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상지대학교 한약재료학과에서 포제법을 강의할 때 실습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혈여탄을 만들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솥에 깨끗이 씻은 머리카락을 절반 정도 채운 다음 비슷한 크기의 솥을 덮고 밀가루반죽으로 틈을 막은 후 무거운 돌을 얹어서 공기가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게 밀폐시켜 가스렌지에서 가열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황색연기가 나면서 밀가루 틈 사이로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많은 피가 흘러나와 솥 바깥에 굳었다. 그때 왜 옛날 사람들이 ‘머리카락은 혈이 남은 것(髮者, 血之餘)’이라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혈여탄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태운 탄을 말한다. 혈여탄은 지혈효과가 있기 때문에 약재가 귀했던 예전에는 꽤 사용되었으나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밀폐단법도 많이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혈여탄을 만들 때 사용되는 밀폐단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약물을 고온의 진공상태 하에서 단소하여 탄으로 만드는 방법을 ‘밀폐단법(密閉 法)’이라고 한다. 약물을 가열만 하는 명단법과 대조하여 ‘민단(悶 )’ 또는 암단법(暗 法)이라고도 하며 명 단법이나 단쉬법과 함께 포제법 중 단법으로 분류된다.
밀폐단법은 주로 혈여탄(血餘炭), 진종탄(陳棕炭) 등의 약물에 사용되는 포제법인데 약물의 성질을 변화시켜 지혈작용을 가지게 한다. 건칠(乾漆) 등의 유독한 약물도 독성을 줄이기 위해 밀폐단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단법이 초법이나 자법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가열 온도이다. 초법과 자법은 400~500℃의 온도에서 가열하는 반면 단법은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가열한다. 다만 밀폐단법은 초법이나 자법과 비슷한 온도면 되지만 밀폐하여야 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밀폐단법은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쉽게 산화되어 재로 변하기 때문에 공기를 차단한 다음 행한다. 그래서 단하면 재질이 너무 푸석푸석해지거나 쉽게 재로 바뀌는 약물에 주로 사용한다.
밀폐단법을 할 때는 깨끗한 약재를 솥에 넣고 덮개를 덮은 다음 소금진흙으로 밀봉하여 산소가 들어가지 않게 한 상태에서 가열하여 솥이 완전히 식으면 꺼낸다. 밀폐단법은 약물이 완전히 탄화될 때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흙의 틈으로 연기를 관찰하여 흰색이나 황색의 연기가 청색의 연기로 바뀌면서 감소하면 화력을 낮추고 연기가 나지 않을 때가 되면 불을 끄고 식은 후에 약물을 꺼낸다.
가열하는 중에는 약물이 열을 받아 탄화되기 때문에 많은 양의 공기 및 진한 연기가 봉한 사이로 분출되므로 습한 진흙으로 봉하여 공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면서 약물을 탄화시켜야 한다. 열이 가해지면 용기 내의 공기가 팽창하여 뚜껑이 열릴 수 있으므로 돌이나 쇠로 된 무거운 물체를 얹어 놓아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또 단투한 후에는 완전히 식은 후에 뚜껑을 열어야 한다. 이는 약물이 공기로 인해 연소되어 탄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밀폐단법을 할 때 용기 내에 약재를 너무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넣으면 단하여도 투과되지 않으므로 탄화되는 정도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밀폐한 후 가열하기 때문에 내부를 관찰할 수 없어서 밀폐시키는 용도로 사용된 진흙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데 뚜껑의 둘레에 물을 뿌려 끓는 것으로 단투 정도를 판단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뚜껑의 둘레에 흰 종이를 놓아 황색으로 되거나 뚜껑에 흰 쌀을 놓아 황색으로 변하였을 때 식히면 된다.
정리하면 혈여탄을 밀폐단법으로 만드는 이유는 가열 중 공기가 접촉되어 재로 바뀌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하여야 지혈작용을 가지게 된다. 오늘날에 비해 지혈법이 중요한 치료법이었고 약재도 귀했던 옛날에는 많이 사용되었던 약재였지만, 현재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혈여탄과 밀폐단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야겠다.