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한국순교자 2위 순교하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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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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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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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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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03.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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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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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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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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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03. 11 |
서울 창동(倉洞)에서 태어난 정의배 마르코님은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양 선교사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감동하여
곧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셨다.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고 주교가 입국한 뒤 서울 지역의 회장이 되어
20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하였고,
1854년에는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기도 하셨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2월 25일에 체포되셨고,
3월 11일 프르티에(Pourthié, 신요안(申妖安)) 신부,
프티니콜라 (Petitnicolas, 박덕노(朴德老)) 신부,
그리고 우세영(禹世英-알렉시오)님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72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우세영알렉시오님은 황해도 서흥(瑞興) 향교 마을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우연히 알게 된 김 요한이라는 회장의 권면으로
관직의 뜻을 버리고 서울로 내려가,
정의배님에게 교리를 배우고 장(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뒤 부모의 반대를 인내와 열정으로 참아 내어 가족들을 입교시키고
신앙 생활을 위해 평안도 논재로 이사했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2월 16일 이웃 마을인 고둔리 공소에서
유정률님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평양 감영에서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하고 석방되셨다.
그러나 곧 배교한 것을 후회하고
서울로 내려가 스승 정의배님을 만나러 갔다가,
이미 체포된 정의배님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셨다.
같은 해 3월 11일 신 신부, 박 신부, 스승 정의배님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