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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형장-9위 순교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1. 5. 2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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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서소문 형장-9위 순교일    

     

 

 

    김아기   아가타   서소문 밖   1839.05.24
 
    박아기   안나   서소문 밖    1839.05.24
 
    이소사   아가타   서소문 밖    1839.05.24
 
    김업이   막달레나   서소문 밖    1839.05.24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서소문 밖    1839.05.24
 
    한아기   바르바라   서소문 밖   1839.05.24  
 
    박희순   루치아   서소문 밖    1839.05.24
 
    남명혁   다미아노   서소문 밖    1839.05.24
 
    권득인   베드로   서소문 밖    1839.05.24

 

                                                                                  <오늘4위, 내일5위 등재하겠습니다> 

 
聖女 김아기 아가타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05.24

 

 
 
김아기님은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전혀 신앙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천주교를 알게 되어 교리를 배웠다.
기억력이 나빠 12단(十二端)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하였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여 교리를 배우던 중
1836년 10월 김업이(金業伊), 한아기(韓阿只) 님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김아기 아가타님은
“나는 오직 예수, 마리아밖에 모릅니다."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고,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다음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 갇혀 있던 교우들은
예수, 마리아 밖에 모르는 김아기가 왔다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후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아기는
형집행의 유예로 3년을 옥살이한 끝에 옥중에서 대세를 받고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3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셨다.
 
 

 

 

                     십이단을 제대로 못 외웠고,

                     예수 마리아 밖에 모르셨다는 아가타님에게,

                     주님은 순교의 월계관을 허락하셨네요.

 

                     사랑해요, 김아기 아가타님,

                     차란히 빛나는 면류관 쓰시고

                     이 못난 후손에게 님의 기도를 보내 주소서!....................아멘

   

 

 
 
  

 

 
聖女 박아기 안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05.24

 

 

강원도 강촌 출신의 박아기님은 
서울의 한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머리가 둔해 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였으나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였다.
 
18세 때 비교적 부유한 교우 태문행(太文行)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고 또 정성껏 그들을 교육시켰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박아기님은 남편, 큰아들 응천(應天)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남편과 큰아들은 심한 고문으로 배교하고 석방되었으나
박아기만은 배교를 거부하고 모진 고문을 이겨 내셨다.
 
연일 계속되는 혹형으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 나왔으나
언제나 평온하였고 때때로 위문 오는 가족들에게도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형조로 이송되어서도,
배교하고 가족들에게 돌아가라는 형관의 갖은 유혹과 고문에도
박아기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7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셨다. 

 


 

 

                     2남 3녀를 둔 다정한 어머니는

                     연일 계속되는 고문에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 나와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서소문 형장, 피바다의 이슬이 되셨습니다..

 

                     사랑해요 성녀 안나님,

                     님의 고결한 순교의 피에 내려진 영광 가운데

                     세속에 찌든 이 죄인을 기억해 주소서!................아멘

 

       

  
 
  

 
聖女 이소사 아가타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05.24

 

 
이소사 아가타님은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하였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면서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는데,
1835년 2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참아 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54세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셨다.

  


 

 

                     사랑하는 남동생, 호영님과 함께 체포되시어

                     한 날 한 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시던 남매,

 

                     동생을 옥중에서 먼저 보내고

                     서소문 형장에서 장렬히 칼날을 받으신 이소사 아가타님,

 

                     사랑해요,.이소사, 이호영 순교자 남매님,

                     저희 형제 자매들이 주님 진리 안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女 김업이 막달레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05.24

 

 
김업이님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권유로 혼기에 이르러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해박한 교리 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살아가던 김업이님은
1836년 10월 김아기(金阿只), 한아기(韓阿只) 님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 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66세에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으로 순교하셨다. 
 

 

 

                     아현 고개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던 한 평생,

                     비록 비천한 직업이었으나

                     가슴 속은 불붙는 주님 사랑으로  뜨거우셨으며

 

                     노모를 모시는 정성은 이웃의 표양이 되셨네요.

                     66세에 순교의 칼날을 이겨내신 님,

                     사랑하는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시여,

                     간절히 부르셨던 예수, 마리아님 앞에서 저희를 기억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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