채식주의자’에는 격렬한 꿈에 시달리다가 육식을 거부하게 된 이후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 편의 중편이 어우러진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특징인 작품으로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판매됐다.
한강은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한 문체로 호평받은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통하는 부커상을 한국 작가 중 최초로 수상했다.
한강의 다른 주요작으로는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40여개국에 번역 판권이 판매됐다.
(사진=한림원 트위터)
한강은 전 세계를 통틀어 여성 작가로는 역대 18번째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아시아 국적 작가로는 2012년 중국 모옌 이후 12년 만의 수상이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한화 약 14억3000만원)를 수여한다.
한강(사진=이데일리DB). 한강(c)백다흠
김현식 (ssik@edaily.co.kr)
출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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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사건’은 짐작대로 한국 사회에 강력하고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 ⓒ전예슬/문학동네 제공
▮지난해 스톡홀름에서 들은 이야기
현재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인 정영선 작가가 11일 들려준 이야기가 우선 흥미로웠다. “지난해 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었는데 그때 현지에서 한강 작가의 인지도와 인기가 아주 높은 현상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웨덴에서 한국 문학을 눈여겨보던 다수 전문가가 한강 작가 소설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더라. 큰 공연장에서 한강의 소설로 만든 연극도 공연했다. 하도 선명하게 체감해서 그분들께 되묻기까지 했다. 어떤 면에서 한강의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데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은가 하고. 아무튼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유럽 쪽 언론이 작가 한강의 수상 확률을 높게 점쳤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상, 에밀 기메상 등 권위 높은 유럽 문학상을 차근차근 받으며 세계 독자 곁으로 다가간 한강의 문학 행보를 이 시점에 곱씹게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을 여러 편 한국어로 번역한 독문학자 장희창 전 동의대 교수에게 전화해 소감과 생각을 물어보았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세계 문학 또는 문학 세계에서) 우리가 오랜 세월 ‘변방’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다가 ‘중심부’로 나아가서 좋다, 이런 뜻은 전혀 아니다. 작가 한강의 경우 세계 판도의 문학에서 이른바 ‘변방’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이야기와 성취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간 외국 독자에게 여전히 잘 알려지지는 않았던, 그들이 ‘풍문’으로 들었을 한국 문학의 속살이 제대로 세계에 알려질 계기를 마련한 점이 뜻깊다. K문화나 영화 등에서 한국 면모가 세계로 많이 나아갔지만, 문학 장르가 비로소 주목받는 건 의미가 또 다르다.”
그는 “이렇게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통이나 모순 등이 있는 그대로 감수성 예민한 작가의 솜씨를 통해 곧장 다른 나라 독자에게 더 알려지는 계기가 생긴 점이 참 좋다”고 덧붙였다.
한강 작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알라딘 제공
문학평론가인 황국명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다 같이 기뻐하고 크게 축하할 일이다. 한강 작가를 비롯해 우리 작가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 사회·역사적 차원에서 힘겹게 이 시대를 넘어가고 있는데 자기 자리를 지키며 쉽지 않은 창작 활동에 정진하는 작가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황 이사장은 이렇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한강 작가는 뚜렷한 주제의식이라고 할까, 왜 글을 써야 하는지 확신이 있는 작가로 느낀다. 작품세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가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가 이와 같은 인정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주위에 남 못지않게 역량과 의지를 갖춘 작가가 많다. 그분들께도 힘이 되는 성과다.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산작가회의 김요아킴 회장은 “한국 문학의 큰 영광이고 경사다. 한강 소설가는 역사의 상처 등 한국의 문화·역사 측면을 품었고 스웨덴한림원은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여서 더 큰 감회가 있다.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올해 받은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서점에는 한강 물결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서점가와 문화가에는 ‘한강 현상’이 불어닥쳤다.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알라딘 제공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이 배포한 보도자료와 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참고하면 한강의 작품은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11일 오후 “수상 후 반나절 정도가 지났음에도 교보문고에서만 6만 부, 예스24에서는 7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물량이 부족해 대부분 예약판매로 진행되고 있다”며 순식간에 한강 작가의 책 13만 여권이 판매됐다고 전했다. 교보문고는 11일 오전 실시간 베스트셀러 1위부터 9위까지 모두 한강 작품이 차지했다. 대부분 재고가 소진돼 예약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한강 작품의 대표로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가 톱3으로 꼽히는데, 예스24 관계자는 “너무 많이 팔려서 톱3밖에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전반적으로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일부 책은 재고가 떨어져 출판사의 증쇄를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벤트를 알리는 포스터. 예스24 제공
▮소설가 아버지는 기뻤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한국 문학계의 거장 한승원(85) 소설가는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세상이 꼭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 장흥 바닷가에 집필공간 ‘해산토굴’을 마련해 사는 한승원 작가는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강 작가가 전날 노벨문학상 발표 시점인 저녁 8시(한국시간) 직전 오후 7시 50분쯤 스웨덴 측의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딸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는 “비극은 어디다 내놔도 비극인데 그 비극을 정서적으로 서정적으로 아주 그윽하고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한 것”이라고 평했다.
1939년 장흥 태생인 한승원은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소설집 ‘새터말 사람들’, 시집 ‘열애일기’ ‘달 긷는 집’ 등 많은 작품을 냈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올해 초 자전적 장편소설 ‘사람의 길’를 펴냈다.
조봉권 기자
출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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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 Collected
Stockholm, Oct 10 (V7N)- South Korean author Han Kang has been awarded the prestigious 2024 Nobel Prize in Literature , as announced by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on Thursday at 5 pm (Bangladesh time) from Stockholm, Sweden.
The Nobel Committee praised Han Kang for her "profound poetic prose," recognizing her unique ability to explore themes of human fragility and the oppression of ordinary people in earlier eras. Her work has gained international acclaim for its emotional depth and philosophical insight, combining lyrical beauty with stark reality.
Han Kang’s literary contributions have made a significant impact worldwide, and this Nobel Prize solidifies her place among the greats of contemporary literature.
This recognition follows last year's award to Norwegian author and playwright Jon Fosse , who was honored for his work that vividly captures the unsaid and the unspoken, revealing human complexities in a subtle yet powerful manner.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 first awarded in 1901 to French poet and essayist Sully Prudhomme , has now honored 120 writers over the years. It remains one of the most prestigious global awards in literature.
The Nobel Prizes, established by Swedish scientist Alfred Nobel , are awarded annually in five categories: physics, chemistry, medicine, literature, and peace, with an additional economics prize added in 1969 . The announcements of the Nobel laureates began on October 7 with the prize in medicine, followed by physics and chemistry.
The Nobel Peace Prize , often regarded as one of the most anticipated awards, will be announced on October 11 .
END/RH/AJ
South Korean Writer Han Kang Wins 2024 Nobel Prize in Literature (voice7new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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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author Han Kang wins 2024 Nobel Prize in literature (youtube.com)
[신통방통] 소설가 한강, 한국 첫 '노벨 문학상'..."세상 발칵 뒤집어진 듯" (youtube.com)
Han Kang: South Korea’s first Nobel Prize for Literature • FRANCE 24 English (youtube.com)
First Reactions | Han Kang,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 Telephone interview (youtube.com)
'한국 첫 노벨문학상, 축하는 어떻게?'…한강에 직접 물어보니 / 연합뉴스 (Yonhapnews) (youtube.com)
Han Kang wins South Korea's first Nobel Prize in Literature • FRANCE 24 English (youtube.com)
[오늘 이 뉴스] 노벨상인데도 "회견 않는다" 아버지가 전한 이유 보니.. (2024.10.11/MBC뉴스) (youtube.com)
Nobel Prize In Literature Goes To South Korean Author Han Kang (youtube.com)
[스톡홀름 현지 영상]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심사위원들 반응보니!! (youtube.com)
총칼의 폭력 부순 '펜의 힘' "너에 대한 글로.." 눈물 [뉴스.zip/MBC뉴스]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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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서울 자하문동 집에서 책을 조금 읽고, 집 근처 산책을 조금 했을 뿐이었다. 그저 평화로운 하루였다. 다시 저녁이 되자 아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모자의, 지극히 일상적인 저녁이었다.
최근까지 꾸준히 문학 작품을 읽고 있었다. 그는 쓰는 사람 이전에 읽는 사람이었으니까.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루소의 『식물학 강의』…. 사이사이, 문예지들도 손 가는 대로 펴들기도 했다(김유태, 2024.10.11).
마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사무국장. 신화통신∙연합뉴스
저녁 식사를 막 끝낸 오후 7시50분쯤, 그의 휴대폰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미끄러지듯 밀려왔다. 마츠 말름(Mats Malm) 스웨덴 한림원 상임 사무국장이었다. 말름은 자신을 간단히 소개한 뒤,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음을 통보했다.
매우 놀랐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노벨문학상이라니. 함께 저녁을 먹었던 아들 역시 놀랐지만,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그에게도, 한국문학에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격류가 밀려오고 있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격식을 갖춘 발표문을 든 마츠 말름 사무국장은 잠시 앞을 보며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South Korean author HanKang(한국의 작가, 한강)!” 말름은 먼저 스웨덴어로 수상자를 발표하고 다시 영어로 호명한 뒤, 특유의 낮고 미끌미끌한 장어 같은 말투로 발표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국의 젊은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다.
#노벨위 “강렬한 시적 산문…현대 산문의 혁신가”
한강이 지난 10일 현지시간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8시) 한국 작가로선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 더구나 아시아 여성으로 첫 수상이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중 아시아 또는 아시아계는 한강 이전에 6명이 있었다. 인도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중국의 모옌, 은 아시아 국적자이고, 중국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싱젠,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민한 가즈오 이시구로.
마츠 말름은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안데르스 올손(Anders Olsson)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이 등장해 한강의 작가적 여정과 함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분석한 뒤, 한강을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상찬했다.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습니다.”(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
노벨상 위원회는 얼마 뒤 한강 작가와 가진 7분짜리 영어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 계정에 공개했다. 한강 작가는 공개된 영상 인터뷰에서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영상에는 “놀랐다(surprised)”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어떻게 축하할 계획이냐고 묻자, 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를 마시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임지우, 2024.10.11)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 시작”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한강의 수상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특히 한국 작가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나 아시아 첫 여성 작가의 수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AP통신은 이 소식을 선정 이유와 함께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국내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수상 소식에 전해지자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여야 의원들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시민들 역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주요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일제히 축하 성명을 내거나 글을 게재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누구보다 환영하고 기뻐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문학계였다. 그 동안 한국 문학은 세계문학으로 온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독자 감소와 저변 축소, 위상 추락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같은 구조와 상황을 타개하고 반전시킬 기회를 제공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인의 비범한 영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인정으로 이해됐다. 변방의 언어인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문학이 비로소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시인인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지난해부터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말씀드렸는데, 제 예상보다 더 빨랐다”며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을 굉장히 중요한 세계문학계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이제부터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 역시 “K팝과 영화, 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이번 수상은 작가의 개인적인 영예이자,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인정이다. 우리 모두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기뻐했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돼온 한국 문단의 거목 황석영 작가 역시 “놀랐다. 그리고 아주 기쁘다”며 축하의 말을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한강의 작품들이 억압과 폭력 아래 스러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깊은 상흔을 어루만지고 기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와 다른 어느 누군가의 작품에 주어지지 않아서 더욱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사지원, 2024.10.12)
심지어 대표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도 이튿날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고 한강 작가의 대표작과 작품 세계를 간략히 분석한 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단순히 대한민국 국적의 작가의 수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 본연의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분명한 몫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성에 대한 문학적 보상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의 토양을 일궈온 수많은 작가들의 땀이 스며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한국작가회의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을 담아 축하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 AP∙연합뉴스
#왜 찬쉐도 황석영도 아니고 한강이었을까
수상자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유력 후로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여러 온라인 베팅사이트에서 올해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는 장르를 뛰어넘는 작품을 쓰는 중국의 전위적 작가 찬쉐(残雪)나 호주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 등이 꼽혔다. 발표 직후, 서방의 많은 언론이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를 쏟아진 이유다.
한국 문학사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국 문단에는 이미 황석영이나 이문열 등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어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왜 한강이었을까. 왜 찬쉐도, 황석영도 아닌, 한강이었을까.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왜 황석영이 아니고 한강이었을까? 황석영 자신이 고은과 더불어 오랫동안 노벨상에 공을 들여온 것은, 좀 씁쓸하지만, 다 아는 사실이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황석영은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 ‘군림’해왔기 때문에 그가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더라도 하등 이상할 일이 없다. 하지만 확실히 황석영은 한강에 비해 낡았다. 그는 알다시피 정통 리얼리즘 작가다. 그리고 그만큼 근대소설의 문법에 충실한 작가라는 뜻이다. 근대소설은 ‘성숙한 남성성의 형식’이며 이미 그 여정을 알고 떠나는 주체의 여행이다. 황석영의 대표작인 「객지」나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들은 내일을 모르나, 작가는 그들이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방황은 사실은 계산된 방황. 여행이 끝날 줄 알고 떠나는 여행이다. 근작들인 『손님』과 『철도원 삼대』에 이르면 죽은 자들이 무시로 등장하여 산자들을 이끄는 ‘초현실’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은 ‘선험적 진리’가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19세기 이래 근대소설의 전형적 상황이다.”
김명인은 황석영이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 많은 문학적 성취를 이뤘기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더라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근대소설의 전형으로서 “한강에 비해 낡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기도와 애도의 정치학’이라 부를 수 있는 한강의 문학은, 근대소설의 ‘미달태’이지만 오히려 새롭고 탈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자 당대 주류 문학이라는 취지다.
“한강의 소설들은 이와 다르다. 그의 소설들에는 질문들은 무성하나 대답은 없다. 쓰고 있는 작가 역시 대답을 모른 채 질문의 형식으로 소설을 끌고 간다. 이것은 탈근대, 혹은 후기 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게다가 한강 소설들의 여성인물과 여성화자들은 오래도록 확고한 진리의 세계(근대의 가부장적 남성들의 세계)에서 밀려나 있던 주변인, 소수자, 타자들의 형상으로, 그들의 언어는 늘 진리에서 비껴난 형식으로 발화되고 전달된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육식의 세계에서 보장받지 못해 소멸해가는 소수자 여성의 존재성을 스스로 식물이 됨으로써 겨우 지켜낸다. 그리고 이처럼 주류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마멸되어가는 여성 등 소수자들의 존재성이 거대한 국가폭력을 만났을 때 어떻게 자기를 보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들이 바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과 애도의 정치학’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한강의 소설은 루카치가 말한 근대장편소설의 미달태이고, 기본적으로 루카치가 단편소설을 이야기할 때 겨우 인정해준 ‘서정시’적인 성격을 가진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가 하나의 장편 서사라기보다는 몇 개의 작은 서사들의 연쇄로 이어진다는 것,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사실과 몽환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는 것 등이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에 의해서는 보증될 수 없는 ‘미숙한 주체’들의 산문형식이다. 하지만 그 ‘미숙성’에서 새로운 언어가, 형식이, 사상이 탄생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소설은 이런 형식들이 대세를 이루고 그 대부분이 젊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이는 오래도록 민족 민중 계급 등으로 표상되어온 한국문학의 고질적 남근주의, 가부장주의에 대한 집단적 반란이라 할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이 어느덧 21세기 한국소설의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강은 1970년생으로 이러한 당대 주류 한국소설의 리더, 맏언니의 자리에 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우연인지 모르나, 한강의 이러한 문학적 위상을 귀신같이 알아채서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김명인 문학평론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문학에 지울 수 없는 영감을 주었지만, 이를 위해선 자신의 삶과 인생, 문학의 격류를 먼저 건너가야 했다. 그리하여 한강은 삶과 문학으로 흘러가야 했다. 온몸으로, 격류로.(→제2화에 계속)
인생이란, 세상이란 빛나는 인연의 연쇄인가. 그래서 알 수 없거나 어찌해볼 수 없는 것투성이인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미쳐 보지 못 할 뻔한 일만 해도 그렇다. 그가 뱃속에 들어가 있던 초여름, 어머니는 의사 장티푸스에 걸려서 끼니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했다.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는 뱃속 아이를 지우러 가기도 했다. 위험하다는 의사를 이야기를 듣고 돌아선 뒤 어머니가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아서 그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 했지.” 어렸을 때 그가 여러 어른들부터 가끔 들었던 이야기였다.
이 일을 두고, 한강은 “나에게 삶이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는 아슬아슬한 신기루처럼, 혹은 얇은 막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문학적 자서전」)고 적었다.
그러니까 찬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1970년 11월27일 광주시 중흥동의 기찻길 옆 셋집에서 국어 교사이자 소설가인 아버지 한승원과 어머니 임감오 사이에서 2남1녀의 딸로 태어났다. 한강의 한자 이름은 韓江. 딸의 탯줄을 철길 옆 뚝방에 묻은 한승원은 “가장 쉬운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취지에서 한강으로 지었다. 오빠는 소설집 『유령』 등을 발표한 소설가 규호(필명은 한동림)씨, 남동생은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강인씨.
한강(왼쪽 두번째)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 한승원 작가 제공.
#“물이 넘치듯” 가난 넘어선 책들
어릴 때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가난은 입고 먹고 사는 곳으로 먼저 오는 것. 초등학생 한강은 한 반 정원 60명 가운데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도시락을 싸간 3명 중 한 명이었다. 이사도 자주 다녔다. 중흥동 한옥에서, 삼각동으로, 다시 풍향동으로…. 잦은 이사 때문에 그는 광주 시절 초등학교를 무려 다섯 군데나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가난에 대해 서글픔이나 원한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히려 잘 웃는 아이였다고, 한강은 기억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가족의 울타리,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홉 살 즈음, 걸을 수 없을 만큼 고열이 오른 그를 업고 소아과로 달려가던 아버지의 땀 냄새,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던 아버지의 발소리, 햇빛이 밝은 어느 초여름 날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중흥동의 조그만 집에서 집안 청소를 하다가 벌어진 온 가족의 물장난…..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숨넘어가도록 웃으며 서로에게 물을 끼얹고, 그와 형제들 역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가서 소리 지르며 합세했다. 서로를 쫓아가고,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서로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모두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축제처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는 “온통 부서지고 튀어 오르고 흩어지는 게 햇빛인지 웃음소린지, 눈부신 물줄기, 물방울들인지 알 수 없었다”고 그림처럼 기억했다.
“우리 형제들은 바가지를 들고 작은 화단에 물을 주고, 어머니는 시멘트가 얇게 발라진 마당에 양동이로 물을 부어가며 비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호스로 커다란 적갈색 다라이에 물을 받고 있었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다 웃는가 싶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양동이를 들고 가 아버지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아버지는, 늘 지쳐 보이고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껄껄 웃으며 호스를 들고 어머니에게 물줄기를 쏘았다. 그 순간,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개벽이었다. 아! 어른들도 장난을 하는구나!”(「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집에는 늘 책이 많았다. “마치 물이 넘친 듯 쌓이고 꽂히고 널려” 있었다. 정리정돈 없이 책을 아무데나 내버려두는 분위기. 그는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들고, 읽으며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종이 피아노」).
한강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두운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독서란 상상으로 가는 직선 통로니까. 특히 열 살이 넘어서면서 자신의 생각에 빠지거나 상상을 부풀렸다고, 한승원은 전했다. “자기 세계 속에서 살고 공상을 많이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면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자기 방에서 혼자 누워 공상을 하곤 했다. 그것이 소설가를 만들어간 자양분이 된 것 같다.”(김재선, 2016.5.17)
#“탁탁, 타다닥…” 소설가 아버지
탁탁, 타다닥, 드르륵….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안방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잦은 이사에도 타자기 소리만은 꾸준하게 귀청을 때렸다. 자명종도 없이 매일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썼다. 오전 여덟 시까지. 아버지는 낮에는 국어교사로 생활했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글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 한승원은 1966년 단편소설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2년 뒤 다시 단편소설 「목선」으로 대한일보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등단 소설가였다. 특히 1972년 동인회 ‘소설문학’을 조직하는 광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역이었다.
어린 한강에게 아버지는 늘 잠이 부족해 피곤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새벽 집필을 마치고 토막잠을 붙이는 동안 그와 형제들은 조용조용히 생활해야 했다고, 한강은 기억했다.
“…우리 형제들이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을 때면, 어머니가 우리에게 수저 소리를 못내게 했다. 예민한 아버지가 숟가락 소리에 깰까봐 우리는 가만히 숟가락을 상에 놓고, 쉬쉬 귓속말을 얘기하며 가만이 밥을 털어 먹었다.”(「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왜 늘 저렇게 피곤하실까. 인생은 꼭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어린 한강은 새벽부터 일어나 쉼 없이 피곤하게 글을 쓰는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어렸고, 세상의 현실에 온전히 발을 내딛고 않을 때였으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아버지를 잘 이해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 늘 저렇게 피곤하실까. 인생은 꼭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막연히 그런 의문을, 때로는 불만을, 때로는 연민을 가졌을 뿐이었다.”(「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일찌감치 문학적 감수성에 눈을 떴다. 특히 한국문학과 선후배 작가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문예지를 읽었을 정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그는 선후배 작가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영감이었다고 고백했다.
“내가 어릴 때 옛(old) 작가들은 집단적인(collective) 존재였고, 그들은 삶에서 의미를 찾고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결연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의 영감이었다. 내게 영감이 된 몇몇 이름을 고른다는 것은 내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임지우, 2024.10.11.)
한강(왼쪽 두번째)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 한승원 작가 제공.
#타자기 소리를 타고 들어온 것들
1980년 1월, 초등학교 5학년생 한강과 가족은 서울 도봉구 수유리로 이사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하기 얼마 전이었다. 아버지는 글만 쓰면서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상경했다.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오히려 일찍 ‘철’이 들었다. 그래서 “반찬 투정을 한다거나, 군것질을 하기 위해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거나, 무슨 상표의 운동화를 신고 싶다며 조르는 일은 상상하지 못했다”(「종이 피아노」)고, 그는 기억했다.
딱 한 번 부모를 조른 일이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 시간에 리코더 불기를 좋아했던 그는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서울로 막 이사 온 5학년 때에는 견디기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피아노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아버지가 워드 프로세서를 들여놓았다. 타자기 소리가 집안에서 사라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여덟시까지 글을 썼다. 그는 이때 아버지로부터 쓰지 않는 타자기를 선물 받았다.
그는 타자기에 이면지를 넣고 자판을 두들겼다. 한 줄을 다 치면 땡, 하고 들려오는 소리의 감각. 탁탁, 타다닥, 드르륵, 땡. 마음 가는 대로 글자를 치는 것이 소일거리가 됐다. 소리를 타고 글자와, 단어와, 문장이…. 탁탁, 타다닥, 드르륵….
#광주 사진첩이 던져준 삶의 비의
아버지가 조문을 하러 광주에 갔다가 터미널에서 파는 사진첩 한 권을 사서 가져왔다. 사진첩 안에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이 담겨 있었다. 어른들끼리 사진첩을 돌려본 뒤, 아버지는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뒤집어 꽃아 놓았다.
어른들이 평소처럼 부엌에 모여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1982년 어느 날, 그는 몰래 그 책을 펼쳐 들었다. 각종 자상이나 총상으로 숨진 사람들이 참혹한 시신들,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끝없이 서 있는 사람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고, 그는 기억했다.
“제가 광주 사진첩을 처음 본 게 12살, 13살 즈음이었는데, 그 사진첩에서 봤던 참혹한 시신들의 사진, 총상자들을 위해서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끝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 2개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거든요. 인간이란 것이 이토록 참혹하게 폭력적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집에 머물지 않고 나와서 피를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양립할 수 없는 숙제 같았어요.”(정연욱. 2021.10.31.)
인간과 세상에 대한 비의가 비어져 나온 순간이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정말 다 죽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은 왜 다 죽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또 왜 아플까. 나는 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고민은 깊어졌다. 혹시 책 속에 의문과 고민에 대한 대답이 있지 않을까. 고민으로 진지하게 책을 읽었다. 뜻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럼에도 책에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을 주는 책은 없구나.
“다들 정말 훌륭하고, 나이 많은 분들이 쓰신 책이지만, 결론은 항상 이들도 나처럼 잘 모르고,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이들에게도 큰 고통이었단 거였어요. 우린 다 비슷하구나. 답은 없네.”(채널예스, 2011.12)
“영문과를 가도 소설을 쓸 수 있을 테니 기왕이면 영문과를 가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는 그에게 영문과 진학을 권했다. 평소 강하게 주장하지 않던 부모였다. 하지만 그는 국문학과를 고집했다. 그의 마음에는 이미 소설과 시, 문학이 진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그건 소망이자 어떤 다짐 같은 것이었고, 그것은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제3화에 계속)
한강이 연세대 재학 중 시창작론을 강의한 정현종 시인. 세계일보 자료사진
#“무당 같은 게 보인다”…시로, 소설의 세계로
“무슨 무당(기) 같은 게 보인다야.” 한강의 시를 낭송한 뒤, 강의를 맡고 있던 정 시인이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칭찬이었다. 어떤 알 수 없지만, 신들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정 시인은 당시를 부연해 들려주었다. “무슨 무당 같은 데가 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한강의 시가 신들린 것 같은 데가 있다고 내가 느낀 모양이어서 그 얘기를 해줬어요. 무당 같은 데가 있다, 그거 한 마디 한 것밖에 다른 건 또 없어요.”
그는 대학 2학년 때 정 시인의 시 창작론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학생들이 각자 써온 작품 가운데 두 편씩 골라 복사해 나눠주고 낭송하면서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정 시인이 첫 시간에 그의 시를 읽어 주고 촌평을 해줬다.
대학 시절, 한강은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됐다. 당시 자신의 마음을 그는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어느 순간 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꿈꾸는 소설이었다. 결국 내가 꿈꾸는 방식의 소설은 내가 쓸 수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며 쓰기 시작했다.”(「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사춘기 이후로 늘 질문이 많았어요. 나는 누구인가부터 왜 태어나서 왜 죽는 걸까, 고통은 왜 있나, 나는 뭐 할 수 있지, 인간이란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이 늘 괴로웠고요. 그걸 질문하는 방식이 글을 쓰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죠.”(신연선·오은, 2021. 9. 23)
#“잘 지내셨는지”…시 「편지」로 연세문화상 수상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 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편지」 부문)
졸업을 앞둔 1992년 가을, 대학 4학년생 한강은 일종의 대학문학상인 ‘연세문화상’의 시 부문에 응모했다. 시 「편지」는 삭막한 시절의 안부를 예의를 갖춰 묻는 편지와 그 편지 사이에 응고되지 않는 감정의 흔적을 절묘하게 배치한 작품이었다. 사진=연세대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편지」 부문)
한강은 시 「편지」로 연세문화상에 당선됐고, 당선작은 『연세춘추』 11월 23일자에 게재됐다. 심사를 담당했던 정 교수와 김사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들이 “굿판의 무당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한다고 평가했다.
“당선작 「편지」를 비롯해 한강의 작품들은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굿판의 무당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그러한 불과 같은 열정의 덩어리는 무슨 선명한 조각과 또 달리, 앞으로 빚어질 어떤 모습들이 풍부히 들어 있는 에너지로 보인다. 능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 잠재력이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고나린, 2024.10.12)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문청으로
“헬로!” 최인호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그는 사무실 안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오면서 모든 직원들에게 손을 들어 올리거나 인사했다. “경옥씨 헤어스타일이 바뀌었어요? 야, 오랜만이야, 최 차장!” 그러다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인 그에게 시선이 멈췄다. “춘향이가 들어왔네!”
책 『길 없는 길』의 마지막 교정을 보기 위해서 서울 동숭동 샘터사 사무실에 온 최인호는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말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땋고 앉아서 교정을 보던 수습사원 한강의 첫인상이 재미있었던지, 그가 퇴사할 때까지 춘향이라고 불렀다. 최인호는 언젠가 진실을 담은 눈으로 말하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대학을 졸업할 즈음 잡지 『샘터』를 발간하는 샘터사 출판부에 입사한 그는 1993년 신입사원으로서 교정 교열과 필자 관리 외에도 여러 잡다한 일을 했다. 아침 청소, 복사, 우체국과 은행 심부름 등등. 회사를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타는 일도.
낮에는 직원으로 일하고, 퇴근해선 잠을 줄여가며 읽고 썼다.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퇴근하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가파른 골목길을 뛰어올라가기도 했다. “늘 졸리고 피곤했지만, 대충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의 전언을 켜면 몸에 환한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그는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글을 썼다. 대외적으로는 시 쓰는 사람이었지만, 안으로는 몰래 소설을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한강의 등단작 「붉은 닻」이 담겨 있는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글을 쓰는 순간,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늦가을 어느 날, 그는 사무실 직원들과 영종도로 수련회에 갔다. 해질 무렵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펄에 녹슨 닻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그에게 들어왔다(김유태, 2024.10.11).
늦가을 황혼을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잘 쓸 수 있을까. 중간에 회의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는 게 너무나 절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매일 새벽 4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서 글을 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사무실 창으로 붉은 저녁 빛이 내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소설의 배경이 된 어두운 폐고 앞의 골목에서 밤늦도록 서성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의 순순한 충일감을 잊지 못한다. 세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어느 것도 욕심나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가진 글쓰기의 기쁨을 평생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생생하게, 절실하게 그리고 단단하게.”(「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습작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읽어 봐 달라고 한 번도 아버지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아버지 한승원 역시 딸에게 소설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승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흔히 아들이나 딸 한강의 습작시절에 아버지가 그들의 작품을 많이 지도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저에게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몰래 습작을 했던 것이죠.”
아버지 한승원은 딸 한강에게 소설에 대한 말은 아꼈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내 식으로 쓰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말을 아주 아낀다”며 “(딸 한강의) 소설을 읽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재미있더라’, 그렇게만 말한다”(김재선, 2016.5.17)고 말했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붉은 닻」으로 소설가로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서울의 겨울」 전문)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 「서울의 겨울」. 한강은 「서울의 겨울」를 비롯해 다섯 편의 시를 계간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어서 이듬해 초 단편소설 「붉은 닻」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등단작 「붉은 닻」은 아버지의 죽음과 이로 인해 남겨진 어머니와 동식과 동영 형제의 상실과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매일 술로 지새던 아버지는 한 짝의 신발로 돌아오고, 나머지 가족은 큰 상처를 입는다. 동영이 군에서 제대한 뒤 어느 날 어머니의 제안으로 주말여행을 나서고, 세 모자는 갯벌을 가득 채운 녹슨 붉은 닻들과 마주친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김병익과 소설가 서기원은 신문에 실린 심사평에서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아머지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윤수경, 2024.10.14)고 분석했다.
최인호 작가는 그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면서 비어 있던 주간실에서 신문에 실린 당선작을 다 읽은 뒤 그에게 작품에 대해 촌평해 주기도 했다. “참 어두운 이야기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이 어두운 가족이 바다로 소풍을 가는구나. 그게 나는 참 좋더라.”(「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아파서 쓴 것인지, 씀으로 해서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프면서 썼다. 밤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새벽은 늘 여지없었다. 어둠의 여지없음만큼이나 지독한 힘이었다.”
한강은 당선소감에서 작품을 쓰기 위해서 노력한 지난 시절을 이 같이 회고한 뒤, “무릎이 꺾인다 해도 그 꺾이는 무릎으로 다시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를 이제부터 배워야 하리라”고 다짐했다.
마침내 한강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무대에 올랐다. 등단 당시 그가 사용한 필명은 ‘한강현’. 하지만 다음 작품부터 그는 본명 한강을 사용했다. 마침내 ‘작가 한강’이 우리에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기 시작하던 순간이었다.(→제4화에 계속)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여수의 사랑」 첫 부분)
시적이고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 여는 한강의 단편소설 「여수의 사랑」은, 자신의 결벽증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떠난 월세방 동숙자 자흔을 찾아서 진저리나는 여수를 향해 떠나는 정선의 이야기다. 정선은 어릴 때 동생을 뿌리치고 달아나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심한 결벽증과 위경련을 겪고 있었다.
1996년 여수를 찾은 한강. EBS 영상 캡처.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몰라요. 잊을만하면 꼭 이렇게 되고 말아요……아무 이상이 없다는 군요. 아무 병도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요. 난 아파요. 정말로 아프단 말입니다.”(「여수의 사랑」)
동숙자였던 자흔 역시 여수발 기차에 실려와 서울역에 버려진 상처가 있었다. 조심성도 없고, 지저분하고, 불결했으며, 무엇보다 내일의 희망이 없었다. 정선은 결벽증이 있는 자신과 맞지 않아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 그런 자흔마저 떠난 것이다. 정선은 오래 전에 떠나온 진저리치는 고향 여수로 향한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여수의 사랑」 끝 부분)
그는 왜 여수를 배경으로 작품을 쓴 것일까. 소설집을 발간한 이듬해 방송사와 함께 한 문학기행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여수항과 남산동 등을 둘러보면서 그는 다음과 설명했다. “여수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수(麗水)가 아름다운 물이라 그래서 이 고장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여행자의 우수(旅愁)라는 한자를 써서 여수가 되기도 하는 그런 중의적인 것 때문에 여수를 택했어요.”(진상명, 2024.10.16)
#삶의 고단함과 방황 담은 초기작
「여수의 사랑」을 비롯해, 한강은 등단 이후 작품을 꾸준히 써나갔다. 작품들은 상실감과 파괴적인 체념, 눅눅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띈다. 대체로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살피면서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그렸다고, 그는 회고했다.
“첫 단편집 『여수의 사랑』에 묶인 소설들을 쓰던 시기에는 고단함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삶을 버티고, 떠나기를 몰래 꿈꾸고, 저마다 홀로 피로와 시련을 감당해내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였습니다.”(김유태, 2024.10.11)
“말로 다 옮기기 힘든 복잡한 감정.” 그는 출판사로부터 ‘저자 증정본’으로 자신의 첫 소설집 다섯 권을 받아들었을 때, 이 같은 감정이 들었다. 그는 저자증정본 다섯 권을 가방에 넣고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도저히 책을 꺼내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혼자서 일층 카페에 앉아 있었던 여름날 오후였다(「기억의 바깥」). 그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다.
“처음엔 발표한 소설들이 한 권 분량이 됐으니까 책이 나와야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작가의 말」을 쓰려니까 글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 두서없이 떠오르더라고요.”(손정숙, 1995.8.10.)
1995년 여름, 표제작 「여수의 사랑」과 등단작 「붉은 닻」을 비롯해 등단 이후 창작한 단편소설 6편을 엮어 자신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과 등단작 이외에도 「질주」, 「야간열차」, 「진달래 능선」, 「어둠의 사육제」가 담겨 있었다.
소설들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인물들 역시 이러저러한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인규(「질주」),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동생의 삶까지 살아내야 하는 동걸(「야간열차」), 백치 같은 여동생을 버리고 고향에서 도망친 정환(「진달래 능선」), 집과 고향을 버리고 고아처럼 떠돌며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영진과 인숙(「어둠의 사육제」) 등등….
손정숙은 기사에서 “소설에 나타난 뜻밖의 서글프고 어둡고 한스러운 정조에 깜짝 놀란다”며 “단정하면서도 처참한 문장들이 그물처럼 이어지면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한강 소설의 특징”(손정숙, 1995.8.10)이라고 보도했다.
#“장편은 질문에 끝까지 가는 것”
첫 소설집이 나온 이후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 샘터사를 그만두었다. 출판사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던 어느 토요일, 그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까지 점심도 거르고 두 시간 가까이 최인호 작가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강아, 소설을 맨 앞에 둬야 한다. 그러려면 착하게 살려고만 하면 안돼. 선의의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하나의 질문하는 방법이라면, 장편소설은 그에게 질문을 끝까지 완성하는 것. 답이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었다.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그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완성해 보는 그런 거예요. 질문의 끝에 어떻게든 도달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겨나고요. 그러면 다음 소설에`서 그 질문을 이어가고 그래요. 질문을 완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그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요.”(신연선·오은, 2021. 9. 23)
그 사이 전업으로 글만 쓰기 위해서 교직을 그만두고 상경했던 아버지 한승원과 어머니 임감오가 1997년 장흥 바닷가로 내려갔다. 1980년 상경했으니 17년 만의 귀향이었다. 아버지는 장흥의 집을 ‘해산토굴’이라고 명명하고 이곳에서 집필 생활을 이어갔다.
1998년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문학동네)을 발표했다. ‘검은 사슴’은 바윗돌을 씹어 먹고 산다는 가상의 동물. 지하를 벗어나는 것을 희망하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들에 의해 뿔과 이빨까지 모두 뽑혀 흔적도 없이 죽는 운명을 타고 났다. 소설은 바로 이 동물을 닮은 사람들,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눈에는 격렬한 눈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얼굴이 오래된 귤껍질 같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기도와 폐가 바싹 구운 싸구려 말과자처럼 꼬였다. 눈물은 눈에서 뿐 아니라 온 몸뚱이의 살에서 뻘뻘 흘러나왔다. 끈적끈적한 사지가 방파제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커다란 손 하나가 내 몸뚱이를 집어올린 것은 그때였다. 반항하는 내 뒤틀린 몸을 손은 차근차근 분해하기 시작했다. 물컹한 살갗을 비집고 흰 척추와 갈비뼈를 추려내는 손놀림은 사뭇 자연스러웠다. 눈도 귀도 코도 녹아버린 나에게 손의 주인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는 것이 이상했다.”(『검은 사슴』, 11쪽)
소설은 이 같은 인영의 흉몽으로 시작한다. 잡지사 기자 인영은 같은 건물에 있는 제약회사 직원 의선이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달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며칠 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찾아온 그녀를 자기 방에 머물게 해 준다. 인영의 대학 후배 명윤이 의선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의선은 세 번째 가출에서 종적을 감춘다. 명윤은 의선이 어렴풋이 기억해내던 ‘황곡’이란 곳으로 그녀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인영은 탄광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 종욱을 취재하러 출장을 떠나면서 시간을 쪼개서 의선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자랐고, 바로 그 어둠으로 인하여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그 신령한 푸른빛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나는 투정하거나 심심함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검은 사슴』, 321쪽)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발표한 뒤, 그는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 아이오와로 날아갔다. 3개월간 아이오와대학의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때 그는 주로 제3세계에서 온 시인과 소설가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한 달쯤 발길 닫는 대로 여행을 이어갔다. 이때의 경험을 담아서 그는 2003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펴냈다.
#“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동세대 작가와 다른 출발
“한강의 초기작들은, 인물들이 상처를 대면하고 그를 확인하는 순간에 결말을 맺는다. 인물들의 남은 삶은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한강은 이 과정을 소설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외면하려고만 하던 과거의 상처를 직시함으로써 이를 이겨낼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김선희, 2013.8)
소설집 『여수의 사랑』이나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비롯해 한강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주류를 이룬다. 상처의 근간에는 부모의 죽음이나 형제자매 죽음이 자리하고, 고아 의식을 지닌 인물도 자주 등장했다. 남성이 많고, 여성 인물들은 흔적만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사 역시 인물들이 상처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상처나 욕망을 대면하는 순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많았다.
한강의 이 같은 초기 작품 경향과 스타일은 같은 세대 작가들의 소설 경향과 상당히 달랐다. 즉,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빈곤이 교차한 19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이 대체로 가볍고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의 서사적 형식이 강한 반면, 한강은 가난하고 “깊은 물속에서 힘겹게 숨을 참는 듯한” 어두운 정서를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현실 인식을 담고 있고, 문장 역시 진중했다. 동시대 신세대 작가들보다는 오히려 고전 세대와 더 가까운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 김선희(2013.8)의 분석이다.
“한강은 그가 등단한 (19)90년대라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문단의 흐름과는 다르게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소설을 쓰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해체적이거나 영상적이거나 키치 스타일이 범람하는 1990년식 포스트모더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고전적인 스타일은 역설적으로 낯설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제5화에서 계속)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오월의 일이었다. 관리실 옆 화단의 모란은 잘린 혀 같은 꽃 이파리들을 뚝뚝 뱉어대고, 노인정 어귀의 보도블록에는 문드러진 흰 라일락꽃들이 행인들의 구두 밑창에 엉기던 봄날이었다.”(「내 여자의 열매」, 216쪽)
스물 여섯의 한강 작가. EBS다큐 영상 캡처
아내의 피멍 이야기로 시작하는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한강은 『창작과비평』 1997년 봄호에 발표했다. 바닷가 빈촌에서 성장한 아내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은 점점 소통하지 못한다. 자유를 꿈꾸던 아내는 마침내 침묵하고, 그러던 중 연두색 피멍이 생겨난다.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는 것만 좋아하던 아내는 급기야 점점 나무로 변해 가는데…. 소통 불능과 이해 불능으로 나무가 되는 존재! 그럼에도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나무가 되어가는 아내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화분에 심고 돌본다.
“아내는 베란다의 쇠창살을 향해서 무릎을 끓은 채 두 팔을 만세 부르듯 치켜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진초록색이었다. 푸르스름하던 얼굴은 상록활엽수의 잎처럼 반들반들했다. 시래기 같던 머리카락에는 싱그러운 들풀 줄기의 윤기가 흘렀다…. 그것을 아내의 가슴에 끼얹는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식물의 잎사귀처럼 파들거리며 살아났다. 다시 한 번 물을 받아와 아내의 머리에 끼얹었다. 춤추듯이 아내의 머리카락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내의 번득이는 초록빛 몸이 내 물세례 속에서 청신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체머리를 떨었다.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내 여자의 열매」, 233-234쪽)
#『채식주의자』의 원형, 「내 여자의 열매」
한강은 단편 「내 여자의 열매」를 기점으로 여성과 몸으로 주제의식을 확장하는 한편, 강렬한 환상성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과거의 상처보다는 현재 서로간의 몰이해와 소통 불능으로 고통을 겪는 인물들이 전면으로 부상한다.
“…몰이해와 소통 불능이 인물들을 괴롭게 한다. 현재 발 딛고 있는 시점에서 고통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은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 불능이다. 그리고 소설이 바로 이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김선희, 2013.8, 24쪽)
특히 「내 여자의 열매」는 나중에 한강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안긴 『채식주의자』의 씨앗, 원형이 된다. 그는 「내 여자의 열매」를 썼을 때 언젠가 이 작품을 변주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채식주의자』의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10년 전의 이른 봄,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10년 전의 내가 짐작했던 것과는 퍽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이 소설이 출발한 것은 그곳에서였다.”(『채식주의자』, 272쪽)
#여성과 몸, 환상성으로 확장
한강은 2000년 「내 여자의 열매」를 비롯해 그 동안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서 두 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를 출간했다. 『여수의 사랑』 이후 5년 만이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기 부처」, 「어느 날 그는」, 「붉은 꽃 속에서」,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철길을 흐르는 강」 8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소설들은 대체로 사랑과 소통에 실패한 여성과 인물들이 등장해서 갈망하던 세상과 소통하려다가 어긋나고 상처 입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때로 다쳤다. 집착했고 욕망했고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배웠고, 점점 낮아졌고 작아졌고, 그래서 그 가난한 마음으로 삶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깊숙이 들여다보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글쓰기는 나에게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숨 쉴 통로였다.”
아무튼, 자연스럽게 이 시기부터 그는 짓눌린 여성의 목소리를 표현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여성주의 작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동세대 작가들과 다른 작품 세계를 형성했던 한강은 언제, 어떤 계기로, 그리고 왜 가난과 고단함을 배경으로 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의 작품 세계에서 여성성과 몸, 환상성을 특징하는 작품 세계로 바뀌어 갔던 것일까. 기자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단편소설은 좀 더 개인적인 것입니다. 삶이 저라는 인간을 흔들거나 베고 지나가거나 지금 지나가고 있는 그 자리의 감각과 생각과 감정을 씁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전심전력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게 장편소설이라면, 단편은 개별 장들처럼 전체 구도 속에서 계획된 어떤 게 아니고, 저라는 인간이 여기까지 (때로는 기어서, 때로는 꿋꿋하게 걸어서, 때로는 어둠 속을 겨우 더듬어서) 살아온 기록입니다.”(김은경, 2018.11.30.)
한강은 2018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 영원』 세 권을 재출간하면서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단편소설은 좀 더 개인적이고, 지나가고 있는 자리의 감각과 생각, 감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설의 변화와 확장 저류에는 어떤 삶이나 감정이나 의식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혹시 결혼이나 임신 및 출산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만 해볼 뿐.
#『그대의 차가운 손』…“곡예사 같은 가면의 인간 묘파”
2002년, 그는 두 번째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을 발표했다. 실종된 조각가가 여성의 신체 석고 모형 제작에 집착하며 남긴 원고를 재현한 작품이다. 액자 소설 형식으로, 조각가 운형과 그가 만나는 여성 L과 E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액자의 안쪽을 이룬다.
“내가 남과 다르게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두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집요하게 의심했고, 남들이 모두 만족하는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남들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를 풍기고 만져지는 모든 것들의 안쪽을 꿰뚫어 보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그대의 차가운 손』, 83쪽)
운형은 가면 뒤에 숨은 진실을 확인하려는 욕구로 사람들의 신체 부위에 집요하게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다. 진실을 향한 운형의 욕구는 병적일 정도로 완강하다. 그러다가 운형은 유년 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폭식증과 비만증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 L의 희고 섬세한 손과, 어린 시절 육손이였던 과거에 시달리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E의 차갑고 예쁘지 않는 손을 보게 된다. 운형은 마침내 삶의 껍데기 위에서 곡예 하듯 탈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데.
소설에는 여러 손들이 나온다. 오발탄에 오른쪽 엄지와 검지손가락의 윗마디들을 잃어 불구가 된 외삼촌의 손부터, L의 성스러운 손, E의 차갑고 예쁘지 않는 손까지…. 과연 당신의 손은 어디에….
장경렬 서울대 교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해야 할 필연성이 잡히지 않거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작품 바깥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지적하면서도,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능력이나 유려한 문장이 돋보이고, 특히 무엇보다 성실하고 진지하다고 칭찬했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능력뿐만 아니라, 유려하고 명징한 문장 구사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요즈음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성실하고 진지한 작품이기도 하다.”(장경렬, 2002 여름, 25쪽)
특히 작품은 석고로 인체의 본을 떠내는 라이프캐스팅 작업을 통해서 인간의 가면성, 위선의 인간 본성을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작품이 “가면 쓴 곡예사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속성을 묘파했다고 평했다.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집착과 페르소나와 경험 사이의 유희, 조각가의 작업에서 신체를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 사이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삶은 심연 위에 아치형 시트를 얹은 것이고, 우리는 가면 쓴 곡예사처럼 그 위에서 살아간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제6화에 계속)
“키가 크고 눈이 맑은 여학생 Y가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 인쇄를 해오면 여백을 이용해 고치고, 그것을 다시 타이핑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의 반복은 인내를 요했다.”(「작가의 말」, 『채식주의자』, 273쪽)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을 출간한 뒤, 한강은 2002년 겨울부터 『채식주의자』의 연작이 되는 중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집필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연작소설의 앞에 들어가는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써야 했다. 손가락 관절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식에 함께 한 한승원-한강 부녀. 한승원 작가 제공
#볼펜으로 자판을 눌러 완성한 작품
한동안은 아예 작업 자체를 할 수도 없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은 손목으로 번져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 아파서 백지 한 장을 채울 수 없었다고, 힘겨웠던 당시를 그는 나중에 기억했다.
“그나마 손으로 쓸 수 있을 때가 좋아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성인식 컴퓨터? 손끝에 대면 전기 자극으로 작동되는 키보드를 주문 제작하는 일?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버렸다.”(「작가의 말」, 『채식주의자』, 273쪽)
혹시 양손에 볼펜을 거꾸로 잡고서 자판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상당 기간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 이상한 자세였지만 타이핑을 할 수 있었다. 볼펜을 잡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익숙해지자 비로소 혼자 힘으로 집필할 수 있었다. 마지막 중편 「나무 불꽃」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파일 명은 ‘고통 3부작’! 이때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동생은 말했다. “「진기명기」 같은 프로에 나가도 되겠다”고.
어느 새 작품을 쓰는 속도가 달라져 있었다. 등단 초기만 해도, 첫 창작집을 1년여 만에 써낼 정도로 부지런했는데…. 작품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썼던 것도 다시 보게 됐다. 결과물은 빨리 나오지 않았다. 글 쓰는 스타일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힘들었다…. 그 시기는 돌아보기도 싫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그걸 다시 소설로 써보면 어떠냐고 하는데, 못 쓸 것 같다.”(채널예스, 2010. 6)
그리하여 중편소설 「채식주의자」를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 중편소설 「몽고반점」을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에 먼저 발표했다. 마지막 중편 「나무 불꽃」은 1년이 지나서 이듬해 『문학 판』 겨울호에야 발표할 수 있었다.
#왜 영혜는 나무가 되려 했을까…현대의 ‘팜므 프라질’
연작의 첫 중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인 ‘나’의 시선으로 서술된 영혜 부부에 관한 이야기이고, 「몽고반점」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인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나무 불꽃」은 인혜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인혜와 영혜 자매의 이야기. 이야기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 구조로 연결돼 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채식주의자』, 8-9쪽)
영혜의 남편 시각으로 전개되는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로 변해간다고 믿는다. 월급쟁이 남편은 아내 영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한다. 언니의 집들이에서 영혜는 또 육식을 거부하고 못마땅한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손목을 긋는다. 영혜와 남편은 이혼한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채식주의자』, 72쪽)
특히 「채식주의자」에서 처음으로 이탤릭체가 고립되고 소외된 영예의 심리,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인다. 이후 여러 작품에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탤릭체가 사용된다.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의 시각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중편 「몽고반점」에서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 ‘나’는 처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처제에게 찾아가 비디오작품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처제의 몸에 보디페이팅을 한 뒤 자신의 몸에도 그림을 그려서 영혜와 교합한 뒤 작품 촬영을 하게 되는데….
“목까지 조명을 받아 캄캄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으나, 허벅지 안쪽을 붓끝이 스쳐갈 때 떨림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 미루어 예민하게 깨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채식주의자』, 127-128쪽)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연작의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나고, 영혜는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채식주의자』, 237쪽)
그는 마지막 중편 「나무 불꽃」을 발표한 뒤 1년이 지난 2007년 10월 세 편의 연작소설을 수정하고 묶어 연작소설 『채색주의자』(창비)를 출간했다.
#“극단 서사를 통해 인간성 질문 던지고 싶었다”
주인공 영혜는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지 못하고 남편과 형부, 언니의 관찰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는 때로는 불안하거나 병약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섬세하거나 상처받기 쉬워 보이기도 하고, 때론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무해한 존재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영혜의 모습을 ‘팜므 파탈(Femme Fatale)’과 대비되는 ‘팜므 프라질(Femme Fragile)’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배어나오는 부러질 듯 단단한 의지, 어딘지 모르게 병적인 아우라, 그리고 불안, 이런 여성의 초상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있다. 팜므 프라질…. 프라질이란 단어의 뜻이 명시하는 대로 부서지기 쉬운, 불안정한, 섬세한, 병약한, 상처받기 쉬운 특성들을 지닌 여성 이미지는 한강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여성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외형적인 특징들에 부합한다.”(정서희, 2012.2)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어떻게 보면 삶을 껴안는 것이 어려웠던, 그럼에도 삶을 껴안고자 몸부림치는 여자들, 그래서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강 작가의 설명이다.
“주인공 영혜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식물이 되려고 합니다. 이 극단적인 서사를 통해 저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려고 했습니다. 어려운 질문이지요. 인간에 대한 질문은 저에게 중요한 것이라서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면서 써 나가고 싶습니다.(폭력성에 대한 저항이 주요 메시지인가요) 인간의 폭력에 대한 고통이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우리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향하게 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쓴 후 더욱 그 고민을 더듬어 가게 됩니다.”(전승훈, 2016.5.18.)
독자들과 가진 낭송회에서도,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저에게는 삶을 껴안는 게 언제나 숙제 같은 일이에요. 『채식주의자』도 삶을 껴안는 걸 어려워하는 자매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토록 인간인 게 싫고, 그토록 삶을 껴안는 게 힘든 자매의 이야기. 다른 작품들 역시 삶을 껴안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우리가 정말 살 수 있다면, 살아가야만 한다면 결국은 다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연결되는 거죠.”(임수빈, 2016.6)
특히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강렬한 서사 이외에도, 극단적 채식이 불러오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형부와 처제의 근친이라는 금기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채식주의자』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작품 내용 분석과 평가를 덧붙였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벌어지는 폭력적인 결과를 묘사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그녀의 결정은 전혀 다른 다양한 반응에 부딪힙니다. 남편과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는 그녀의 행동을 강제로 거부하고, 비디오 아티스트인 시동생은 그녀의 수동적인 몸에 집착하며 에로틱하고 미학적으로 그녀를 착취합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언니는 그녀를 구출해 ‘정상적인’ 삶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영혜는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식물 왕국의 상징인 ‘불타는 나무’를 통해 정신병과 같은 상태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
#「이상문학상」 수상…차세대 한국문학 기수로
이미 한국소설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던 한강은 연작 소설을 집필해 차례로 발표하던 2005년, 중편 「몽고반점」으로 권위 있는 이상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심사위원 전원일치 평결. 심사위원이었던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기이한 소재와 특이한 인물 설정, 그리고 난(亂)한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또 다른 소설 읽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1970년대생 작가로서 처음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강은 차세대 한국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후 황순원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국내의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특히 아버지 한승원도 이미 1988년 같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기에 부녀가 동시에 수상했다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승원과 한강 부녀의 작품 세계는 이미 서로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 한승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 “저의 작품 세계가 리얼리즘 쪽에 더 뿌리를 두고, 불교적이고 신화적이며 전설적인 원형의 세계에 맞닿아 있다”면, 딸 한강의 그것은 “환상적인 쪽에 가깝고, 세계 작가적 감성을 얻고 있다”고 대비한 바 있다.
한강은 이미 2000년 전후 전통적 서사와 문법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물들은 주변 인물들과의 소통 불능에 몰이해와 고립의 상태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전 소설 경향과 변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주제나 제재는 여성과 몸으로 크게 확대됐고, 환상성을 적극 도입해 서사 효과도 높였다. 견고한 문장 대신, 단문이나 이텔릭체 문장 등 파편화되고 다양한 형식과 시적인 문장을 통해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를 내거나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데 본격 나선다(김선희, 2013.8). 한강은 어느 새 한국문학의 격류가 되고 있었다.(→제7화에 계속)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고등학교 때 짝꿍을 통해 알게 된 노래 「행진」, 시골에서 보낸 유년을 생각나게 하는 「엄마야 누나야」, 젊은 어머니가 수줍게 부르던 「짝사랑」, 옹이 박힌 나무 등걸 같은 아버지의 음성과 어울리는 「황성옛터」,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사회 초년병 시절을 버티게 해준 「You needed me」, 들을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리는 동물원의 「혜화동」, 방황하던 청년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던 「내 사랑 내 곁에」, 우울함으로 곤두박질치던 시절을 구해준 「Let it be」, 강원도행 밤기차의 굉음을 기억나게 하는 「500miles」, 삶을 축제로 만드는 마법의 목소리 「인생이여 고마워요」….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한강. KBS 유튜브 캡처.
2007년 1월, 한강은 자신의 삶을 가로지른 노래 22곡과, 이들 노래에 스민 기억이나 몰래 감춰둔 불빛 같은 이야기를 펼쳐놓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를 출간했다. 다채로운 노래 스물두 곡에 새겨진 이야기는 정갈하고 섬세한 문장에 실려 공명을 일으킬 지도. 고요하고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한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위안 받지 못 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표제곡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비롯해, 자신이 직접 작사 및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CD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첨부하기도 했다. 첨부된 CD에는 나무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밤과 낮이 바뀌는 경계의 떨림을 노래한 「새벽의 노래」, 아픔을 누르며 눈물을 감추며 살아가는 삶을 담담히 묘사한 「가만가만, 노래」 등의 노래가 담겨 있다.
소설가인 한강의 노래는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제3부 「나무 불꽃」을 한창 쓰던 어느 날, 그는 꿈에서 어떤 음악이 들렸고, 아침에도 그 음감과 잔상이 선명해서 이것을 노래로 만들었다. “노래가 쏟아져 내려왔다”는 그는, 이때 20곡 가까이 노래를 썼고, 피아니스트 친구의 도움으로 음반까지 내게 됐다.
# 서울예대에서 교직…“조급해 하지 마라”
그해 3월, 그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교수로 임용돼 후학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그의 말과 강의를 신뢰했다고 한다. 그가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는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는 것. 왜 학생들에게 조급해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는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좋은 욕심이긴 한데, 조급하면 힘이 드니까요. 좋은 작품으로 바로 등단하기보다는, 그런 작품을 서너 편 갖고 있을 때 등단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보다 재미있게 쓰는 게 좋은 거라고 얘기해줘요. 아이들에게 최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영향을 미치니까요.”(채널예스, 2011.12)
“식량 있어요?” 식사 시간을 놓친 그가 서울예대 행정실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순두부집에서 밥을 시켜서 시간을 놓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소설이나 시를 쓰려는 학생들은 그를 자주 찾아왔다. 강의실에서 면담을 하기도 했고, 연구실에서 그들을 맞기도 했다. 그는‘눈물의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말을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저 의자를 눈물의 의자라고 불렀어요.”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그는 새롭게 소설 창작을 가르칠 정용준에게 연구실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정용준, 2022.1/2).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용산 참사’였다. 당시 철거민들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은 철거와 재개발 보상 문제와 관련해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 중이었다. 경찰은 이날 새벽 특공대를 비롯해 대규모 경찰을 전격 투입해 해산에 나섰고, 이에 철거민과 전철연 회원들이 화염병과 투석기 등으로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사건이 발생했다.
비극적인 용산참사가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사건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한동안 “공권력의 과잉 진입”이라는 주장과 “불법 과격시위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라는 주장이 충돌했다. 하지만 나중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이 과잉진압을 했음을 인정했고,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와 대한민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역시 수사기관의 무리한 진압과 편파수사 등을 지적하면서 철거민과 유족 등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적으로 권고했다.
“저거 광주잖아!” TV를 통해서 용산참사 속보를 지켜보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스스로 놀란 뒤 생각했다. 언젠가 광주가 일화로 들어 있는 소설을 쓸 거야!(정용준, 2022.1/2) 『소년이 온다』의 씨 하나가 뿌려진 순간이었다.
#슬럼프 끝에 탄생한 『바람이 분다, 가라』
하나의 장편소설이 빠져나간 뒤 새 장편이 심장으로 들어오기 전까지가 늘 위기였다. 새 장편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는 부지런히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났다. 한 소설에서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순간이 늘 힘들었다고, 한강은 고백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가 힘들 때가 있다…. 쓰지 않을 때는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이 있다. 장편일 때는 빠져나간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많이 흔들릴 수가 있다.”(엄지혜, 2014.6)
어느 날, 우연히 한 의사로부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사람을 위한 인공호흡기가 때로는 환자에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바 ‘호흡 충돌(breath fighting)’. 호흡 충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숨과 숨이 싸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나중에 말했다.
“숨을 쉴 수 없었던 사람이 인공호흡기가 넣어주는 바람에 의지하다가 갑자기 숨을 쉬게 되고, 그의 호흡이 인공호흡기의 숨과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환자는 숨을 마시는데 인공호흡기는 공기를 빨아들이면 오히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니까 잘 살펴서 호흡기를 떼어줘야 한다는 건데,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숨과 싸우고 있는 어떤 사람이 떠올랐어요.”(정용준, 2022.1/2)
장편을 시작해 일 년 정도 쓰다가,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이때 서울 남재천에서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생각했다. 정말 이제 못 쓰게 되었구나. 다시 못 볼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애틋한 생각도 들었다. 극심한 슬럼프였다고, 그는 『바람이 분다, 가라』의 「작가의 말」에서 적었다. 암시적으로.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 바람과 얼음, 붉게 튼 주먹의 계절.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 때로 이 소설을 내려놓고 서성였던 시간, 뒤척였던 시간, 어떻게든 부숴야 할 것을 부수며 나아가려던 시간들을 이제는 돌아보지 말아야겠다.”(389쪽)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써봐야겠다. 무엇을 써야지 하고 쓰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 정도만 생각하면서 써나갔다. 상념을 담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덧그려져 소설이 조금씩 만들어져 갔다(채널예스, 2010.6).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소설과 함께 살았다. 짧게는 1, 2년, 길게는 4, 5년. 소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늘 소설과 인물을 생각하고, 마음으로라도 소설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었다. 소설과, 인물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서 쓰려고 했다. 이는 자연히 소설을 삶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소설에 과격하게 기울어져 있지만, 오히려 균형 잡힌 상태라는 듯. 기울어진 중심이 잡혀서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듯. 그는 그렇게 소설을 살아서, 소설을 써나갔다.
“2년여 동안은 이 소설하고 살면 되니까, 그런 상태가 좋아요. 오히려 이 소설에서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사이가 힘든 것 같아요. (스스로 의지하기보다,) 제 모든 걸 소설에 기울여, 늘 생각하고 있는 그런 상태가 좋아요. 그게 균형 잡힌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삶에 소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나는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 그런 상태.”(채널예스, 2011.12) 그것은 어쩌면 글쓰기 이외의 모든 일을 무나 무에 비슷하게 돌리는 일이기도 했다.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에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기억의 바깥」)
#“인간의 폭력성에도 살아내야 한다”
슬럼프를 가까스로 통과한 뒤, 일 년 반 동안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소설 중반까지 연재했고, 그 후 다시 일 년 반쯤 고치며 다시 써나갔다. 예정보다 더디게 2010년 2월에야 네 번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를 발표할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채널예스, 2010.6)고, 그는 기억했다.
“두 번째로 주문한 커피가 식지 전에 나는 머그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가슴이 뜨겁게 덥혀갔다. 유리잔에 담긴 찬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물기 묻은 손을 주먹 쥐어보았다. 그러자 싸우기 위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9쪽)
소설은 화가 인주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후 친구 정희가 인주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조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결혼한 뒤 뱃속에서 세 아이를 잃었고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했던 정희는, 자신의 친구이자 화가인 인주가 죽자 인주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평론가 석원은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그녀의 죽음을 신화화하려고 한다. 친구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정희와, 이를 막으려는 석원. 결국 자신까지 죽음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음모에 맞서 정희는 끝까지 진실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빗발이 차창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끈덕지게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차체가 거세게 흔들린다. 나는 숨을 토한다. 쒜엑 쒜엑, 거친 숨이 허파를 찢으며 울린다. 두 눈을 흡뜬다. 고개를 비튼다. 빗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울부짖는 사이렌이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부풀어 오른 팔로 물속에서 파란 돌을 건져 올린다.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386-387쪽)
소설에는 중요한 현대 과학 이론인 ‘빅뱅 이론’을 비롯해 과학 내용이 자주, 적잖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한 한강의 설명이다.
“빅뱅 이론을 단순히 소도구로 보지 않았다. 소설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학 얘기들에 매료되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흥미로웠다. 내가 인간인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 경외감, 전율을 딛고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채널예스, 2010.6)
그는 언제 어떻게 빅뱅 이론을 비롯해 소설에 나오는 여러 과학 이론, 특히 현대 천체물리학에 대한 개념이나 지식을 쌓았던 것일까. 20대 후반 불교에 빠져 있던 그는 삼십대 후반에 한동안 천체물리학 책을 읽었다고,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십대 후반에는 불교에 깊이 빠져 있다가 나왔고, 삼십대 후반에는 한동안 천체물리학 책을 읽었어요.”(김연수, 2014.9)
그는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소설에서 가장 그리고 싶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자연과학 책을 읽으면서, 오랜 의문이었던 인간의 폭력성과 함께 앞서 말한 신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불 속을 기어 나오면서 깨끗한 공기 쪽으로 배를 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살아내야 한다’는 대답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김연수, 2014.9)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 위원장은 “좀 더 서사에 기반한 책”이라며 “우정과 예술에 관한 크고 복잡한 소설로, 슬픔과 변화에 대한 갈망을 강렬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희랍어 시간』…“삶과 사람은 가장 연한 부문에서”
지금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인데, 좀 더 크게 생각해서 말을 잃은 사람에 대해 쓰면 어떨까?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세계를 잃어가는 사람 아닐까…. 빛을 잃어가는 사람과, 말을 잃어가는 사람. 그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자…. 계속 살아야 하는 거라면, 그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전작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쓰는 동안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던 한강. 그는 지금까지 어떤 질문이 생겼을 때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서 뚫고 나왔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말을 잃어가는 사람이 떠오르자 갑자기 여러 상상으로 뻗어나갔다. 맞다, 몇 년 전 희랍어 철학하는 분도 만났었지….(채널예스, 2011.12)
2011년 11월, 한강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그린 장편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발표했다. 소설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와,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가족을 모두 독일에 두고 십 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지만, 점점 눈이 멀고 있고 있으며 종래에 실명될 것을 알고 있다.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는 이혼 과정에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갑작스러운 실어증으로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된 상태다.
“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더듬더듬 커튼을 걷고, 유리창을 열고, 방충망 너머로 어두운 하늘을 봐야 하니까, 오직 상상 속에서 얇은 점퍼를 걸쳐 입고 문 밖으로 걸어 나갈 테니까. 캄캄한 보도블록들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나아갈 테니까. 어둠의 피륙이 낱낱의 파르스름한 실이 되어 내 몸을, 이 도시를 휘감는 광경을 볼 테니까. 안경을 닦아 쓰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짧은 파란 빛에 얼굴을 담글 테니까. 믿을 수 있겠니. 그 생각만으로 나는 가슴이 떨려.”(83-84쪽)
그는 소설의 문장을 최대한 희랍어를 닮도록 노력했다.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최대한 정확하게.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아끼고 꾹꾹 누르듯이. 함축적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려고 하는 말, 쓰려고 하는 분위기를 정확하게 옮기려고 하다 보니 행간을 띄우기도 하고, 이탤릭체로 기울이기도 했어요. 정황과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려는 실험적인 시도였어요.”(채널예스, 2011.12)
소설이란 결국 질문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한강이 이 작품에서 한 질문은 무엇일까. 과연 이번 소설을 통해서 답은 찾은 것일까.
“인간의 연한 부분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고 할까요. 두 인물이 구원 없는 세상을 살았잖아요. 서로 마주치는 순간, 소통할 때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꺼내잖아요. 손바닥에 글씨를 써준다든지, 서로 침묵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인간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그 연한 부분에서 삶을 시작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채널예스, 2011.12)
나보령 서울과학기술대 초빙교수는 리뷰에서 “타인의 취약성과 나의 취약성이 다를지라도,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눌 수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그와 같은 고통과 취약성이 역으로 불완전한 언어의 한계를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을 결속시키는 장면들을 한강은 공들여 서사화한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시와 소설의 장르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언어적 실험 역시 주목할 만하다”(2023.6)고 평했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취약한 두 개인 간의 특별한 관계를 매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며 “이 책은 상실과 친밀감, 언어의 궁극적인 조건에 대한 아름다운 명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련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말의 힘을 잃은 한 젊은 여성이 시력을 잃어가는 고대 그리스어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각자의 결함에서 비롯된 애틋한 사랑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회복하는 인간」…“고통과 슬픔에서 등 돌리지 않겠다”
어느 날 뜸을 뜨다가 몸에 화상을 입었다. 화상 입은 자리를 한동안 방치해서 옅은 회색으로 조직이 상해 있었다. 한 달 남짓 치료를 해야 했다. 갑자기 다시 피부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피가 흐르고 통증이 느껴졌다. 아, 회복이란 이런 것인가(김연수, 2014.9). 갑자기 가슴에서 불이 확 일었고, 그는 그 불을 확 잡아당겼다. 온 힘으로. 가슴에서 불이 다 꺼질 때까지.
2011년 봄, 그는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 「회복하는 인간」을 『작가세계』 봄호에 발표했다. 언니의 죽음을 겪은 ‘당신’이 발목에 화상을 입고 그것이 아물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서른을 넘긴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는 ‘당신’은 일주일 전 언니를 잃는다. 당신은 언니의 장지에서 발목을 삐끗하고 다친 부위에 뜸을 뜨다가 화상을 입지만 한동안 방치한다. 같이 일하는 피디가 이를 보고서 작은 화상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며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가라고 조언한다. 당신은 치료를 받으면서 발목 화상에서 조금씩 회복해 간다.
“이 따위, 라고 중얼거리며 당신은 축축한 흙 위에 누워 있다. 회백색 구멍 속의 상처 따위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흙이 들어간 오른쪽 눈이 쓰라리다.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당신은 수차례 두 눈을 깜박이며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64-65쪽)
언니를 잃었던 ‘당신’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왜 자신이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들려준다.
“회복이라는 것에는 결별과 배반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회복되기 전의 고통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은 자신이 회복되는 게, 회복되지 않은 채로 죽었고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언니에 대한 결별이자 배반이라고 느껴요.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마지막 기도는 죽은 언니와 함께하고자 하는, 자신의 과오와 고통과 슬픔에서 영원히 등을 돌리지 않고자 하는 기도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 기도가 역설적으로 회복을 향하는 기도가 돼요. 자신을 허물고 자신 밖으로 간절하게 빠져나가고자 하는 자의 기도라는 점에서요.”(김연수, 2014.9)
인간이 상처를 입거나 이 상처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러니까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인생에서 신은 없는 것일까. 한강의 이야기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을 믿어본 적이 없어요. 믿고 의지하려고 애써본 적도 있는데, 잘 안되었어요. 이십대 후반에는 불교에 깊이 빠져 있다가 나왔고, 삼십대 후반에는 한동안 천체물리학 책을 읽었어요. 신적인 것, 신성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세계에 우리를 구원해줄 신은 없어요. 인간은 스스로 병들고 스스로 회복하는 존재라고 믿어요.”(김연수, 2014.9)
올슨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회복하는 인간」에 대해 “치유를 거부하는 다리 궤양과 주인공과 죽은 여동생 사이의 고통스러운 관계가 관련된다”며 “진정한 회복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며, 고통은 일시적인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본적인 실존적 경험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노랑은 대낮의 태양”…『노랑무늬영원』
2012년 초, 그는 단편 「에우로파」를 『문예중앙』 봄호에 발표했다. 「에우로파」는 여성성이 가득한 남자 ‘나’의 이야기다. ‘나’는 대학 시절 만난 인아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 왔다. 인아를 사랑하기도 하는 나는, 밤이면 화장을 하고 인아와 함께 거리를 산책한다. 나의 속에 있는 여성성이 인아를 동경하지만, 또한 나의 남성성은 인아를 사랑하고 있다. 에우로파의 뜻은 목성의 ‘달’.
올슨 위원장은 「에우로파」에 대해 “여자로 가면을 쓴 남자 서술자가 불가능한 결혼 생활에서 헤어진 수수께끼의 여자에게 이끌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내러티브 자아는 침묵을 지킨다. 여기에는 성취나 속죄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10월 단편 「회복하는 인간」과 「에우로파」를 비롯해 그 동안 쓰고 발표한 중단편을 묶은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12년만의 소설집이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노랑무늬영원」과 「회복하는 인간」, 「에우로파」를 비롯해 「밝아지기 전에」, 「훈자」, 「파란 돌」,「왼손」 7편이 담겨 있다.
특히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은 수록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문학동네』 2003년 봄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운전 도중 도로에 뛰어든 개를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후유증으로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면서 화가라는 직업도, 남편의 사랑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우연히 친구 집에서 애들이 기르는 도마뱀을 보게 되는데, 사고로 잘려나간 도마뱀의 앞발에 작지만 새 발이 돋아나고 있었다. 언젠가 노랑색으로 작업을 하던 노화가의 말을 떠올린다.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 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양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버린, 가장 생생한 빛의 입자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 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293쪽)(→제8화에 계속)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피 흐르는 눈 4」 부문)
보통 소설과 소설을 쓸 사이에 시를 썼지만, 소설을 집필하는 도중에도 잠깐 시가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쓸 때 「피 흐르는 눈」 연작이, 현대사의 슬픔으로 대선회한 장편 『소년이 온다』를 집필 중에는 「저녁의 소묘」 연작이 각각 들어왔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저녁의 소묘 4」 부문)
2013년 11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던 한강은 1993년 등단 이후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서 자신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를 발표했다. 시집에는 등단작 「서울의 겨울 12」과 20대 때에 주로 쓴 시편들(제5부)뿐만 아니라, 생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발견해낸 어떤 빛나는 순간을 담아낸 시편들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소설 사이에서 비어져 나온 시들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는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놓고, 새롭게 한 요리도 올려놓는다. 마지막 흰 공기에 밥을 담는다. 공기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 공기 속으로 올라서는 어느 새 사라진다…. 순간, 각성한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시집에는 여러 종류의 연작시가 담겨 있다. 「저녁의 소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등등. 이들 연작 시편 가운데 12편으로 이뤄진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시가 가장 인상적이다. 인류 보편의 고통과 비통도, 그 슬픔에 휩싸인 곡진한 공감과 연민도.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거울 저편의 겨울」 부분)
많은 시편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고통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해설에서 “그녀의 소설 속 고통 받는 인물들의 독백인 듯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했다.
#삶의 오랜 비의 “인간의 폭력성”
삶의 눈부신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했다. 인간의 깨끗하고 연한 지점을 응시하는 밝은 소설을. 유년 시절을 비롯해 살아온 삶 속에 들어가서 찬란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앞부분 50매 정도를 썼는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인간을 믿는가. 인간을 껴안을 수 있는가. 자주 의심이 들었다. 무엇인가 그의 앞을 강하게 막아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럴까?
몸으로 소설이 들어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을.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의식과 기억과 감정의 저류 안에서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광주였다. 광주의 기억이 웅크리고 있었다(엄지혜, 2014.6).
오랜 시간 몸의 저류에 잠겨 있던 기억과 감정의 단상이 몰려왔다. 5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 온 그와 가족. 명절 때마다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렸던 친척들. 사건 이년 뒤에야 보게 된 아버지가 구해온 광주 사진첩….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성을 가진 인간…. 그의 몸과 기억에 오랫동안 새겨져 있었던 비의였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제 안에 아직도 이렇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인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5월 광주를 결국은 뚫고 나아가야 되는 거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글쓰기 외에는 그것을 뚫고 나갈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던 거예요.”(정연욱, 2021.10.31)
처음에는 광주 이야기를 전면으로 내세워서 쓸 생각이 아니라, 배경의 소리로만 쓰려고 생각했다. 이미 용산 참사 때부터 광주가 일화로 들어간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처음에는 광주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가 겹을 이루는 소설을 염두에 두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광주 이야기만 쓰면 힘들 것 같아서, 다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배음으로서 광주를 경험한 사람을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그렇게 광주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겹을 이루는 형태로 제목을 짓고 장도 배열해봤어요.”(김연수, 2014.9)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를 위해서 광주를 찾았다. 눈이 쏟아진 날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 앞에 섰다. 수많은 묘지가, 오월의 영령들이 그를 맞는 것 같았다. 천천히 묘지를 둘러보았다. 묘지를 모두 둘러본 뒤 묘지를 등지고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심장에 손을 얹고 있었다.
망월동 묘지를 등지고 걸어 나오던 2012년 12월 그날, 그는 광주가 일화로 들어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바꿨다. 광주가 일화로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전부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기로 다짐했다. 전부 광주 이야기만으로 장편을 쓸 거야, 써야 해!(김연수, 2014.9; 정용준, 2022.1/2)
1980년 5월의 그들과 같이 느끼겠어. 내가 느낀 것을 문장 안에 넣는 것까지만 할 거야. 그는 겨울 여행 일정이나 다른 계획 모두 취소했다. 증언록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서”…달려오는 소년
다행히 이미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증언을 정리해 놔서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증언집을 읽었다. 증언자는 어느 새 900명을 넘어섰다. 파편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경험을 무작정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때 몇 살이었고, 어떤 동네의 천변 길을 걷고 있었는데, 공수부대가 계단으로 내려왔고, 성경책을 든 젊은 부부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들을 둘러싸더니 곤봉으로 때리기 시작했고…(정용준, 2022.1/2).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나중에 보니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은 페이지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개개인의 경험과 이야기를 계속 읽고 따라가니 어느 순간 사건과 일의 전체가, 거대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게 느껴졌다. 그 다음에는 5월 광주의 통사와 개론서를 읽어나갔다. 1980년 5월 광주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심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비롯해 5월 광주를 다룬 소설도 읽었다. 기록과 소설이 이미 많이 나와 있어서 더 보탤 것이 없어 보였다.
“결국 저에게는 같이 겪자는 마음만 남았어요. 또 하나, 초를 밝히는 것. 이 소설 전체가 초를 밝히는 일이 됐으면 해서 제1장에서 동호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초를 밝히고, 에필로그에서 ‘나’가 동호랑 소년들을 위해 초를 밝혔어요. 그러니까 같이 고통을 느끼는 것, 초를 밝히는 것, 그 두 가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김연수, 2014.9)
사진첩도 다시 보고, 영상도 다시 봤다. 인간의 폭력이 너무 끔찍했고, 희생자들이 안타까웠다. 소설을 쓰는 내내 악몽을 자주 꾸었다. 너무 힘들었다.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위기가 닥쳐왔다. 이 소설 못 쓸 것 같아.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부터 수면의 질이 오랫동안 나빴어요. 악몽을 자주 꾸고 몇 분 간격으로 꿈 때문에 깨고, 거의 못자고, 집 안에 어떤 그림자도 있는 게 싫어서 모든 곳에 불을 켜기도 하고요.”(정용준, 2022.1/2)
석 달째 희망 없이 증언록과 사진첩, 영상 등 각종 자료에 파묻혀 살던 그때, 그는 한 자료를 만나게 됐다.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5월 27일 새벽, 저항의 마지막 보루인 전남도청으로 다시 들어간 야학교사 박용준의 일기였다. 그는 생전 마지막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행위자로 나선 존엄한 이들이었구나. 아, 그들이 거기에 떠나지 않고 모인 것은 타인의 고통 때문이었구나.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에서, 그는 문득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는 동호, 그들의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는 동호, 도청에 남기로 결심하는 동호, 그리하여 진압 과정에서 죽음을 피하지 못한 동호…. 그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넋으로라도 동호가 걸어오는 소설이라면….
“그(박용준) 일기를 보고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은 이 소설에서는 가장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때 떠오른 사람이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였어요. 이 동호가 제1장에서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고 그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흰 천을 덮어드리고, 그렇게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80년 5월에서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정연욱, 2021.10.31)
이때 광주에서 살고 있던 동생의 집을 자주 찾았다. 글을 쓰다 잘 안 써지면 동생을 찾아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묘지도 몇 번. 소설을 쓰면서 1년 넘게 작업실을 써왔다. 아주 작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작고 조용해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혔다.
“1년 반 정도 써온 작업실이 있는데, 아주 작고 조용한 공간이에요. 이 공간이 있어서 최근작인 『소년이 온다』를 쓸 수 있었어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거나 의식해야 했다면 1년 동안 그렇게 몰두해서 완성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에게 서재란, ‘일하는 방’이라고 소박하게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채널예스, 2014.9)
#현대사로 대선회…『소년이 온다』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를 접하고서, 그는 다시 소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고민하면서 배열을 구성했다. 오래 생각해서 그런지 결정이 난 건 한 순간이었다.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자. 먼저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그는 날마다 소설 속의 사람이 되려고 했다. 동호가 정대에게, 정대가 정미에게, 은숙은 동호에게, 진수는 동호와 영재에게, 선주는 동호와 성희에게….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 몸을 기울이고 자신의 고통으로 삼는 사람들의 몸이 되고 목소리가 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매일 울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울었다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인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특히 2장을 쓸 때는 조그마한 작업실을 구했는데, 거기서 한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아무것도 못 하고 몇 시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죠.”(정연욱, 2021.10.31)
여려 개의 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각 장의 화자와 시점이 다르게 했다. 초고 집필을 마친 그는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창비의 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했다. 연재를 마치고 적지 않은 곳을 다시 고쳐 썼다. 특히 소설의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인물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재하고 나서 많이 고쳤다.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편집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인물에 많이 다가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더 가깝게 다가갈 때까지 쓰고 싶었고 많이 노력했다.”(엄지혜, 2014.6)
2014년 5월, 그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1980년 광주를 재조명한 장편 『소년이 온다』(창비)를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1980년 광주에 대한 증언 소설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애도의 소설이 되기를 희망했다고, 그는 말했다.
“부담감보다, 광주를 다뤘다고 하니 뭔가를 고발하는 소설일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물론 증언하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증언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서 애도하고 응시하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했다…. 『소년이 온다』는 내가 쓴 소설 같지가 않고 소년이 쓴 것 같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소년이 대신 쓰고, 다른 사람이 또 오면 이어서 쓰고. 그렇게 6장까지 쓰다가 7장(에필로그)만 내가 건네받은 느낌이다.”(엄지혜, 2014.6)
“비가 올 것 같아.” 소설은 어둠 속에서 먼저 음성이 들리고, 이어서 ‘너’를 호명한 뒤 이야기가 시작한다. 친구 정대가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를 찾아 나섰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도와주던 동호, 유령이 된 정대, 불온서적을 찍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힌 뒤 살아남아 치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은숙, 시민군 김진수의 죽음에 대한 증언을 해줄 것을 부탁받은 1990년대의 나, 광주에서의 일을 증언해주길 요청받는 2000년대의 선주, 동호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동호의 어머니….
왜 ‘너’ 동호를 불러내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작가는 왜 너라는 2인칭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일까.
“3인칭과 달리 2인칭은 오직 한 사람, 내가 부르는 바로 그 사람이잖아요.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 사람에게 ‘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인데요. 동호는 죽은 소년이지만, 부르면 거기 어둠으로부터 떠올라서 존재하게 돼요. 호명하고 또 호명하고 현재 속에 가까스로 떠오르는 ‘너’예요. 그렇게 처음부터 2인칭으로, ‘너’가 동호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들이 바뀌면서 저마다 동호를 ‘너’라고 불러냄으로써, 동호의 마지막 시간이 파편들처럼 불완전하게 맞춰지도록 하고 싶었어요.”(김연수, 2014.9)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계속해서 각 장에서 ‘너’라는 호칭이 나와요. 동호를 부르는 거거든요. 그런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너라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너라고 부를 때는 마치 있는 것처럼 부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앞에 있는 것이죠. 그런 마음? 그래서 계속 부르는 마음? 불러서 살아있게 하는 마음? 저는 그게, 소설 마지막 부분을 쓸 때 느꼈던 것 같아요.”(정연욱, 2021.10.31)
소설은 어린 동호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손목을 붙잡고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밝은 쪽으로. 꽃 핀 쪽으로.
“네가 여섯 살, 일곱 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 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192쪽)
한국 현대사의 도저한 비극과 그 속에 켜켜이 눈물과 한으로 잠복해 있던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한강의 작품 세계는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적 선회를 하게 된다. 처음 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에서, 여성 서사와 환상성의 시기를 거쳐서, 마침내 현대사의 거대한 격류 속에 스러진 사람들의 슬픔 앞에 서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격류야말로 오랜 간 한국 현대문학의 자양분이 돼 왔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분석이다.
“한강은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난 작가이지만, 그의 성취는 한국 근현대문학이라는 풍요로운 토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풍요로운 토양’이라는 것은 반어이다. 한국문학의 풍요로움이란 ‘식민지-전쟁-분단-냉전-군사독재-압축 성장-민주화-극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관통한 완강한 가부장주의’라는, 근대세계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역경을 다 거쳐 온 한국 근현대사라는 척박한 흐름 위에서 얻어진 역설적인, 문학적 풍요이기 때문이다.”(김명인 문학평론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한국 현대사의 비극 ‘1980년 광주의 슬픔’을 직시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그는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년이 온다』를 거치면서 작품 세계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책만 내면, 제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1년이 끝나고 다시 나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건데, 내고 나니까 더 힘들고 악몽도 계속 꾸어요. 다음 소설을 쓰고 싶긴 한데, 그게 어떻게 나올지, 원래 내가 쓰던 소설은 무엇인지, 예전의 내가 있다고 한다면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김연수, 2014.9)
#“증언이자 애도…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떠올라”
한강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으면서 글로벌 작가로 부상했지만,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돋보이는 소설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장편 『소년이 온다』였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이 소설은 망자들을 불러서 초혼제를 치르고 그분들께 언어를 돌려줌으로써 절절한 증언이 되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또 그때 참혹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사건의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항쟁의 위대한 주체였음을 증언하고 있다”며 “이러한 내용을 한강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해줌으로써 당시 5월 광주를 증언한, 또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정연욱, 2021.10.31.)고 평했다. 『파칭코』를 썼던 재미작가 이민진은 영역판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은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예리한 지성으로 우리의 현대 상황을 반영하는 놀라운 소설가이다. 그녀는 이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다. 나는 더 많은 독자들이 “인간 행위”를 발견하고 존경하기를 바란다”(『The New York Review of Books』)고 상찬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고전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된다고 상찬했다.
“한강은 자신이 성장한 광주에서 1980년 한국군에 의해 수백 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된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토대로 삼았습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책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합니다. 한강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환상적인데, 그럼에도 그 장르에 대한 우리의 기대에서 벗어나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녀만의 특별한 방법입니다. 어떤 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묻힐 수 없는 시체를 보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 “이 소설을 알리고 싶어서 뭐든지 하고 싶다”며 다양한 행사를 소화했다.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년이 온다』 때는 예외적으로 행사를 스무 개 넘게 했어요. 어디서든 부르기만 하면 갔죠. 지방도 가고, 돈을 안 줘도 가고, 조그만 고등학교 문예반도 가고. 힘들어서 다시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정용준, 2022.1/2)
#시적 산문 스타일 두드러진 『흰』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그해 8월말, 한강은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날아갔다. 한 해 전 가을 그의 소설을 폴란드어로 번역한 번역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여정이었다. 이때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느꼈던 넋이나 혼, 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됐다가 복원된 바르샤바를 보면서 복원된 도시 같은 사람을 떠올리기도 했다. 상상은 계속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마침내 『흰』으로 이어졌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넋들이 저에게 아주 가까이 와 있다고 느꼈고, 혼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흰 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요. 그런 넋과 흰 것에 대해 생각할 때, 바르샤바를 가게 된 거에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던 도시가 복원된 모습을 보면서,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상상하게 됐고, 그런 이미지가 확장되어서 책을 쓰게 됐어요.”(임수빈. 2016.6)
그는 낯선 바르샤바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며 밤마다 글을 조금씩 써나갔다. 그해 12월까지 4개월 정도 바르샤바에 머물렀다.
2016년 4월, 그는 장편 『흰』(난다)을 발표했다.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백발….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 65개의 이야기를 ‘나’와 ‘그녀’와 ‘모든 흰’ 세 개의 장 아래 펼쳤다. 백야, 흰나비, 수의, 소복, 연기, 눈, 눈송이들….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11쪽)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흰』에 대해 “화자 자아의 언니였을 수도 있지만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인물에게 바치는 에세이”라면서 “시적 스타일이 다시 한 번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한강 시인의 시적 스타일이 다시 한 번 두드러집니다. 이 책은 화자 자아의 언니였을 수도 있지만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인물에게 바치는 에세이입니다. 모두 흰색 사물에 관한 일련의 짧은 메모에서 작품 전체가 연상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이 슬픔의 색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세속적 기도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상상의 여동생이 살 수 있었다면, 그녀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죽은 자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납니다. ‘저 하얀, 저 모든 하얀 것들 속에서 당신이 내뿜은 마지막 숨을 내가 들이마시겠소.’”
작품 『흰』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서 영역 출간된 뒤, 2018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제9화에 계속)
좀 더 다양한 문학을 접하고 싶었다. 특히 정독이자 창작인 문학번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나라의 문학을 번역해야 할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문득 한국이라는 나라가 눈에 들어왔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나라, 한국.
“제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신비로웠거든요. 당시만 해도 영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안다거나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중국문학이나 일본문학은 많이 소개되는 반면, 한국문학은 문학이 중요한 나라이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베일에 싸인 나라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한국에도 풍부한 한국문학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찾아보고 또 알려야겠다고.”(지은경, 2016.5.16)
한강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연합뉴스
당시 영국에서는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가 많지 않았다. 이십 대의 데보라 스미스는 문학번역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됐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열리지 않는 시장. 데보라의 기억은 이어진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문학은커녕, 한식을 먹어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었던 그였다. 영국 북부의 옛 탄광촌 출신으로 독서에 강박관념을 갖고서 매년 수백 권의 책을 읽어온 그녀는, 2009년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곧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한국문학 석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벽안의 번역가 데보라 “스타일과 질감 추구”
어느 날, 데보라는 한국 소설을 번역한 번역문 20쪽을 독립출판사 ‘포토벨로 북스(Portbello Books)’ 수석편집자 맥스 포터에게 보냈다. 남편,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 언니 세 사람의 시선으로 그린 영혜의 이야기를 담은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였다. 데보라는 왜 한국 작품 가운데 한강의 소설을 택한 것일까.
“한강의 작품은 모든 면에서 매력적이에요. 한 가지를 꼽자면 한강은 인간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면을 완벽하게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내요. 그건 아마 시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김보경, 2016.3.16.)
포터는 데보라를 통해서 비로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다. 포터는 데보라가 보내준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완벽하게 설득당했다. 100% 출판을 결심했다”(정현상, 2016.6.20)고 말했다. 포터는 『채식주의자』를 영역 출판할 기회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침 2014년 런던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으로 지정되면서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문학 번역가를 찾던 한국 문화계와 데보라가 연결이 됐다.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출판 지원사업과 연결되면서 마침내 『채식주의자』 영역판 현지 출간의 길이 열리게 됐다.
데보라는 한국어 독학 3년 만에 『채식주의자』 번역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새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는 번역본을 여러 개의 노트와 메모, 질문을 곁들여 서울의 한강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그것에 대해 한강이 답한 메모를 확인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여러 번 이메일이 왔다갔다 하면서 영역을 완성했다. 이때 그는 무엇보다 소설의 톤과 질감, 스타일을 중시하는 번역을 했다고, 한강은 기억했다.
“소설은 톤이 중요합니다. 목소리의 질감 같은 게 중요하지요. 데보라는 (『채식주의자』) 제1장에서 영혜가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의 내 감정을, 그 톤을 정확하게 옮겼어요. 데보라의 번역은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번역이었습니다.“(손정빈, 2016.5.24)
데보라는 일어나자마자 시작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번역했고, 잠자리에 들어서야 멈췄다. 번역이 막힐 때면 한 구절을 두고도 여러 번 생각한 뒤에야 진도가 나갔다. 애매한 부문은 표시해놓고 계속 번역해 나갔다. 개별 단어보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되, 문맥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특정한 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했다고 기억했다(정현상, 2016.6.20).
2015년 1월,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데보라 스미스의 영역으로 영국 포토벨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데보라는 그해 번역 문학에 특화된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한강의 또 다른 장편 『소년이 온다』를 영역해 출간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혹시 수상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버지 한승원이 무심하게 물었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영국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한 출국 하루 전날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비우고 계십시오.”
2016년 5월, 한강은 큰 기대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부커상 수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듬해 영국에서 번역 출간될 책 『흰』의 편집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시차 때문에 매우 졸렸다. 눈은 자꾸 감기려 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데다가, 발표가 있기 전에 마셨던 커피 덕분에 크게 태는 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새로운 경험을 즐기면 될 줄 알았는데….
5월16일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부커상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으로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호명되었다. 그가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부커상 수상자로 연단 위에 선 것이다.
부커상 5인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은 “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는 “간결하고 아름답게 구성된 이야기는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집과 가족, 사회를 묶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스타일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이나 꿈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상찬했다. 턴킨은 이어서 “간명하고, 매우 아름다우며, 불온한” 책이라며 “데보라 스미스가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이하게 혼재된 이 책을 정확한 판단력으로 잘 번역했다”고 번역 역시 극찬했다.
한강은 이날 수상 소감으로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부커상 수상식에서 가벼운 미소를 짓는 등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평정. 그는 “이 책을 쓴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며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채식주의자』를) 사랑해주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다”(손정빈, 2016.5.24)고, 나중에 회고했다.
부커상 수상 일주일이 지난 5월24일, 그는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50여개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서 한 시간 전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라고 하면 좋겠다”며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현재 쓰고 있는 작업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책의 형태로 드리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손정빈, 2016.5.24)
한강은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작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2019년 다시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아르세비스포 후안 데 산 클레멘테 문학상을, 2023년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국제무대의 잇단 성취를 바탕으로 그는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보수정권 블랙리스트에…기고도 보수진영 공격 받기도
국제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과 달리, 국내에선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의 장편 『소년이 온다』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세종도서 사업의 마지막 3차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작품성이 아니라 작품이 다룬 내용인 ‘1980년 광주’가 문제였고, 당시 책에 줄을 쳐가면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골라내는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나중에 언론에 알려졌다.
특히 작가 자신은 장편 『소년이 온다』 등으로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소설가 한강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매주 토요일 한국 전역에서 불타올랐던 시민들의 촛불 혁명에, 그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지난 겨울의 촛불이 생각난다. 매주 토요일, 남한 전역에서,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서로 노래 부르며 부패한 정부에 대항했고, 종이컵 속에 담긴 촛불을 들며, 대통령의 사임을 외쳤다. 나 역시, 그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촛불 시위에 참여했음을 밝혔다. 그는 촛불 시위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선 “우리는 단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촛불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언제든 전쟁이 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한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2017년 9월, 그는 외국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사석에서 한 작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두려워하지 않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럴 리 있나요.” 그는 순간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핵폭탄이 두렵고 전쟁이 두렵지요.”
“그래요?” 사적으로 묻던 그 작가 역시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 보도들을 접하며 정말 한국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줄 알았어요.”
그 순간, 한강은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감각으로 분단의 긴장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밖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구나. 우리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실감 자체가 없구나. 그는 숙소에 돌아가서 전에 자신에게 청탁메일을 보냈던 편집자의 이메일을 찾아보았다. 3개월 전인 6월초 원고 청탁을 받았지만, 민감한 이슈를 발 빠르게 다를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사양했던 그였다. 그는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고. 편집자가 원고의 마감을 정해 주자, 그는 행사 사이사이에 숙소에서 원고를 썼다. 친한 친구에게 보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원고를 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보낸 뒤 공항에서 편집자와 이메일로 세세한 표현을 의논했다.
10월 7일, 한반도에서 전쟁 시나리오를 들먹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한국인들은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기고가 미국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원고는 한강이 한글로 썼고, 이를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 언론과 인사들은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그의 기고문 속 일부 표현을 문제 삼아서 공격했다. 특히 한강 작가가 한국전쟁이 주요 강대국의 이념적 대리전 성격도 있다고 강조한 대목을 겨냥해 “북한과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한국전쟁”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 선데이리뷰에 기고한 글이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proxy war)’으로 표현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노근리 학살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의 전쟁 책임을 묻는 듯한 논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김인구·김충남, 2017.10.10)
이와 함께 한국전쟁을 강대국의 이념적 대리전으로 평가하는 문구가 담긴 이 글을 청와대가 SNS로 소개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청와대를 겨냥한 정치 공세를 펴기 위해서 그의 해외언론 기고를 연결시키기도 했다.
한강은 『문학동네』 겨울호 기고를 통해 “이 글은 기본적으로 『뉴욕타임스』를 읽는 현지의 독자들을 향해,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전쟁의 가능성에 맞서기를 침착하게 제안하고자 한 것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나약하고 무력하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옹호하는 존엄한 사람들로서 한국인들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됐던 기고문의 “일종의 이념적 대리전”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북한의 독재 권력의 부당성은 모두가 당연하게 공유하는 상식적인 전제로 깔려 있으며,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립채방 ‘책방 오늘’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독립책방 열기도
그는 전업 작가로 글쓰기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2017년 2학기 강의를 마친 뒤 서울예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하지만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그는 집에서 자신이 쓴 책들을 전부 보이지 않도록 치워버렸다. 자신의 소설들이 눈에 보이는 게 싫었다. 마치 소설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대신 다른 책들만 보이도록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상도 삶도 너무 힘들었다. 2018년, 그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때를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표현했다(정용준, 2022.1/2).
그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치워졌던 그의 소설들은, 나중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쓴 뒤에야 다시 책장 한 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해 서울 양재천 주변에 독립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진열된 책에 손수 안내 메모를 써 붙이기도 했다. 부커상 수상 이후 “글쓰기를 못한다면 생계를 위해 작은 독립 서점을 열고 싶다”고 말한 그였다.
팬데믹 시기 한동안 책방의 문을 닫기도 했던 그는, 2022년 다시 서울 서촌으로 옮겨서 작고 차분한 책방 ‘책방 오늘’을 열었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의미가 있다고 느낀 책들을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서촌에 책방을 열기 전에 문학서점 ‘고요서사’ 등을 견학하기도 했다. (→제10화에 계속)
“늘 쓰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많아요. 빨리 쓰지 못하는 게 늘 아쉬운 점인데. 그런 이야기들이 어떤 이미지로 머릿속에 있어요. 거기에 최대한 근접하려고 노력해요. 거기에 도달하려는 열망이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추동력이에요.”(채널예스, 2011.12)
그의 머릿속에는 늘 쓰고 싶은 이야기와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빨리 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어떤 이야기나 이미지가 먼저 있고 여기에 맞는 형식이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소설의 착상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강 작가. 뉴스1
“먼저 어렴풋한 소설의 형식이 있고, 강렬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러다가 형식이 떠올라요. 저에게는 형식이 중요해요.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쓰려고 하면 한 페이지도 쓸 수가 없어요. 어렴풋이 떠올라 있던 소설과 맞는 형식을 찾아내는 게 저에게는 가장 핵심적인 착상의 순간이에요.”(정용준, 2022.1/2, 70쪽)
그는 늘 다른 글쓰기, 새로운 형식을 욕망하고 시도한다. 심지어 새로운 형식, 다른 글쓰기가 자신을 끌어당기지 않으면 소설을 쓰지 못할 정도로 다름과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의 새로운 형식과 다른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발상, 시도 때문에, 안드레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는 상찬을 받았을 것이다.
“단편소설을 쓰는 데에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 이십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장편을 쓰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오래 썼던 장편은 4년 6개월이 걸렸다.) 대조적으로 시는 아주 짧은 시간을 요구한다. 오랜 시간 붙잡고 있게 되는 시들이 있기는 하지만, 장편소설처럼 날마다 일상과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며, 신체를 단련해 가면 작업해야 하는 노동과는 비교할 수 없다.”(2023.11/12, 「시와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을 함께 쓴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시라는 개별 형식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는 “형식을 어떻게 선택하는가는 좀 더 복잡한 문제”라며 각 형식별로 쓰게 되는 과정과 그 방법을 들려준다.
“장편소설을 쓸 때 나는 내적인 질문에 집중한다. 질문들은 나의 글쓰기의 가장 큰 동력인데, 그 질문들을 끝까지 완성해보려면 장편소설이라는 끈질긴 형식이 필요하다. 반면 단편소설은 하나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처음 그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어떤 장면에 다다르는 동시에 작업은 끝나게 된다. 한편 시는 언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한 줄의 문장이 떠올라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 문장은 시의 시작에 놓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중간이나 마지막 문장에 놓이기도 한다.”(2023.11/12, 「시와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을 함께 쓴다는 것」)
장편소설들의 질문 여로
소설쓰기가 하나의 질문하는 방법이라면, 특히 장편소설 쓰기는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나가서 완성해보려는 시도라는 이야기다. 비록 답이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그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완성해 보는 그런 거예요. 질문의 끝에 어떻게든 도달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겨나고요. 그러면 다음 소설에서 그 질문을 이어가고 그래요. 질문을 완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그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요.”(신연선·오은, 2021.9.23.)
장편쓰기는 그에게 있어서 문제의식의 내적 투쟁인 셈이다. 그렇다면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 시작된 질문의 여로는 최근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어떻게 흘러온 것일까. 그의 질문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변해왔을까. 또 질문에 따라서 그의 삶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인터뷰와 대담, 간담회 등에서 이뤄진 한강의 목소리를 통해서 다시 정리해 본다.
▶『검은 사슴』=“죽음에 그토록 가까워보였던 네 사람이 그 모든 일을 겪은 뒤, 결국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서 이 세계를 버티잖아요. 그렇게 제 삶도 한 발 더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던 거고요.”(윤경희, 2015, 103쪽)
▶『그대의 차가운 손』=“서로의 몸을 석고로 뜬 뒤 껍데기를 부수는 제의 같은 과정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가게 되고(바라건대 진실 쪽으로)….”(윤경희, 2015, 103쪽)
▶『채식주의자』=“육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식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고자 하는 여자의 투쟁(구원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파멸의 길인)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폭력을 응시하려 해보고,… ”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에서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소설이에요. 소설 끝 장면은 앰뷸런스 안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는 시선으로 끝나거든요.” “『채식주의자』를 쓰면서, 한번 끝까지 나아가보고 싶었어요. 저는 그 소설이 극도로 고립된 상태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밀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 인간의 일원이길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그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까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결국 우리는 이 세계에서,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윤경희, 2015, 103쪽.; 정윤희, 2016.6, 16-18쪽.; 김연수, 2014.9, 318쪽)
▶『바람이 분다, 가라』=“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그 질문으로 시작해서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그 소설의 끝에서는 불속에서 기어서 빠져나오는 어떤 여자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쓰면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애쓰면서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쓰면서는 자연과학 책을 읽으면서, 오랜 의문이었던 인간의 폭력성과 함께 앞서 말한 신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불속을 기어 나오면서 깨끗한 공기쪽으로 배를 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살아내야 한다’는 대답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윤희, 2016.6, 16-18쪽.; 김연수, 2014.9, 318쪽)
▶『희랍어 시간』=“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정말 내가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은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인간의 어떤 연하고 섬세한 자리, 그런 자리를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희랍어 시간』은 ‘우리가 이 세계를 인간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건 무엇으로써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 소설 속 두 사람이 손바닥에 글씨를 그려 대화하는 장면을 쓰면서, 인간은 인간을 껴안아야 한다고, 그것이 인간을 살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란, 어렵지만 껴안아야 하는 것, 자신을 뚫고 나가 껴안아야 하는 것이라고, 『희랍어 시간』을 쓰면서 생각했어요.” (정윤희, 2016.6, 16-18쪽.; 김연수, 2014.9, 318쪽)
▶『소년이 온다』=“『소년이 온다』에서는 폭력의 상황에서 인간존엄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써가는 과정에서 질문들이 변하는 것을 느꼈고요. 소설이 출간된 직후에 아마도 인간이 어떤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정윤희, 2016.6, 16-18쪽)
▶『흰』=“『흰』은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늦여름부터 겨울까지 머물렀는데 1944년에 파괴되고 재건된 바르샤바라는 도시에 머물면서 도시에 살았던 어떤 사람을 상상했고 그 사람이 어쩌면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 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언니에게 어떤 삶의 부분을 감히 주고 싶다면 아마 ‘흰 것’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럽힐래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함, 생명, 빛, 밝음, 눈부심 그런 것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정윤희, 2016.6, 16-18쪽)
‘소설-살기’ 또는 ‘온몸으로 소설론’
그는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 소설과 함께, 아니 소설을 살았다. 소설을 산다는 것은, 늘 소설과 인물을 생각하고, 마음으로라도 소설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 짧게는 1, 2년, 길게는 4, 5년 동안. 이 같은 독특한 소설 창작법에 주목해,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그의 작품을 “고통으로 찍어낸 빚의 지문”이라고 은유했다.
“장면으로 제가 먼저 들어가서 그걸 느끼고, 그걸 문장으로 써요. 소설을 쓸 때, 마지막까지 그걸 더 넣으려고 노력해요. 그 순간의 생생함을 조금이라도 더 넣으려고 탈고할 때는 시도 많이 읽어요. 시들이 그런 일을 하잖아요. 순간의 생생함에 육박하는 일. 시의 상태에 가까워져서 소설 전체를 생생한 감각으로 훑고 지나가고, 쉬었다가 또 지나가고 계속 전류가 통하게 하려고. 그냥 생생하게 쓰려고 노력해요…. 글쓰기로 인해서 고통스러워진다기보다는, 고통으로 인해 그런 글이 나온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 같아요.”(정용준, 2022.1/2. 81쪽)
이야기 속으로, 인물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쓰기 위해서는 삶에서 소설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소설에 과격하게 기울어져 있지만, 오히려 균형 잡힌 상태라는 듯. 기울어진 중심이 잡혀서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듯.
“2년여 동안은 이 소설하고 살면 되니까, 그런 상태가 좋아요. 오히려 이 소설에서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사이가 힘든 것 같아요. (스스로 의지하기보다,) 제 모든 걸 소설에 기울여, 늘 생각하고 있는 그런 상태가 좋아요. 그게 균형 잡힌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삶에 소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나는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 그런 상태.”(채널예스, 2011.12) 그것은 어쩌면 글쓰기 이외의 모든 일을 무나 무에 비슷하게 돌리는 일이기도 했다.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에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한강, 2011 봄, 41쪽)
자연히 힘도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의 일정한 시간을 소설 한 편과 맞바꾸는 장편소설 쓰기가, 장편소설을 쓰는 상태가 좋았다고 고백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시간이 좋아요. 장편을 쓰는 데 정말 오래 걸리잖아요. 1년도 걸리고 3년도 걸리고 길게는 4, 5년…. 인생의 긴 기간을 소설 한 편하고 맞바꾸는 그 상태를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강지희, 2011 봄, 47쪽)
‘소설을 산다’거나 ‘소설 이야기와 인물 속으로 들어가서 온몸으로 쓴다’ 등의 그의 생각과 개념은 김수영 시인의 ‘온몸의 시론’이나 철학자 스피노자의 ‘심신 평행론(psychophysical parallelism)’ 또는 ‘심신병행론’을 떠올리게 한다. 김수영은 1968년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온몸의 시론’을 선언했다. 스피노자 역시, 자연과 신체로부터 정신을 이원론적으로 분리시켰던 데카르트와 달리,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개별자의 두 측면”이라며 정신적 현상과 육체적 현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독립적이면서도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강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 그게 분명하게 신체화되는 편이에요. 관념적이라고 불리는 것과 신체적인 부분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붙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어떤 살아 있는 육체로, 마음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몸으로 느껴져요. 이 소설이라는 몸속에서 감각적인 것들, 사유, 감정, 언어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어렵게 조율해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하기보다는 함께 움직여요.”(한강·강수미·신형철, 2016.9, 20쪽)
그의 소설쓰기는 심지어 심신병행론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즉,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언어와 감정까지 함께 연동돼 움직이고 나아가는 것이 소설쓰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온몸으로 소설론’이라고 부를 만하다.
“소설을 써갈수록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제가 소설 속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었어요. 가장 어렵고 무서운 부분이어서, 쓰는 순간순간에는 거의 그것에만 집중해야 했어요. 쓰는 순간에 제가 그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저의 언어로써 정말 불가능하지만 근접할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이었고, 그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이 소설을 쓰는 일이, 관념과 몸과 언어와 감정이 모두 함께 연결되어 나아가는 경험이었어요.”(한강·강수미·신형철, 2016.9, 21-22쪽)
질문을 완성해가는 소설을 사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이야기와 문제의식의 변화, 소설의 변화, 몸의 변화를 동시에, 그리고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 한편의 장편을 다 쓰고 난 뒤에, 그는 이전으로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소설들을 쓸 때마다 변화를 경험했다고 생각돼요. 특히 장편소설을 쓰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장편소설들을 통해 완성해보려 애쓰는 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설들, 제 질문들, 제 삶, 제 몸이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며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고, 더듬거리고 서성거리고 뒤척이면서 근근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윤경희, 2015, 103쪽)
“성냥 불꽃처럼 확 당겨지는 단편소설”
반면 단편쓰기는 그가 지나가고 있던 자리의 감각과 감정과 생각을 담고 있다. 즉, 단편소설은 “좀 더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단편소설은 좀 더 개인적인 것입니다. 삶이 저라는 인간을 흔들거나 베고 지나가거나 지금 지나가고 있는 그 자리의 감각과 생각과 감정을 씁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전심전력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게 장편소설이라면, 단편은 개별 장들처럼 전체 구도 속에서 계획된 어떤 게 아니고, 저라는 인간이 여기까지 (때로는 기어서, 때로는 꿋꿋하게 걸어서, 때로는 어둠 속을 겨우 더듬어서) 살아온 기록입니다.”(김은경, 2018.11.30)
단편소설은 마치 성냥 불꽃처럼 확 당겨진다고, 그는 『노랑무늬영원』의 「작가의 말」에서 단편의 본질을 설명하기도 했다.
“단편은 성냥 불꽃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
『노랑무늬영원』 개정판의 「작가의 말」에서 이를 조금 더 부연한다. “이 소설들은 원고 청탁을 받지 않고 썼다. 혼자서 써놓고는 서랍에 넣어주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 조금씩 고쳤다. 그렇게 한 편 쓸 때마다 여러 달 시간을 들여서인지, 책 전체에 나 자신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들을 직접 옮겨 놓은 것은 아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배어든 정서들이 있다. 두텁디 두텁게. 간절하게. 때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찌르듯 고통을 주며.”(→제11화에 계속)
“시간이 없었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쪽에 묻힌 뼈들을 옮겨야 했다. 바다가 더 들어오기 전에, 바로 지금… 어쩔 줄 모르는 채 검은 나무들 사이를, 어느 새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렸다.”(『작별하지 않는다』, 10쪽)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직후, 이상한 꿈을 꿨다. 작품을 쓸 동안에는 직접적인 폭력이 나오던 꿈을 꾸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상징적인 꿈으로 바뀌어가더니, 결국 다다른 꿈이었다. 그는 언젠가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꿈을 기록했다.
장편 『흰』을 쓴 뒤, 다음 작품은 이미 발표한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작별」을 잇는 ‘눈 3부작’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사십대 여성이 유령이 된 옛 직장 선배와 함께 역시 고인이 된 여자 선배를 함께 회상하는 내용을, 「작별」은 어느 겨울날 벤치에서 선잠에 들었다가 눈사람이 돼버린 여성의 이별을 각각 그린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눈이라는 이미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역할을 했고, 새 작품 역시 눈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사무국장. 신화통신∙연합뉴스
“어느 날, 주인 할머니가 짐을 들고 가야될 곳이 있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함께 걸었지요. 지름길로 가는 골목길을 걷는데, 할머니가 별안간 멈춰서더니, 이 담이 4·3때 사람들이 총을 맞아서 죽었던 곳이야, 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눈부신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한 실감으로 다가왔어요.”(김용출, 2021.9.8)
제주 4·3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2018년 겨울, 그는 들고 다니던 노트에 메모를 적었다. 소설의 방향이나 주제, 분위기, 감각, 감정 같은.
…악몽 같은 현실에서 구원을 원하는 인간의 이야기. 공포와 폭력. 기도의 이야기./ 바람. 해류. 전 세계에 이어지는 바다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눈이 내렸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의 인간. 우주 속에서의 인간….(한강, 2022 봄/2023, 349쪽)
『소년이 온다』를 쓸 때처럼, 다양한 구술 증언집을 읽어나갔다. 구술 증언을 통해서 몸으로 직접 그들의 기억과 고통을 감각하고 싶었다. 많은 증언집을 읽고 느낀 다음, 「4·3 조사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조사보고서는 전체적인 사건의 개요와 역사, 경과를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사람들의 고통이 삭제된 듯 보였다.
“「4·3 조사보고서」를 읽기 전에 구술 증언을 먼저 접했어요. 시작은, 제가 제주를 드나들면서 모았던 『iiin』이라는 스타일리시한 생활 잡지였어요…. 그 잡지들에서 출발해 4·3연구소에서 발행한 구술 증언집들을 구해 읽어갔어요. 그러다 보니 저에게는 4·3이 봄이 아니라 겨울의 일로 몸에 새겨져 있어요. 1948년 11월17일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11월18일부터 이듬해 2월까지 3만 명이 학살됐어요. 대부분의 증언들이 그 겨울에 집중돼 있고요…. 그렇게 증언들을 먼저 읽은 다음에 진상조사보고서를 읽으면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서사에 이물감을 느꼈던 기억이 나요. 구술 증언들을 통해 몸으로 직접 느껴졌던 고통이 그곳에서는 삭제돼 있어서요. 이 두 편의 소설들에서 고통의 감각이 느껴진다면, 둘 다 출발점이 구술 증언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정용준, 2022.1/2)
“제주 4·3의 기억과 희생자 애도”
‘인생의 밑바닥’을 헤엄쳐온 2018년의 세밑,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소설을 꾸준히 쓰려고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다. 한 달을 쉴 때도 있었고, 1년을 쉬기도 했다. 그 사이 지금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느냐, 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대답하는 게 늘 곤욕이었다. 어떨 때에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했고, 어떨 때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설명했으며, 어떨 때에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답했다.
“그 소설 언제 나오나요?” 무슨 만난 후배 작가 황정은이 물었다.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고 거의 자포포기 상태가 된 지 한 달쯤 지난 뒤였다.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전반부 다 읽었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그거 그냥 안쓰기로 했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편집자에게도 소설을 포기할 거라고 이야기한 그였다.
“얼마나 썼는데요?” 황정은이 물었다. “900매인데 다 버릴까 한다.” 그는 말했다. “그건 말도 안되는 거예요. 900매를 다 버려요?” 황정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선배, 제 정신이예요?” 계속 되묻는 후배 앞에서 그는 한발 물러섰다. “그럼 버리진 않고 1년쯤 놔두면 나중에 써지지 않을까.”
“놔둔다고 되겠어요? 빨리 써서 마무리를 해야죠.” 황정은은 계속 그를 몰아세웠다. “쓰기만 하면, 완성해서 책만 내주면 내가 정말 잘 읽을 테니 완성을 꼭 하세요.”
어떻게 되든 다 쓰기만 하면 잘 읽어주겠다는 후배 작가 황정은의 말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고,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혔다(정용준, 2022.1/2).
다시 소설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한참 쓸 때는 일주일에 칠일을 썼다. 소설은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와 연결되고 있었다. 여러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쓰고 다듬었다. 필립 그라스의 음반,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좋아하던 클래식 음반, 제주가 느껴지는 조동익의 신보 「푸른 베개」, 바람 소리가 들어오는 「Lullaby」와 장필순의 노래…. 글을 쓸 때, 단계에 따라 음악을 들어왔다. 소설의 제2부를 쓸 때에는 집이 떠나가게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김광석이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면서 부른 「나의 노래」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어느 순간 감정이 일어나면서 음악에 감전이 된다. 모든 피부마다, 모든 세포마다 육박해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몸이 저절로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아마 사람들이 보면 춤을 춘다고 할 것이고, 빙그르르 도는 그를 보면 스파이럴 동작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야 상관 없었다. 어느 순간 눈물이 터진다. 엉엉 소리까지 내면서 운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앉아서 쓴다. 울면서 쓴다. 쓰고, 또 쓴다. “흐름을 끊기 싫어 부엌에 선 채로 요기를 했다. 화장실에 뛰어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소설을 살면서 소설 속에서, 그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온몸으로, 온힘으로.(한강, 2022 봄/2023, 353쪽)
어느 날 해가 진 직후, 마침내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을 살아오면서 그 자신 역시 다시 살아왔다. 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원고가 담긴 USB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 집이 불이 나도 이것만 있으면 돼. 집 주위를 조금 걷다가 돌아왔다. 잠들기 직전 결국 다 써냈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지금 이 마음만으로 나는 보상을 다 받았구나(정용준, 2022.1/2).
2021년 9월, 그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발표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설은 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하나의 물성을 가진 책으로 손에 쥐어져서 감사하고 뭉클하다”고 말했다.
소설은 한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소설을 발표한 이후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는 경하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4년이 흐른 뒤, 그는 손가락을 다친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폭설과 강풍, 여기에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고질적인 두통, 집까지 이어진 어둠….
천신만고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는 제주 4·3에 쓰러진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십수 년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지 못하게 된 어머니 정심의 슬픔을, 오빠의 행적을 찾아 수십 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정심의 고요의 싸움을….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작별하지 않는다』, 87쪽)
야야기는 경하의 시점으로 시작했다가, 퍼포먼스를 계획하는 친구 인선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4·3에서 오빠와 여동생을 잃은 정심의 시선으로 몰입한다. 간절하기에 때로 무서운 고통이 되는 정심의 지극한 사랑으로. 점점 강해지고 짙어지는 사랑의 밀도!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작별하지 않는다』, 311쪽)
『작별하지 않는다』는 눈이 나오는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작별」의 ‘눈 3부작’처럼 눈과 함께 유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경하에게 인선은 유령의 양상으로 관측되고, 정심 역시 유령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거대한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국가폭력에 의한 4·3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고 기억하고 함께 ‘애도의 길’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올손 위원장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한강의 또다른 하이라이트라고 평가한 뒤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고통의 이미지 측면에서 『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는 1940년대 후반 제주도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어린이와 노인들이 포함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공산당)협력자로 의심을 받아 총살당했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친척들에게 닥친 재난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화자와 그녀의 친구 인선이 겪은 공동 애도 과정을 그린다. 한강은 압축적이면서도 정확한 이미지로 과거의 힘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망각된 것을 밝히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책의 제목으로도 이어지는 공동 예술 프로젝트로 바꾸려는 노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깊은 우정과 물려받은 고통에 대한 것으로, 악몽 같은 이미지와 진실을 말하려는 증언 문학의 진실성 사이를 독창적으로 오간다.”(「Biobibliography」,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다시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쓴 뒤에야, 그는 치워놓았던 자신의 소설책들을 책장 한 칸에 다시 꽂아 일렬로 놓을 수 있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부터』부터 최근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소설을 살아냄으로써 삶 역시 살려낸 것이다. 책장 속에서 정렬한 자신의 책들을 보자 연둣빛 같은 상념이 일어난다. 지난 인생에서 이걸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책에서, 책 사이에서 삶이 주마등처럼 비어져 나오기도 한다. 맞아, 이런 일이 있어서 이 책을 썼었지. 언젠가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해줬다. 참 열심히 살았구나.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는 자신의 책이 꽂힌 책장 앞에 설 것이다. 그래, 내가 이걸 했어!(정용준, 2022.1/2)
2024년 노벨문학상 심사의 끝
전쟁은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의 감정이 없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2월24일, 러시아군이 유럽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2014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 간 분쟁이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에 따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그해 10월29일 22시15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해밀톤호텔 앞 좁은 골목길 경사로에서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인파가 밀리면서 159명이 사망했다. 이른바 ‘이태원 참사’였다. 경찰을 비롯한 관계 당국과 지자체, 윤석열 정부는 사고를 앞두고 예방적 관리도, 사고 대응도, 사후 조치와 책임에서도 무능력과 무책임, 무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2023년 10월7일, 이슬람 과격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로켓까지 이용한 대규모 침공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다음날 하마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대규모 군사 작전에 나섬으로써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 작전으로 많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시민들이 숨졌다. 그것은 전쟁의 가면을 쓴 학살극이었다.
“나에게 시와 단편소설, 장편소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 시집을 낼 당시, 가지고 있던 백여 편의 시 중 60편을 추려 5부로 배열했는데, 각 장편소설을 쓰던 시기에 쓴 시들이 비슷한 느낌으로 묶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시들은 소설과 독립적인 것들이지만, 하나의 장편을 쓰면서 내가 품었던 질문들과 감정의 움직임, 몰두했던 이미지들이 시들과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다.”(한강, 2023.11/12, 19쪽)
그에게 시와 단편소설, 장편소설이 느슨하지만 내적으로 연결돼 있다.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매 순간 비어져 나오는 공기와 감각, 감정들에 의해서 서로 자극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돼 있다.
한강은 2023년 11월1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9회 세계한글작가대회의 특별강연을 통해서 이처럼 시와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을 함께 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별강연과 공개된 강연 원고에서, 그는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다 쓴 직후 긴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뒤, 10년 만에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로 이어지고, 이어서 『채식주의자』의 세 번째 중편 「나무 불꽃」을 쓰는 과정에서 연작시 「피 흐르는 눈」를 비롯해 여러 편의 시가 나오게 된 과정을 차분히 들려줬다.
“20년 넘게 흐른 지금, 여전히 나는 일상과 글쓰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곧 출간할 장편소설을 손보거나, 그 사이 떠오른 단편소설을 쓰거나, 다음 장편소설을 위해 메모를 하곤 한다. 가끔 시가 써질 때에는 작업을 잠시 멈추고 시를 쓴다.”(한강, 2023.11/12, 21쪽)
인간의 존엄을 마치 쓰레기 버리듯 내팽개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과 학살의 포성이 울리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스웨덴의 노벨상 위원회는 새해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에 돌입하고 있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의 후보자를 추천해 주십시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위한 노벨문학상 분과위원회(the Nobel Committee for Literature)는 전 세계 수백 개의 개인과 단체에 노벨문학상 후보자를 추천해달라고 요청과 함께 추천서를 발송하는 것으로 수상자 선정 작업의 스타트를 끊었다.
노벨문학상 후보자 추천 권리는 △스웨덴 한림원 회원 △대학 문학·언어학 교수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 국가의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협회의 회장 등에게 주어진다. 이들은 늦어도 이듬해 1월말까지 노벨위원회에 추천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벨문학상 분과위는 이 같은 추천 절차를 통해서 2024년 1월말까지 200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엘렌 마트손은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220개 이름으로 구성된 매우 긴 목록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강민경, 2024.10.15.; 서혜림, 2024.10.14.)
추천자 명단을 정리한 분과위는 4월 추천된 후보자 220명 가운데 추가 심사를 거쳐서 후보군을 15∼20명 선으로 압축했고, 다시 추가적인 검토 및 검증을 진행해 5월에 다시 5명으로 압축해서, 한림원 심사위원들에게 최종 후보자 명단을 제출했다.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들은 6월에서 8월까지 최종 후보 5명의 주요 작품들을 읽고 여러 측면을 검토해 각 후보별 개별 보고서를 작성한 뒤, 9월 한 자리에 모여서 각 후보의 작품 세계와 문학적 기여 등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의견은 다양했지만 방향성이나 지향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때 논의된 견해 등을 바탕으로 10월 초 투표를 통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
이 같은 심사 과정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 비공개로 이뤄졌다. 후보자 심사와 검토 의견 등 관련 정보는 앞으로도 50년간 봉인될 예정. 그럼에도 노벨상 발표 시즌이 다가오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둘러싼 관측이 쏟아졌다. 온라인 베팅사이트들은 올해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중국의 전위적 작가 찬쉐나, 호주의 저명한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 카리브해 영연방 국가 출신 자메이카 킨케이드, 캐나다 시인 앤 카슨 등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아마도, 습관처럼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휴대폰의 통화 앱을 눌렀을 것이다. 연락처 리스트가 차례로 떴을 것이고, 스크롤 끝에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멈췄을 것이다. 화면에는 수상자의 이름과 함께, 수상자와 바로 연결되는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고….
여하한 상황에서도 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요로를 통해서 그의 휴대폰 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했던 위원회가 아닌가. 수상자 선정을 위한 분투했던 지난 시간 역시 주마등처럼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마침내 마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상임 사무국장이 송신 버튼을 천천히 누르기 시작한다.(끝)
*논픽션 한강 격류 참고문헌
#한강의 시와 소설, 동화
한강, 1993 겨울, 「서울의 겨울 12」 외 4편, 『문학과사회』, 통권 24호, 1553-1558쪽.
한강, 1994.1.4, 「붉은 닻」, 서울신문.; 1995/2018, 『여수의 사랑』, 파주:문학과지성사.
한강, 1995/2018, 『여수의 사랑』, 서울:문학과지성사.
한강, 1998/2017, 『검은 사슴』, 파주:문학동네.
한강, 2000 여름, 「침묵」, 『문학동네』, 제23호, 131-155쪽.
한강, 2000, 『내 여자의 열매』, 창비.; 2018, 『내 여자의 열매』, 파주:문학과지성사.
한강, 2002, 『그대의 차가운 손』, 서울:문학과지성사.
한강, 2002, 『내 이름은 태양꽃』, 파주:문학동네.
한강, 2007/2014, 『천둥 꼬마 선녀 번개 꼬마 선녀』, 파주:문학동네.
한강, 2007/2022, 『채식주의자』, 파주:창비.
한강, 2008, 『눈물상자』, 파주:문학동네.
한강, 2010, 『바람이 분다, 가라』, 서울:문학과지성사.
한강, 2011, 『희랍어 시간』, 파주:문학동네.
한강, 2012/2018, 『노랑무늬영원』, 서울:문학과지성사.
한강, 2013,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서울:문학과지성사.
한강, 2014, 『소년이 온다』, 파주:창비,
한강, 2015,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10-52쪽), 중앙일보문예중앙.
한강, 2016/2018, 『흰』, 파주:문학동네.
한강, 2017 겨울, 「작별」, 『문학과사회』, 제30권 제4호, 통권 제120호, 115-160쪽.
한강, 2021, 『작별하지 않는다』, 파주:문학동네.
한강, 2023, 『디 에센셜: 한강』, 파주:문학동네.
#한강의 산문 및 기타 글
한강, 1994.1.4, 「뽑히고 나서」, 서울신문.; 윤수경, 2024.10.14, 「“이견 없던 한강 등단작 ‘붉은 닻’…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넓혀 가길”」. 서울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486698?sid=103.
한강, 2003/2009,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열림원.
한강, 2005, 「문학적 자서전-기억의 양지」, 『제29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몽고반점』(352-356쪽), 문학사상사.
한강, 2005, 「수상 소감」, 『제29회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350-351쪽), 문학사상사.
한강, 2007,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비채.
한강, 2009,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 『아버지, 그리운 당신』, 서정시학. ; 2023, 『디 에센셜: 한강』(303-309쪽), 문학동네.
한강, 2010 겨울, 「한강 작가연보」, 『동리목월』, 통권 제2호, 71-72쪽.
한강, 2011 봄, 「기억의 바깥」, 『작가세계』, 제23권 제1호, 37-42쪽.
한강, 2012, 「이상의 회화와 문학세계」, 연세대 석사학위 논문.
한강, 2013 가을,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문학동네』, 통권 제76호. ; 2023, 『디 에센셜: 한강』(317-323쪽), 문학동네.
한강, 2015, 「수상 소감」,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56-58쪽), 중앙일보문예중앙.
한강, 2015, 「수상작가가 쓴 연보」,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92-95쪽), 중앙일보문예중앙.
한강, 2017 겨울, 「그 말을 심장에 받아 적듯이」, 『창작과비평』, 제45권 제4호, 통권 제178호, 437-441쪽.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소감문.
한강, 2017 겨울, 「작가의 눈-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 『문학동네』, 2017년 겨울호, 10-13쪽.
한강, 2019, 「백 년 동안의 기도」.; 2023, 『디 에센셜: 한강』(339-341쪽), 문학동네.
한강, 2021, 「발문-반짝이는 유리 기둥 사이에서」, 『산돌 키우기』(497-502쪽), 문학동네.
한강, 2022 봄, 「출간 후에」, 『문학동네』, 통권 제110호. ; 2023, 『디 에센셜: 한강』(342-356쪽), 문학동네.
한강, 2023.11/12, 「시와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을 함께 쓴다는 것」, 『PEN문학』, 제176호, 18-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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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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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2014.9,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한강과의 대화」, 『창작과비평』, 통권 제165호, 311-332쪽.
나보령, 2023.6, 「다시 읽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 『행복한교육』, 통권 제500호, 54-55쪽.
노희호, 2022.9, 「한강 소설 속 유령의 형상과 기능-「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 『작별하지 않는다』를 중심으로」, 어문론총, 제93호, 205-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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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2019, 「한강 소설에 나타난 애도와 원한 연구-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23권 제3호, 통권 제84호, 239-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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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희, 2012, 「한강 소설의 인물 정체성 연구」, 연세대 석사학위 논문.
정용준, 2022.1/2. 「한강+정용준 빛이 머물다 간 자리」, 『악스트』, 2022년 1/2월호, 통권 제40호, 60-86쪽.
정윤희, 2016.6, 「이달의 북리스트 인터뷰-한강 작가」, 출판저널, 제485호, 16-21쪽.
주지영, 2022, 「한강의 「아기부처」에 나타난 혐오의 폭력성과 공거의 윤리」, 현대소설연구, 제86호, 279-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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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2021, 『산돌 키우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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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 Segye.com
2016년 부커상 공동수상자 데버라 스미스, 연합뉴스에 기고문
"종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인정 받은 것…독자로서 기뻐"
"한강 작품 번역가 50명 넘어, 이들 덕에 세계인 공감 얻어"
"한강 작가가 121년의 노벨문학상 역사상 아시아 여성 최초로 이 상을 받는 것은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 개인의 정체성이 공로를 가리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12일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과거 노벨문학상이 주로 백인 남성에게 수여됐다는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럽 중심주의와 성차별이 만연했는지 보여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스미스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2016년 세계적인 권위의 영국 문학상인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강과 공동 수상했고, 이로 인해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번역가다.
그는 기고문에서 "한강의 작품을 사랑하는 세계의 무수히 많은 독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강의 뛰어난 작품이 인정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강은 종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됐다"며 "노벨문학상은 작가의 전체 작품에 수여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영어권 중심의 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커상과 큰 차이가 있다"고 이번 수상의 의미를 짚었다.
그러면서 "노벨상 심사위원들은 여러 언어의 작품을 읽을 수 있고, 한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쓰는 전문가의 평가도 반영한다"면서 "이는 심사위원들이 한강의 작품성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미스는 한강과의 인연으로 익히 알려진 번역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현지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국 문학에 관심을 뒀고,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후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채식주의자'에 매료돼 작품 번역은 물론 출판사 접촉과 홍보까지 도맡았다. '채식주의자'에 이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도 잇달아 영어로 번역했다.
이로 인해 스미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강 관련 소식을 공유할 뿐 소회를 직접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참석한 소설가 한강 (서울=연합뉴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포니정재단은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작가 한강 씨를 선정했다. 2024.10.17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 활동을 오랫동안 지켜본 우리(독자)에게 노벨상 수상은 우리가 이미 알던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라며 한강의 작품들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호평을 소개했다.
그는 "2016년 '소년이 온다' 영어 번역본이 영국에 출판됐을 때 존경받는 한 시인은 제게 편지를 보내 '그것은 중요한 책이고, 기념비적이며, 정치적 폭력과 그 영향을 다룬 새로운 종류의 책'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 비평가는 최근 '한강의 문학적 공헌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울려 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면서 "많은 사람이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영어권에선 '채식주의자'가 가장 유명하지만, 한국 독자들 사이에선 '소년이 온다'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이 작품은 굉장한 베스트셀러였고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 현재적 영향에 대한 국가적 담론을 불러일으켰다"면서 K-팝 스타인 BTS(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군 복무 중 '소년이 온다'를 읽은 사실을 SNS에 공개했던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미스는 아울러 자신이 번역한 영어판은 수많은 번역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공로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받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영어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라며 "한강의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미 스웨덴어, 프랑스어,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로 번역됐다. 이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소설('작별하지 않는다')의 영어 번역본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의 번역으로 내년 1월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알렸다.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을 번역한 사람은 50명이 넘는다"며 이들 번역가의 공헌이 과장되지 않게 인정받기를 기대했다.
그는 "윤선미 번역가가 아르헨티나 출판사에 제안해 '채식주의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했고, 30년간 한국에 거주한 리아 요베니티 번역가는 '희랍어 시간'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며 "저는 이런 과정을 기사로 접하며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번역가의 노고와 실력 덕분에 한강의 문학 작품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우리(번역가들)의 공헌이 인정받는다면 기쁜 일이겠지만, 번역가들의 공헌이 과장 없이 정확하게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케이 박람회서 노벨문학상 한강 작품 전시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26일(현지시간)부터 프랑스 파리 시내 브롱냐르 궁전에서 진행되는 K-박람회에서 프랑스인들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4.10.26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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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어판 출판사인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54)의 우리말 수상 소감이 공개됐다.
12일 문학동네는 "한강이 직접 쓴 우리말 원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한강은 전날(현지시간 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약 3분 30초간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다음은 한강이 직접 쓴 우리말 수상 소감 전문.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한강 수상소감 "문학은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 (현장영상) / SBS - YouTube
2024년 노벨상 수상자 2 (0) | 2024.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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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상 수상자 1 (0) | 2024.10.12 |
2024년 노벨상 후보는 (0) | 2024.10.12 |
[2024 노벨상] '노벨상 관문' 어떤 상 있나 (0) | 2024.10.12 |
2023년 올해 노벨상 수상자 (0) | 202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